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26 우리모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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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때 추리소설과 과학소설(SF)을 죽어라고...까지는 아니고 그래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보던 시절이 있었다. 추리소설로 말할 것 같으면 코난 도일, 애거서 크리스티, 반 다인, 엘러리 퀸 등의 소위 본격 추리소설 류도 읽어 보았고 더 쉴 해미트, 레이먼드 챈들러, 로스 맥도널드 등의 하드보일드 작품들도 약간씩 보았다.
중고생 이후로는 좀 뜸해진 편이지만 올해 들어서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 장편 시리즈'가 완역되어 나온 것을 발견하고 한 권씩 읽어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미국 작가 폴 오스터나, 혹은 그 이전부터 붐(?)을 탄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사람들이 챈들러 작품들을 아주 좋아한다는데...
그 양반들이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몰랐어도 나 역시 중고생 때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을 읽고 그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앞의 두 작가 양반이나 그외 챈들러 옹호자들, 내가 빌려온 챈들러 책들을 같이 본 누나가 하는 말 중에 공통된 것이 "이토록 문장이 멋질 수가!"이다. 뭐 챈들러의 미덕은 그것만이 아니긴 하지만(미국 사회의 부도덕한 단면을 문자 그대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서술한다든가 하는 점 등등).

원체 추리든 과학소설이든 번역시장이 좁다 보니 번역되어 나오는 작품들 자체가 그 분야의 고전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그 고전의 출판이란 것이 한 작품을 여러 출판사에서 내 놓는, 어찌 보면 다양해서 좋고 달리 보면 다른 원작을 새롭게 번역하지 않아서 아쉬운 그런 상황을 동반하는 경우도 상당하지만...그리고 번역의 수준 갖고도 드물지 않게 말들이 있지만, 내가 번역 수준까지 따질 내공은 아닌지라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읽곤 했다.

그런데 그 얼마 안 되는 고전이라고 해도 또 내가 그 모두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닌지라, 특히 책을 살 작정을 한 상태에서는 으레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서평이니 책 소개니 해도 어차피 미사여구가 흘러넘치는 것(심하게 말하면 평이라기보단 광고) 이상이 아닌지라
결국 반쯤은 도박을 하는 기분으로 일단 책을 고르게 되며, 그러고 나면 만족하는 경우도 있고 남들은 고전이라 해도 개인적으론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런 내 복잡다단, 지리멸렬(?)한 추리소설 편력에서 아직까지는 실망을 느껴 본 적이 별로 없는 작가가 몇 있다. 앞서 말한 챈들러가 그러하고, 첩보소설 작가로 유명한 존 르 카레가 또 그러하다. 그런데 존 르 카레는... 아직 두 권밖에 읽지 않았다;;;

겨우 두 권 읽고서 실망하지 않았네 뭐네 말하긴 뭐 하지만 그 사람의 작품은 깊이가 있다고 해야 할 지, 싸아한 페이소스(?)가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점이 매력이랄지... 하여튼 그런 점과 더불어
그 두 권 다 굉장히 망설이면서 책을 샀으며 동시에 읽고 나서 책을 고른 걸 후회하지 않았다는 점(오히려 반대로 읽기를, 사 보기를 잘 했다고 느꼈을 정도) 때문에 적은 권 수에도 불구하고, 존 르 카레는 내가 감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

내가 읽은 르 카레의 책은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러시아 하우스]이다. 앞의 것은 모 출판사의 추리문고 시리즈로, 뒤의 것은 단행본으로 나와 있는 것을 사 보았다. 뒷 작품의 스토리를 매개로 오래 전에 쟁토방에 글을 올린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는 추억이 된, 몇 번의 송강옥 나들이 때 잡넘 님이 존 르 카레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잡넘 님 말로는 존 르 카레는 서구의 다른 첩보소설 작가들에 비해서도 한층 뛰어나다는 평인데, 일단 '오락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유명작가들의 유명작품을 단 몇 편이나마 본 나로서도 공감이 가는 평이었다.

그런데 잡넘 님이 원서로 보았다는(번역본이 없어 나는 못 본;;;), 그리고 최고로 치는 르 카레의 작품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팅커, 테일러, 솔저 & 스파이]이다. 내용소개는 생략하고... 잡넘 님의 그 말씀을 듣고 이러저리 알아보았는데 모 출판사의 추리문고 시리즈에서 '출간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한숨을 쉬면서 일단 관심을 접은 적이 있다.

