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 1999년 6월호

홍세화의 파리통신 : 피자헛과 포스트모더니즘

파업과 시민정신

1999년 4월. 서울의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분루를 삼키며 농성장을 떠나는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뒷모습은 3년 5개월 전에 전면 파업을 일으켜 승리를 거두고 환하게 웃던 프랑스의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들의 밝은 모습과 서글픈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여기서 두 나라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번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에 관해 한 가지 사실을 짚으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즉, 이번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은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발을 볼모로 했던 게 아니라, 거꾸로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볼모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발을 볼모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이 주장에는 제법 그럴듯한 '시민의 발'이라는 표현과 또 '볼모'라는 자못 자극적인 말까지 들어 있어서 대중 선동의 효과를 십분 발휘하였다. 일반 시민들은 이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이 주장은 여론을 '파업 반대' 쪽으로 몰아가는 데에 큰 몫을 톡톡히 했다. 그러면 독자는 나와 함께 이 주장을 '해체'해 보기로 하자.

이 주장, 즉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파업으로 불편을 겪게된 시민들의 비난의 아우성 소리가 파업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대신에 시와 정부 당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볼모라는 말이 성립된다. 시민들은 당연히 단체협약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한 서울시를 비난해야 마땅했고 또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신에 정리해고라는 신자유주의의 정책을 기조로 하고있는 정부 쪽에 비판의 화살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실제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불평, 불만에 찬 시민들의 눈초리는 오직 파업 노동자들에게 되돌아가 꽂혔고 오직 그들에게만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게 무슨 볼모인가? 인질자에게 직접 으르렁대고 폭력까지 가하는 볼모(피인질자)를 본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시라. 그런 볼모는 이미 볼모가 아닌 것이다. 또한 인질자도 이미 인질자가 아닌 것이다. 제조업 분야처럼 노사 사이에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부문의 파업과 이번 파업을 비교해보면 실제로 볼모가 되었던 측은 시민들이 아니라 파업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중간에 시민이 없었더라면 파업 노동자들은 도리어 더 자유로웠을 테니까 말이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했던 예는 파리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때 그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 파업 노동자들과 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사회정의의 실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고 따라서 파업 노동자들과 연대하였다.

서울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이 부분 파업이었던 것과 달리 완전 파업이었고-지하철, 시내버스, 기차가 단 한 대도 움직이지 않았다- 또 3주씩이나 계속되어 불편함의 정도도 몹시 심했지만 프랑스의 텔레비전 화면에서 "불편하지요. 하지만 나는 파업 노동자들을 100% 지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소짓는 중년 여성을 볼 수 있었다. 파업 노동자들이 가두 시위를 벌일 때에는 연도의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즉,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 볼모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파업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노동자들의 복지 연금을 삭감하려했던 정부를 비난했다. 60%를 넘는 시민들이 파업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정부는 끝내 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문제되었던 사안이 복지 연금 삭감이었던 반면에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리해고 등의 사안이었음에도 3주간이나 전면 파업을 벌였던 프랑스의 노동자들과 달리 부분파업을 벌였을 뿐이다. 그랬는데 프랑스의 파업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성공했음에 반해 서울의 지하철 노동자들은 정부, 언론으로부터 매도당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로부터 등돌림을 당했고 결국 파업은 실패했다. 이와 같은 두 나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의 시민들은 서로 연대하는 시민정신이라는 성숙된 근대 이념을 갖고 있음에 반해 한국의 시민들은 아직 그렇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한국의 포스트주의

독자들은 내가 이 글의 제목인 '피자헛과 포스트모더니즘'과 어쩌면 아주 동떨어진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노동자 파업 얘기를 서두에 꺼낸 것을 보고 좀 어리둥절했을 수도 있겠다. 나는 파업 노동자들에게 연대할 줄 아는 '근대적 시민정신'을 하나의 예로 제시하면서 한국에서 지금도 끈질기게 불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유행 바람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긴 포스트주의자들에겐 위의 파업의 예가 별로 적확한 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근대적 시민정신'이나 '합리성의 확보'마저 '권력의 억압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해체'의 대상일 뿐이겠기 때문이다.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내용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한국 땅에서 오랫동안 불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은 나를 주눅들게도 했다. 그런데,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내 나름대로 헤아려보니 10년 전쯤에는 알뛰세 바람이 한 동안 한국 땅을 휩쓸었다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대체되었는데, 그러다가 4년 전쯤인가에는 아주 잠깐 동안 라깡 붐이 회오리바람처럼 일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열풍이 한국 문화계를 강타하더니 IMF의 된서리를 맞게 되었다.

