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2002년 사이에 자주 들락거리던 사이트가 있었다. 내부에 하위 게시판이 많았고, 그 각각에서 활발한 논쟁과 논의와 수다가 넘쳐났다. 몇몇 게시판에서 지금 생각하면 민망해지는 잡글을 쓰곤 했다. 주로 신변잡기류, 좋게 봐줘도 되다 만 수필정도의.

 

한 번은 글을 쓰니 누가 칭찬을 하는데(대체로 글 성격이 온화하고 내용이 사려깊다는..) 그 칭찬은 “...하시니 여성 분이심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충 아 저는 남자고(남자라서 죄송하다고 했던가ㅎㅎ)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다른 쪽으로 말을 돌리면서 답글을 맺었다. 답글을 길게 주고받으며 이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딱히 기분 나빴던 것 같진 않다. 그냥 살짝 당황했고 피식 웃다 말았던 것 같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실은 순간적으로 화가 났는데 화를 내는 것이 지나친 행동이다 싶어 스스로를 단속했던 걸까. 화가 났다면 왜 났던 걸까.

만약 화가 났다면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1) 감히 나를 여자로 봐!? (2) 아니 왜 온유하다든가 사려깊다는 게 여성적인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이군 그래..

 

감히 페미니스트나 성평등론자를 자처하진 못하겠으나, 그래도 갖고 있는 편견이 있다면 줄이려고 애써 왔다고 자부(...;;;)한다. 만약 화가 났대도 후자였을 것이다(맞겠지? 맞을 거야;;;).

한데 화가 났느냐 여부보다는 당시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 지가 더 궁금하다. 즉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 몰랐고, 부끄럽게도 지금도 모르겠다. 물론 실제로 했던 것처럼 무던하게(?) 지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최선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모르겠다.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만 늘었고 이런 쪽으론 여전히, 너무나, 미성숙하다.

 

 

2.

지금은 없어진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던 적이 있다. 지구당이란 것이 있던 시절이었고 가입하고 나서 한두 달 쯤 후에 첫 지구당 모임에 나갔고 감자탕 집 같은 곳에서 반주 곁들여 뒤풀이를 가졌다.

뒤풀이 때 외관상으로는 머리 희끗희끗하고 적당히 배가 나오고 적당히 인상이 좋은 전형적인 아저씨같은 사람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자기소개며 호구조사 같은 말들 좀 주고받는데... 어느 새 그 사람이 내 손에 주목을 하더라.

(.. 손이 곱다. 요즘이야 내 손 들여다보는 사람 잘 없지만,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전반까지 손 곱다는 소리 듣고 살았다. 뭔가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증거 같아서 내가 열등감을 느끼는 나의 특성 중 하나이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이 주목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중엔 손을 잡고 잠깐 만졌던가 쓰다듬었던가 그랬다. 잠깐10초였는지 1분이었는지...... 내 대응이 기억나진 않는데, 뿌리치거나 화를 내거나 이런 쪽은 아니었다. 손을 조용히 뺐던가, 아니면 그냥 기다렸던가. 분명히 기분이 좋진 않았는데, 그랬는데도 조용히 대응했(있었).

 

지금에 와서도 궁금한 것은 두 가지다. (1) 그는 왜 그랬을까. (2) 나는 또 왜 그랬을까.

(1)은 글쎄. 동성(혹은 양성)애자였을까. 아니면 본인의 성향이나 특정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그냥 너무 신기해서였을까. 이젠 알 길이 없고, 다만 후자였다면 (지금도 그렇겠지만) 꽤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2) 난 왜 가만히 있었을까. 어떤 모임에 처음 나간 자리에서 고참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혹은 모임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던, 또는 깨기 겁났던 것일까. 혹은 그냥 놀라서 어찌할 바 모르고 굳어 있었던 게 다일까.

지금이라면 더 단호하게 손을 뺐을 것이고, 어쩌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속사정보다도 내가 왜 그리 나약하게 있었는지가 더 궁금타.

 

 

1.이나 2.같은 상황에서 쾌도난마로, 단칼에 상황을 정리하는, 혹은 거기에까진 이르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취할 행동을 분명히 선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대응방식이나 내용에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단칼 같음이 부럽다.

 

 

2-1. 딴 얘길 하자면 나중에 (성격이 분명히 생각나지 않는다) 소규모 당원모임을 어느 까페에서 가졌는데, 까페 주인이 당원이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서 주인도 모임 참여자도 다들 안타까워하긴 하는데 뾰족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인터넷 당원교육 같은 방법이야 있었겠지만 그다지 실질적이진 않았던 듯. 지금도 뭐랄까 정당이라는 말 자체의 의미에 어울리는 정당이랄까, 유명 정치인의 참모들과 지지세력의 결합체를 정당이라 부르는 그런 정도를 넘어, 당원 참여가 활발한 당이 되려면 저런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할 텐데, 하고 아련하게 생각만 하다 그친다...

 

 

3.