그러던 오늘(2005년 7월 26일) 다른 책을 사러 서점에 갔다가(근처에 있긴 한데 '동네 서점'이라기엔 꽤 큰 곳) 책을 산 후 나가려도 몸을 돌리던 중... 신간 코너에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만 것이다.
물론 잡넘 님이 첩보소설의 ㅊ자만 나와서 흥분하면 침 튀기던... 바로 그 책이다. 제목을 본 그 순간의 짜릿함이라니.('출간 예정'이라던 그 문고판으로 나온 건 아니었다;;;)

문제는 가벼울 대로 가벼워진 나의 지갑과... 사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선약'을 해 둔 다른 몇 권의 책들.
늘 그런 편이긴 하지만 이 여름은 굉장히 고픈 계절이 될 것이다.


스파이 스릴러 작가 존 르카레의 대표작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이상 열린책들)도 최근 정식 판권 계약을 거쳐 번역돼 나왔다. 열린책들은 르카레의 작품 19편을 모두 번역 출간할 계획이다. (2005년 7월 23일자, 한국일보 김범수 기자의 기사 중에서. 현재 일간지의 서평은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두 곳인 듯하다. 우드득.)



좀 다른 얘기.
첩보소설의 전성기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누가 뭐래도 20세기 중후반기를 들 수 있다. 첩보소설이란 장르가 아무래도 냉전이라는 시대상황에 힘입어 관심을 끌었다고 봐야 할 테니까.
그렇다면 냉전이 극에 달한 지역에 속하는 이곳 우리나라에선?
나름대로 기억할 만한 작품들(이를테면, 영화 [흑수선]의 원작이 된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이라든가)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내 견문이 좁아서인지, 첩보 장르가 활성화되었다는 느낌은 별로 받지 못했다.(정말 나만 그런 거 아냐?;;;)

반드시 활성화될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애초에 시대적인 문제에 대하여, 서구 각 국가에 비해 발언할 기회랄까 권리랄까 그런 것이 심하게 억압받아 온 우리네 경험이 약간은 현 상황을 이루는 한 원인인 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또다른 얘기.
이런저런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지만, 어쨌건 서구, 특히 미국에서 하드보일드 장르는 '자본주의 미국'의 추악하다면 추악한 이면(자본주의의 '화려함'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을 파헤쳤다는 '사회적 공헌'을 한 바 있다.
적합한 예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더 쉴 해미트 같은 사람은 정치색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매카시즘 시절 그의 작품이 공공 도서관에서 '퇴출'되기도 했고, 매카시 위원회에 소환당하여 매카시에게 심문을 받기도 했다. (나름대로 유쾌한 에피소드 하나, 매카시 왈 "이런 작품(해미트 본인의 작품)을 도서관에 두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해미트 답하기를 "나같으면 도서관이란 걸 인정하지 않겠소.")

하여간에, 미국에서 하드보일드 장르는 대략 30년대, 자본주의가 극에 이른 후 대공황이라는 이름의 파산을 겪었던 시절을 전후하여 활짝 꽃을 피웠다고 한다. 하드보일드 장르가 주목을 받은 후에, 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후엔 첩보소설이 주목을 받았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제 한국은, 피폐했던 식민지 시대와, 열전(한국전쟁)-냉전의 시기를 거쳐서, 그야말로 자본주의가 활짝 꽃을 피우는 시대가 되었다. 이상호 기자가 우리시대 자신의 책무(다시 말해 기자의 책무)를 "자본의 심장에 도덕성의 창을 꽂는"(이런 살떨리는 표현까지 써 가면서) 일로 규정한 것은 괜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이전에는 권위적이고 부패했던 권력이 정직한 기자(어디 기자 뿐이겠는가)의 눈을 가장 우선 두어야 할 곳이었다면, 이제는 그 눈 둘 곳이 자본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추리소설 내부 장르 간의 주목도에 있어서 그 추이는, 한국에서는 미국의 경우완 달리, 첩보소설에서 하드보일드 소설로 옮겨가지는 않을까 하는 객쩍은 예상을 해 본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의 추리 장르가 대중의 주목을 받는 동시에 장르 문학에 도전하고자 하는 재능 있고 야심찬 작가들이 등장해야 가능한 일이겠고, 아직 채 정리되지 못한 지난 시절을 냉철하게 반영한 대작 첩보소설 몇 편쯤은 이제라도 나왔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기대이긴 하지만 말이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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