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0517 진보누리 사이트에 올리신 글 >


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ㅣ 2004년 8월 ㅣ 12,000원

다일사? 다시 보는 일제사..

어릴적, 교과서 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했던 학생이라.. 나는 가르쳐 준 역사만 외웠고 그 속 영웅들을 교과서대로 존경했다. 그 외의 역사, 사람들은 내 인식 밖의 것이었다. 아니, 다른 게 있다는 것조차 짐작 못했다.

이 사회 주류를 삐딱하게 봤던 대학생 때, 선배들이 건넨 '다현사' (다시쓰는한국현대사) 제도권 교육의 시각을 정면으로 들이 받는 관점에 내 두뇌는 작은 진동을 경험했었다. 헌데 그 '다현사'에도, 내 선배들이 내게 건 넨 다른 책과 텍스트에도, ‘경성트로이카’와 ‘이재유’, ‘박진홍’ 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일제치하와 해방전후 사에서 사회주의 흐름은 김일성의 무장투쟁 정도 봤고 해방 후 남로당의 멤버였던 박현영, 김삼룡, 이주하 정도 이름만 스쳐 알 뿐이었다.

그렇게, <경성트로이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감춰진 ‘사실’을 펼쳐 보여준 역사책이었다.


경성트로이카..

트로이카.. 세 마리의 말이 동등한 힘을 갖고 이끄는 삼두마차라는 뜻이다. 이재유는 모든 활동가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자신과 조직의 운명을 결정하고 따르는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조직방식을 ‘트로이카식’이라 설명했었는데, 그것이 추후 조직의 이름이 되었다. (각잡고 살아야했던 그 엄혹한 시기에.. 무슨무슨 동맹이니 협의회가 아닌 트로이카라니.. 그 조직운영·활동원리 만큼이나 참 매력적이다! ^^)

이재유.. 나에겐 낯선 혁명가였지만,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구속과 탈출을 반복했던 그를 잡고 너무 기뻐 기념촬영을 했고, '집요흉악의 조선공산당 마침내 괴멸'이란 제목으로 그 날 호외까지 발행했었다 한다.

경성트로이카 멤버들은 일제 식민지하 경성(서울)에서 총칼이 아닌 노조와 파업이라는 무기로 일제에 저항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대다수 우익 보수주의자들이 친일매국노로 돌아셨을때도 그들은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와 함께 조선의 독립과 그후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 노농대중에 뿌리내리는 실천을 했다.

총칼보다 무서운건 그걸 움직이는 사람의 손이고 억압과 굴레를 거부하는 사람의 인식이다. 한 명의 전사가 아닌 노동자, 농민을 주인으로 세워 내는 것.. 무장투쟁의 전사들보다 노동현장에서 실천 활동을 폈던 그들이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금 우리 노동운동이 처한 현실 때문만은 아닐게다.


불굴의 신념.. 그 에너지는 무엇일까?

수도 없이 갇히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기지를 부려 탈출을 감행하고 다시 잡혀 와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 희망과 신념의 에너지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작가 안재성은 그것을 이타심에서 찾는 듯했다. "고문과 감방 밖에 얻을게 없는 가혹한 일제하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이들은 근본적으로 이타적이고 선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라는 이재유의 생각을 빌은 표현과 프레시안에서 주최한 버스 노동자 안건모씨와의 대담에서 전태일이 자기연민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애정 때문에 노동운동을 시작했고 바로 그것 때문에 죽었다"라는 말하는 부분에서도 그러하다.

이타심.. 진정 그럴까? 뭐라 답하기 자신없다.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는 나는 그 길을 가면서, 작은 성과로 더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하고 가끔 좌절하기도 한다. 가끔 잠수도 타고 깽판도 부리지만, 그래도 뚜벅뚜벅 길을 걷는데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거기서 느껴지는 행복감. 그런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한다.그래도 뭔가 부족하다. 아마 내 평생 풀어야 할 숙제지 않을까?


이 땅 노동자의 역사.. 그 사작

나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감히 ‘모범’으로 삼지 않는다. 내가 사회적으로 철이 들면서부터 혁명을 꿈꿔 본적이 없는 개량주의자여선지, 이 책을 통해 '활동가의 자세는 이래야 하는구나..불끈!' 하고 감동하진 않았다.

서두에도 말했듯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보다 앞선 시대를 살며 일하는 사람을 역사의 주인으로 세우고자 그들을 조직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 그 은폐 되었던 '사실'이 우리 노동자의 역사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혹한 시대의 고통을 맨몸으로 감싸 안고 죽어 간 이들과의 약속이었다.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총칼조차 없이 조직과 파업이라는 무기만으로 일제와 싸운, 남은 것이라고는 고문과 질병 밖에 없음에도 항상 즐거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동료를 지키기 위해 고문 틀에 올라 피를 한 바가지씩 쏟아내면서도 유치장에서 만나면 서로를 끌어안고 웃어 주던, 불행한 시대의 아름다운 영혼들과의 약속이었다.”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숨기려 했지만, 100년도 안되어 우리는 부당하게 잊혀지고 역사에서 사라진 이들을 현재로 불러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아는 것. 그것은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의 역사를 인지하고 기억하는 시작이다.

당과 노조의 활동가라면 한국노동운동사 쯤은 공부해야할게다. (나는 이 책을 계기로 공부하고픈 욕구가 생겼다) 소위 말하는 활동가, 우리 말고.. 이땅의 일하는 사람들.. 그 평범한 벗들에게 <경성트로이카>를 가볍게 권했으면 한다. 노동자 역사관 그 시작의 대중적 전파를 위해.


책을 덮고의 아쉬움..

이재유, 박진홍, 이현상, 김삼룡, 이관술, 이순금,이효정 등 그들은 일제시대에 활발했던 국내파 항일 사회주의 운동을 이끈 '뛰어난' 혁명가이자 활동가들이었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노동현장 중심의 실천 활동을 폈다는데, 그 노동현장의 모습이 내내 궁금했다. 그 뛰어난 혁명가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했던 평범한 노동자들의 모습 말이다..

사회적으로 철이 들고부터 주류교육이 역사를 주로 '영웅'들을 중심으로 서술하는게 불편했는데, 경성트로이카도 거기서 못 벗어났다는 아쉬움이 느껴지는건 나의 오버인가? 책의 주인공이 불굴의 혁명가들일 수는 있어도 주인공들을 더 뛰어난 혁명가로 평가하게 했던 그들의 활동방식, 그들과 함께 노조와 파업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민중들의 투쟁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구체적으로 그려 놓았으면 소설로서나 노동자의 역사로서의 유의미성이 더 했을거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 어쩌다가.. <연대와실천>에 쓰게된 서평(?)입니다..
요 글로 한분이라도.. <경성트로이카>를 읽고 싶거나 선물하고픈 맘이 들었으면 좋겠네요.. 흑.. ㅡㅡ;;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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