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우리모두 사이트에서 오갔던 글>



[각시탈] 고등어와 소주한병

친구가 약속을 파토내어 물놀이 목적지가 바뀌었다.
포천방향으로 차를 달렸는데 너무나 길이 막혔다.휴가차량 때문인것 같다.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행했다. 집근처 똥개울서 새끼 피라미를 사냥했다.
길 지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몰겠다.좀 맛이 간넘 아닌가 하고 말이다. 똥물속에서 반두들고 돌아당기니 말이다.간혹 김치통을 열어 보시는 분들도 계신데 좀 쪽팔리긴 하다. 동막골은 혼자라도 낼 가볼 생각이다.집에는 더워서 못있겠다.

조금은 엄살이고. 난 여름을 잘 견디는 편이다.추운건 정말 싫은데 더운건 오히려 즐기는 측면이 있다.집에 성능좋은 에어컨이 있긴하다.누가 와야 한번 틀까말까 하기 땜에 있어봐야 무용지물이다.절전 차원서 틀지 않는게 아니라 그냥 참을만 하기에 틀지 않는것같다. 누구 주던지 팔던지 해야 할텐데..(솔직히 중고값으로 파느니 주변사람한테 공짜로 주는게 더 맘이 편하다.중고 장사꾼들은 순 날도둑 같아 말이다.)

지금 나오는 노랜 그룹 키스의 아이 워즈 러브..길어서 기억 못하겠다.
하여간 이런 제목의 노랜데. 이 노랜 다소 유치하고 촌스럽고 그렇지만 한편으론 멎지기도 하다.난 어려서 부터 그룹 키스를 좋아 했지만 실상 소유하고 있는 음반은 몇해전에 구입한 카셋테잎 하나가 전부이다.키스에 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다. 테잎도 한번 듣고 다시 찾은 기억이 없다.이 노랠 한번 쭉 듣고는 땡였다. 그래도 난 이상케도 키스를 응원한다.이미 사라진 그룹이지만 하여간.

중학교때 일본 잡지 뮤직 라이프 74 년도 판이던가 헌책방서 샀는데 그 책속에 키스의 사진들이 특집으로 실려 있었다.멎지다고 생각했다.지금 보아도 이들의 화장과 스테이지 메너 (동영상은 본적은 없지만) 는 괜찮은 것이라 생각한다. 리더 짐시몬스의 길다란 혓바닥도 매력있고 말이다. 이들의 면모가 매우 미국적인 프로 레슬링.(타이틀은 몰겠는데 요즘의 젊은 한국 학생들도 매니아가 형성되어 있는것 같다.) 과 유사한 부분이 있는지도 몰겠다.
난 전부 쇼인데 왜 그리 열광하는지 알다가도 몰겠는데 키스도 그렇고 화려한 의상과 액션으로 무장한 미 프로 레슬링 역시,맘편히 속는것도 괜찮다란 정신의 산물 아닌가 싶다. 물론 난 프로 레슬링 보다 키스의 공연이 백배 낫다고는 생각한다.

삶의 질이란 무얼까.
난 젊거나 늙은 정치인들이 웅변하듯 외치거나 가래가 끓어 지글거리는 목소리로 삶의 개선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길 내뱉는걸 보면 구역질과 함께 이민을 가고 싶다.정말 정떨어져 이땅에서 살고 싶지가 않다.음..약간 흥분한것 같다.
몇해전에 친구집서 허구한날 술을 마신적 있다.밤낮 가리지 않고 말이다. 당시 친구의 마누라는 내게 눈알을 째리며 문화생활좀 하면서 살라고 했다. 듣고 있던 친구는 문화생활이란 단어 자체가 무식한 이야기라고 반문했드랬다. 그건 맞는 말이다.문화생활이란 용어(?) 자체가 다소 역하다.
테레비서 문화코너 어쩌구 하면서 각종 미술 전시회 영화 연극등등의 시간표를 일러주지만 이런게 무슨 문화냐.대문을 열고 나가봐라.내 경우 직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약 이십분 정도 걸린다.
집에서 직장까지 도보로 걷는 그 사이. 어떠한 문화가 있느냐 말이다.
아무것도 없고 신경질만 난다.
문화란 어느 특정장소에 찾아가서 무얼 건네받고 그런게 아니다.그냥 주변.자신이 서있는 그 어느곳의 주변.거기서 주고 받는게 문화이다. 어린 학생이야 이해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무슨 강연이나 박물관에 가서 열심히 수첩에 필기 하는 모습을 보면 참 개똥같은 훈련도 잘되어 있단 생각을 한다. 그거 종이에 적어서 뭐하나? 책보면 다 나오는데.

