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0.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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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그림 한 장면 한 장면이 미칠 듯이 아름다워서 스크롤을 내리지 못할 때가 자주(!) 있다. 매 화가 그러해서 작가의 몸 상태가 걱정스러울 정도.

 

인어공주 이야기를 일제 하 조선으로 가져와 변용한 스토리.
현재 인어공주와 왕자는 함께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있다.(‘이런저런’이라니, 아아 설명력 부족...)
장소적 배경은 군산 앞바다에서 현재 경성으로. 마지막 장소 역시 군산 앞바다일까.

 

시대적 한계 – 정치적, 성적, 계급적인 한계들.
(갈등이 단일하지 않다. 그리고 ‘계급적’이라고 했지만 붉은(?) 작품은 아님.)

 

이런 한계 속에서 한 발 한 발 앞길을 탐색해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이 얽혀드는, 그 한계를 온몸으로 돌파하는 사람들의 비장하고 때론 잔인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이, 미칠 듯한 그림과 어우러져 절절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작품. 우리(어이쿠...) 주인공 어찌 되려나 어찌 되려나 마음을 졸이며 탐독하고 있다.

 

네이버웹툰 연재중.
얼마 전 일독 추천작인 [갬블링 1945]도 그랬지만 하필(?) 또 일제시대 배경작;;;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729767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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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9.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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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와 포세이돈 그리고 하데스는, 하늘과 바다, 저승의 경계를 정하기 위해 주사위를 굴렸다.”

 

신들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도박의 마력을 환기하는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을 접하게 된 계기는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여러 편의 웹 소설을 보고 있으니 더더욱.

 

다만 추측하자면 [화적우] 때문이 아닐까. 이 작품은 일제 하 경성을 배경으로 둔 ‘고딕’ 추리소설이다(김서진 작, 네이버 웹소설 무료연재, 완결 후 유료화). 개인적으로 생소했던 ‘고딕’추리소설을 접하는 흥미로움 더하기 약간의 공포소설적 분위기, 비밀스러운 약물이 소재로 나오는 과학소설적 설정, 30년대 말 경성의 모습에 대한 세밀한 묘사, 어딘가 비틀려 있는 인물의 심리, 사랑에 그리고 원한에 빠진 인간의 격정 묘사 등이 마음에 남았던 작품이었다. 연재 중 소개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는 작품 중 하나.
어쩌면 [화적우[를 무척 재미있게 본 후 일제시대 배경 소설을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차에 네이버 웹소설에서 이 작품을 우연히 접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여튼 이제 약을 팔아 보자;;;

 

< 기본설정 >
(소속 장르답게(?) 설정이 대놓고 판타지다) 태초에...는 아니고;;; 이천여 년 전, 온 세상의 도박사들이 모여 벌인 승부에서 최고의 도박사 5명이 나오고 그들 각자에게 신묘한 효능을 가진 신물이 부여된다. 청룡, 주작, 백호, 현무, 그리고 5명 중에서도 으뜸인 천하제일 도박사의 징표 신의 나뭇가지(이하 ‘신목’이라 부르겠다). 신물은 상속할 수 있으나 동시에 승부로 뺏길 수도 있다. 또한 5대고수가 다른 신물 상속자의 신물도 승부에 이겨서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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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의 줄거리 >
1900년대 쇠퇴해 가는 조선, 신목의 상속자(= 당대 도박 최고수)이며 반일활동조직 ‘어별교’의 총감 선우희도는 일본의 도박 최고수이자 최고위 권력가 스기우라 고헤이 공작과의 도박에서 승리하지만, 스기우라는 하수인 사카모토를 시켜 그를 죽이고 신목을 빼앗아 간다. 그러나 실은 스기우라의 ‘반칙’까지 선우희도는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 자신의 목숨까지 도박패로 쓴 것.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가 뛰어든 ‘도박판’은 역사, 그것이었다. 손에 든 팻감은 능력, 권력, 무력, 돈에 목숨까지... 인간이 휘두를 수 있는 모든 것(그리고, 운이라는 조커 패 역시 중요하다), 굴리는 판돈은 국가의 흥망과 개인의 운명, 최종적인 승리는 - 첫째 광복이요, 둘째 ‘너무나도 큰 비극’을 막는 것.
(또 판타지스런 설정 - 결론만 말하면 선우희도는 국권피탈과 ‘너무나도 큰 비극’을 미리 알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우희도는 죽었고... 이 역사라는 큰 판에 나설 플레이어 - 도박사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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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늦봄 인천. 고된 노동으로 돈을 벌어 가족을 건사...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어리석게도 도박판에서 피같은 돈을 날려버리기도 하는(이게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드물지 않게, 가족들까지 피보고 인생이 절단난다) 조선인 노동자들 사이에, 선우진이라는 인물이 있다. 소년의 끝자락 혹은 청년의 시작점에 서 있던 ‘고아소년’ 선우진은 노동자들을 속여 등쳐먹는 도박판을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야쿠자 보스의 눈에 들어 (거의 강제로) 인천의 도박/조직폭력/경제시스템에 얽혀들게 된다.