(앞의 얘기들과 달리 찝찝하지 않음)

대학을 다니다 군 입대를 했는데 입대 전 약 6개월 간 어느 학생운동 조직의 사업 하나를 도왔다. 조직원(표현이 좀...?)으로 가입한 것은 아니고 그 사업에만 참여를 했었다. 대학 다니는 기간 동안 학생운동에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했지만 직접 용감하게 참여하고 그런 적은 별로 없었는데, 그래도 그 6개월간엔 굉장히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군 입대 자체가 좀 갑자기 결정된 거라 뒷일을 (결과적으론) 남은 사람들에게 던져버린 게 지금도 미안타.

 

자연스럽게 조직원 몇몇과도 얼굴 트고 지냈는데, 그들 중 참 화사한 아가씨가 있었다. 외모도 말투도 행동거지도 세련이라는 두 글자를 사람으로 빚어낸 것 같은. 스스로도, 같은 학번에 동갑인데 뭔 아가씨냐 싶었지만, 그땐 정말 같은 학번 같은 나이 맞나 싶었다. 그녀 앞에서 나 자신이 애 같더라.

당시엔 다른 여성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이성으로 접근하겠다는 의도 없이, ‘와 정말 화사하고 세련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동경하고 우러러보았다......;;;;;; 안면 트고 이름 주고받고, 그 뒤로는 만나면 반갑게 잠시 인사하고는 각자 갈 길 가고... 딱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던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그리 자주 마주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업에 더 힘을 쏟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판이 이 일하다 저 일하다 하는 데지만, 나는 애초에 조직원이 아니니 다른 일에 참여할 일은 거의 없었다.)

 

군복무 중의 휴가 중 첫 번째였던 100일 휴가였던가, 아님 그 뒤의 첫 장기휴가였던가. 마지막 이틀 혹은 사흘은 (집에서 바로 귀대하지 않고) 대학가에서 보낸 후 귀대했다. 학교 가서 있는 사람은 만나고 없는 사람은 못 만나고, 저녁엔 친구며 선배들이 사 주는 술을 진탕 마시고 잠은 친구 하숙방에 신세를 지고, 그러고는 돌아갔는데...

 

있는 사람 중에 그녀가 있었다. 다른 사람 없이 잠시 둘이만 얘길 나눴다.

여전히 화사했고(내 느낌 : ‘그러면 그렇지.’(뭐냐 나는......)) 군에서 휴가 나온 친구한테 으레 하는 정도보다 훨씬 더 반갑게 맞아 주어서 기쁘면서도 동시에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누다가, 그녀 쪽에서 폭탄을 던졌다.(덕분에 앞뒤의 다른 얘긴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군복무 중인 사람이랑 격려하는 친구 사이에 오고간 얘기야 뻔했을 것이다. 폭탄만 빼고.)

너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냥 환하게 웃으면서, 격렬한 감정 표현은 없이 그녀가 말했다.

 

아마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나는. “야 이 씨 진작 고백하지. 이제 와서 그러면 어쩌라고등등의 말을 가볍게뱉으면서, 필사적으로 충격받지 않은 척 얘기를 나누다 어찌어찌 작별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던 거 같다. 돌아볼 엄두는 내지 못했던 거 같다...

좀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굴었어야 한다, 고 지금도 살짝 후회한다(큰 후회는 아니고). 나라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져 준 것이 고마워서라도 또 그 마음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해서라도 내 자신이 충격 받은 것에만 매몰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역시 난 그 때 애였다.ㅎㅎ;;;

 

그 뒤론 만나지 못했고, 제대하고도 몇 년인가 후에 결혼 소식을 들었다. 천성 게으른 데다, 거주하던 곳과 결혼식장이 멀리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한참 돈도 없던 시기였지만 찾아갔다.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그저 열심히 찾아가 축하해주는 것으로밖에는 표현하지 못했다. 그녀는 물론 반가워해 주었고(살짝 놀랐던가? 모르겠다. 중요하지도 않고), 흰 장갑 낀 손으로 꼭 악수해 주며 고맙다던 모습이, , 여전히 화사했다.

 

앞의 두 에피소드(라고 쓰고 흑역사라고 읽는다)와 달리, 끝이 좋아서 다행이긴 한데, 폭탄 맞았을 때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지금도 아쉽다. 심지어 지금은 애 있는 애(!)라서 매우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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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페이스북에도 올림.

Posted by taichiren

..을 좀 써 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느낌이지만) 맞춤법 오류를 가끔 너무 자주 목격한다 싶을 때가 있어서 얼마나 효과가 있든 한 번쯤은 써 보고 싶네요 이런 이야기. 이러는 저도 많이 틀리고 많이 모릅니다.(특히 띄어쓰기와 사이시옷은 영 자신이 없군요.) 그래도 서로 지적해 주면서 오류를 줄여 나가는 게 좋겠죠.

제 눈에 자주 뜨이는 오류와 그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요령에 대한 제안을 세 가지 해 봅니다.

 

 

첫째, ‘(로)서’와 ‘(로)써’ - 알쏭달쏭하면 차라리 (로)서를 택하라.


