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두 쏠로예찬 방 20040403



제목이 참 어정쩡하지만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 한다.

1996년 대학생활을 시작한 첫 해부터 지금껏 몸담아오고 있는 동아리가 있다. 학생운동하고 그런 동아리가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일종의 중국 권법을 수련하는......몇몇 분은 이미 들었고(대개의 반응 : 권법한다는 인간 몸이 왜 그러냐?)... 하여간 오래도록 애정을 느끼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근데 이놈의 권법이란 게 그냥 팔 휘두르고 다리로 차고 하는 따위를 수련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하나의 학문(이를테면 경제학) 내부에도 학파가 나뉘어 경쟁하듯이 '남들' 보기엔 똑같은 한 종류의 권법인데도, 그 권법에 접근하는 기본적인 관점에서부터 동작 하나하나의 올바른 형태까지 의견을 달리하는 수련자들의 공동체/계보가 있다. 편의상 '계파'라고 부르자.
(유파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유파라는 것은 좀더 공인된, 객관적인 구분이 가능한 틀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를테면 태권도라는 무술이 있고, 여기에는 WTF와 ITF라는 유파가 있는데 WTF 내에서도 어떤 방식의 태권도 수련이 WTF 정신과 자세에 더 잘 부합하는가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수련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각각의 수련자들의 모임을 '계파'로 부르겠다는 뜻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동아리는 그리 크지도 않아서 대개는 하나의 계파만 있거나 하나의 계파가 지배적이다.
그 계파는 96년부터 지금까지 내 기억하기로만 서너 차례가 바뀌었다.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대개는 이렇다. 우선 선배들이 추종하는 '주류' 계파가 있다. 그 선배들은 그쪽 계파의 권법가에게 배우고 그걸 후배들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이전까지 소수 계파였던 쪽 선배가 이런저런 계기로 후배들에게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혼자서 열심히 이것저것 공부(이론 공부 쯤 된다.)하고 수련하던 후배가 이전까지 동아리에 없던 계파에 속한 선생님께 배워 와서 퍼뜨리기 시작하여 성공하거나 한다.
그러면 양 계파 간에 경쟁이, 더 정확히는 일종의 감정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심오한 이론과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논쟁할 수도 있었지만... 선배라고 해도 결국 20대 중반 이전의 어린(?) 사람들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힘든...
결국 생산적인 논의 같은 것은 기대도 못하게 되고, 감정싸움의 연속이 되고 후배들의 지지를 적게(대개는 거의 못) 받는 쪽 선배들은 동아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렇게 떠나간 선배들 중에는 내가 참 좋아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던 선배도 몇 있었다.
좀더 설명하자만 나는 졸업 전까지 늘...... 과 생활과 동아리 생활 사이에서 과 쪽에 더 비중을 둔 채 왔다갔다 하는 편이었고 해서 '싸움의 현장'에는 - 이것이 대체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 가 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97년 쯤이었나 내가 한참 동아리에 신경 못 쓰고 거의 못 나가고 할 때 동기들이 거의 모두 합심해서 선배를 몰아낸(그리고 다른 선배를 수련의 지도자로 받들게 된) 경우는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때 떠나간 선배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그래서 그런지 그 선배는 지금에 와서도 나만은 웃는 얼굴로 대해 준다.)
덧붙이자면, 좀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렇게 내 동기들이 그때 맞아들인 그 분을, 나 역시 마음속으로는 다른 누구보다 스승으로 여긴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선배 축에 들게 되었다.
새로운 흐름은 또다시 밀려왔다. 이번엔 아주 열성적인 동아리 사람(표현이 애매한데, 그는 학번은 95로 나보다 한 살 많되 동아리에는 나보다 늦게 들어온, 그러나 참 열심히 수련하는 선배다.) 하나가 외부의 선생님께 권법을 배워 왔다. 그 선생님은 전국 각지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고 큰 곳에는 수련생 지부(라고 해서 으리으리한 시설이 쫙 갖추어진 것까진 아니고.)들도 있는 그런 분이었다. 실력 역시 훌륭하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우리 동아리와는 별개로 그 계파의 권법수련회가 생겼고 내 후배들은 - 전부는 아니지만 - 하나하나 그 수련회에 나가 배우면서 또 그것을 자신의 후배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즈음해서 군대를 갔다가 제대한 것으로 기억한다. 제대해서
나나 나와 계파가 같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편이었다. 아니 나머지는 거의 군대에 간 상태(동아리에 여학생이 거의 없다.ㅠㅠ)에서 내가 가장 먼저 제대한 셈이었는데
하여간 가만히 있으면서 나 혼자 내가 기억하는 대로의 수련을 했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가끔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참 친한 - 동아리에서 유일하게 안티조선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고, 적극 동의하던, 지금은 열우당 지지자 쯤인 - 후배가 내가 마음으로 스승삼은 선배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것을 알고 화도 났다(엄격하게 말하면 화낼 일은 아니다. 생각하면 부끄럽다.). 성격이 좀 심하게 직선적인 또다른 후배가 - 아마 의식하지도 못했을 거다 - 쓰레기, 정신나간 따위의 단어로 내 쪽 계파를 표현할 때도 있었다......기억엔 없지만 아마 난 그때마다 그 녀석을 후려치고 싶었을 거다.
참고로 내가 스승 삼는 선배는 오래 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쪽에 주력하는 분인데 그래도 가끔은 동아리에 와서 지도도 해 주고 그러시는 상태이다. 학교에 나오시는 빈도가 점점 줄긴 하지만.

여튼 동아리 안에서 나와 같은 계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내 선배들과는 좀 다른 길을 택했다. 될 수 있으면 계파 차이로 말을 나누거나 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면서 동아리 생활을 계속했다. 그냥 버틴 거다.
이후 학번은 두 학번 아래지만 나보다 뛰어난, 나와 같은 계파라 할 수 있는 후배가 제대하여 동아리에 돌아왔고 지금은 그 후배가 동아리를 주도하는 상태이다.
앞으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제대한 직후부터 이곳을 알게 되었으니... 동아리 일로 고민하던 시기와 안티조선에 관심을 가지게 된(물론 다른 앙들과 몰입의 정도를 감히 비교할 자신은 없다.^^) 시기는 상당 부분 겹친다.
내가 2001년 이후 있었던 게시판의 여러 '싸움'들을 보면서 자꾸 동아리에서 겪은 일들이 겹쳐 보였다면 착각일까. 일 수도 있도 아닐 수도 있고......



떠나가는 선배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결심한 게 있다. 나는 떠나지 말아야지.
'권법 동아리'니까 권법도 중요하고 동아리도 중요하다. 다만 사람에 따라 어느 한 쪽에 더 무게를 둘 수는 있겠다.
잘못 아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내 짐작엔 떠나간 사람들은 권법 쪽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내 경우엔...동아리 쪽이 더 중요했던 걸 수도 있고 혹은 내 나름 '둘 다 중요하다'는 생각의 표현이 불만은 있어도 동아리에 남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나간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심지어 그 선택이 존경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내 선택 역시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지인들에게 자기비하가 좀 심하다는 말까지 듣곤 하는 내가 괜찮다 여길 정도면... 정말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인 거 아닐까. 혹은 장고 끝에 악수? ..;;;;;;

(녹색 글씨 이후 부분을 우리모두에 대한 내 생각을 돌려 말한 것으로 애써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아! ^^)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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