 

야쿠자가 선우진을 (첨에는 린치의 대상일 뿐이었음) 이용하게 된 건 뛰어난 도박실력과, 어떤 상황에도, 심지어 자신이 뜻한 바를 위해서라면 무자비한 폭력을 당할 때조차 흔들리지 않는 두둑한 배짱 때문.

 

그런데 사실 - 독자의 눈에는 금세 드러나는데 – 야쿠자들이 본 것은 빙산의 일각. 선우진의 도박실력과 배짱은, 과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초인적인 것이었다!
(반복한다. 말 그대로 초인적이다. 또 말하지만 이거 판타지 장르다.)

 

야쿠자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일본의 최상급 귀족 가문(‘화족’) 가운데 하나, ‘사이온지 가’의 일원인 방탕아 사이온지 유우야의 신분을 선우진에게 ‘입힌다’. 이때부터 선우진은 사이온지 유우야의 신분으로 행세하며, 인천을 넘어 경성, 조선반도 전체, 아니 동아시아와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정세 한가운데로... 바꿔 말해 역사라는 큰 판에 나서기 시작한다.

 

도박판을 휩쓸며(이건 말 그대로 도박판) 부와 명성을 얻고, 독립을 위해 또 ‘너무나도 큰 비극’을 막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며, 한 개인으로서 복수와 사랑과 천하제일 도박사라는 명성까지 노리니 쉴 틈이 없다......
인천, 경성, 대전, 나진 등 조선 방방곡곡은 기본, 만주에 일본 - 동아시아가 좁다 하며 종횡무진,
&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부터 아직은 ‘포의한사’ 벽초 홍명희까지, ‘예산청년’ 윤봉길부터 친일경찰 노덕술까지, 만주군벌 장쉐량부터 미국부자 하워드 휴즈(!)까지 – 아주 소수만 예를 들어보았다 - 당대의 인물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도박사 선우진의 모험, 현재진행형!

 

(사족 – 일본행은 아직이지만, 소설 전개를 보니 거의 확실.
사족2 - 실존인물이기도 한, 사이온지 가문의 수장 ‘사이온지 긴모치’가 사이온지 유우야(=선우진)의 행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은데, 선우진은 그를 만나면 안 되니까... 당연히 만나게 되겠지!
사족3 – 루즈벨트 대통령(뉴딜의 그 루즈벨트)도 나올 거 같... 아니 대체 누구까지 나오려고! 독자는 기대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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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우진의 과업 (아마도 앞으로 전개될 줄거리의 중심 축) >
크게 네 가지. 이걸 자세히 얘기하면 소설 소개가 아니라 필사(;;;에다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니 간단히.

 

첫째, 말 그대로 ‘도박판’을 휩쓰는 것. 일제하 조선의 거물들 – 친일파, 일본인 유력자들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 등 상류층 인사들과의 도박판에서 (돈도 그러모으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좌중의 마음을 쥐락펴락 휘어잡으며 조선의 최상층 인적 네트워크에서 평판을 확립해 간다. 돈이 아니라 마음을 따는 과정.

 

둘째, (역사 도박판) 독립을 위해 자금, 조직, 사람을 모은다. 줄거리 중에서도 핵심이며 흥미 덩이리. 이 과정에서 ‘지기’라고 할 만한 동료들과 함께하게 되고... 덧붙이자면 ‘너, 동료가 돼라!’ 에피소드들과 동료 하나하나의 성격과 개성이 꽤 아기자기 흥미진진(등장인물들 소개는 고민 끝에 안 하기로. 역량 부족이기도 하지만, 인물소개 구상해 보니 또 필사에 스포일러 위험이 커서).

 

셋째, (역사 도박판) 아직까진 본격적으로 제시되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큰 비극’을 막기 위한 준비도 조금씩. 예컨대 이것을 위해 벽초 홍명희의 마음을 얻으면서 그가 집필 중인 소설(이름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바로 그 소설!)의 줄거리를 바꾸려고 한다!! (아니 이제 보니 이거 [제인 에어 납치사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라도 한 건가?!)