‘방어의 수단으로x의 공격’이라는 문구를 예로 들어 봅니다. 누가 sns에서 x에 들어갈 글자가 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고민하자 여러 사람이 조언을 하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최강&최악이었던 조언을 소개하자면 “해당 문장 안에 수단이란 말이 있으니까 ‘써’가 맞다.”였습니다......이 문제에 대해 조금은 아는 사람이 한 조언이라 더 서글픕니다.
심지어 이걸 고민하던 분은 ‘서’가 맞다 믿고 있었는데 자신이 속한 단체 카톡방에서 그 생각을 드러냈다가 반대 의견이 더 많아 황당함을 느낀 일까지 있었다더군요.;;;

‘(로)서’는 자격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해 앞말과 뒷말이 동격입니다. 영어로 치면 is나 (전치사) as 가 두 낱말 사이에 놓일 때 무리가 없는 경우이죠. 예를 들면 “나는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킨다.” 거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이 자리에 나왔다.”라고 쓰면 맞게 쓴 겁니다. <나 = 군인/시민>이니까요. 앞에 예로 든 문구에도 그래서 ‘서’가 들어가야 합니다. <공격 is(as) 방어의 수단>이므로.
특히 A“로서의” B라는 표현은 백이면 백 ‘서’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로)써’는 수단을 나타냅니다. 뭔가를 이용하여 다른 뭔가를 이루려 할 때 씁니다. 영어라면 (전치사) by를 쓰면 알맞은 경우입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을 조금(?) 의역하면 “군인은 그 목숨을 바침으로써 나라를 위한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 <나라를 위함 by 목숨을 바침>이라는 의미이므로 ‘써’를 쓰는 것이 맞습니다.
바꿔 말해, 이 경우 앞말과 뒷말은 동격이 아닙니다. 둘 사이에 등호(=)를 놓아 보고 성립이 안 되면 ‘써’, 되면 ‘서’...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듯.

그리고 제 경험상 ‘써’를 써야 할 곳에 ‘서’를 잘못 틀리게 쓰는 경우는 잘 없었습니다. 대개는 그 반대더군요. 그래서 첫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차라리 (로)서’라고 제안을 한 것입니다.

 

 

둘째 , ‘던’과 ‘든’ - 애매하면 차라리 ‘든’을.

“정 할 일이 없으면 잠이라도 자던가.” “가던 말던 내 마음이지.” 같은 표현들을 자주 보는데, 두 가지 예 모두 잘못된 표현을 썼습니다. 둘 다 ‘든’을 써야 할 경우입니다.

‘던’은 과거의 사실을 나타내는 문구의 끝에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같이 앉아서 놀던 곳’ ‘작년 오늘 새벽에는 어찌나 비가 많이 내렸던지...’와 같이 써야겠죠.


한편 ‘든’은 내용상 두 가지 이상의 선택이 가능할 때 씁니다. “잠이라도 자든가(‘말든가’라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는데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든 말든 내 마음.”처럼 써야 합니다.

어느 쪽을 쓰‘든’ 상관없다 여기지 마셨으면...... 이 문제도 ‘던’을 틀리는 경우는 잘 없는 데 비해 ‘든’을 써야 할 곳에 ‘던’을 써버리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봅니다. 헷갈리면 ‘든’을 쓰는 게 확률상(...) 더 맞을 겁니다.

 

 

셋째, ‘에’와 ‘의’ - 이번엔 단정적으로 제안하진 못하겠지만, 명사와 명사 사이에는 ‘의’를 쓰는 것이 맞는 표현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20세기에 과학자들” 같은 표현을 언젠가부터 자주 봅니다. 명사와 명사 사이를 잇는 부분이니 ‘의’를 써야 하죠. “배철수의 음악캠프”처럼요.
‘에’는 보어라서 뒷말 쪽에 먼가 서술어(주로 동사겠지만)가 있을 때, 또는 겉으로는 표현이 생략되었지만 의미상 문맥상 있을 때 쓰는 게 맞습니다.


“어머니와 오후에 점심”이라고 수첩에 일정을 적어두는 경우를 예로 들자면 이 말은 ‘어머니와 오후에 함께 점심식사하기’를 줄여 쓴 말이라 이때는 ‘에’가 더 어울리며, ‘의’를 쓰는 게 오히려 더 어색합니다. 같은 경우로 “대통령 항문에 사보타지”라는 책 제목도 있죠.
‘에’와 ‘의’의 문제는 앞의 두 가지보다 조금 더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뭔가 광역 어그로를 끈 거 같지만(...그래봤자 듣보잡인데 뭐 어때;;;) 아주 약간이라도 이 글 보시는 분께 도움 되면 좋겠네요. 위 글에 틀렸다 싶은 부분이 있으시면 가르침 바랍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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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페이스북에 올렸음)

Posted by taichiren

찾습니다

분류없음 2015.09.19 14:54

(이 글은 일종의 도움 요청입니다.)

 

길게 잡아 10년 정도의 기간이었던 서울생활은 8년 전 쯤에 일단락되었는데 딱히 기록을 해 둔 것이 없는지라 당시 일은 기억에 의지해서 되새겨보는 것이 다이다.

