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27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도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학상이던 시절에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읊어대던 것이며, 때로 신입생용 노래모음 테이프에도 심심찮게 들어가던 바로 그것의 제목이다. 물론 그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그 때야 누구나 그런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마른 하늘에 벼락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중압감으로 가득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시절엔 그랬다.

첼로를 공부하던 여학생이 있었더랬다. 첼로라는 악기는 여학생이 이고지고 다니기엔 무리일 정도의 크기와 무게를 갖고 있다. 그 여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그 큰 악기를 교문에서 연습실까지 그야말로 이고지고 다녔다. 매번 볼 때마다 참 안쓰럽다고 생각이 들었고 몇번인가는 도움을 준 기억도 있다. 나중에야 안 이야기지만 그 여학생은 사실 자가용 차가 있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자가용을 타고 와서 학교 근방에 주차시킨 뒤에 그 큰 첼로를 메고 학교로 왔던 것이다. 입학해서 졸업하는 그 4년동안 내내. 이유는 '괜히 미안해서'였다. 그 시절엔 그랬다.

'그 시절'은 한편 이렇듯 '염치'라는 것이 살아있는 시절이면서도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버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타도 자리양보하는 넘, 뇬 하나없는 지금이란 시절을 살다보면 그 시절의 중압감이, 염치가 참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다못해 자는 척이라도 했으면 싶은 것이 요즘 내 심정이니까. 한때 열심히 데모질하던 선배중의 하나가 근 2년동안 휴학하고 학교바깥 세상에서 뭔 짓을 하다왔는지 초췌해져서는 중얼거리던 말 '기초질서나 잘 지키라고 해' 요즘은 새삼 그 말이 자주 떠오른다. 아무튼 그 이상하고도 그리운 구석이 많은 시절에 회자되던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비장함으로 범벅이 되어야 자세가 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오늘도 친구 사무실로 마실을 왔다. 친구는 작업이 밀려 있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두어 시간동안 시도를 했지만 계속 통화중이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전화기를 붙잡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여자들의 긴 통화시간으로 옮아 갔다. 다들 알만한 그렇고 그런 허물을 늘어 놓다가 대화 말미에 녀석이 이렇게 말했고, 난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란 제목만 기억나는 문구를 떠올렸다.

"여자들은 전화료 싸게 해줘야 한다니까"

저런 내가 되어야 한다. 비록 잘때 코를 심하게 골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면허조차 없고, 장가는 커녕 여자친구 하나 없으며, 통장의 잔고가 늘상 달랑거리는 넘이지만 항상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일까?'를 한탄하게 만드는 넘이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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