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0827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

엊그제 전철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FOCUS라는 신문을 읽었는데,
신은경씨가 촬영 도중 눈을 다쳐 마이너스까정 갔다가 거진 회복되었다는 기사에 눈이 갔다.
시력이 마이너스래. 야, 마이너스? 와, 참 나쁘구나, 흔히들 그리 이야기한다.

근데 거기다 대고
그거이 말이지, 수정체 뒤 각막 사이에 이미지가 형성되는 X축 좌표가 있다고 하고,
정상촛점 보다 왼쪽이면 그 X축 좌표의 비율(디옵터랜다)이 마이너스인 것이며
따라서 근시라면 몽창 마이너스인 거야. 시력측정표의 맨 꼭대기, 0 이하라는 뜻은 아닌 것이지...
라고 설명하면 대개 뜨악해한다. 그래 너 참 잘났구나.

그래서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걸 모른다고 그 이가 무식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위의 기사에서 기자가 잘 모르고 쓴 것인지 신은경씨가 실제 그리 말한 건지도 모른다. 중요하지도 않다.

***

어느 자리에서 바둑이 취미라고 하면 급수를 묻게끔 되어 있다.
2급이라고 하면 아마2급이냐, 프로2급이냐 되묻는 사람이 꼭 있다.

근데 거기다 대고
프로2급이라는 건 세상에 없다, 아마 단증은 한국기원만 인허하는 것이고
기원에서 아마추어 2급이면 대개 한국기원 2~3단에 해당한다.
프로는 입단대회를 통과한 전문기사를 통칭하며 초단부터 시작한다...
라고 설명하면 알아들은 시늉을 한다. 근데 그가 알아들은 걸까?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체계를 그가 몰랐다고 해서 그 이가 무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식이나 정보의 쪼가리 한 점을 내가 먼저 알았다는 정도이며
다른 면에서 그 이가 나보다 현재 해박할 가능성,
설령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리 될 가능성은 언제든 있는 거다.
내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이건 영원히 유효한 판단일 게다.

***

최근 들은 이야기.
사람을 처음 만나면 15초 이내에 좋든 나쁘든 그 이의 이미지가 형성되며
한번 창고에 저장된 그 호불호 인식은 그 이후 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긴 세월 지나며 형성했을 그 이의 가치관을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어찌 감지하여 판단에 이르고 고정상을 만든단 말인가.
근데 밥 먹듯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다.
일상은 내게 바삐 판단할 것을 채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이 되지 않으니까.

나는 인식의 나약함을 말하고 있다. 논리는 그 다음 문제이다.
시방 형성되어 있는 내 인식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
위에 읊은 마이너스, 프로2급 따위...따지고 들어가면 잘 모르면서 아는 체 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걸 인정하면 그 뒤 부터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서로 새로운 인식을 주고받으며 '모름'의 품질이 계속 달라지게 되는 거다.

그 문턱이 어렵다. 그래서 게시판에서 소통은 대개 일어나지 않는다.
대립되는 관점의 게시물은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대개는 자기 확신이며 보는 제3자를 위한 글이 되는 거다.

***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조서닐보,
대구에서 북한 기자들과 '인권단체'의 충돌이 있었댄다.
북한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전두환을 죽여야 광주시민이 산다" 시위가 있고
조중동 기자들이 각목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해보라...는 흥미로운 비유도 나왔다.

그걸 보며 나는 소통의 메카니즘을 생각한다.
대화는 의지를 갖고 있는 쌍방이 있어야 가능한 물건이다.
상대가 대화할 진정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 들지 않는 한, 대개는 소통 초입에서 갈라진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지 않는 것이다. 왜? 이 바쁜 세상에 왜 확실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쓰나?

문턱을 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나오는 결론인데
대개는 윽박지르기로 시작한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는데 문턱을 넘는 경우란 드물다.

그 시위의 효용이 있었을까? 나는 의문이다.
소통의 대상이 기자단일 수 없다. 이건 자명하다.
김정일정권이 일인일당 독재체제라는 건 모두 안다.
근데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이들은 나름의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거다.

1980년 나는 실상을 몰랐다, 소수 깨어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다들 그랬을 거다.
북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하여 그 인식이 깨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었을까?
이건 의문인 거다. 그 대다수는 북한에서 나오는 말을 믿지 않는 상태였을 거다.
나의 가치체계에서 내편(전두환)이 상대(북한 시위대) 보다는 믿음이 더 가기 때문이다.

문턱을 넘지 않고, 상대의 가치체계를 능멸해가며 무슨 소통을 한다는 건가?

그럼 해외의 시각을 염두에 둔 시위여야 말이 되는데,
김정일 체제의 실상을 모르는 동네가 어디 있겠냐. 그래서 뻘짓이라는 거다.

비록 뻘짓에 닭짓으로 판단하지만, 그 이들이 열정을 갖고 있다는 감은 온다.
사랑하기에 증오와 미움을 표출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그 사랑을 몸 담은 땅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 보다 더 쏟는다면 좋으련만. 가슴 아프다.

***

물 건너 "The Serenity Prayer (평온을 위한 기도?)"란 게 있다고 한다.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게 하는 용기를 주시고
그 두 가지 일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를 주소서...정도로 해석 되는갑다.

북한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의지를 발하고 진정을 전하여 소통 초입 문턱을 낮추는 일,
꼴통에게도 보석이 묻혀있으며 그가 언제든 '다메섹 가던 사울'이 되리라 여기며 손까락 운동을 하는 일
따위가 내게는 용기 되겠다. 당장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그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지혜는? 모르겠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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