물론 물증이나 기록 없는 순수한(?) 기억은 크게 믿을 놈이 못 된다. 일반론도 그렇거니와... 기억과 (확인가능했던) 과거의 실제가 많이 달라 민망;;;했던 경험이 여러 번이라 당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라치면 스스로 걱정부터 한다.

그러나 필요나 욕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입을 열게 된다. 지금처럼.

 

(다시 한 번, '기억이 맞다면'이란 전제 깔고 얘기하자면)

 

나는 당시 살던 관악구 지역에 유통되던 벼룩시장 류의 생활정보지에서 판타지 단편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벼룩시장이라니...... 대학신문사의 학보나 무슨 학생단체 또는 주민단체의 유인물이라면 모르겠는데... 하여간 기억하기로는 생활정보지였다.

읽을 당시에는 "아니 이런 매체에서!"라며 놀랐던 것 같다. 편견이려나;;;

 

작가는, 김예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한국형 판타지의 초기 유명작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재미있게 보았던 [용의 신전]을 쓴 그 김예리 작가.

이 또한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나와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이 작가의 작품으로 출판이 된 것은, 내가 알기로도, [용의 신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외 [사하] [네크로만테이아] [화랑세기] 등을 인터넷 연재했다고는 하는데 이쪽은 잘 모르겠(거니와 관심도 없;;;)다. 하여간 ‘김예리가 쓴 생활정보지에 실린 한 면 길이의 초단편 판타지’라니...... 남의 이야기라면 나부터도 관심을 껐을 것이다...만서도.

 

이왕 시작한 거;;; 마저 내 ‘기억’을 풀어놓아 보자.

작품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고,

생활정보지의 한 면을 빼곡 채운, 작은 삽화가 하나 들어가 있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야말로 짧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요소들이 가득한 줄거리였다. 종족 간의 거대한 전쟁, 한쪽 종족 우두머리의 왼팔이었던 주인공의 분투와 영광과... 배신과 좌절과... 결단 그리고 그 뒤의, 나로서는 정말 놀라웠고 약간은 반전 같았던 마무리와 마지막의 여운. 특히 그 마무리가 두 종족 전체의 운명에 관한 것이라, 주인공의 고민 위주로, 그러니까 ‘좁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마무리의 단 몇 문장으로 그 범위가 무지막지하게 확대되었던 느낌도 기억난다.

줄거리의 세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짧은 이야기를 정말이지 몰입해서 읽었었다.

(‘왼팔’이라고 표현한 것은, 주인공의 일이 암살 첩보 같은 어두운 면에서 활약하는 것이라서였다. 주인공이 ‘결단’을 실행한 것도 암살자로서의 능력에 기댄 것이었다. 이런 표현 또한 편견에 기댄 비유이지만.)

 

이상의 기억을, 좀더 융통성 있게 요약하자면.

- 생활정보지......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신문 형태의 매체라고 정리하는 게 낫겠다.

하여간 단행본이나 단편집 출판본 형태는 아니었다...

- 그 매체의 한 면을 빼곡 채운 짧은 판타지 소설.

- 작가가 놀랍게도 김예리...... 이 부분도

어쩌면 다른 사람이 작가인데, 내가 읽던 당시 ‘김예리 풍’이라고 느껴서였는지도.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 스스로도 생각이 들지만...... 혹시 이 이야기를 아시는 분

그리고 이 이야기를 구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왜 생활정보지(?)를 보관해 두지 않고 이제 와서 이 난리인지... 나도 참.

 

(글을 쓰는 동안, 작가명을 ‘김예나’로 알고 썼는데,

혹시나 확인해보니 김예리. 역시 이노무 기억ㅠㅜㅠㅜ

이런 꼴로 부탁이란 걸 해도 되는 겐가;;;)

Posted by taichiren

중화반점

분류없음 2015.09.03 23:09

노래방 분위기 띄우기 노래라면 역시 [중화반점]이다.

 

곡이 호쾌하기 이를 데 없고, 가사가 꽤나 '예상 밖'이라서

노래 듣는 사람들이 좋은 의미에서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아마 올해 여름 어느날인가..일 텐데,

노래가사가 거의 대부분 사랑 이별에 대한 내용이라 사랑 이별 아닌 다른 세상 일들에서 느끼는 감정을 담은 가사가 들어간 노래 좀 많이 보았으면 하는 트윗을 보았다.

...

꽤 공감이 갔는데, [중화반점]은 곡조가 호쾌하기도 하거니와 가사가 또 그런 내용이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중화반점(의 짜장 짬뽕의 맛이며 번개배달 등등)을 찬양^^하는 그런 내용의 가사.

 

가히 우리네 잡가의 전통을 면면히 잇고 있다 할 수 있겠다.
(음?)

 

덧) 지금에 와서는 번개배달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만서도.

덧2) 중화반점 얘기하니 또 하나 생각나는 좋은(...) 노래가
[모두 출근 후에]이다. 김원준의 [모두 잠든 후에] 곡을 그대로 썼고 출근길의 고생 애환을 담은 가사가 일품이다...

