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원체 나돌아다니질 않는 성격이다 보니 이젠 적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금도, 집 밖으로 나서면 여전히 낯선 풍경이 낯익은 풍경보다 많다.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가게며 네거리며 유명한 지형지물 이름들이 등장하는 얘기에 끼지 못하고 열심히 듣고만 있을 때가 많다. 대구 사람 맞냐는 말 자주 듣고 산다. 집에서 조금 걸어나가기만 해도 그렇다.

물론 지금 집에서 산 지는 삼 년밖에 안 되었... 삼 년이나 되었는데도 그렇다.

 

오늘도 집에서 십여 분, 넉넉잡아 이십 분 거리의 시장에서 몇 가지 사서 돌아오다가

(시장과 우리 집 사이엔 넓고, 소규모 아파트 단지도 두서넛 자리잡고 있으며 길이 약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택가가 있다)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를 함께 파는 가게를 보았다. 물론 처음으로.

아마 처음 들어선 골목길일 것이다.

거리로 따지면 시장 첫머리(즉 지금 하는 이야기의 '무대 위'에선 집에서 가장 먼 곳)에서 집까지 2/3 내지 3/4 정도 쯤이다.

 

언젠가, 누구든 꼬셔서(?) 맛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은 후에 실망할지언정 일단 가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음식점이나 술집이 있다. 저 집이 그랬다.

 

한데 이 집 ...왜 그렇게 가 보고 싶어졌지?

 

...돌아간 친구 한 사람과 둘이 꼭 가 보자고 의기투합했던 적이 있었다.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

또는 트위터친구 누군가가 더 낫다고 추천했던 하얼빈 맥주.

두 맥주 다 있으면 비교도 가능하겠지.

".....에 잘 하는 집 알아. 같이 가 보자."고 그는 말했었다.

 

갑작스레 생각이 났다.

잘 하는 집 위치와 이름은 끝내 기억나지 않는다. 서구 쪽이라 했던가? 성서?

 

기일을 지나쳤다.

 

친구의 가족들과는 면이 없고... 혼자서, 뭐랄까, 심상(?)이라도 하려 했지만.

(뭔가를 거창하게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서도...)

첫번째 기일이었던 작년에도 두번째인 올해에도 이꼴이다.

 

지난해 2월에 옮긴 부서에서 맡은 업무는 무척 힘에 부쳤다.

조금 익숙해졌고, 좀 있으면 업무가 조금 줄어든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때때로 힘들어진다.

더구나 8월 ...하필이면 8월이다.

우리 부서 내에서도 우리 팀이 가장 바빠지는 시기 중 하나이다.

내 주업무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8월에 하는, 내 직장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행사를

담당하는 이가 우리 팀에 있다. 나도 그 행사의 작은 부분 하나를 맡아 진행했다.

(이제 그 행사는 거의 끝났고, 나는 내 주업무로 돌아가서

주업무에 관해서는 일년 중 두번째로 바빠지는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

 

하여간 8월에는 아주 조금만 과장해서, 잠만 겨우 잤다.

핑계임을 스스로도 알지만, 그렇게, 또 지나쳤다.

 

돌아간 친구의 마지막 시기에

가장 자주 접촉했던 사람(중의 하나)이 나라는 것 때문에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

느끼는 건 느끼는 거고, 양꼬치와 칭다오를 먹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잘도 사로잡히는 것이 나의 간사한 부분이다.

 

시기를 놓친 심상(?)은 그 곳에서, 먹고, 마시며.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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