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 전후로 우리모두 싸이트와 교육학과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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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은 여려 작품을 찍으면서 서서히 뜨더니(유명해진 것은 <결혼 피로연>부터이다) <센스 & 센서빌러티>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어떻게 동양인이 완벽한(?) 서양영화를 찍었지?'라는 당시의 반응) 드디어는 <와호장룡>으로 홈런을 쳤다.
물론 사람들의 반응은 four-letter-word부터 극찬까지 다양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긴 이안 감독의 세계관(?)에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는 동아리 선배의 생각에 대한 것이다. (참고로 우리 선배는 이제 중년이시고, 가정이 있으시고, 태극권의 성취가 꽤나 높은
나로서는 "매우매우매우 대단하게" 여겨지는 선배이시다)

영화 초반부에서 무당파 검술의 계승자인 주인공 이모백은 (그의 사부도 당대의 최고수, 지금은 그 자신이 당대의 최고수라는 조금은 황당한 설정!) 자신의 사부가 자신에게 가르쳐 주었던 경지마저 넘어서서 전혀 배우거나 들은 바 없는 경지에 들어선다.
그런데 그때 느낀 것은 밀려오는 슬픔.

내 동아리 선배는 대화 중에 이안 감독, 혹은 영화 <와호장룡>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언제나 그 대목을 지적하면서 말하곤 한다.
영화의 긴 줄거리 전체에 대한 균등한 관심이라기 보단 그 대목에서 '선배가 본 이안 감독의 세계'를 중심으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어떤 '담담한 슬픔'이지 싶어......담담한 슬픔. 자신이 평생에 걸쳐서, 모든 것을 바쳐서 얻은 것이 '이것이었구나'하는 느낌. 홀가분하다......기 보다는 '시원섭섭하다'가 그 느낌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지."
"......?"
"아니! ......그렇다고 허무주의는 아니야.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렇게 자신을 바쳐서 살아가는 거지, 그래야 햐지! ......그러나 마침내 도달해서 얻은 그것이......'아!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 그런 느낌을......이안이 ......표현한 것이지, 싶어."
"..................?"
"그걸 알았을 때의 그 담담함. 약간은 슬픔에 가까운 그것을......이안 감독은 표현한 것이지. 그래서 내가 보기에, 이안이, 인생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인 듯......하다는 거지."

그리고 나를 마주보고 있지만 내 너머의 무엇인가를 관조하는 선배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듯한 표정.
조금은 오래 전의 그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난 아는 척 하면서 사실은 말에 매여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 어리둥절해 버렸다. 이후에야 나는 나 나름대로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최고의 산악인이 K2나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인간이 걸어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다. 당연 감격스럽다......근데 머리 위를 올려다 보니 끝없는 청공.
그렇다. 저 끝도 안 보이는 저 높이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오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물론, 만약에라도 더 높은 산이 있다면 또 한 번 그곳으로 찾아가리라.

이 비슷한 심정이 아니겠는가, 하고 혼자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이후에 나는 이안 감독의 영화 몇 편을 보았다(혹은 보게 되었다). 이안 감독의 작품은 - 내 알기로는 - <추수(한국에서 비디오 출시제목은 쿵후선생)> <결혼피로연> <센스& 센서빌러티> <라이드 위드 데블> <와호장룡> 등이 있다. 더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중 내가 본 것은 <추수> <와호장룡> <라이드 위드 데블>.