Posted by taichiren

매드장량 초한의 쟁패
(괴이한 잡문으로 읽으신 후의 마음의 평화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혼란스러운 구주.

 

진시황의 포악한 공격으로 가족과 친인을 모조리 잃은 장량은
하루하루 죽은 자들의 망령에 시달리며 살아가다
역발산 기개세 항우의 군대에 붙잡혀 징집된다.

 

어느 날 임무를 받아 관중으로 출정하게 된, 항우 군의 임페라토르 유방.
항우 몰래 소하 진평 기신 역이기 번쾌 등 인재란 인재는 싹 쓸어
한중으로 질주하고 일행 중에는 장량도 함께한다.

 

위험을 느낀 항우가 군을 몰아 쫓아오고
유방은 필사의 도주를 전개하지만
유능한 전차병 워보이 한신에게 따라잡힌다.

 

그러나 붉은머리 소하가 옆구리를 찔러대자
마음을 돌리는 한신, 유방 일행에 가담하고
더욱 놀란 항우는 강력한 부하 범증까지 대동하여 추격에 박차를 가하지만
장량은 지모와 용맹을 발휘, 범증을 날려버리고
항우 군의 추격을 늦추는 데 성공한다.

 

천신만고 끝에 한중에 입성한 유방.
항우 파멸을 맹세하며 울부짖는다......

 

또 한 번 장량은 지모를 내니
인재들을 구주 곳곳으로 보내어
항우의 군대를 분산시킨다.
그러나 작전의 와중에 기신과 역이기를 잃는 아픔도 겪게 된다.

 

끝내 항우를 본거지에서 멀리 내보내는 데 성공하자
유방은 번개 같은 진군을 명하고
이에 한신은 전차군단을 몰아 차례로 항우 군의 팔다리를 격파,
마침내 십면매복으로 항우를 포위하고 마지막 공격을 가하다
힘이 다해 쓰러진다.

 

이때 유방은 한신을 구할 수 있었지만
전차군단을 장악한 그를 항우 다음가는 위험으로 여기고 내버려둔다.
전설에 따르면 마지막 공격을 가하기 전 한신은
"이 얼마나 사냥하기 좋은 날인가!(what a lovely day for hunting!)"
라는 한 마디를 남겼다고 한다......

 

드디어 쓰러지는 항우.
항우의 늘어진 몸을 만민에게 전시하는 유방.
권좌에 앉아 천하를 발 아래에 둔다.

 

이때에 이르러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용히 짐을 챙겨 떠나가는 장량의 모습

 

사막의 신기루처럼 유방이라는 영웅 앞에 나타났던 장량.
한 줄기 모래바람처럼 영웅의 품을 떠나 또다시 망령을 등에 진 채 방랑을 시작한다.

Posted by taichiren

어릴 때부터 원체 나돌아다니질 않는 성격이다 보니 이젠 적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금도, 집 밖으로 나서면 여전히 낯선 풍경이 낯익은 풍경보다 많다.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가게며 네거리며 유명한 지형지물 이름들이 등장하는 얘기에 끼지 못하고 열심히 듣고만 있을 때가 많다. 대구 사람 맞냐는 말 자주 듣고 산다. 집에서 조금 걸어나가기만 해도 그렇다.

물론 지금 집에서 산 지는 삼 년밖에 안 되었... 삼 년이나 되었는데도 그렇다.

 

오늘도 집에서 십여 분, 넉넉잡아 이십 분 거리의 시장에서 몇 가지 사서 돌아오다가

(시장과 우리 집 사이엔 넓고, 소규모 아파트 단지도 두서넛 자리잡고 있으며 길이 약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주택가가 있다)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를 함께 파는 가게를 보았다. 물론 처음으로.

아마 처음 들어선 골목길일 것이다.

거리로 따지면 시장 첫머리(즉 지금 하는 이야기의 '무대 위'에선 집에서 가장 먼 곳)에서 집까지 2/3 내지 3/4 정도 쯤이다.

 

언젠가, 누구든 꼬셔서(?) 맛을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은 후에 실망할지언정 일단 가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음식점이나 술집이 있다. 저 집이 그랬다.

 

한데 이 집 ...왜 그렇게 가 보고 싶어졌지?

 

...돌아간 친구 한 사람과 둘이 꼭 가 보자고 의기투합했던 적이 있었다.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

또는 트위터친구 누군가가 더 낫다고 추천했던 하얼빈 맥주.

두 맥주 다 있으면 비교도 가능하겠지.

".....에 잘 하는 집 알아. 같이 가 보자."고 그는 말했었다.

 

갑작스레 생각이 났다.

잘 하는 집 위치와 이름은 끝내 기억나지 않는다. 서구 쪽이라 했던가? 성서?

 

기일을 지나쳤다.

 

친구의 가족들과는 면이 없고... 혼자서, 뭐랄까, 심상(?)이라도 하려 했지만.

(뭔가를 거창하게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서도...)

첫번째 기일이었던 작년에도 두번째인 올해에도 이꼴이다.

 

지난해 2월에 옮긴 부서에서 맡은 업무는 무척 힘에 부쳤다.

