소수의견 - 박권일 잡감, 2012, 자음과모음

 

우선 감사부터.

그 다음은 난처한 심정임을 고백해야겠다.

 

현상의 이면에 숨은 실상에 대한 예리한 지적, 대적해야 할 것들에 대한 또렷한 비판, 약자들을 향해 품은 연대의식과 가슴 아파하는 마음씨 등등 새겨두고픈 문장과 개념, 제언들이 빼곡한 이 책을 읽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를.

그리고 부제를 ‘잡감’이라 달아버림으로써, 이런 책이 잡감이면 이 보잘 것 없는 독후감(?)에는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지 난처함을 느낀 데 대해 원망을.

결국 따로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인터넷이나 트위터 세상에서 ‘쟁가’란 필명으로도 알려져 있는 박권일의 [소수의견]은 대략 2008(빠르게는 2007)년~2012년 전반부에 걸쳐 그가 발표하거나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시사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 글들로서, 그의 입장은 - 설명이 정확하지 않아 저자에게 오히려 누가 될지 모르겠으나 -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좌파’ 내지 ‘진보’라고 불리는 혹은 그 이름을 자칭하는 인물/세력/집단들보다 한층 더 왼쪽에 서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을 숨기지 않았음에도 저자의 생각이나 주장은 보편적(좋은 의미에서)으로 고민해 볼 내용들이다. 또한 ‘표준 시민’과 같은 매력적인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더 다듬어지고 연구되어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이 되기를 소망한다.

 

단일한 주제로 길게 이어지는 ‘하니의 글’이 아니라, 필자는 독후감의 ‘포인트’를 어디로 잡아야 할 지에 대해 어려움을 느꼈다. 결국 글들을 읽으며 순간순간 떠오르는 느낌을 메모해 두었다가 순서대로 정리하는 방법(?)을 택했을 따름이다.

이하 ‘독후감’은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하나는 필자의 눈에 번쩍 들어온 문장들의 소개.(따로 괄호를 덧붙여 짤막한 감상을 덧붙이기도 했다.)

나머지 하나는 글의 내용 중 내가 의문이나 문제제기(감히!)를 하고 싶은 부분에 대한 장황한 서술. 후자는 필자의 무식함과 게으름, 사유 부족만 드러낸 것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이런 약간의 의문이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으로 읽을 만하고, 그러므로 여러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 기억해 두고 싶은 문장들 : 문장 첫머리의 숫자는 쪽수 >

56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이렇게 유행하는 것은 정작 소셜 네트워크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 아닌가

97 미디어 리터러시한 수도권의 2040세대 (중략) 그들이 바로 표준 시민의 중핵을 이루는 집단

100 소셜 미디어는 사회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자원’이다.

123 빵빵한 지식과 윤리 의식까지 갖춘 시민이 이렇게나 늘어났는데 어째서 세상이 이 모양일까.

(냉소 작렬, 이라고 메모해 두고 싶은 문장이다.)

149 지역 엘리트의 출세 경쟁이 지역 토호의 이권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역민과 시민 전체의 복지에 기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믿는다.)

167 ‘국가의 후퇴’가 ‘강한 국가의 열망’으로 나타나는

199 ‘진정성’ 같은 심정 윤리를 통해 사회문제를 판단하길 좋아하는 한국 사회야말로, 소셜 맥거핀이 자라날 최적의 토양

(소셜 맥거핀 : 사회적으로 첨예한 적대를 은폐 왜곡하기 위해 대두되는, 실체가 없거나 사소한 적대 - 197쪽을 참고한 필자 주)

228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지만, 꼰대도 그렇다.

264 얄궂게도 부모 세대와 그들의 자녀 세대가 공히 비정규직 문제의 최대 피해자다.

(이런 지적을 접하면, 너무 아득해서 한숨만 난다. 하여간 비정규직 문제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 의문 또는 문제제기 >

51 온라인 ‘브리콜라주’

57 온라인 ‘정의구현사제단’

- 브리콜라주라는 단어는 인터넷 사전 검색을 뒤져보았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그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던지라 찾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 개개인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의 양과 종류가 서로 달라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건 물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감수라고 하나, 뭐랄까 책을 최종편집하기 전에 독자들이 다소 생소해하겠다 싶은 명칭(인명 포함), 학술용어 등에 대해선 간단하게 설명을 달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97 등 ‘표준시민’

- 앞서도 얘기했지만 ‘표준시민’ 개념을 더 다듬고 연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재미있고 중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124

신자유주의에 대해, 지구온난화에 대해, 그리고 MB에 대해 우리가 자명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정보 중에서 엄밀히 검증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 저자가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들인데, 호의적이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이후 부분만 따로 떼어 써 놓으면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 앞의 어구가 추가될 경우 표정을 굳힐 것이다.

저자의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부분.

- 개인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경험을 은연중에 절대화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만일 이런 의심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우리가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늘 고민해야 하는 것 중 한 가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마외도’ 놈들을 어찌 대할 것인가?”

