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2002년 사이에 자주 들락거리던 사이트가 있었다. 내부에 하위 게시판이 많았고, 그 각각에서 활발한 논쟁과 논의와 수다가 넘쳐났다. 몇몇 게시판에서 지금 생각하면 민망해지는 잡글을 쓰곤 했다. 주로 신변잡기류, 좋게 봐줘도 되다 만 수필정도의.

 

한 번은 글을 쓰니 누가 칭찬을 하는데(대체로 글 성격이 온화하고 내용이 사려깊다는..) 그 칭찬은 “...하시니 여성 분이심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충 아 저는 남자고(남자라서 죄송하다고 했던가ㅎㅎ)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다른 쪽으로 말을 돌리면서 답글을 맺었다. 답글을 길게 주고받으며 이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딱히 기분 나빴던 것 같진 않다. 그냥 살짝 당황했고 피식 웃다 말았던 것 같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실은 순간적으로 화가 났는데 화를 내는 것이 지나친 행동이다 싶어 스스로를 단속했던 걸까. 화가 났다면 왜 났던 걸까.

만약 화가 났다면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1) 감히 나를 여자로 봐!? (2) 아니 왜 온유하다든가 사려깊다는 게 여성적인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이군 그래..

 

감히 페미니스트나 성평등론자를 자처하진 못하겠으나, 그래도 갖고 있는 편견이 있다면 줄이려고 애써 왔다고 자부(...;;;)한다. 만약 화가 났대도 후자였을 것이다(맞겠지? 맞을 거야;;;).

한데 화가 났느냐 여부보다는 당시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 지가 더 궁금하다. 즉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 몰랐고, 부끄럽게도 지금도 모르겠다. 물론 실제로 했던 것처럼 무던하게(?) 지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최선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모르겠다.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만 늘었고 이런 쪽으론 여전히, 너무나, 미성숙하다.

 

 

2.

지금은 없어진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던 적이 있다. 지구당이란 것이 있던 시절이었고 가입하고 나서 한두 달 쯤 후에 첫 지구당 모임에 나갔고 감자탕 집 같은 곳에서 반주 곁들여 뒤풀이를 가졌다.

뒤풀이 때 외관상으로는 머리 희끗희끗하고 적당히 배가 나오고 적당히 인상이 좋은 전형적인 아저씨같은 사람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자기소개며 호구조사 같은 말들 좀 주고받는데... 어느 새 그 사람이 내 손에 주목을 하더라.

(.. 손이 곱다. 요즘이야 내 손 들여다보는 사람 잘 없지만,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전반까지 손 곱다는 소리 듣고 살았다. 뭔가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증거 같아서 내가 열등감을 느끼는 나의 특성 중 하나이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이 주목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중엔 손을 잡고 잠깐 만졌던가 쓰다듬었던가 그랬다. 잠깐10초였는지 1분이었는지...... 내 대응이 기억나진 않는데, 뿌리치거나 화를 내거나 이런 쪽은 아니었다. 손을 조용히 뺐던가, 아니면 그냥 기다렸던가. 분명히 기분이 좋진 않았는데, 그랬는데도 조용히 대응했(있었).

 

지금에 와서도 궁금한 것은 두 가지다. (1) 그는 왜 그랬을까. (2) 나는 또 왜 그랬을까.

(1)은 글쎄. 동성(혹은 양성)애자였을까. 아니면 본인의 성향이나 특정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그냥 너무 신기해서였을까. 이젠 알 길이 없고, 다만 후자였다면 (지금도 그렇겠지만) 꽤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2) 난 왜 가만히 있었을까. 어떤 모임에 처음 나간 자리에서 고참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혹은 모임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던, 또는 깨기 겁났던 것일까. 혹은 그냥 놀라서 어찌할 바 모르고 굳어 있었던 게 다일까.

지금이라면 더 단호하게 손을 뺐을 것이고, 어쩌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속사정보다도 내가 왜 그리 나약하게 있었는지가 더 궁금타.

 

 

1.이나 2.같은 상황에서 쾌도난마로, 단칼에 상황을 정리하는, 혹은 거기에까진 이르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취할 행동을 분명히 선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대응방식이나 내용에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단칼 같음이 부럽다.

 

 

2-1. 딴 얘길 하자면 나중에 (성격이 분명히 생각나지 않는다) 소규모 당원모임을 어느 까페에서 가졌는데, 까페 주인이 당원이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서 주인도 모임 참여자도 다들 안타까워하긴 하는데 뾰족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인터넷 당원교육 같은 방법이야 있었겠지만 그다지 실질적이진 않았던 듯. 지금도 뭐랄까 정당이라는 말 자체의 의미에 어울리는 정당이랄까, 유명 정치인의 참모들과 지지세력의 결합체를 정당이라 부르는 그런 정도를 넘어, 당원 참여가 활발한 당이 되려면 저런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할 텐데, 하고 아련하게 생각만 하다 그친다...