조금 익숙해졌고, 좀 있으면 업무가 조금 줄어든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때때로 힘들어진다.

더구나 8월 ...하필이면 8월이다.

우리 부서 내에서도 우리 팀이 가장 바빠지는 시기 중 하나이다.

내 주업무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8월에 하는, 내 직장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하는 행사를

담당하는 이가 우리 팀에 있다. 나도 그 행사의 작은 부분 하나를 맡아 진행했다.

(이제 그 행사는 거의 끝났고, 나는 내 주업무로 돌아가서

주업무에 관해서는 일년 중 두번째로 바빠지는 시기를 준비해야 한다.)

 

하여간 8월에는 아주 조금만 과장해서, 잠만 겨우 잤다.

핑계임을 스스로도 알지만, 그렇게, 또 지나쳤다.

 

돌아간 친구의 마지막 시기에

가장 자주 접촉했던 사람(중의 하나)이 나라는 것 때문에

여전히 죄책감을 느낀다.

느끼는 건 느끼는 거고, 양꼬치와 칭다오를 먹으러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잘도 사로잡히는 것이 나의 간사한 부분이다.

 

시기를 놓친 심상(?)은 그 곳에서, 먹고, 마시며.

 

 

 

 

 

Posted by taichiren
오늘, 아내와 같은 날에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달 초부터 대구명물 진흥반점에서 점심 먹기로 진작에 약속해 놓았고,
영화도 한 편 오후에(그러니까 점심먹고) 보자고 약속했는데

지난 주 들어 일정변경. ...
진흥반점이 사람들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이라 이후 일정이 위험.
해서 '간만에 늦잠'을 포기하고 대신 조조로 영화를 보고 진흥반점으로 이동
하기로. 영화 선택은 '용의자 VS 변호인'이었는데
특별히 이유 있어선 아니고 그냥저냥 변호인 보기로.
이하는 변호인 잡상, 내지 잡감.

1.
아내의 평으론, 올해 송강호만 세 번 보았는데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이번 영화에서의 연기가 제일 나았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도, 무슨 미맹마냥, 배우들의 연기를 잘 느끼질 못한다.
다르게 말해서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의 의미'(확 와닿는 설명 같은 것)
를 잘 모르겠다. 평가, 는 언감생심이다.
주변의 말 듣고 그러려니 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지 뭐.

2.
영화에서 피고인들은 '빨갱이가 아니'고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의 피해자라는
점이 부각이 된다.
피고인의 가족들 또한, 피고인이
체포라기보다는 납치, 수사라기보다는 고문을 당한 점에
억울해하는 동시에 빨갱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점에도 억울해 한다.

(영화 내 설정에서) 뭔갈 잘못했다고 할 지점은 아닌데,
뭐랄까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 - 빨갱이가 아니란 걸 강조해야 하나.
빨갱이라면 부당하게 공권력 행사해도 되나..

시대적인 한계를 감안했기에,
당대 현실 당시 사건의 정황을 충실하게 각색했기에 나온 장면일 것이고,
이에 대해서 내가 지나치게 흠을 잡으려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아쉽긴 하나 이 영화에서 다룰 문제가 아닐 지도.
그래도, '빨갱이가 아니어야 하는' 이유,
'빨갱이'들이 권세 잡은 세상보다, 아닌 세상이 나은 이유 중 하나로
'설령 빨갱이일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면 더 좋았을 듯.

3.
곽도원 배우가 열연해 준 공안&고문경찰은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학살당한 아픔을 갖고 있다. 그 아버지는 역시(?)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 형사 - 아마도 공안&고문경찰로 짐작된다.
노덕술 -...- 이근안 정도로 이어지는(정확히는 모르겠다)
'이 계통' 계보를 부자관계라는 압축적 표현으로 보여준 거라 혼자 짐작.

다만 이걸 영화적 압축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 접근하면
이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이 또 생각난다.

자신이 우익이라는 정체성이 있고 동시에 그 정체성의 근원이
좌익/북한/좌파로부터 당한 피해 내지 상처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곽도원이 분한 경찰에 대해서 나는 '그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고
여기고 싶지는 않고 일종의 확신범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법을 어겨 행동했으니.
(미국영화 [어퓨굿맨]에서 잭 니콜슨이 분했던 제섭 대령 같은)

그 정도로 행동하지는 않았던/않는, 공직에 종사하지 않는
시민들 중에도 위에 말한 그런 정체성 그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있다.
이런 이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이유(?)로 혹은 동기로
민주주의나 시민적 상식을 해하는 언동을 보여 줄 땐
용납 여부와는 별개로 '그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고
보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제 맘에 드는 정권/세력에 비판적인 이들을 박멸ㄷㄷ하는 것
= 자유민주주의...(먼산)...라는 그 희한한 '상식'만큼은 나도
얼마든지 박살(어이쿠)내고 싶지만)

말이 장황한데;;; 이런 사람들과,
이들에게서 '종북/빨갱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를테면 피고인들)이
'적'인가... 적으로 보지 않음 좋겠다고 하면 지나친 얘기이려나.