급성장한 우리나라는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비웃는 경향이 있다.
경향 정도가 아니라 주제파악 못하고 마구 못살게 군다.
인도.필리핀.방글라데시 어디 어디...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모두가 이야기 한다. 미국의 유명 식료품회사 켈러그 가 어느 경쟁 회사에 의해 매출이 급감했단 뉴스를 몇해전에 접한바 있다.켈러그는 운전하면서 먹을수 있는 시리얼을 개발하지 못했기에 그렇단다.부자나라 미국도 그렇다.
앙드레 김은 휴일과 일요일이 젤로 지겹다고 한다.그날은 일을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난 앙드레 김의 의상이 더 지겹다.
하여간 이런 사람들도 세상엔 존재한다.
가보지 않아서 몰겠는데 난 한국보다 인도 필리핀 방글라 데시가 더 살기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물론 나같은 넘 말이다.난 생긴것도 좀 동남아인 같다. 우리나라가 나으니까 돈벌러 오는 것이지만 난 솔직히 필리핀 여자.인도여자.방글라데시 여자 만나서 그여자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한국인들의 선입견 처럼 게으르게 살려고 말이다.
그러니 게으르다고 욕하지 말아라.부지런해지면 큰일 이니까.

실제로 현대인들은 바쁜걸 전혀 불편하게 생각지 않는 눈치다.
참 이상하지만 요즘 자주 나오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쫒기는 시간으로 이해 하는것 같다
내일 더 이어서 써야 겠다.오늘은 좀...-_-;;


===========================================================
[serenus] kiss


노래제목은

I Was Made For Lovin' You 입니다.

그리고 전 앙드레김을 좋아합니다. 그 의상도,
고등학교 때엔가 경복궁으로 사생대회를 갔더랬습니다.
비가 와서는 일찍 끝나서 그 앞을 돌아다니는데 그 때는
앙드레김 의상실이 광화문에서 삼청동 올라가는 경복궁
앞 프랑스 문화원옆에 있더랬습니다.

친구들과 가랑비를 맞으며 그 옷들을 구경하였는데 앙드레김이
내다 보더니 여직원을 시켜 들어오라고 하더니 뜨거운 핫쵸코렛을
타주라고 하더니 그 이는 일하려 들어가더군요.

몇년전엔가 강남의 어디 백화점 주차장에서 보았는데 기사가 짐을 다
싣도록 옆에서 거들어 주는데 참으로 다정한 사람 같았습니다.

맨날 그 옷이 그옷 같아도 제 눈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각시탈님과 전 여름을 즐거워 하는것이 같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추운 겨울이 무지 싫습니다.
이렇게 더워야 일할 맛도 나고 움직이기도 좋습니다.