라깡 붐 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척 멍청했다. 프랑스하곤 아무 관련 없이 한국 땅에서 라깡 붐이 일었을 때 어리석은 나는 그 속내를 모르고 혼자 끙끙댔다. 그 붐의 성쇄가 미국에서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진 '심리분석'과 운명을 같이 했다는 것을 이제는 좀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뒤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체할 것이 아직 아무 것도 없어서인지 꽤 장수(?)를 하고 있다.

그 동안에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과 마르크시즘' 등, '포스트'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들어간 글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고 책들도 꽤 많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영문학자까지 나서서 '포스트 모더니즘과 포스트 구조주의'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으니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지금 한국에서 지식 깨나 있다는 사람 중에 문화 깨나 말하고 담론 깨나 말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니 '탈주'니 '전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나는 어느 영문학자의 '포스트……과 포스트……'라는 책제목을 대하고 꽤 당혹했는데 지금 와선 나름대로 짐작되는 구석이 없지 않다. 즉, 국내에서 가장 선구적으로 '포스트'를 수입한 사람들이 바로 일부 영문학, 영미철학 전공자들이었고 그 뒤를 일부 예술비평가(건축, 비디오아트, 영화, 연극 등)들이 뒤따랐던 것 같다. 그러다가 90년대 동구권의 몰락, 한국 학생운동의 위기와 때를 같이해서 일부 '진보'이론가들까지 합세하여 대량으로 포스트를 수입하면서 대열풍이 불게 되었고 서점가에 포스트 관련 책들이 판을 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불어대니 이를 막기 위한 맞바람도 불어주어야 했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문학과 사회]에는 금년 봄호에도 포스트모더니즘에 관련된 글이 실려 있다. 심지어 [역사비평] 최근호(99년 봄호)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학의 종말인가?" 라는 실로 놀라운 제목의(역사학의 종말!) 논문도 실려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 한국 땅에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에 신자유주의뿐만 아니라 포스트주의도 한 몫 거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로서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실로 기이한 사실은 포스트 바람들의 진원지가 프랑스 땅이라는데 정작 프랑스에서는 그 바람을 도무지 감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뛰쎄와 라깡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 접어두고라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푸코와 들뢰즈와 데리다를 말하고 있는데 푸코와 들뢰즈와 데리다의 나라인 프랑스 땅에서 나는 '뽀스뜨 모데르니슴(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아무리 철학적 담론하곤 거리가 멀다 손쳐도 분위기까지 모르고 지나칠 정도는 아니다. 더욱이 프랑스라는 땅은 토론을 좋아하고 논쟁을 좋아하기로는 한국 땅에 비할 바가 아닌 곳이다. 한국에서 포스트 담론이 그 정도라면 진원지인 프랑스 땅에서는 포스트의 대지진이 일어났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내 귀에는 '뽀스뜨 모데른느(포스트 모던)'나 '뽀스뜨 모데르니슴' 이라는 말조차 아주 생소한 것이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프랑스에 포스트모더니즘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본토에서 공부하겠다고 청운의 꿈을 품고 프랑스에 날아왔던 어느 한국 유학생은 그 청운의 꿈을 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변변한 교과서도 없고 이를 다루는 강좌도 찾을 수 없었으며 전공하는 교수도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유학생은 결국 전공을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2년 전에 최종욱 교수가 월간 [사회평론 길]지를 통해 한국의 '포스트주의'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을 때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유학생도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를 일이다.

최종욱 교수는 포스트주의를 "포스트 모더니티,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히스토리, 그리고 포스트 마르크시즘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추종자들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특히 그 내용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으면서도 마치 전문가연 하며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새로운 상품으로서 프랑스제 '사상'을 유행시킨 일부 한국 지식인들을 지칭하기 위해 '포스트주의자'란 개념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내가 위에서 포스트주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종욱 교수의 말에 충분히 수긍을 했으면서도 나에게는 부족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해외에서 뭐가 하나 '떴다'하면 금방 한국에 직수입된다고 하지만, 그러나 프랑스 땅에 '뜨지도' 않은 것까지 국내에 수입하여 '띄운다'는 것은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푸코와 들뢰즈가 있었고 데리다가 있지만 '포스트'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 예컨대 데리다는 '포스트'라는 말조차 사용하기 싫어한다. 이에 얽힌 하나의 삽화를 보자. 90년대 초 파리의 어느 강의실에서 볼 수 있었던 광경이다.