가능하다면 화해를, 화해가 무엇하다면 적어도 상대방을
축출/박멸/멸종해 마땅한 그 무엇으로 보는 태도만큼은 삼가는
'적대라기보다는 대립' 관계라도 이루어 내면 좋겠고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는 별개로,
그 적극적 가담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동시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비뚤어진(;;) 차동영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까지 영화가 한 발 더 나아갔을 수는 없었을까.

이 영화가 추구하는 지점이 아닌 것을 자꾸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네 아버지 억울하게 죽었다고 이럼 되냐
이 악당놈아."라는 말만으론 뭔가 부족한 것 같다......

4.
영화 자체로 좋다기에 보기로 맘 먹은 영화다.
고 노무현 찬양 영화라는 정보만 얻었었다면 가지 않았으리라.
찬양 영화로 여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 같아
맘이 뭣하지만 어쩌리오.

...각설하고.

주인공이 처음으로 시대와 만나는 장면
- 자기 사무실 앞에 모인 불청객들에게 달려 내려가다가
자욱한 최루탄 연기를, 그 연기를 뚫고 사납게 달려드는 '방패와 곤봉'을
만나는 장면에서 개인적으론 비명을 질렀다.

왜 겪어보셨으면서 보내셨습니까.

(엠비시 박대용 기자의 표현 빌린다) 평소엔 노예취급
파업할 때만 귀족취급받는 그들에게 왜 그 방패와 곤봉 보내셨습니까.

평생 부쳐먹은 땅 어이 없이, 갑작스레 뺏기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왜 소총과 철모 보내셨습니까............

증인석에 앉은 고문경찰 매섭게 매섭게 증인심문하던
국가폭력을 탄핵하던 그 정의감
정말 피고인이었어야 할 자를 끝내 피고인 취급하신 그 정의감이
반대로 당신을 향할 수도 있다는
당신이 '증인석'에 앉으시고 누군가에게 심문받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하셨습니까...................

'인물과 사건을 실제에서 빌려왔을 뿐 어디까지나 허구'인 영화를
본 주제에 매우 부당한 감상을 내 놓고 말았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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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어퓨굿맨 느낌... 어 굿 맨? 어 박수무당? (..탕!) 

Posted by taichiren
영화에 대해 멀 좀 알고, 말 좀 해도 되고.. 이런 거야 아니지만...
영화 [팅테솔스]의 몇몇 장면은 '소설이 원작인 작품을 영화로'
참으로 잘 옮겼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실은, 이 장면이 방금 갑작 생각나서 자판을 두들긴다)

원작(소설)의 한 구절에는, 주요배역 중 한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이
그는 규칙을 지키는 걸 중시하는 편은 아니다, 라고
(그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평하고 있고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가 그 주요배역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라는 얘기도 뒤따라 나온다.

이걸 영화에서는

'다른 사람'이 대사를 하고 스마일리가 '나도 그것 때문에...'라고
대사로 맞받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원작 소설에는 없었던) '자전거 장면'으로 설명한다.

그 '주요배역'은, 보안조치가 엄격하여
작은 물건 하나 들이고 빼는 데에도 일일이 통제를 받아야 하는
사무실에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고,
먼저 출근해 있던 누군가가 말을 건다.
"자전거 갖고 들어오는 걸 허럭받으셨나요?"
대답이 "밖에 두고 안심할 수가 있어야지."정도의 의미를 가진 대사.

원작에 없던 장면, 없던 소품이지만 이렇게 그 주요배역의
규칙을 중시 않는 성격, 을 잘 보여준다.
덧붙이자면, 조지 스마일리가 그 주요배역을 좋아할 수가 없다는 점은
다른 에피소드나 장면으로도 충분히 전달이 되어서,
그 점은 '자전거 정면'에서 (굳이 대사처리라든가 뭔가로)
명백하게 전달이 될 필요가 없다.

깔끔하다.
'영화가 원작을 못 따라간다'는 아쉬움은 원작이 따로 있는 거의 모든
영화마다 따라다니는 평인데..
아마 저런 식의 깔끔한 각색('각색' 맞겠지?..)이 잘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팅테솔스는 그래도 그러한 평에서, 다른 영화화 작품들보다는,
자유로운 편인 듯.

 

Posted by taichiren

어느덧 1년 히히... 몇 달 전부터 아내랑 한두 마디씩 주고받곤 했다. 첫 1년 기념인데 뭔가 받고 싶거나 하고 싶거나 어딘가 가고 싶거나 그런 것들이 있는지.

 

선물 쪽은 서로 딱히 얘길 꺼내는 게 없어서 흐지부지.

이벤트도, 둘 다 요란할 걸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식도 꽤 얌전하게 치렀을 정도이니.(하객들은 심심했을 거다 하하..)

 

어디로 가 볼까.

아내는 대전 동물원을 가보고 싶어했다. 죽도시장도 자주 얘기했다.

나는 창원 쪽(죽도시장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회가 좋다는 얘길 들었다)을 생각했고 아님 어딘가 원거리 1박2일도 괜찮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요 정도 후보 중에서 어딘가를 정해 보자고 가닥을 잡아 왔는데......