 

넷째, 선우진 개인의 과업. 아버지를 죽이고(간접적으로 어머니도 ㅠ) 가정을 파탄 낸 스기우라에게 복수하기, 4대고수에게 승리하여 신목의 정당한 주인으로 우뚝 서는 것(복수도 이거랑 관계있다. ‘가짜 주인’을 처단한다는 측면도 있으니), 병마로 스러져 간 어머니와 같은 이들을 위한 요양원 건립, 그리고...... 일본인 아가씨와의 정말 어찌 될지 모르겠는 로맨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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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관 가득 감상 >
정말×100 놀라운 것이, 작가가 작정하고 ‘공부’를 해서 20세기 전반기의 인물, 사건, 문물을 모조리 머리 속에 넣고 있나 싶을 정도. ‘모조리’라고 하면 당연히 과장이겠으나...... 읽다 보면 과장이라는 느낌이 안 들고 오히려 정말, 정말 다 아는 거 같다는 느낌에 휩싸이고 만다.

당장 생각나는 예만 들어봐도
거시적으로는 - 일제 강점기 인천 경제계의 모습들, 조선의 철도상황, 당대의 사이비종교였던 백백교 교단의 만행, 장제스 장쩌린 등 중국 군벌들의 이합집산, (아직이지만 ‘후버vs루즈벨트’로 집약될) 미국 대통령 선거판세 등등
미시적으로는 – (도박, 특히 포커가 자주 나오는 소설 특성상 당연하지만) 텍사스 홀덤 같은 각종 포커 규칙에다 섰다, 마작 같은 각양각색의 도박 관련 정보, 재조 일본인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는 월미도 놀이기구, 버스터 키튼의 신나는 활극영화와 노스페라투 같은 당대의 영화 흥행작, 서울 북촌의 뒷골목 풍경에다 (그와는 ‘반대쪽’에 있을) 당대의 최고급 자동차들 묘사, 할리우드 토키 영화 도입 뒷얘기, 당시 최신형 축음기며 라디오방송국 설립과정에 대한 묘사, 당대 실존인물들의 세세한 에피소드까지(예를 들어, 사이토 마코토가 일본제국 해군대신 직책에서 물러나게 된 ‘지멘스 사건’이 짧게나마 소개된다든지)
등등등...쓰려니 숨가쁘다. 그런데도 이 모든 정보 전달 과정이 튀지 않고 작품 내 서술이나 묘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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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주인공.

‘쾌남아’라는 말은 선우진을 위한 말이다. 행보가 그냥 시원시원.
하나 더 그를 설명하는 말은 “신의 재능 인간의 마음” (4화 제목)

 

그 도박 재능은 (반복하지만) 그야말로 초인적. 뭔 소린고 하니 첫째 모든 도박패를 그냥 ‘안다’. 귀로는 바닥에 떨어진 주사위의 윗면이 어딘지를 듣고, 손으로는 포커의 카드 덱을 만지는 순간 카드 한 장 한 장을 알아차리며 눈과 판단력은 상대의 포커 패를 간파한다.
& 둘째 사람의 마음을 사진으로 찍듯이 꿰뚫어본다. 도박판 승부 묘사가 전반적으로 뛰어난데, 특히 승부중 심리전으로 상대를 흔드는 묘사들이 일품.
& 온몸이 간담인 듯한 배짱, 큰 그림을 보는 판단력부터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관찰력까지.

 

그리고 억강부약 정의로운 성정과, 자기를 심하게 괴롭힌 인물까지 품을 수 있는 관대함. 단, 공적인 차원에서 더 볼 것도 없는 악인에겐 가차없고, 심지어 달콤한 말로 꾀어 이용할 만큼 하곤 뒤통수를 치기도(그 과정에 대한 묘사나 서술이 실로... 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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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주인공의 성정도 성정이지만 작가의 시선이 참 좋은데
인물과 사건을 묘사함에 있어 - 예를 들어 극단적 민족주의 같은 것에 - 치우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선우진의 시선에서) 사이토 마코토의 ‘한 인간으로서의’ 유능함과 인간적 미덕을 기탄없이 인정하는 동시에 침략국가 일본의 권력층 일원일 뿐이라는 한계도 분명히 드러내는가 하면, 야쿠자들의 인정사정 없는 폭력을 직시하는 한편으로 ‘못 배우고 없이 살아온’ 또다른 일면도 이해한다(용납과 별개로). 이런 부분들이 또 한둘이 아니다. 큰 박수.

 

* 특이한 점
내용이며 줄거리가 이상과 같아서, 네이버 웹소설에서 SF 아니면 역사&전쟁 장르로 분류될 것 같은데(대체역사는 SF 하위장르이나, 역사&전쟁 장르에 대체역사 작품들이 있더라) 현대판타지에 속해 있다. 초기에는 판타지였고, 연재 후 현대판타지 분류가 따로 생기면서 옮겨졌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고 짐작컨대 주인공의 타고난 재능이 지나치게 비현실적 & 초인적이라서, 또 도박 5대고수와 그 신물 같은 요소들 때문인 것 같다(부수적으로 선우희도가 조선반도에서 일어날 양대 비극을 미리 알고 있다든가).