Posted by taichiren
,
20000829 우리모두 동호회 영화방(영화동아리 끼노 인 그랑까페)


와호장룡

- 감독 : 이안
- 주연 : 주윤발, 양자경, 장지이, 장진

나는 무협장르를 잘 모른다. 영화든 소설이든, 내게 무협은 어느날 갑자기 물밀 듯 밀려온 홍콩산 싸구려 다작들 중 하나였거나, 허풍 심한 마초들의 자기과시 욕구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된 무협영화들은 손에서 장풍을 뿜어내고, 목숨을 걸만큼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칼이나 낡은 책을 뺏기 위해 어처구니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별로 대단치도 않아 보이는 무림의 고수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상대에게 자기 무술을 뽐내며 자신들의 골빈 마초근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협들은 또 어떤가. 그닥 흔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등장하는 여협들은 언제나 남자고수들보다 한 수 아래인 주제에 그들에게 도전하며 내 무예를 한번 봐줘, 하고 애처로운 사랑을 구걸하거나 굳이굳이 남자 고수를 이긴 대단한 협객으로 인정받기를 구걸한다. 그들은 손에서 장풍을 뿜어내고 미세한 자객의 움직임을 파악해낼 재주는 갖고 있을지언정 주책맞게 복수의 대상한테 정신이 홀리거나 하여 파멸하는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었다. 대부분 일가의, 스승의, 자신이 속한 무예파의 복수를 한답시고 떠돌아다니며 주막에서 폼이나 잡는 남녀 협객들에게 내가 본 것은 그저 상대를 누르고 나의 잘남을 과시하려는 천박한 파괴욕과 허영 뿐이었다. 그나마도 현란한 폭발음과 칼끝에서, 혹은 바늘 끝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바람에 단역들을 쓰러뜨리는 장면들은 눈요기는 될지 몰라도 '아무튼 떼놈들의 허풍이란!' 하며 코웃음을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와호장룡>을 보러 간 것은 그것의 장르 때문이 아닌 이안감독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었다. 최근에 지각개봉한 <라이드 위드 데빌Ride With The Devil>(이 영화는 미국에서는 이미 작년에 개봉된 바 있다.)을 제외하고는 <쿵후선생>부터 그의 모든 영화를 다 봐온 나로서는, 이상한 영어제목으로 알려진(세상에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이라니!) 영화를 이안감독이 차기작으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2년 전부터 꽤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협장르의 영화에 전혀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감독이 이안이라면, 뭔가 다르리란 신뢰감 하나만 갖고 기대를 해 왔던 것이다.
백인 아해들은 이 영화를 보며 Wonderful!!을 연발하면서 내년 아카데미상의 강력한 후보작이라고 떠들고 감격해할지 몰라도, 워낙에 황당하고 현란한 과장으로 뒤범벅된 무협영화를 많이 접해 본 한국관객들에겐 이 영화가 좀 심심하다. 꼭 그것 뿐은 아니더라도, 씨네21에서 지적했듯 플롯이 의도적으로 느슨해진 이 영화는 좀 심심하다. 그런데, 그 심심한 이야기와 심심한 화면 뒤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와 자연, 그 속에 어우러진 (비주얼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인간사에 짙게 배인) 여백과 깊이는 이상하게 마음에 파고든다.