데리다의 강의는 보통 200∼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강당에서 이루어지는데 외부 청강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외부 학생의 대다수는 비행기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미국의 나이든 '학생'들이어서 이를 의식하고 불편하게 여기는 데리다는 학기초마다 다음과 같은 말을 강의 서두에 꼭 붙이곤 했다. "내가 이번 학기에 강의할 내용은 나의 책에 이미 발표된 내용이므로 외부 청강생들은 굳이 내 강의를 들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매 학기마다 이 문제의 미국 '학생'들과 데리다 사이에서 되풀이되는 질문과 답변이 있다.

미국 '학생'의 질문- "당신의 이론이……, 포스트 어쩌구와 관련해서……?"
데리다의 답변- "나는 당신의 포스트 어쩌구와는 전혀 관계 없습니다."

데리다의 '해체(d construction)'라는 말은 포스트주의자들의 단골 용어이다. 한국의 일부 포스트주의자들도 해체를 무척 좋아하여 주체적 자아를 해체시키고, 맑스를 해체시키고, 노사관계를 해체시키고, 지배-피지배관계를 해체시키고, 역사를 해체시키고, 여성해방도 '섹스의 해방'으로 해체시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도사가 되었는데 정작 자크 데리다 본인은 파리의 강의실에서 "나는 포스트와 아무 상관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데리다는 '파업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지식인의 호소'에 서명하기도 했다. 포스트주의자들이 '해체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인 데리다는 엉뚱하게도 구좌파와 행동을 같이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데리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 글은 그가 97년 12월에 폴란드로부터 편지 형식으로 쓴 것 중에서 뽑은 것이다.

……(폴란드에서) 그리고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피해자들의 담론만이 성행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름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이 마구 떠들고 있으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전체주의의 자유주의적인 정반대 명제로서 시장, 돈, 마약, 그리고 그 무엇이든지로 마구 뒤섞고 있다. 그야말로 무엇이든지 이다. (La Contre-All e, Collection Voyager Avec……1999. 233쪽)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한국 땅에서만 부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포스트주의자들은 수긍하고 싶지 않겠지만 데리다는 오늘날의 세계 현실을 '열 가지 재앙'으로 표현하고 있고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말하고 있다.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포스트 인터내셔널'일까? 데리다가 꼽는 '열 가지 재앙'이란 실업, 피난처 없는 시민들의 대량적 배제, 무자비한 경제전쟁, 이 전쟁의 모순을 제어할 수 없는 무능력(보호주의와 국경 개방 사이의 모순), 대외 채무의 악화, 무기 매매, 핵무기의 확산, 종족간의 전쟁, 마피아와 마약조직 등 유령국가의 전횡, 법 앞에서 국가간 불평등(국제법이 몇 나라에 의해 크게 지배당함) 등이다(위의 책, 98쪽).

그의 현실세계 인식은 포스트주의자들이 케케묵은 구좌파라고 비판하며 해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세계 인식과 너무나 닮은 것이 아닌가. 라깡 붐 때까지만 해도 멍청했던 나는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한국의 포스트주의자들의 '해체'와 데리다의 '해체'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닐까? 또 이런 간극이 생긴 까닭은 한국에서 읽는 데리다가 프랑스제 데리다가 아니라 미국제 데리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아직 살아있는 데리다가 그렇다면 푸코와 들뢰즈는 더욱 미국제 푸코와 미국제 들뢰즈가 아니겠는가? 등…….


피자헛은 미국제인가, 이탈리아제인가?

이제 쉬운 화제로 돌려 피자헛 얘기를 하자. 파리 시내 오페라좌 옆으로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대로(le Boulevard des Italiens)가 뚫려 있다. '오페라'라면 역시 롯시니, 베르디, 풋치니 등의 이탈리아사람들이 유명하기 때문에 오페라 옆길의 이름을 그렇게 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길에도 피자헛 가게가 생겨 성업 중에 있다. 나도 두어 번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그 집에 들어가길 꺼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사람들이다. 미식가라면 이탈리아 사람들도 프랑스 사람들에 비해 별로 뒤떨어지지 않아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여 피자에 대한 자부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그들은 피자헛 피자를 단연코 먹지 않는다.