 

이 신물들이 또 재미있는 게 주인의 승리를 돕는 효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평소보다 흥분하게 해서 실수를 유도한다든가 하는. 아직 신물 없는 선우진이 신물을 온전히 갖고 있는 4대고수와 승부하면서 그 효능을 어찌 극복하는가가 또 흥미 요소. 덩달아 신목의 효능은 무얼까 싶은데... 개인적으론 다른 4대 신물을 포함 외부의 영향에서 소유자의 마음이 영향 받지 않게 지켜주는 ‘효능 아닌’ 효능이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본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나니.”)

 

* 아쉬운 점은
한가지 꼽게 되는 게, 선우 가문이라는 혈통에 의지(?)하는 것.
재능 + 노력축적으로 (상속이 아니라, 핏줄이 아니라) 자격을 인정받아 선대의 뜻을 이어받는 전승이었다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내 취향 혹은 편견.

 

** 앞으로 기대하는 지점들
도박 최고수들과의, 또한 사적 & 공적으로 최종보스가 될 가능성이 큰 스기우라 공작과의 승부 향방은?
(4대고수 중 2명은 이미 나오긴 했다.)
신목(원래 명칭은 신의 나뭇가지)의 진정한 효능은?
당대의 실존인물들과의 만남 및 선우진의 활약으로 인한 역사의 변경은 어찌될지? 과연 광복을 맞이하고 ‘너무나도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을지?!?
그리고 선우진 개인의 소망과 행복은? ...... 두근두근 지켜본다.

 

- 부족하고 두서 없는 소개글이지만 이거 저거 다 떠나서 ‘재미’ 하나는 확실히 보장!
- 작가 박스오피스(삽화가 OCHEN). 네이버 웹소설 – 오늘의 웹소설 – 현대판타지, 무료연재 중.

 

http://novel.naver.com/webnovel/list.nhn?novelId=693362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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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들

카테고리 없음 2019. 6. 16. 23:12

(2017.11.04. 페이스북)

 

1. 사람이 들지 않는(아마 시간이 늦어서) 가게 안에서
주인은 기타를 치고 있다.
자세를(운지법을?) 교정하려는지 그의 앞에 놓인 모니터 속
화면엔 기타를 치고 있는 지금 그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표정이 비장한 것도 아니고
막 무슨 아우라가 퍼져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보고 있자니, '아, 저것이 몰두로구나.' 싶다.

한쪽 눈은 그에게, 한쪽 눈은 그의 반대편에 두던 나는
반대편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는 걸 즉시 알아차리고
부리나케 길을 건넌다.

가게 주인의 모습을 살피는 데에 반만 몰두했었나 보다.
아니지, '반만 몰두'란 건 없지.. 쌍수호박을 익힌 것도 아니고;

 

2. A가 B를 차단했다. B가 차단당했다며 섭섭해 한다.
A는 차단해 놓고는 또 한번씩 들여다 보았는지
B가 섭섭해 하는 걸 어이없어 한다.
'아니 사람이 차단 좀 할 수도 있지 머 대단한 일이라고!'

아니 뭐, 그럴 수도 있다. 그건 맞지. 근데.. 그렇게 말할 거면,
B가 머 그렇게 (나쁜 의미에서)대단한 걸 했다고
차단은 하나 그래..
역시 내로남불은 인지상정인 거였어..

 

3. 사람들이 심한 소릴 내게 할 때
그 자리에서 받아치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그럴 줄 모른다. 그게 되는 사람들이 부럽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뜻은 옳을 때조차
(그러니까 내 행동이 비난받을 만해도)
그 표현은 심할 수 있고
내용과는 별개로 항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럴 때, 바로 그 심한 말을 들은 순간에,
재치있고 강력하게 맞받아쳐서
사람들을 헙 하고 입 다물에 만들어 보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하는 주장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이건 타고난 재능이라고 노력으론 극복이 안 되는 걸까
적어도 어느 정도는 노력으로 되는 문제일까나.

 

4, 어떤 사람들은 '좋은 왕'이란 표현 대신 '대통령다운 대통령'
'대통령 자격이 있는 사람' 등등의 표현을 쓰는 것 같다.
정신적으로 왕조 시대를 사실 거라면 공자의 정명론을 받아들여서
대통령 어쩌구란 표현은 버리시길.

누군가가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저런 사문난적을 보았나!'는 투로 펄펄 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들고 있는 깃발의 디자인만 다르면 다냐며
냉소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비판이, 실은 비판이란 할 수도 없을 저질 욕 수준이라도)
적어도 그게 민주주의가 아닌 줄은 알겠다.

좋은 왕이 나쁜 왕보단 낫겠지만,
아무리 좋은 왕이라 해도 그게 대통령은 아니지.