초절정 고수이지만, 이제 강호에 대한 미련을 버린 리무바이의 그 득도한 듯한 풍모와 칼놀림새, 그리고 공중을 '날아가는' 복면의 협객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가' 추적하는 여협 수련의 몸짓에 배인, 삶의 희노애락을 겪어본 나이든 자의 지혜로움은, '무예'를 통해 삶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수도자의 경건함이 배어 있다.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세상에 저 혼자 잘난 줄 아는 철없는 아해를 상대할 때 리무바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은 상대를 깔보고 비웃는 냉소가 아니다. 그에게는 굳이 상대를 죽임으로서 자신의 우월감을 입증하려는 자기과시욕적인 마초근성이 없다. 스승의 복수를 한다고는 하나, 그에게는 복수하려는 자의 파괴적이고도 맹목적인 증오심이 보이지 않는다. 여협 수련에게 있어서 무예는 사랑하는 이와 연결된 끈이고, 사랑하는 이에게 신의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녀는 철없이 날뛰는 아해를 오히려 지켜주고, 그 아해가 스스로 그 잘못을 돌이키고 수습할 기회를 준다.
수련과 용은 완전히 남남으로서 자매애를 나누지만, 이것은 씨네21에서 지적한 대로 이상적인 아버지(리무바이)와 어머니(수련), 그리고 막 사춘기를 맞은 혈기방장한 딸(용)로 구성된 유사가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딸은 아버지에게 계속적으로 도전하고 아버지를 이기기 원하며, 그럼으로써 아버지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보살펴주고, 자신이 기댈 수 있으나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얻는 과정에 놓인 방해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춘기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지만, 아버지의 사랑 앞에서 그것은 철없는 불장난에 속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딸을 보는 어머니로서의 수련은,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겪는 딸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느낄 뿐이다. 그녀는 용에게 특별한 적대감이나 증오를 품지 않는다. 오히려, 도전해 오는 딸을 지켜주려다가 철없는 딸에게 칼을 맞을 뿐이다. 용과 수련의 두 번의 결투씬은, 처음 복면을 한 용과 수련의 결투씬의 경우 최초로 어머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딸을 보며 문득 딸이 성숙한 여자로 컸음을 깨닫게 되면서도 계속 야단을 쳐야 하는 어머니의 당혹감과 딸의 자기과시로 해석할 수 있다면, 자매지연을 끊으며 벌이는 결투는 딸과 어머니의 본격적인 대립이라 할 수 있겠다. 어머니는 노련하고 여유로운 테크닉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인 딸의 매혹적인 자태나 힘, 날렵함은 따라잡지 못한다. 수련이 보다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을 띄는 반면, 용이 보다 신세대적인 여성의 모습을 띄는 것은 근래의 여성의 위치변화와 그리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제 어머니의 시대가 가고 한창 나이의 여성으로서 엄마를 능가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된 딸이 속으로 느끼는 당혹감은, 오히려 파란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표출된다.


