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내와 같은 날에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달 초부터 대구명물 진흥반점에서 점심 먹기로 진작에 약속해 놓았고,
영화도 한 편 오후에(그러니까 점심먹고) 보자고 약속했는데

지난 주 들어 일정변경. ...
진흥반점이 사람들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이라 이후 일정이 위험.
해서 '간만에 늦잠'을 포기하고 대신 조조로 영화를 보고 진흥반점으로 이동
하기로. 영화 선택은 '용의자 VS 변호인'이었는데
특별히 이유 있어선 아니고 그냥저냥 변호인 보기로.
이하는 변호인 잡상, 내지 잡감.

1.
아내의 평으론, 올해 송강호만 세 번 보았는데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이번 영화에서의 연기가 제일 나았다고 한다.

나는 평소에도, 무슨 미맹마냥, 배우들의 연기를 잘 느끼질 못한다.
다르게 말해서 '연기를 잘 한다는 것의 의미'(확 와닿는 설명 같은 것)
를 잘 모르겠다. 평가, 는 언감생심이다.
주변의 말 듣고 그러려니 하는 편인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지 뭐.

2.
영화에서 피고인들은 '빨갱이가 아니'고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의 피해자라는
점이 부각이 된다.
피고인의 가족들 또한, 피고인이
체포라기보다는 납치, 수사라기보다는 고문을 당한 점에
억울해하는 동시에 빨갱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점에도 억울해 한다.

(영화 내 설정에서) 뭔갈 잘못했다고 할 지점은 아닌데,
뭐랄까 '목구멍에 걸리는' 느낌 - 빨갱이가 아니란 걸 강조해야 하나.
빨갱이라면 부당하게 공권력 행사해도 되나..

시대적인 한계를 감안했기에,
당대 현실 당시 사건의 정황을 충실하게 각색했기에 나온 장면일 것이고,
이에 대해서 내가 지나치게 흠을 잡으려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아쉽긴 하나 이 영화에서 다룰 문제가 아닐 지도.
그래도, '빨갱이가 아니어야 하는' 이유,
'빨갱이'들이 권세 잡은 세상보다, 아닌 세상이 나은 이유 중 하나로
'설령 빨갱이일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면 더 좋았을 듯.

3.
곽도원 배우가 열연해 준 공안&고문경찰은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학살당한 아픔을 갖고 있다. 그 아버지는 역시(?)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 형사 - 아마도 공안&고문경찰로 짐작된다.
노덕술 -...- 이근안 정도로 이어지는(정확히는 모르겠다)
'이 계통' 계보를 부자관계라는 압축적 표현으로 보여준 거라 혼자 짐작.

다만 이걸 영화적 압축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 접근하면
이 영화에 대해 아쉬운 점이 또 생각난다.

자신이 우익이라는 정체성이 있고 동시에 그 정체성의 근원이
좌익/북한/좌파로부터 당한 피해 내지 상처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곽도원이 분한 경찰에 대해서 나는 '그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고
여기고 싶지는 않고 일종의 확신범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법을 어겨 행동했으니.
(미국영화 [어퓨굿맨]에서 잭 니콜슨이 분했던 제섭 대령 같은)

그 정도로 행동하지는 않았던/않는, 공직에 종사하지 않는
시민들 중에도 위에 말한 그런 정체성 그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있다.
이런 이들이 자신들의 아픔을 이유(?)로 혹은 동기로
민주주의나 시민적 상식을 해하는 언동을 보여 줄 땐
용납 여부와는 별개로 '그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고
보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제 맘에 드는 정권/세력에 비판적인 이들을 박멸ㄷㄷ하는 것
= 자유민주주의...(먼산)...라는 그 희한한 '상식'만큼은 나도
얼마든지 박살(어이쿠)내고 싶지만)

말이 장황한데;;; 이런 사람들과,
이들에게서 '종북/빨갱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를테면 피고인들)이
'적'인가... 적으로 보지 않음 좋겠다고 하면 지나친 얘기이려나.

가능하다면 화해를, 화해가 무엇하다면 적어도 상대방을
축출/박멸/멸종해 마땅한 그 무엇으로 보는 태도만큼은 삼가는
'적대라기보다는 대립' 관계라도 이루어 내면 좋겠고

부당한 공권력에 대한 저항과는 별개로,
그 적극적 가담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동시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비뚤어진(;;) 차동영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까지 영화가 한 발 더 나아갔을 수는 없었을까.