 

5, 국정원 특수활동비 소식을 듣고 나니,
"보수가 그래도 안보 쪽엔 투철하다."던 사람들을 볼 때
웃음을 참기 위해, 이전보다 더 노력해야 할 거 같다.
진작에 아닌 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리고 또, 실은 보수라고 하기도 좀..)

이 건에 대해,
그들이 말해 오던 바 '안보를 위협한다는 세력들'(?)보다
더 분노하고 더 강하게 처벌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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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1. 페이스북)

아래 링크한 웹툰이 1년 4개월만에, 장기휴재에서 돌아왔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이지 기분좋은 전율이 등짝을 타고 흘렀다.
처음부터 보시기를(이른바 정주행) 강추, 강추, 또 강추하고픈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장점을 감히 논하자면
- 딴 거 다 치우고 일단 재미가 있다.
- 작가가 '검술 덕후'이신지라 액션장면 하나하나가 예술
- 실제 세상의 한 구석을 보는 듯한 '씁쓸한 재미'가 있다.
- '적은 생각보다 추악하지 않고 아군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소박한(?) 진리를 잘 보여준다.
(인용한 말은 진중권 님이 한 말을 대충 기억하고 있는 것)

 

추천 제외대상은 다음과 같다.
- 세상일 무 자르듯이 선악 딱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
- 아무 생각없이 화끈 통쾌한 작품 보고 싶은 자
(두번째 사람들에 대해선 별로 유감이 없다.)

이상과 같은 나의 추천 웹툰은
네이버웹툰 <그 판타지 세상에서 사는 법> (약칭 그판세)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316909&weekday=wed&page=17&fbclid=IwAR1VKfvSRRkfKB-rxR9jJWasL9jPqkPH_Dk60yp7O1vwxaLwAmwc2nL2S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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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9. 페이스북)

인간이 살아가는 꼴이나 세상의 모습과 흐름을 잘 배우고 글로 잘 표현해 내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그러기 위해 적어도 두 가지(혹은 세 가지)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공부와 정보수집이다.

전자는 기존의 지식(이론) 습득, 후자는 글 쓰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현대(실시간) 현황파악.

 

둘째는, 사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결핍을 느껴서 하는 말인데,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극단적으로) 밀고 나가 보는 ‘(지적인) 용기’이다.

윤리, 정의, 신념 이런 것들도 생각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고정관념이요 장애물이기 십상이다.

이걸 무너뜨릴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내가 공부 비슷한 것을 할 때(혹은 그러고 있다고 야무지게 착각하고 있을 때) ‘지적인 정직성’이란 말을 좋아하던 교수님께 여러 번 들었는데 어쩌면 그것인지도.
(아니아니, 내게 결핍된 것은 둘 다다. 젠정 ㅠㅜ)


끝까지 밀고 나가다 보면 실수, 실패, 좌절할 때도 당연히 생기는데, 그런 용기가 있으면 그 경험들이 약이 되고 요령이 되는 것 같다. 반대로 성공적인 경험들도 있을 테고 이건 자신감으로 이어질 테니 그것대로 좋다. 이걸 셋째로 필요한 요소인 경험이라고 독립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겐 이것들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 즉 자격(...)이 없는 것인데, 뻔히 알면서 글을 무척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며 찬탄과 동시에, 부끄럽게도 무척이나 질투심을 느끼곤 한다. 질투심으로 인간이 추해지지 않으려면 이른바 수양이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지은 대로 받느니(먼산)...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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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1. 페이스북에 올림)

일본만화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처럼, 강인함과 선함(또는 정의감)이 조화를 이룬 대중문화 캐릭터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세파를 헤쳐 나가는 강인함, 욕심이나 자신의 강인함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선함(정의감). 거기에 재치와 유연함까지 있어 사람이 완고하지 않다면 더더욱 좋다.

또 꼽을 수 있는 인물은 뮬란. 성차별을 극복하고 공적인 업적까지 남긴 여성영웅이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디즈니 애니 뮬란(1998년 작)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보고 오랜만에 생각났다. 이 애니는 정말 좋다ㅎㅎ.
(중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여성영웅 중 하나인 화목란(한국식 한자발음이다)의 이름의 중국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영어식 발음...(헥헥)을 한글로 가장 가깝게 표기하면 ‘뮬란’인 듯하다. ‘듯하다’라고 한 건 ‘물란’이 더 맞는 표기란 의견도 있기 때문.)
이야기의 전개가 빨라서인지 몇몇 지점에서 느끼게 될 수도 있는, ‘너무 눙치고 지나가는데’ 싶은, 미묘하게 의구심이 들 수 있는 지점들이나, 중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외부세력을 절대악으로 묘사(‘상종 못할 오랑캐’라는 식으로 중국의 화이관을 반영한 것인지 아님 ‘훈 족’에 대한 유럽인의 공포감과 적개심을 반영한 것인지..)한 것이 불편하다면 불편하지만.
하여간 차별에 맞선 여성영웅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점에 엄지 척. 그러고 보니 다나카 요시키의 [창룡전]의 어느 대목인가에도 화목란에 대한 소개가 있더라.(트위터에서는 계정명 ‘류노스케입니다’ 님이 긍정적으로 디즈니 뮬란을 평가하면서 - 기회의 차별에 맞선 여성영웅, 디즈니 최초 동양인 주인공, 디즈니인데 무려 전쟁영화라는 점 등을 꼽았다. :https://twitter.com/dksldpdy/status/649831314833600512)