 

 

3.

(앞의 얘기들과 달리 찝찝하지 않음)

대학을 다니다 군 입대를 했는데 입대 전 약 6개월 간 어느 학생운동 조직의 사업 하나를 도왔다. 조직원(표현이 좀...?)으로 가입한 것은 아니고 그 사업에만 참여를 했었다. 대학 다니는 기간 동안 학생운동에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했지만 직접 용감하게 참여하고 그런 적은 별로 없었는데, 그래도 그 6개월간엔 굉장히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군 입대 자체가 좀 갑자기 결정된 거라 뒷일을 (결과적으론) 남은 사람들에게 던져버린 게 지금도 미안타.

 

자연스럽게 조직원 몇몇과도 얼굴 트고 지냈는데, 그들 중 참 화사한 아가씨가 있었다. 외모도 말투도 행동거지도 세련이라는 두 글자를 사람으로 빚어낸 것 같은. 스스로도, 같은 학번에 동갑인데 뭔 아가씨냐 싶었지만, 그땐 정말 같은 학번 같은 나이 맞나 싶었다. 그녀 앞에서 나 자신이 애 같더라.

당시엔 다른 여성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이성으로 접근하겠다는 의도 없이, ‘와 정말 화사하고 세련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동경하고 우러러보았다......;;;;;; 안면 트고 이름 주고받고, 그 뒤로는 만나면 반갑게 잠시 인사하고는 각자 갈 길 가고... 딱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던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그리 자주 마주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업에 더 힘을 쏟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판이 이 일하다 저 일하다 하는 데지만, 나는 애초에 조직원이 아니니 다른 일에 참여할 일은 거의 없었다.)

 

군복무 중의 휴가 중 첫 번째였던 100일 휴가였던가, 아님 그 뒤의 첫 장기휴가였던가. 마지막 이틀 혹은 사흘은 (집에서 바로 귀대하지 않고) 대학가에서 보낸 후 귀대했다. 학교 가서 있는 사람은 만나고 없는 사람은 못 만나고, 저녁엔 친구며 선배들이 사 주는 술을 진탕 마시고 잠은 친구 하숙방에 신세를 지고, 그러고는 돌아갔는데...

 

있는 사람 중에 그녀가 있었다. 다른 사람 없이 잠시 둘이만 얘길 나눴다.

여전히 화사했고(내 느낌 : ‘그러면 그렇지.’(뭐냐 나는......)) 군에서 휴가 나온 친구한테 으레 하는 정도보다 훨씬 더 반갑게 맞아 주어서 기쁘면서도 동시에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누다가, 그녀 쪽에서 폭탄을 던졌다.(덕분에 앞뒤의 다른 얘긴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군복무 중인 사람이랑 격려하는 친구 사이에 오고간 얘기야 뻔했을 것이다. 폭탄만 빼고.)

너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냥 환하게 웃으면서, 격렬한 감정 표현은 없이 그녀가 말했다.

 

아마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나는. “야 이 씨 진작 고백하지. 이제 와서 그러면 어쩌라고등등의 말을 가볍게뱉으면서, 필사적으로 충격받지 않은 척 얘기를 나누다 어찌어찌 작별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던 거 같다. 돌아볼 엄두는 내지 못했던 거 같다...

좀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굴었어야 한다, 고 지금도 살짝 후회한다(큰 후회는 아니고). 나라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져 준 것이 고마워서라도 또 그 마음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해서라도 내 자신이 충격 받은 것에만 매몰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역시 난 그 때 애였다.ㅎㅎ;;;

 

그 뒤론 만나지 못했고, 제대하고도 몇 년인가 후에 결혼 소식을 들었다. 천성 게으른 데다, 거주하던 곳과 결혼식장이 멀리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한참 돈도 없던 시기였지만 찾아갔다.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그저 열심히 찾아가 축하해주는 것으로밖에는 표현하지 못했다. 그녀는 물론 반가워해 주었고(살짝 놀랐던가? 모르겠다. 중요하지도 않고), 흰 장갑 낀 손으로 꼭 악수해 주며 고맙다던 모습이, , 여전히 화사했다.