이 영화가 추구하는 지점이 아닌 것을 자꾸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네 아버지 억울하게 죽었다고 이럼 되냐
이 악당놈아."라는 말만으론 뭔가 부족한 것 같다......

4.
영화 자체로 좋다기에 보기로 맘 먹은 영화다.
고 노무현 찬양 영화라는 정보만 얻었었다면 가지 않았으리라.
찬양 영화로 여기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것 같아
맘이 뭣하지만 어쩌리오.

...각설하고.

주인공이 처음으로 시대와 만나는 장면
- 자기 사무실 앞에 모인 불청객들에게 달려 내려가다가
자욱한 최루탄 연기를, 그 연기를 뚫고 사납게 달려드는 '방패와 곤봉'을
만나는 장면에서 개인적으론 비명을 질렀다.

왜 겪어보셨으면서 보내셨습니까.

(엠비시 박대용 기자의 표현 빌린다) 평소엔 노예취급
파업할 때만 귀족취급받는 그들에게 왜 그 방패와 곤봉 보내셨습니까.

평생 부쳐먹은 땅 어이 없이, 갑작스레 뺏기기 싫다는 사람들에게
왜 소총과 철모 보내셨습니까............

증인석에 앉은 고문경찰 매섭게 매섭게 증인심문하던
국가폭력을 탄핵하던 그 정의감
정말 피고인이었어야 할 자를 끝내 피고인 취급하신 그 정의감이
반대로 당신을 향할 수도 있다는
당신이 '증인석'에 앉으시고 누군가에게 심문받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하셨습니까...................

'인물과 사건을 실제에서 빌려왔을 뿐 어디까지나 허구'인 영화를
본 주제에 매우 부당한 감상을 내 놓고 말았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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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어퓨굿맨 느낌... 어 굿 맨? 어 박수무당? (..탕!)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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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 멀 좀 알고, 말 좀 해도 되고.. 이런 거야 아니지만...
영화 [팅테솔스]의 몇몇 장면은 '소설이 원작인 작품을 영화로'
참으로 잘 옮겼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실은, 이 장면이 방금 갑작 생각나서 자판을 두들긴다)

원작(소설)의 한 구절에는, 주요배역 중 한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이
그는 규칙을 지키는 걸 중시하는 편은 아니다, 라고
(그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평하고 있고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가 그 주요배역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라는 얘기도 뒤따라 나온다.

이걸 영화에서는

'다른 사람'이 대사를 하고 스마일리가 '나도 그것 때문에...'라고
대사로 맞받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원작 소설에는 없었던) '자전거 장면'으로 설명한다.

그 '주요배역'은, 보안조치가 엄격하여
작은 물건 하나 들이고 빼는 데에도 일일이 통제를 받아야 하는
사무실에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고,
먼저 출근해 있던 누군가가 말을 건다.
"자전거 갖고 들어오는 걸 허럭받으셨나요?"
대답이 "밖에 두고 안심할 수가 있어야지."정도의 의미를 가진 대사.

원작에 없던 장면, 없던 소품이지만 이렇게 그 주요배역의
규칙을 중시 않는 성격, 을 잘 보여준다.
덧붙이자면, 조지 스마일리가 그 주요배역을 좋아할 수가 없다는 점은
다른 에피소드나 장면으로도 충분히 전달이 되어서,
그 점은 '자전거 정면'에서 (굳이 대사처리라든가 뭔가로)
명백하게 전달이 될 필요가 없다.

깔끔하다.
'영화가 원작을 못 따라간다'는 아쉬움은 원작이 따로 있는 거의 모든
영화마다 따라다니는 평인데..
아마 저런 식의 깔끔한 각색('각색' 맞겠지?..)이 잘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팅테솔스는 그래도 그러한 평에서, 다른 영화화 작품들보다는,
자유로운 편인 듯.

 

Posted by taichiren
,

어느덧 1년 히히... 몇 달 전부터 아내랑 한두 마디씩 주고받곤 했다. 첫 1년 기념인데 뭔가 받고 싶거나 하고 싶거나 어딘가 가고 싶거나 그런 것들이 있는지.

 

선물 쪽은 서로 딱히 얘길 꺼내는 게 없어서 흐지부지.

이벤트도, 둘 다 요란할 걸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식도 꽤 얌전하게 치렀을 정도이니.(하객들은 심심했을 거다 하하..)