그리고 나서 바로 최근에, 중학생 시절 충격과 공포와 감동 속에 읽었던 토마스 해리스의 소설 [양들의 침묵](고려원 판 번역본)을 다시 한 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 연쇄살인 수사관 클라리스 M. 스타알링을 빼놓을 수 없지!!
(이건 나중에 1991년 작 영화로도 보았다. 안소니 홉킨스, 조디 포스터 님 연기 참으로 존경)
아무렴... 클라리스 M. 스타알링. 아마 내가 ‘누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엎드려(응?) 외치고 싶었던 (아마도) 최초의 인물이 아니었을까. 어릴 적 트라우마를 품고, 겨우겨우 다다른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발탁 기회를 버릴 각오를 하면서까지 약자를 구하고 범죄자를 막아서는 그 모솝은 참 감동, 대감동.(아니 FBI 요원이 할 일 골라서 하는데 왜 요원이 못 된다는 건지 궁굼하신 분은 어서 도서관으로)
물론 대중적 인지도는 ‘한니발 렉터(한니발 카니발. 즉 식인종 한니발)’라는 희대의 악당 캐릭터가 너무 사람들에게 먹어줘서 좀.. 밀리지만(나도 이 한니발 캐릭터에는 클라리스와 별개로 너무 매력을 느껴 버려서 할 말이 없다;;).

덧) 사실은 덧글을 쓰고 싶어서;;
[양들의 침묵] 다음 이야기인 [한니발]은 실망, 대실망 작이었다. 내가 진짜 누가 책 보겠다는 거, 그게 무슨 책이든, 안 말리는 사람인데 [한니발] 노노ㅠㅠ. ‘강인하고도 정의로운’ 클라리스의 캐릭터를 지근지근 짓밟고 시궁창에 팽개치고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망작이요 용두사미의 모범이다(라는 게 나의 소감이다). 뭐 삼부작(레드 드래곤 – 양들의 침묵 – 한니발) 모두 이젠 출간된 지도 오래되었으니 뒷북 오브 뒷북이지만.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66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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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1. 페이스북에 올림)

비교적 최근에 트위터에서 오뚜기의 시식사원 정규직화에 환호하는,

공유한 글 속의 자세한 사정들은 포함되지 않은 내용을 몇 번 리트윗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고 내 자신은 리트윗할 당시 다른 동종기업들은 그러지 않으리라는

추측에, 어떤 근거도 없이, 빠져 있었다. 해서, 공유한 글의 오뚜기 관련내용을 읽고 부끄러워졌다.

 

여기서 되새기게 되는 교훈은,

풍부한 사실을 아는 것(사실을 수집한 후에 판단을 내릴 것)의 중요성은

대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 글의 의미는 그거 하나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당장의 현실'을 '이념 혹은 가치관의 실현'과 이어주는 다리로서의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제안하고 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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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아부

카테고리 없음 2019. 6. 16. 00:41

(2017. 1. 27. 페이스북에 올림)

 

멀리 있는 친구에게 연휴인사 문자를 보내며 "부인께도 안부를."이라고 쓴다는 걸

'아부를'로 잘못 썼는데‥ 잘못 쓴 거 치고는 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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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19. 6. 16. 00:39

2017. 1. 10. 페이스북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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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대한 환호가 곳곳에 흘러넘치고 있어서
그와 별 관계 없는(?) 얘기만 끄적여본다.
(오해를 피하고자 분명히 말하건대, 환호에 대체로 공감한다.)

내가 유독 눈이 갔던 문장은

"힘을 가진 사람은 뭔가를 하지 않음으로써 뭔가를 할 수도 있다는 점도 명심해라."

이다. 오랜만에 보는 '역설의 묘미'가 있는 문장이었다.
개인적인 취향(??) 하나 밝히자면
나는 '힘을 가진 사람은'이란 문구를 빼도 좋은 격언이 된다고 믿는다.