 

앞의 두 에피소드(라고 쓰고 흑역사라고 읽는다)와 달리, 끝이 좋아서 다행이긴 한데, 폭탄 맞았을 때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지금도 아쉽다. 심지어 지금은 애 있는 애(!)라서 매우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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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페이스북에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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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좀 써 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느낌이지만) 맞춤법 오류를 가끔 너무 자주 목격한다 싶을 때가 있어서 얼마나 효과가 있든 한 번쯤은 써 보고 싶네요 이런 이야기. 이러는 저도 많이 틀리고 많이 모릅니다.(특히 띄어쓰기와 사이시옷은 영 자신이 없군요.) 그래도 서로 지적해 주면서 오류를 줄여 나가는 게 좋겠죠.

제 눈에 자주 뜨이는 오류와 그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요령에 대한 제안을 세 가지 해 봅니다.

 

 

첫째, ‘(로)서’와 ‘(로)써’ - 알쏭달쏭하면 차라리 (로)서를 택하라.


‘방어의 수단으로x의 공격’이라는 문구를 예로 들어 봅니다. 누가 sns에서 x에 들어갈 글자가 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고민하자 여러 사람이 조언을 하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최강&최악이었던 조언을 소개하자면 “해당 문장 안에 수단이란 말이 있으니까 ‘써’가 맞다.”였습니다......이 문제에 대해 조금은 아는 사람이 한 조언이라 더 서글픕니다.
심지어 이걸 고민하던 분은 ‘서’가 맞다 믿고 있었는데 자신이 속한 단체 카톡방에서 그 생각을 드러냈다가 반대 의견이 더 많아 황당함을 느낀 일까지 있었다더군요.;;;

‘(로)서’는 자격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앞말과 뒷말이 동격입니다. 영어로 치면 is나 (전치사) as 가 두 낱말 사이에 놓일 때 무리가 없는 경우이죠. 예를 들면 “나는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킨다.” 거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라고 쓰면 맞게 쓴 겁니다. <나 = 군인/시민>이니까요. 앞에 예로 든 문구에도 그래서 ‘서’가 들어가야 합니다. <공격 is(as) 방어의 수단>이므로.
특히 A“로서의” B라는 표현은 백이면 백 ‘서’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로)써’는 수단을 나타냅니다. 뭔가를 이용하여 다른 뭔가를 이루려 할 때 씁니다. 영어라면 (전치사) by를 쓰면 알맞은 경우입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조금(?) 의역하면 “군인은 그 목숨을 바침으로써 나라를 위한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 <나라를 위함 by 목숨을 바침>이라는 의미이므로 ‘써’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바꿔 말해, 이 경우 앞말과 뒷말은 동격이 아닙니다. 둘 사이에 등호(=)를 놓아 보고 성립이 안 되면 ‘써’, 되면 ‘서’...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듯.

그리고 제 경험상 ‘써’를 써야 할 곳에 ‘서’를 잘못 틀리게 쓰는 경우는 잘 없었습니다. 대개는 그 반대더군요. 그래서 첫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차라리 (로)서’라고 제안을 한 것입니다.

 

 

둘째 , ‘던’과 ‘든’ - 애매하면 차라리 ‘든’을.

“정 할 일이 없으면 잠이라도 자던가.” “가던 말던 내 마음이지.” 같은 표현들을 자주 보는데, 두 가지 예 모두 잘못된 표현을 썼습니다. 둘 다 ‘든’을 써야 할 경우입니다.

‘던’은 과거의 사실을 나타내는 문구의 끝에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같이 앉아서 놀던 곳’ ‘작년 오늘 새벽에는 어찌나 비가 많이 내렸던지...’와 같이 써야겠죠.


한편 ‘든’은 내용상 두 가지 이상의 선택이 가능할 때 씁니다. “잠이라도 자든가(‘말든가’라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든 말든 내 마음.”처럼 써야 합니다.

어느 쪽을 쓰‘든’ 상관없다 여기지 마셨으면...... 이 문제도 ‘던’을 틀리는 경우는 잘 없는 데 비해 ‘든’을 써야 할 곳에 ‘던’을 써버리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봅니다. 헷갈리면 ‘든’을 쓰는 게 확률상(...) 더 맞을 겁니다.

 

 

셋째, ‘에’와 ‘의’ - 이번엔 단정적으로 제안하진 못하겠지만, 명사와 명사 사이에는 ‘의’를 쓰는 것이 맞는 표현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20세기에 과학자들” 같은 표현을 언젠가부터 자주 봅니다. 명사와 명사 사이를 잇는 부분이니 ‘의’를 써야 하죠. “배철수의 음악캠프”처럼요.
‘에’는 보어라서 뒷말 쪽에 먼가 서술어(주로 동사겠지만)가 있을 때, 또는 겉으로는 표현이 생략되었지만 의미상 문맥상 있을 때 쓰는 게 맞습니다.