한 번 권해 볼라치면, "마마미아!(맙소사!) 그것은 피자가 아니야!"라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팔을 휘젓는 제스처까지 쓸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사람들'대로 이외에도 파리 시내에는 미국제 패스트푸드인 피자헛 가게가 여러 곳에 생겨났고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이민온 사람들이 경영하는 이탈리아제 피자 가게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의 미국제 피자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잘 알고 있는 프랑스 사람들은 피자헛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차마 '이탈리아 음식'을 먹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중국인에게 자장면을 권하면서 당신네 나라 음식이라고 말해보라. 그 중국인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장면이란 음식은 중국에 먼 인척관계를 두고 있는 한국제 음식이다. 이곳 파리에서 자장면을 맛보려면 중국식당이 아니라 우리 한국식당에 가야되고 돈까스, 오므라이스 같은 '경양식'을 먹으려면 일본 분식집에 가야 된다.

60, 70년대에 '황야의 무법자' 혹은 '돌아온 쟝고' 같은 이탈리아제 서부영화가 붐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에 사람들이 미국 영화로 깜박 속기도 했던 것은 그 이탈리아 영화들이 심지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같은 미국 배우까지 주인공으로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은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 록 허드슨 등이 등장하는 정통 할리우드 서부영화와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을 발견해낼 수 있다. 일례로 마카로니 웨스턴에서는 '총알받이' 역할로 북미인디언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주로 멕시코인들이 나온다. 배경도 주로 멕시코이거나 멕시코 접경이다. 이탈리아에서 인디언 엑스트라를 구하기가 몹시 어려운 반면에 멕시코인 엑스트라는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국민인 남부 이탈리아 사람들이 숯검정만 약간 바르고 수염 깎지 않고 판초모자만 쓰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국적불명'으로 분류되는 상품들에 대해서 국적을 붙여주기로 하자. 피자헛 피자는 이탈리아식의 미국 제품, 자장면은 중국식의 국산품, 경양식은 일제이며 마카로니 웨스턴은 이탈리아식 서부영화가 아니라 미국식 이탈리아제 영화이다. ( '미국식'이란 말도 좀 이상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메리카를 배경으로 꾸민 이탈리아식 이탈리아 영화이다.)

크리스티앙디오르, 입셍로랑, 루이뷔똥, 샤넬 등의 상표가 새겨진 프랑스 제품들은 전세계 부자들(특히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 부자들)이 즐겨 찾는 사치품이다. 프랑스 제품이 아니더라도 프랑스라는 나라가 주는 귀족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프랑스말로 이름지어진 화장품, 향수들도 즐비하다. 한국의 어느 화장품 제조회사는 'MADE IN FRANCE'라는 딱지 하나를 붙이기 위해 일부러 프랑스에 '제조공장'을 세우고 한국에서 가져온 원료로 '프랑스제'를 만들어 한국에 역수출하고 있다.

프랑스 상표가 일부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애용되고 프랑스식 이름이 일부 여성들의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듯이 프랑스 향기를 술술 풍기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것이 일부 '진보'지식인들의 지식 사치품(미국에서는 이를 'french radical chic' 이라고 한단다)으로 애용되고 있는 듯한데, 이 국적불명의 지식상품인 '포스트모더니즘'의 국적도 찾아주기로 하자.

나는 푸코, 들뢰즈, 데리다 같은 철학자들의 글이 어떤 연유로 미국의 수입상들에 의해 대서양을 건너가 딜러들의 손을 거쳐 미국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염색, 재단되어 '포스트 머시기'로 포장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속내 까진 알 수 없고 알지 못한다. 다만 이곳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미국의 60년대 반전 세대의 일부가 미국의 영문과를 비롯한 인문대로 흘러 들어와 은둔하면서(이들을 미국에서는 '캠퍼스 래디컬'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이것저것 들여와 '포스트'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80, 90년대에 미국의 문화저널리즘과 연계되면서 급속한 붐이 되어 전세계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유행 바람은 건축계에도 뻗쳐 예컨대, 파리 제8건축대학 교수이며 건축가인 칠레 출신 씨리아니도 미국의 포스트 제조바람의 희생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포스트모던 건축가가 되었다. 문제는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제작된 '포스트'가 전세계적인 배급망을 통해 배포됨으로써 다른 나라들에 미치는 지적 황폐함이다. 우리의 고유 음식인 김치의 예를 들어보자. 만일 미국의 어느 수입상이 김치를 수입해 가면서 미국인의 구미에 맞게 마늘과 고춧가루는 슬쩍 빼고 케첩과 머스터드를 듬뿍 집어넣은 김치를 만들어서 기막힌 상술과 엄청난 자본력으로 미국에서 히트를 치고 전세계적으로 대유행을 일으켰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이 김치의 이름을 "홍가네 김치( Hong's KIMCHI)"라고 하자.