물론, 인용한 글에서는 그 취지상 넣는 게 더 말이 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1100197?fbclid=IwAR3jwp-Ks9Th6rDj2RwE_wjhxdQryKRpK2T0cSQj2Ls_WKUA2dW90lz_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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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0~2002년 사이에 자주 들락거리던 사이트가 있었다. 내부에 하위 게시판이 많았고, 그 각각에서 활발한 논쟁과 논의와 수다가 넘쳐났다. 몇몇 게시판에서 지금 생각하면 민망해지는 잡글을 쓰곤 했다. 주로 신변잡기류, 좋게 봐줘도 되다 만 수필정도의.

 

한 번은 글을 쓰니 누가 칭찬을 하는데(대체로 글 성격이 온화하고 내용이 사려깊다는..) 그 칭찬은 “...하시니 여성 분이심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충 아 저는 남자고(남자라서 죄송하다고 했던가ㅎㅎ)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다른 쪽으로 말을 돌리면서 답글을 맺었다. 답글을 길게 주고받으며 이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딱히 기분 나빴던 것 같진 않다. 그냥 살짝 당황했고 피식 웃다 말았던 것 같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실은 순간적으로 화가 났는데 화를 내는 것이 지나친 행동이다 싶어 스스로를 단속했던 걸까. 화가 났다면 왜 났던 걸까.

만약 화가 났다면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1) 감히 나를 여자로 봐!? (2) 아니 왜 온유하다든가 사려깊다는 게 여성적인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이군 그래..

 

감히 페미니스트나 성평등론자를 자처하진 못하겠으나, 그래도 갖고 있는 편견이 있다면 줄이려고 애써 왔다고 자부(...;;;)한다. 만약 화가 났대도 후자였을 것이다(맞겠지? 맞을 거야;;;).

한데 화가 났느냐 여부보다는 당시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 지가 더 궁금하다. 즉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 몰랐고, 부끄럽게도 지금도 모르겠다. 물론 실제로 했던 것처럼 무던하게(?) 지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 최선의 선택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모르겠다.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만 늘었고 이런 쪽으론 여전히, 너무나, 미성숙하다.

 

 

2.

지금은 없어진 정당에 당원으로 가입했던 적이 있다. 지구당이란 것이 있던 시절이었고 가입하고 나서 한두 달 쯤 후에 첫 지구당 모임에 나갔고 감자탕 집 같은 곳에서 반주 곁들여 뒤풀이를 가졌다.

뒤풀이 때 외관상으로는 머리 희끗희끗하고 적당히 배가 나오고 적당히 인상이 좋은 전형적인 아저씨같은 사람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자기소개며 호구조사 같은 말들 좀 주고받는데... 어느 새 그 사람이 내 손에 주목을 하더라.

(.. 손이 곱다. 요즘이야 내 손 들여다보는 사람 잘 없지만, 20대 후반 아니면 30대 전반까지 손 곱다는 소리 듣고 살았다. 뭔가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다는 증거 같아서 내가 열등감을 느끼는 나의 특성 중 하나이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이 주목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중엔 손을 잡고 잠깐 만졌던가 쓰다듬었던가 그랬다. 잠깐10초였는지 1분이었는지...... 내 대응이 기억나진 않는데, 뿌리치거나 화를 내거나 이런 쪽은 아니었다. 손을 조용히 뺐던가, 아니면 그냥 기다렸던가. 분명히 기분이 좋진 않았는데, 그랬는데도 조용히 대응했(있었).

 

지금에 와서도 궁금한 것은 두 가지다. (1) 그는 왜 그랬을까. (2) 나는 또 왜 그랬을까.

(1)은 글쎄. 동성(혹은 양성)애자였을까. 아니면 본인의 성향이나 특정한 의도 때문이 아니라 그냥 너무 신기해서였을까. 이젠 알 길이 없고, 다만 후자였다면 (지금도 그렇겠지만) 꽤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2) 난 왜 가만히 있었을까. 어떤 모임에 처음 나간 자리에서 고참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혹은 모임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던, 또는 깨기 겁났던 것일까. 혹은 그냥 놀라서 어찌할 바 모르고 굳어 있었던 게 다일까.

지금이라면 더 단호하게 손을 뺐을 것이고, 어쩌면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속사정보다도 내가 왜 그리 나약하게 있었는지가 더 궁금타.

 

 

1.이나 2.같은 상황에서 쾌도난마로, 단칼에 상황을 정리하는, 혹은 거기에까진 이르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취할 행동을 분명히 선택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대응방식이나 내용에 꼭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단칼 같음이 부럽다.

 

 

2-1. 딴 얘길 하자면 나중에 (성격이 분명히 생각나지 않는다) 소규모 당원모임을 어느 까페에서 가졌는데, 까페 주인이 당원이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서 주인도 모임 참여자도 다들 안타까워하긴 하는데 뾰족한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인터넷 당원교육 같은 방법이야 있었겠지만 그다지 실질적이진 않았던 듯. 지금도 뭐랄까 정당이라는 말 자체의 의미에 어울리는 정당이랄까, 유명 정치인의 참모들과 지지세력의 결합체를 정당이라 부르는 그런 정도를 넘어, 당원 참여가 활발한 당이 되려면 저런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할 텐데, 하고 아련하게 생각만 하다 그친다...

