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6개월만에 ‘청취율 사각지대’라는 새벽 3시 프로그램으로 방송에 복귀한 뒤, 두 번째 방송을 했던 2003년 10월 21일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말지의 이오성 기자에게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마이크나 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계급적 기반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거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SF 영화 같은 세상 아닌가요. 모든 것이 나의 물적 좌표에 따라 바둑판처럼 이미 짜여진 세상.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난 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나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노동자, 농민 이야기는 그들의 생리나 환경과 맞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은 심각하지만,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혀 심각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서 투명인간화되어 버리는 청소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인데."
2003년 11월 18일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월간 말] 이오성 기자의 글을 참조한, '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 하종강 님의 글을 다시 참조;;;)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말지의 이오성 기자에게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마이크나 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계급적 기반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거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SF 영화 같은 세상 아닌가요. 모든 것이 나의 물적 좌표에 따라 바둑판처럼 이미 짜여진 세상.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난 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나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노동자, 농민 이야기는 그들의 생리나 환경과 맞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은 심각하지만,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혀 심각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서 투명인간화되어 버리는 청소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인데."
2003년 11월 18일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월간 말] 이오성 기자의 글을 참조한, '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 하종강 님의 글을 다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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