이들에게 칼, 혹은 무예란 무엇일까. 이들을 연결해 주는 것, 이들을 비로소 2세대로 구성된 '가정'의 형태로 묶어주는 데에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청명검'이다. 더러운 피를 묻힌 적이 없다는 이 청명검은 아버지에게는 마침내는 버려야 할 세상의 번뇌 그 자체이자, 끊어버려야 할 속세의 연이다. 딸에게 그 보검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관심을 다시 속세로 끌어들이는 매개체가 된다. 어머니는 남편의 뜻을 이해하고, 남편이 세상에 던져진 하나의 존재로서 본질로 향하는 발걸음을 돕지만, 딸은 끊임없이 속세의 '관계'를 요구하고, 어머니와 대립한다. 용이 (장난으로 훔쳐본 거라 말하면서도) 그토록 청명검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청명검을 매개로, 그들은 '무예'를 겨룸으로써 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눈다. 또 한편으로 무예는, 자기 자신이 속세에서 영혼의 본질로 나아가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다. 아버지에게는 득도와 해탈을 향한, 스스로와의 싸움이자 정진의 과정인 이 무예의 본질을 딸에게 가르치려 하지만, 딸에게는 어떻게든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관계를 얽게 되는 매개체가 바로 이 무예이다. 따라서 '수제자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말은, 너와 부녀 간의 관계를 맺겠다는 선언이라기 보다는, 네가 네 자신의 길을 가도록 돕겠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독립에 대한 권유이다.
아버지는 죽음 직전에서야 자신의 번뇌의 본질을 깨닫는다. '성(聖)'과 '속(俗)에 대한 풀리지 않는 번뇌의 끈이랄까. 인간은 정신과 육체를 가진 존재이며, 그는 두 세계를 조화시키지 못했음을, 그렇기에 자신이 향했던 해탈의 경지는 결국 '반쪽' 밖에 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아버지는 성을 위해 속을 버렸고, 결국 자신은 평생을 허비했다고 고백한다. 딸에게 성은 존재하지 않는 경지이며, 끊임없이 속의 최고 경지를 열망하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속의 허망함을 깨닫고 추락한다. 둘 다, 선택한 길은 달랐으나 방향점은 같았다. 성을 통해 속을 초월하는 것, 그리고 그 성조차 버리는 것이 아버지의 길이었다면, 속의 최고경지에 올라섬으로서 성을 초월하는 것, 그리하여 속을 버리는 것이 딸의 길이다. 딸이 주막에서 덩치들과 무예를 겨루며 자신을 '신선'과 같은 존재로 소개하는 대목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결여된 득도 혹은 해탈은 본인은 물론 다른 이에게도 역시 상처와 회한을 남긴다. 그리고 성과 속의 변증법적 결합은 두 경우 다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용의 추락을, 생물학적 목숨의 죽음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살았다 죽었다라기 보다는 사실 제 3의 선택이라고 해야 가장 정확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용의 추락을 마침내 자유를 향한 득도의 경지로 해석하는 일부의 견해에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여기서 파란 여우의 존재를 한번 보자. 그녀는 아버지(리무바이)의 정신적 아버지를 살해했으며, 리무바이의 육체적(세속적) 어머니가 될 뻔한 사람이다. 그녀는 용을 선택해 자신의 딸로서 대하지만, 딸이 자신에게 반항함을 알았을 때 그 사랑은 100% 분노로 전환된다. 육체의 어머니 혹은 세속의 어머니는 정신적 어머니(수련)와 달리, 반항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상한 친모에서, 자식이 반항을 시작하면서 사악한 계모로 둔갑한다. (주: "옛이야기의 매력"의 저자 브루노 베텔하임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에 의하면, 옛이야기에서 사악한 계모의 존재는, No!를 말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노출시키기 시작하는 자식에게 엄격해지는, 그래서 자식에게는 '야속하게' 다가오는 어머니를 또다른 인격체 형상화시킨 대상이라 한다.) 그러나 독립된 개체로서 서지 못하는 딸은 육체적 어머니와의 연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파란 여우에게 종속되어 끌려다니다가 결국 죽음의 위기까지 겪는다. 결국 용에게 어머니의 이미지는 둘로 분열된 인격체이다. 한쪽은 사악한 의도를 감춘 채 겉으로만 자상하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고 마는, 딸에게 야속하고 결국 딸의 길을 막는 세속적 어머니 파란 여우와, 엄격함과 진정한 모성을 함께 감추고 있는, 그러나 여전히 그녀에게는 극복의 대상인(딸에게 있어 어머니는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다.) 정신적 어머니 수련.

이안 감독의 영화에서 아버지, 어머니, 자식의 직계 2대의 '온전한(?)' 가족이 등장한 적은 없다. <쿵후선생>부터 (<라이드 위드 데빌>은 안봤으니 제외하고) <와호장룡>까지, 자식들은 버려져 혼자 사는 조부에게 맡겨지거나(쿵후선생), 실질적으로 세대 간, 성적취향 간, 사는 공간 간 단절이 되어 있거나(결혼피로연), 오랫동안 어머니 없이 산 아버지는 이미 부권을 상실했거나(음식남녀), 부모의 빈 자리를 큰 언니가 메꿔야 하거나(센스, 센서빌리티), 부모는 부모이되 이미 부모가 아닌(아이스 스톰) 상황이다. 하긴, 현대에서 온전한 가정이 등장하는 영화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그나마 이전의 가족들은 혈연으로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었지만, <와호장룡>에서의 가족은 혈연관계가 무시된 유사가족이다. 그럼에도, 이안의 작품들에서 <와호장룡>의 유사가정은 그나마 가장 가정답다. 물론 그나마도 아버지의 회한의 죽음, 딸의 허무한 추락으로 귀결되긴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나무 가지 위에서의 결투씬일 것이다.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온화한 미소를 띄운 채 가볍게 균형을 잡고 여유만만하게 싸움에 응하는 리무바이의 모습이 너무나 눈부시다. 어린애가 기술부터 연마하면 삐뚤어지기 십상이라고 농을 치긴 하지만, 용의 날카롭고 강하고 힘찬 무술의 멋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 뿐 아니라, 또다른 리무바이 대 용의 결투씬은 물론, 사실은 수련 대 용, 용 대 호가 서로 쫓고 쫓기며 결투(용과 호의 체이스를 과연 '결투'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를 벌이는 모든 (무협)씬들이 아름답다. 결국 용이나 리무바이나, 우리가 범접할 수 있는 평범한 경지의 사람들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지고 가야 하는 수련과 호에게서, 수도의 길을 가되 극단의 길을 가지는 못한 자와, 속에 모든 것을 걸었으되 결국 상실만을 맛보아야 하는 우리네 평범한 인간들의 인생이 조금 보일까.