<추수(쿵후선생)>
평생을 태극권(그렇다! 첨에 난 태극권 나온다는 얘기에 이 영화를 보았고, 지금은 조금 화질이 나쁜 비디오 테잎을 갖고 있다......)에 바친 중국 노인이, 미국에 와서,
미국 여성과 결혼해서 사는 아들 집에 얹혀 살면서 일어나는 (주로 문화적인) 갈등을 담은 작품이다.
숨은 재주를 가진 노인이 어느 날 훨훨 날라다니는......그런 영화 전혀 아니다. 이연걸처럼 나뭇잎 모으지도 않고. 즉, 이 영화엔 액션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주인공 능력의 과장 같은 것이 없다. (그래도 저런 걸 사람이, 아니면 저 나이 노인네가 해낼 수 있나, 싶은 장면이 좀은 나오는데 내가 알기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선배랑 이야기 나누기 전에는 그냥, 문화적인 갈등을 담담하게 잘 그려냈거니, 하고 보던 영화였는데 선배와의 대화 이후엔 다른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태극권의 고수이지만, 노인이 자신의 태극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차이나타운 문화센터의 교실 안이 아닌 다른 곳에선 노경에 접어든 다른 사람들과 같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며느리와의 어색함, 중국어보다 영어가 익숙한 손자,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 문화센터에서 만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할머니와의 밋밋한 교제......나중에 갈등을 참지 못해 가출을 감행하지만 역시나 힘든 일들 뿐이고 결국에는 두 자리 수의 경관들과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실력을 과시하지만
그 뿐이다. 더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기에, 경관과 동행할 수밖에 없다. 티브이 뉴스에선 약간 놀라운 사건 정도로 다뤄질 뿐. 급히 달려온 아들도 '정말 잘 싸우시던데요.'......이따우 대사는 안 한다.
늙은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시달리는 선량한 아들이요 남편이 보일 법한 그저 전형적인 행동만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생활의 조건들을 고려한 타협과 수용.
그랬다. 새로운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 앉으니 몇 번을 번 영화도 또 새롭게 보인다.

<라이드 위드 데블>
선배가 불어넣어준 관점으로 보면서, 그 관점과의 접접을 찾기가 어려워 조금은 애먹으면서 보았다.
남북전쟁, 신념에 따라 남군에 참전한 독일계의 주인공(남북전쟁 당시 독일계는 북부정책을 지지했다고 한다),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전형적 남부청년). 또 한사람의 남군을 충실히 따르는 '흑인 남군' 하나. 주인공의 친구에게 다가온 과부. 그리고 남군 병사에서 전쟁광, 급기야는 살인광으로 미쳐 가는 놈 하나.
전쟁의 폭풍 속에서 이들 사이의 관계가 얽히고 꼬여 간다.
친구는 죽고, 신분을 자유로 풀어준 병사를 여전히 주인으로 따르던 흑인과는 단짝이
되어가고(주인은 살인광에게 죽는다), 친구의 아이를 가진 그 과부를 아내로 맞고......전세 불리함을 깨닫고 결국 남군을 탈퇴, 주인공은 아내와 서부로 떠나간다. 그리고 살인광이 찾아온다.
주인공은 함께하는 흑인과 그를 쫓아내는데 성공하지만, 언제 다시 올 지 모른다. 그런데 흑인 친구도 다른 길로 떠난다. '사실 주인이 죽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느꼈'다고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난다. 주인공은 그를 보낸다.
언제 살인광이 다시 찾아올 지 모른다. 자신이나 친구에게. 그렇지만 그것을 감당해 내면서 가야 한다고, 이안 감독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라이드 위드 데블>의 주인공의 경우는 '떠나가지' 못하고 죽은, <와호장룡>의 이모백과는 다른 경우이다.
어쩌면 이안 감독은 최선을 다해 온 인생에서 자신이 추구하던 그 무언가의 실체를 접한, 담담한 슬픔이란 것을 알게 된 이들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추수>에선 아들의 가정과 평화로운 별거, <라이드 위드 데블>에선 새로운 삶으로 떠나기, <와호장룡>에선 떠나려 하다가 자신이 떠나려는 세계로 갓 입문한, 그리고 비뚤어진 길을 가려는 용이란 젊은이를 제대로 붙잡으려 한다. 실패하고 죽게 되긴 하지만.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크게 변화가 없는 것도 같은데...... 그들을 둘러싼 인간관계나 기타 여러 조건들의 차이 때문에
그들에게 주어지는 결과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뭐, 굳이 한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들곤 한다.
그러나 '선배의 지도를 받아' 하나의 관점으로 한 영화감독의 일련의 작품을 읽고 그 속에서 일관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감독님, 다음 작품 언제 내시려나요?
우리 선배랑 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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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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