이 미국제 '홍가네 김치'가 한국에 역수입되어 토종 김치들을 몰아내고 우리들의 입맛을 미국식으로 획일화한다고 상상해 보자. 황당하고 끔찍하지 않은가? 하기야 어떤 사람들은 (영어 공용어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영화 수입쿼터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세계화의 조류'에 편승하여 오히려 초등학교 급식부터 미국제 김치를 먹여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미국적인 식성으로 길들여야 한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르겠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프랑스에 역수입되었을 때의 일부 지각 있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반응은 '홍가네 김치'가 한국에 역수입되었을 상황을 상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과 다른 것은 프랑스의 높은 문화적 관세장벽 때문인지 프랑스에서는 '포스트' 유행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대학가의 서점에서 '포스트...'란 제목의 책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석진 곳에서 발견되는 몇 권의 책들은 미국에서 역수입된 것이거나 미국의 틈새 시장을 겨냥한 일부 발빠른 프랑스 저자들의 것이다.


부르디외의 충고

이제 부르디외의 말로 이 투박한 글의 결말을 맺기로 하자. 부르디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창궐을 경계하면서 이를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포스트'라는 말뿐만 아니라 '탈 현대성', '탈 근대성'등의 말이 제목에 들어있는 책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고한다. 요즈음에 와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신선도가 떨어졌는지 조금은 시들해진 것 같은데, 부르디외에 의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파생 상품인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라는 영국제 '잡종'이 「루틀리지(Routledge)」출판사의 기발한 판촉 전략에 힘입어 또 프랑스 향기를 날리며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푸코는 죽어서 말을 못하지만 부르디외는 살아서 자신의 글이 영·미의 '문화연구가'들에 의해 가공, 절단되어 말랑말랑하고 엉뚱한 주제에 관한 심심풀이 땅콩용으로 애용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몇 마디 소리를 질러보지만 앵글로색슨들은 물론 아랑곳하지 않는다.

겨울철, 수은주가 떨어지는 밤이 오면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은 대형 강의실의 책상을 치우고 매트리스와 따끈한 음료로 시내의 무숙자들을 맞이한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을 배출하는 파리고등사범학교는 실업자들의 점거·농성장이 되기도 하는데 이곳의 교수와 학생들이 실업자운동을 고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들뢰즈, 가타리, 플란챠스, 네그리가 강의했던 파리 8대학은 쌩드니의 공단지역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데 가난한 지역 주민들에게 대학 도서실을 개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파리의 대학들과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러 프랑스행을 꿈꾸는 한국의 예비 유학생에게 부르
디외는 다음과 같은 미국의 한 대학을 권해줄 것이다.

"부유한 은퇴 장년 층의 해수욕 휴양지를 끼고 있으며 공장의 굴뚝은 그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는 울창한 언덕 숲 속에 그림같이 포진한, 인터넷으로 연결된 각 단과대학의 군도로 이루어진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크루즈 분교는 포스트모더니즘 운동의 메카 중의 한 곳인데, 이런 곳에 처박혀서 자본주의는 '그들의 씨니피에로부터 탈구된 씨니피앙의 흐름'속에 융해되며, 세상은 '사이보그' 및 '사이버 조직'으로 구성되며, 결국 우리는 '정보의 지배'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노동과 착취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의사소통사회의 패러다이스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당연한 일 아니겠이는가?"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부르디외 「파스칼적 명상」(M ditations pascaliennes, seuil, Paris, 1998, 52쪽).

이런 미국의 대학들을 견학하기 위해 한국의 여행업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환상 여행'이라는 여행 상품을 개발하면 어떨까?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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