notice :
1. 여기서 딸, 아버지, 어머니 등의 가족관계적 호칭은 혈연관계와는 무관하다.
2. 육체적 어머니란 호칭 역시 혈연관계와 무관한, 세속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관계를 뜻한다.


Posted by taichiren
,
< 20040420 우리모두 / 토론 / 문화연구, 이대로 좋은가 >
 
유학생으로 처음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나는 그 지루한 열 몇 시간을 미국의 모습을 상상하며 보냈다. 그동안 책, 영화, 텔레비전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미국은 개인적 정서와 만나 이미 분명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나는 그 이미지와 '실제' 미국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자 마음 한 편에서 '실제 미국'에 대한 순진한 기대를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제 미국'을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뉴욕의 허름한 뒷골목에서 어떻게 갱스터 영화가 일러준 범죄의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으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보면서 어떻게 <러브 어페어>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마저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의미를 안겨주게 될 터였다. 채 도착하지도 않은 저 먼 땅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외모, 옷차림, 표정, 피부색 등에 악몽처럼 배어있는 이미지에 의해 판단 받게 될 것이다. 무서운 일이었다.

['가상의 도시'를 향해 가다]

현대사회에서 '낯선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들은 처음 떠나는 행선지에 대해서조차 분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실제' 방문은 이 인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을 '가상의 세계'로 파악한 보드리야르의 시각은 이해할만 하다.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통한 간접경험이 실제경험을 압도하는 시대에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운 장소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뉴욕만큼 이미지에 가위눌린 도시가 있을까.

뉴욕의 형편없는 날씨나 악취 풍기는 지하철마저 '뉴요커'라는 가상적 이미지에 의해 낭만화되곤 한다. '뉴요커'가 문자 그대로 뉴욕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입고, 거주하고, 소비하는 (정확히는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 상품과 연관된 문화적 이미지라는 점에서 '뉴요커'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개념일 뿐이다.

이처럼 현실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미지라는 매트릭스 세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미국으로 향하는 시간 내내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국의 '현실적인'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서로 다른 문화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비교적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나의 이런 기대를 뒷받침해 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위해 읽었던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인권운동가였던 킹 목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계단에 서서 수많은 인파들을 향해 감동적인 메시지를 쏟아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그 노예를 부리던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의 식탁에 마주앉게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불의와 억압의 열기로 이글거리는 저 황폐한 사막인 미시시피주가 언젠가는 자유와 정의의 단물이 흐르는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제가 낳은 네 명의 자식들이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닌 인품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

내가 킹 목사의 연설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깨닫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당시 이 연설문을 읽었던 고등학생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100년이 지났는데도 ‘왜 노예와 노예의 후손이 더불어 사는 것이 '꿈'에 머물러야했는지’ 의아해하기보다는 그 글에 포함된 '관계부사의 용법'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만 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한 나는 영문법 책보다 더 두꺼운 토플책을 들고 다니게 되었지만 (더 정확히는 그 토플책이 주인 대신 도서관 자리를 맡는 데 사용되었지만), 킹 목사의 '꿈'이 미국 현실과 얼마 정도의 거리에 놓여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다만 킹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마틴 루터 킹의 날'이 미국의 국경일로 정해져 있는 것을 보아 고인이 생전에 가졌던 꿈이 상당부분 진척되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을 뿐이다.

