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16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서양의 민족국가는 주로 근대의 산물이며, 국가의 이념은 근대적 갈등의 산물인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였다. 흔히 말하는 [좌우의 이념갈등]이란 과도하게 단순화된 표현이며,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정치적 민주화와 전체화, 자본의 사유화와 사회화 사이의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합리적 조절과 교정 과정이다. 그래서 모든 시대 모든 나라의 균형과 절충은 각기 그 역사적 궤적이 다르다.

좌우의 이념갈등, 혹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 등의 도식적인 선전문은 일종의 전략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단순화되고 극단화된 모형은 선명한 메시지를 통해 대중동원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빛의 천사들과 악룡들은 아마겟돈의 전투를 벌인다. 권력투쟁은 현대세계에서도 종말론적 신화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집단자살교도의 광신적 종교가 아닌 한, 권력을 잡은 뒤에 집권층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하며, 사회적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필수적인 전진을 하기 위해 택해야할 합리적인 방안들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그 한 두 개의 대안을 놓고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 소위 정쟁이다. 대개는 조금 빨리, 혹은 조금 늦게 [2% 더와 덜]을 놓고 최후의 결사항전을 하는 준비하는 비장한 드라마가 모든시대 모든 나라의 정치현상이다.

선거철마다 제의적으로 순환되는 종말론적 투쟁은 전통적 신앙이 붕괴된 근대 무신론 사회의 집단 정신병이 영웅정치의 신화로 투사된 모습이다. 따라서 근대 언론의 권력비판은 신화적 대중동원에 대한 탈신화론적 감시와 비판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영웅신화적 최면과 세뇌에 의한 대중동원은 필연적으로 극우와 극좌의 전체주의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영웅의 신화를 현실화하려 하며, 영웅의 혈로에서 대중은 짓밟히는 개미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권력의 신화를 벗겨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웅 신화를 창출하고 보급한다. 이들은 예언자 전승이 아니라 왕정신학자의 전승을 물려받았다. 이들은 권력을 감시하고 민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창출하고 민중을 동원하는 기능을 본업으로 한다. 사회가 민주화, 자치화되어 가는 전환기에 의사소통을 매개하는 언론이 새로운 권력창출의 거점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언론의 제자리찾기]를 촉구하는 시민운동이 등장하게 된다.

언론을 비판/감시하는 시민운동조차도 권력창출의 새로운 거점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새로운 비판운동이 등장할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러한 갈등의 핵분열은 악순환이며, 아래로부터 통합되는 민주화가 아니라 오히려 분열되고 절단된 전체주의의 다양화다. 통합되지 않는 전체주의적 분파들은 사회를 해체시킨다. 가정에서 가족관계가 분열되고 절단되면 가정이 해체되는 것과 같다. 지성과 양심에 근거한 최소의 필수적인 공감대는 사회적으로 보존되고 건전하게 육성되어야 한다. 사회윤리란 기본적으로 각자의 인간미의 문제이다.

그러나 악순환에 대한 해법은 오히려 단순하다. 정치권의 권력투쟁에서 종말론적 선악투쟁의 신화를 벗기면 된다. 언론이 탈신화론적인 권력감시와 권력비판을 하면 된다. 언론을 비판하는 시민운동이 불필요하게 되면 된다. 민주주의 헌법정신에 따라 정치권은 사회적 갈등을 민주적으로 통합하면 되고, 언론은 권력의 오남용을 감시하고 탈신화화하면 된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와 언론이 각기 제자리를 찾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은 제각기 관심과 흥미의 공동체에서 사회를 위한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이 민주주의 대중문화운동이다.

빛의 천사와 악마의 자식들이 대단원의 격전을 벌이는 아마겟돈의 전투는 신화에 불과하다. 신화가 민중의 열정을 동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의식적 열망에 대해 원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해석되지 않은 점괘와 같은 것이다. 한편 정책결정은 전혀 다른 수준의 것이다. [조금 빨리, 혹은 조금 늦게, 2% 더 혹은 2% 덜]을 놓고 정책토론할 때 분개심과 적대감을 동원해서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비정상적인 것을 합리적으로 지적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초연해야 한다. 언론비판운동에서 필요한 것은 영웅신화의 집단적 열기로부터 면역된 초연한 평정심이다. 민주주의 대중문화를 창출하는 시민운동의 첫단추는 전염성 영웅신화로부터 초탈한 평정한 마음들의 연대다.

초연한 태도는 오히려 보편적인 인간미를 배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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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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