 

어디로 가 볼까.

아내는 대전 동물원을 가보고 싶어했다. 죽도시장도 자주 얘기했다.

나는 창원 쪽(죽도시장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회가 좋다는 얘길 들었다)을 생각했고 아님 어딘가 원거리 1박2일도 괜찮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요 정도 후보 중에서 어딘가를 정해 보자고 가닥을 잡아 왔는데......

 

 

아내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니기 시작했다.

직업적인 면의 성장을 위해 전부터 계획했던 것이고 이래저래 고민 끝에 가을학기부터 시작했다.

수업 듣는 것이나 과제 수행에 큰 지장은 없을 것 - 결혼기념 이벤트만이 아니라,

둘이 생활하면서 뭔가 결정하기 전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일종의 한계선이 되었다.

기념일 당일은 수업듣는 날이다.

해서 한두 달 전부터 진작에, 그 직전 주말에 어딘가 가자고 얘기가 되었다.

 

만약 급하게 뭔가 주말에 해야 할 과제가 있으면 토요일 저녁에 뭔가 맛있는 것과, 달콤한 술 한 잔을 곁들이자고, 일종의 ‘비상시 계획’을 잡을 ‘마음의 준비’도 해 두었다.

두었는데...

 

아내가 다니는 직장의 최연소 직원이 결혼을 한다.

작은, 뭐랄까 여러 의미에서 가족적인 직장이고 전 직원이 축하 회식을 열기로 했단다. 오늘 저녁, 수업을 다녀온 아내가 건네 준 정보. 날짜가 결혼기념일 전 주 금요일이다.

보스의 술을 받아내는 사람이 아내 뿐이라, 일단 그러고 나면 주독을 푸느라 다음날인 주말에 둘이 한 잔 하기는 글렀다.

갑자기 추가된, 고려해야 할 두 번째 조건.

 

이렇게 되니 전혀 다른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관계된 일정도 있다.

세 번째 조건이라면 조건인데... 결혼기념일(월요일이다)이 있는 주 목요일엔 내 본가(달리 좋은 표현이 없을까;;)에 ‘작은’ 제사가 있다.

‘작은’ 제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저런 사정과 이유로 내 아버지와 어머니, 나 셋이서만 지내 온 제사라서인데, 하여튼 이 일정까지 생각하자 머리 속에 갑자기 뭐가 파바박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아내에게 급히 제안했다. 회의로 치면 긴급동의.

 

결혼기념일 직전 주말에 어디 가서 분위기 내기는 힘들겠다.

그냥 풍경만 보고 오기도 그렇고(좋은 곳에 가서 한 잔을 못하다니!)

다른 건 몰라도 전날 좀 달릴 테니 이틀 연달아 마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혹 무리를 해서 마신대도 다음주를 버틸 체력 회복도 문제)

 

둘이 좋은 데 오붓하게 갔다오는 건 기말 고비를 넘기고 한가해질 때로 미루자.

오히려 요번엔.. 양가 어른들 뵙고 저녁 한 끼 같이 하면서 인사를 드리자.

도와주신 덕에(빈말이 아니라, 실제적인 면에서 꽤 도움을 받고 있다. ‘자립생활’이라고 부르기는 힘든 나날들이다)..

둘이 잘 지내왔고 계속 잘 살겠다고.

 

아내는 처가에선 술을 안 마시는 걸로 되어 있다...다시 말해 술 안 먹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게 또 내가 들은 에피소드만 여러 갠데, 하여튼 그렇다.

그러니 토욜 저녁엔 (어차피 전날 꽤나 마셔서, 마실 수 있는 자리래도 안 마실 테니) 처가 어른들이랑 넷이서 인사드릴 겸해서 저녁을 먹자. 장인어른과는 내가 가볍게 대작하고.(많이 드실 수 있는 분이지만 많이 드시진 않더라)

그 다음 주 목요일 ‘작은 제사’날에는 아버지 어머니랑 넷이서, 음복 삼아 넷이서 가볍게 한 잔 하자. 역시나 인사도 드리고.

 

 

다행히 아내의 결재가 났다.

결혼식 기념을 위해서라지만 직전 주말에 강행군을 하는 건 무리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어른들한테 말씀 올리고, 괜찮은 막걸리나 와인 좀 골라 보고 그래야겠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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