그런 나의 기대는 케네디 공항에 비행기가 닿으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8월의 태양 아래에서 활주로 보수공사를 하거나 화물 하역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들이었으며, 지친 얼굴로 택시 승강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들은 대부분 아랍계 이민자들이었다.

모든 직업이 고귀하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지켜온 신념이었지만 그들의 피로한 기색은 자신들의 직업이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택시가 시내로 들어서자,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의 시가지가 드러났다. 행인들 가운데 유모차를 끌고 도심지를 여유 있게 걷는 여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는 대부분 백인이었고, 그 수레를 미는 손은 거의 예외 없이 검었다. 이들의 현대적 옷차림과 뒤의 화려한 네온간판을 제외한다면, 흰 아기를 돌보는 검은 피부의 여인은 미국 역사상 어느 때든 변함없이 볼 수 있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여인들은 더 이상 노예의 신분이 아니며, 일과시간 가운데 짬을 내어 아기를 돌보는 시간제 유모(baby-sitter)가 미국에서 보편화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모차 안에 앉은 아이의 피부와 손잡이를 미는 사람의 피부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 킹 목사의 꿈은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인식 속에 살아남은 노예제도]

'피부색이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나라.' 다소 거칠게 말해 이것이 내가 미국에 대해서 느낀 첫인상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미국의 전혀 다른 모습도 접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 사회에 대한 판단 역시 상당부분 조정되었다. 그러나 피부색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애초의 판단은 여전히 그 설득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깨닫게 된 가장 고통스러운 사실은 미국사회가 인종차별적인만큼 내 머리 속도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이며, 내 속에 자리 잡은 인종차별 의식의 출처는 바로 한국사회였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흑인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혐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국을 잠시 방문하거나 심지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교민들조차 부당한 맥락에서 '흑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당혹스럽다. 그들이 '흑인들 많은 위험한 동네' 혹은 '흑인들 없는 부촌'이라는 말을 쓸 때 나는 이렇게 묻곤 한다.

"혹시 흑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하신 경험이라도 있나요?"

물론 이런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흑인들과 이야기조차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인들의 이런 인종적 고정관념이 한국사회와 외국 교민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이는 흔히 두 가지 상반된 결과로 나타난다.

하나는 스스로를 '유색인종'이라고 부르는 자기모멸적 열등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무시하고 지배계층과 스스로를 상상적으로 동일시하는데서 나타나는 정치적 보수성이다.

한국의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나 "한국 찾은 외국인들 '원더풀' 연발" 혹은 "한국인… 미국 명문대학 합격" 등의 발언이 열등의식에 근거한 것이라면, 다른 소수인종과 연대하기를 거부하고 백인중산층 위주의 정책을 펴는 공화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정치적 보수주의는 상상적 동일시의 결과다.

[과자 포장지 위의 '짐 크로우(Jim Crow)']

미국사회에서조차 오래 전에 용도폐기 된 '유색인종'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에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유색(colored)'이라는 말은 백인은 아무런 피부색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른 인종' 만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이 언어를 채택하는 것은 자신에게 백인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다른 인종을 '그들'이라는 이름으로 타자화하는 행위다. 투명인간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무색인종'이 될 수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와 좋아하던 과자의 포장에 그려진 흑인의 친근한 모습이 실제로는 가혹한 노예제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역시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검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큰 흰 입술로 웃고 있는 '토인'의 모습은 노예사회로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짐 크로우(Jim Crow)'라는 이름으로 백인들의 오락을 위한 웃음거리가 되었던 흑인의 희극적 이미지다.

이 '짐 크로우'는 킹 목사가 앞의 연설을 하던 시대까지 흑인들을 학대하던 인종차별법의 이름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는 이 차별법에 따라 학교, 식당, 상점, 세탁소 등 온갖 공공장소에서 '백인용'과 '흑인용'이 엄격히 구분되었다.