즉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당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보장은 없으니 일단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진 마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절대 참신한 문제제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124(~125로 이어지는 마지막 문단)

- 뒷 문장은 참으로 좋은 제언이라고 본다. 하지만 앞 문장은 좀...? 주변의 생활인들에게 쉽고 간결하며 섬세하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서 ‘개념어나 최신 정보의 습득’의 가치를 낮추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130 가장 아래 ‘소진하다’라는 단어

- ‘소진하다’의 주어가 사람이 아닌 ‘소설’이라 주술관계가 어색한 문장이 아닌가 의심했는데, 사전에 따르면 사물을 주어로 하는 자동사로도 사용할 수 있다. 내 무식만 드러난 셈이지만, 덕분에 단어의 의미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라고 자위해 본다...

 

206 [슈퍼 갑의 사회] 중에서 206쪽 마지막에서 둘째 문단부터 글 마지막까지

-이 부분에는 ‘을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 서술되어 있다. (이때의 을이란 중소기업 내지 소규모 자본) 주장된 내용에는 공감이 가나, 약간만 설명을 덧붙였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감히 가져 본다.

한국 중소기업은 대기업(대규모 자본)에 대해서는 을이지만, 소속 노동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갑’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을 짚어주었다면 글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지지 않을까. 글 전체적으로 한국 중소기업을 을의 위치에 놓아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231

386들은 자신들이 정작 이명박과 이회창에게 화끈하게 표를 던졌으면서도 (후략)

 

- 이 문장을 읽다가, 나는 오래 전 읽었던 방현석의 소설 [당신의 왼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매우 오래 전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닌데, 80년대 중앙대학교(맞나?) 최대규모의 데모에는 80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같은 날 그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쌍쌍파티에는 3,000명이 참석했더라는...

(소위 386의 업적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나) 그 386들이 실제론 그랬다는 거다. 386이니 20대니 하는 이른바 세대론이란 것에 대해, 그 구절을 읽은 덕분(?)에, 별로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는데, 231쪽의 위 문장을 읽으며 묘하게 공감을 느꼈다.

 

260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새벽까지 이어지는 집회에서 매일 최후까지 남아 가장 격렬히 저항했던 이들이 대학생들이었다는 사실

 

- 진한 부끄러움을 느낀 구절(이 책을 읽다 부끄러움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필자는 위의 사실 자체를 2012년 여름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그저 ‘대학생들이 아무 것도 안 했다 해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거고 그런 걸 섬세하게 파악해야지’라는 정도의 생각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필자는 그러지 못했다. (필자의 문제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지만...)

 

 

281과 287에는 거의 동일한 진술이 등장하는데 일단 인용해 보자

 

계급 적대가 정당을 통해 제대로 대의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이기에 특정 세대의 이념은 (정치적) 계기에 따라 (그것도 큰 폭으로) 끊임없이 진동할 수밖에 없다.

 

- 이 문장 때문에 여러 시간 골머리를 싸맸다. 뭔가 맞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뭐랄까, 생각을 따라가지를 못했다. 필자 자신의 낮은 이해(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관련 정보의 빈약함)이 제일 큰 문제임은 분명하나, 솔직히 볼멘소리를 좀 하고 싶기도 하다.

‘계급’에 관한 이야기가 갑자기 ‘세대’로 비약한다는 느낌,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이기에’와 ‘특정 세대의 이념은~’ 사이에 한두 문장이 빠져 있다...는 의심이 든다.

-‘특정 세대의~’부분(즉 문장 뒷부분)은 사실을 명료하게 진술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문장 앞부분과의 연결고리. 연결고리가 뻔한데도 필자가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것이겠지만......

- 애써 이해해 보자면,

실제로 있는 것은 계급 적대인데 > 이것이 정당정치 등을 통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하고 있다 > 표출되지 못한 계급 적대는 그때그때의 이슈 등과 연관되어 간헐적으로 그나마도 왜곡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을 뿐인데 > 한국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마치 특정 세대의 대다수가 특정 이념을 가진 것처럼 오해된다

...정도로 생각을 정리(?)할 수는 있었는데 저자의 생각을 잘 따라간 것인지 자신이 없다.

- 혹은 차라리,

“한국 사회에서는 계급 적대가 정당을 통해 제대로 대의되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사회적 조건이나 이슈와 연관되어 간헐적으로 분출될 뿐이며 그조차도 특정 세대의 이념적 지향이 실재하여 그것이 드러난 것처럼 왜곡되게 분출되고 있을 따름이다” 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방자한 생각까지 든다.....

-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불만족스럽다. 계급적대가 세대이념으로 왜곡되는 과정/경로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소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이 책에 대한 내 호감은 분명하다.

 

열심히 살았는데 어째서, 라며 절망하는 당신께

이게 사는 건가, 라며 절규하는 당신께

세상 원래 이 꼬라지인 거 몰랐나, 라고 냉소하는 당신께

상식과 원칙이면 됐지 뭘 더, 라고 자신만만해하는 당신께

내가 이만하면 진보적이지 뭐 쓸데없는 데까지 신경을, 이라고 확신하는 당신께

세상이/세상을 좀 덜 고통스럽고 좀 더 따뜻한 방향으로..., 라고 소망하는 당신들께

 

다시 한 번 추천.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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