 

 

아내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니기 시작했다.

직업적인 면의 성장을 위해 전부터 계획했던 것이고 이래저래 고민 끝에 가을학기부터 시작했다.

수업 듣는 것이나 과제 수행에 큰 지장은 없을 것 - 결혼기념 이벤트만이 아니라,

둘이 생활하면서 뭔가 결정하기 전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일종의 한계선이 되었다.

기념일 당일은 수업듣는 날이다.

해서 한두 달 전부터 진작에, 그 직전 주말에 어딘가 가자고 얘기가 되었다.

 

만약 급하게 뭔가 주말에 해야 할 과제가 있으면 토요일 저녁에 뭔가 맛있는 것과, 달콤한 술 한 잔을 곁들이자고, 일종의 ‘비상시 계획’을 잡을 ‘마음의 준비’도 해 두었다.

두었는데...

 

아내가 다니는 직장의 최연소 직원이 결혼을 한다.

작은, 뭐랄까 여러 의미에서 가족적인 직장이고 전 직원이 축하 회식을 열기로 했단다. 오늘 저녁, 수업을 다녀온 아내가 건네 준 정보. 날짜가 결혼기념일 전 주 금요일이다.

보스의 술을 받아내는 사람이 아내 뿐이라, 일단 그러고 나면 주독을 푸느라 다음날인 주말에 둘이 한 잔 하기는 글렀다.

갑자기 추가된, 고려해야 할 두 번째 조건.

 

이렇게 되니 전혀 다른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관계된 일정도 있다.

세 번째 조건이라면 조건인데... 결혼기념일(월요일이다)이 있는 주 목요일엔 내 본가(달리 좋은 표현이 없을까;;)에 ‘작은’ 제사가 있다.

‘작은’ 제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저런 사정과 이유로 내 아버지와 어머니, 나 셋이서만 지내 온 제사라서인데, 하여튼 이 일정까지 생각하자 머리 속에 갑자기 뭐가 파바박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아내에게 급히 제안했다. 회의로 치면 긴급동의.

 

결혼기념일 직전 주말에 어디 가서 분위기 내기는 힘들겠다.

그냥 풍경만 보고 오기도 그렇고(좋은 곳에 가서 한 잔을 못하다니!)

다른 건 몰라도 전날 좀 달릴 테니 이틀 연달아 마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혹 무리를 해서 마신대도 다음주를 버틸 체력 회복도 문제)

 

둘이 좋은 데 오붓하게 갔다오는 건 기말 고비를 넘기고 한가해질 때로 미루자.

오히려 요번엔.. 양가 어른들 뵙고 저녁 한 끼 같이 하면서 인사를 드리자.

도와주신 덕에(빈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면에서 꽤 도움을 받고 있다. ‘자립생활’이라고 부르기는 힘든 나날들이다)..

둘이 잘 지내왔고 계속 잘 살겠다고.

 

아내는 처가에선 술을 안 마시는 걸로 되어 있다...다시 말해 술 안 먹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게 또 내가 들은 에피소드만 여러 갠데, 하여튼 그렇다.

그러니 토욜 저녁엔 (어차피 전날 꽤나 마셔서, 마실 수 있는 자리래도 안 마실 테니) 처가 어른들이랑 넷이서 인사드릴 겸해서 저녁을 먹자. 장인어른과는 내가 가볍게 대작하고.(많이 드실 수 있는 분이지만 많이 드시진 않더라)

그 다음 주 목요일 ‘작은 제사’날에는 아버지 어머니랑 넷이서, 음복 삼아 넷이서 가볍게 한 잔 하자. 역시나 인사도 드리고.

 

 

다행히 아내의 결재가 났다.

결혼식 기념을 위해서라지만 직전 주말에 강행군을 하는 건 무리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어른들한테 말씀 올리고, 괜찮은 막걸리나 와인 좀 골라 보고 그래야겠다.

 

 

Posted by taichiren

두번째 시청(첫 번쨰는 영화관, 두 번쨰는 어젯밤 모 케이블 채널) 기념으로 다음에서 영화정보 좀 검색하다가

네티즌 리뷰도 좀 훑어보았다. 그러ek 눈에 확 들어오는 평을 두 개 건져 링크를 걸어둔다.

 

영화의 전체적인 감성을 잘 짚어내 준 평

http://bbs.movie.daum.net/gaia/do/movie/detail/read?articleId=207118&bbsId=review1&refer=PerAndNext&searchKey=meta&searchName=&sortKey=depth&searchValue=1%3A53608&pageIndex=1&t__nil_TotalReview_total=text

 

글쓴이의 관찰력이 돋보이고 또 부러웠던 평(안경에 대한 설명을 보며 참 부러웠다)

http://bbs.movie.daum.net/gaia/do/movie/detail/read?articleId=207209&bbsId=review1&refer=PerAndNext&searchKey=meta&searchName=&sortKey=depth&searchValue=1%3A53608&pageIndex=1&t__nil_TotalReview_total=text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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