"백인만 출입가능"이라는 표지판은 예사였고, "개와 검둥이는 출입금지"라는 모욕적인 안내판까지 길가에 걸려있던 시절이었다. 백인과 흑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버스에서도 백인이 흑인에게 자리를 요구하면 즉시 내 주어야 하는 것이 당시의 법이었다. 심지어 죄없는 흑인들을 목매달거나 산 채로 불태우는 잔혹한 범죄행위를 보면서도 경찰들이 뒷짐 지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55년 12월 1일, 백화점에서 고된 일과를 마친 한 흑인여성이 버스에 올랐다. 마침 빈자리를 발견한 그녀는 녹초가 된 몸을 그 곳에 앉혔다. 몇 개의 정류장을 더 지나자 빈 자리가 모두 찼고, 그 가운데는 좌석을 찾지 못해 서있는 백인도 생겨났다. 그녀는 법에 따라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했으나, 피곤한 몸을 일으키지 못해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후 백인들의 항의에 따라 운전사가 다가와 일어날 것을 요구했으나 그녀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달려와 그녀를 차에서 억지로 끌어내렸고, 여자는 '좌석을 양보하지 않은 죄'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사 팍스(Risa Parks)로, 이 사건은 흑인들이 인종차별법에 대항하여 싸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증오에 맞선 평화의 행진]

흑인들은 그들을 차별하는 버스를 이용하지 말자는 보이콧운동을 시작했고, 이것은 인종차별행위에 비폭력 저항으로 맞서는 흑인인권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중심에 마틴 루터 킹이 서 있었다. 그는 이 일로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되기도 했으나, 결국 미연방법원까지 가서 버스 안에서의 차별행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이렇게 시작된 평화적 투쟁은 흑인들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 식당에 가서 묵묵히 수모를 겪으며 앉아있는 침묵의 시위로 이어졌고,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적지 않은 백인들도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함께 식당에 앉아 그들의 머리 위에 술과 소금을 쏟아 붓는 백인들의 조롱을 온 몸으로 견뎌냈다.

피부색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비인간적 인종차별에 맞서는 목소리는 전국적으로 퍼져갔고, 이것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디시(Washington D.C.) 행진으로 이어졌다. 당시 2십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찰견에 물리고 소방차에서 내뿜는 물에 쓰러져가면서 묵묵히 이 대열에 참여했다.

링컨 기념관 앞에 모여든 군중을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킹 목사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후 민권법이 통과되었고, 흑인들이 공적인 차별행위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킹 목사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으나, 흑인들을 향한 차별의 시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당시 흑인들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킹 목사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1968년 4월 4일, 킹 목사는 결국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의 총탄에 숨을 거두었다. 무장투쟁을 주장하던 반인종차별단체의 요구를 평화의 이름으로 설득하던 킹 목사였으나, 그마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증오의 탄환을 피할 수는 없었다.

[40년 후의 눈물]

지난 주, 차를 손보기 위해 카센터에 들렀다. 차가 수리되는 동안 대기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 글을 쓰고 있는데, 출입문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들어선다. 고개를 들어보니 키가 훤칠한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모건 프리먼을 닮은 그 할아버지는 당신도 노트북을 하나 사야겠는데 어떤 기종이 좋을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한다. 노트북에 대한 기술적 이야기는 곧 내가 당시 쓰고 있는 글에 대한 화제로 바뀌었다.

킹 목사를 추모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시 굳어지는 듯싶더니, 곧 한숨 섞인 고백이 흘러나왔다.

"킹 목사가 옳았어" 그는 당시 무장투쟁을 요구하던 '흑표범단(Black Panther)'의 일원이었으며, 비폭력저항을 내세운 킹 목사의 입장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온건주의'로 비판했다는 것이다.

잠시 후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할아버지에게 '말씀 잘 들었다'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때 그의 눈에 괸 눈물을 보았다.

영수증을 받아 들고 출입문을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눈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킹 목사를 추모하는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40년 전 그를 비판한 자신의 입장을 반성하는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킹 목사의 꿈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흘리는 눈물이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눈물 속에서 할아버지가 내민 연대의 손길을 보았다는 것이다.
Posted by taichir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