“어머니와 오후에 점심”이라고 수첩에 일정을 적어두는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 말은 ‘어머니와 오후에 함께 점심식사하기’를 줄여 쓴 말이라 이때는 ‘에’가 더 어울리며, ‘의’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합니다. 같은 경우로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라는 책 제목도 있죠.
‘에’와 ‘의’의 문제는 앞의 두 가지보다 조금 더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뭔가 광역 어그로를 끈 거 같지만(...그래봤자 듣보잡인데 뭐 어때;;;) 아주 약간이라도 이 글 보시는 분께 도움 되면 좋겠네요. 위 글에 틀렸다 싶은 부분이 있으시면 가르침 바랍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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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페이스북에 올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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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15. 9. 19. 14:54

(이 글은 일종의 도움 요청입니다.)

 

길게 잡아 10년 정도의 기간이었던 서울생활은 8년 전 쯤에 일단락되었는데 딱히 기록을 해 둔 것이 없는지라 당시 일은 기억에 의지해서 되새겨보는 것이 다이다.

물론 물증이나 기록 없는 순수한(?) 기억은 크게 믿을 놈이 못 된다. 일반론도 그렇거니와... 기억과 (확인가능했던) 과거의 실제가 많이 달라 민망;;;했던 경험이 여러 번이라 당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라치면 스스로 걱정부터 한다.

그러나 필요나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입을 열게 된다. 지금처럼.

 

(다시 한 번, '기억이 맞다면'이란 전제 깔고 얘기하자면)

 

나는 당시 살던 관악구 지역에 유통되던 벼룩시장 류의 생활정보지에서 판타지 단편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벼룩시장이라니...... 대학신문사의 학보나 무슨 학생단체 또는 주민단체의 유인물이라면 모르겠는데... 하여간 기억하기로는 생활정보지였다.

읽을 당시에는 "아니 이런 매체에서!"라며 놀랐던 것 같다. 편견이려나;;;

 

작가는, 김예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한국형 판타지의 초기 유명작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보았던 [용의 신전]을 쓴 그 김예리 작가.

이 또한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와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작가의 작품으로 출판이 된 것은, 내가 알기로도, [용의 신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외 [사하] [네크로만테이아] [화랑세기] 등을 인터넷 연재했다고는 하는데 이쪽은 잘 모르겠(거니와 관심도 없;;;)다. 하여간 ‘김예리가 쓴 생활정보지에 실린 한 면 길이의 초단편 판타지’라니...... 남의 이야기라면 나부터도 관심을 껐을 것이다...만서도.

 

이왕 시작한 거;;; 마저 내 ‘기억’을 풀어놓아 보자.

작품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고,

생활정보지의 한 면을 빼곡 채운, 작은 삽화가 하나 들어가 있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야말로 짧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요소들이 가득한 줄거리였다. 종족 간의 거대한 전쟁, 한쪽 종족 우두머리의 왼팔이었던 주인공의 분투와 영광과... 배신과 좌절과... 결단 그리고 그 뒤의, 나로서는 정말 놀라웠고 약간은 반전 같았던 마무리와 마지막의 여운. 특히 그 마무리가 두 종족 전체의 운명에 관한 것이라, 주인공의 고민 위주로, 그러니까 ‘좁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마무리의 단 몇 문장으로 그 범위가 무지막지하게 확대되었던 느낌도 기억난다.

줄거리의 세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짧은 이야기를 정말이지 몰입해서 읽었었다.

(‘왼팔’이라고 표현한 것은, 주인공의 일이 암살 첩보 같은 어두운 면에서 활약하는 것이라서였다. 주인공이 ‘결단’을 실행한 것도 암살자로서의 능력에 기댄 것이었다. 이런 표현 또한 편견에 기댄 비유이지만.)

 

이상의 기억을, 좀더 융통성 있게 요약하자면.

- 생활정보지......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신문 형태의 매체라고 정리하는 게 낫겠다.

하여간 단행본이나 단편집 출판본 형태는 아니었다...

- 그 매체의 한 면을 빼곡 채운 짧은 판타지 소설.

- 작가가 놀랍게도 김예리...... 이 부분도

어쩌면 다른 사람이 작가인데, 내가 읽던 당시 ‘김예리 풍’이라고 느껴서였는지도.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 스스로도 생각이 들지만...... 혹시 이 이야기를 아시는 분

그리고 이 이야기를 구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왜 생활정보지(?)를 보관해 두지 않고 이제 와서 이 난리인지... 나도 참.

 

(글을 쓰는 동안, 작가명을 ‘김예나’로 알고 썼는데,

혹시나 확인해보니 김예리. 역시 이노무 기억ㅠㅜㅠㅜ

이런 꼴로 부탁이란 걸 해도 되는 겐가;;;)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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