 

 

3.

(앞의 얘기들과 달리 찝찝하지 않음)

대학을 다니다 군 입대를 했는데 입대 전 약 6개월 간 어느 학생운동 조직의 사업 하나를 도왔다. 조직원(표현이 좀...?)으로 가입한 것은 아니고 그 사업에만 참여를 했었다. 대학 다니는 기간 동안 학생운동에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했지만 직접 용감하게 참여하고 그런 적은 별로 없었는데, 그래도 그 6개월간엔 굉장히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군 입대 자체가 좀 갑자기 결정된 거라 뒷일을 (결과적으론) 남은 사람들에게 던져버린 게 지금도 미안타.

 

자연스럽게 조직원 몇몇과도 얼굴 트고 지냈는데, 그들 중 참 화사한 아가씨가 있었다. 외모도 말투도 행동거지도 세련이라는 두 글자를 사람으로 빚어낸 것 같은. 스스로도, 같은 학번에 동갑인데 뭔 아가씨냐 싶었지만, 그땐 정말 같은 학번 같은 나이 맞나 싶었다. 그녀 앞에서 나 자신이 애 같더라.

당시엔 다른 여성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을 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이성으로 접근하겠다는 의도 없이, ‘와 정말 화사하고 세련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동경하고 우러러보았다......;;;;;; 안면 트고 이름 주고받고, 그 뒤로는 만나면 반갑게 잠시 인사하고는 각자 갈 길 가고... 딱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던 것 같지도 않고, 애초에 그리 자주 마주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업에 더 힘을 쏟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판이 이 일하다 저 일하다 하는 데지만, 나는 애초에 조직원이 아니니 다른 일에 참여할 일은 거의 없었다.)

 

군복무 중의 휴가 중 첫 번째였던 100일 휴가였던가, 아님 그 뒤의 첫 장기휴가였던가. 마지막 이틀 혹은 사흘은 (집에서 바로 귀대하지 않고) 대학가에서 보낸 후 귀대했다. 학교 가서 있는 사람은 만나고 없는 사람은 못 만나고, 저녁엔 친구며 선배들이 사 주는 술을 진탕 마시고 잠은 친구 하숙방에 신세를 지고, 그러고는 돌아갔는데...

 

있는 사람 중에 그녀가 있었다. 다른 사람 없이 잠시 둘이만 얘길 나눴다.

여전히 화사했고(내 느낌 : ‘그러면 그렇지.’(뭐냐 나는......)) 군에서 휴가 나온 친구한테 으레 하는 정도보다 훨씬 더 반갑게 맞아 주어서 기쁘면서도 동시에 살짝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나누다가, 그녀 쪽에서 폭탄을 던졌다.(덕분에 앞뒤의 다른 얘긴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군복무 중인 사람이랑 격려하는 친구 사이에 오고간 얘기야 뻔했을 것이다. 폭탄만 빼고.)

너 많이 좋아했었는데.” 그냥 환하게 웃으면서, 격렬한 감정 표현은 없이 그녀가 말했다.

 

아마 횡설수설했을 것이다 나는. “야 이 씨 진작 고백하지. 이제 와서 그러면 어쩌라고등등의 말을 가볍게뱉으면서, 필사적으로 충격받지 않은 척 얘기를 나누다 어찌어찌 작별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데 성공(...)했던 거 같다. 돌아볼 엄두는 내지 못했던 거 같다...

좀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굴었어야 한다, 고 지금도 살짝 후회한다(큰 후회는 아니고). 나라는 사람에게 호의를 가져 준 것이 고마워서라도 또 그 마음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해서라도 내 자신이 충격 받은 것에만 매몰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역시 난 그 때 애였다.ㅎㅎ;;;

 

그 뒤론 만나지 못했고, 제대하고도 몇 년인가 후에 결혼 소식을 들었다. 천성 게으른 데다, 거주하던 곳과 결혼식장이 멀리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한참 돈도 없던 시기였지만 찾아갔다.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그저 열심히 찾아가 축하해주는 것으로밖에는 표현하지 못했다. 그녀는 물론 반가워해 주었고(살짝 놀랐던가? 모르겠다. 중요하지도 않고), 흰 장갑 낀 손으로 꼭 악수해 주며 고맙다던 모습이, , 여전히 화사했다.

 

앞의 두 에피소드(라고 쓰고 흑역사라고 읽는다)와 달리, 끝이 좋아서 다행이긴 한데, 폭탄 맞았을 때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지금도 아쉽다. 심지어 지금은 애 있는 애(!)라서 매우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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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 페이스북에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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