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두/동호회/지적성감대 / 20030224>

사랑이 생활이 되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다.
굳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것까지야 없지만 연애할 때의 감정에 비한다면
왠지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섭섭하다.
맛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달든지 짜든지 맵든지 강렬하고 자극적이었던 것이었으나
지금의 것은 심심하고 싱겁고 맛이 좀 덜한 것 같다.
이미 중독이 되어버린 까닭 일게다.
그리고 또 하나.
새벽안개처럼 사라진 대상에 대한 신비감.
신비감이라는 것은 여자에게만 표현되어지는 것은 아닐 터.
오죽 관찰력이 좋은 내가 아니냐
이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살피니
아~불행인가 다행인가
벌써 이 남자의 뒷모습만 보아도 그의 심적 상태 및 행로를 알 수 있게 되어 버렸다.
(그 사이 허풍이 늘은 사실을 본인도 모르지 않는 바, 이해하시고 읽어 주시길 바란다
-이 글의 진실성과 명확성은 48%이다)
어찌됐건 간에 결론은- 뻔하다-는 것이다.
그와의 생활은 내게는 초등1년짜리 산수 문제가 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는 이렇게 하겠지...딩동댕!
요런 말을 하면 요런 대답을 하겠지?...역시 딩동댕!
그는 곧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그렇게 한 다음 어떻게 하겠지?...으음 역시 아니나 달라?! 부처님 손바닥이 따로 없군.
이런 경지는 필시 나만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나에 버금가는 잔머리와 눈치의 대가이다.
솔직히 아이큐는 그가 나보다 20이 더 높지만 눈치와 잔머리는 내가 으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라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증명까지 한 단 말인가.
어쨌거나 고수 아닌 고수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됐는데....

그 이름하야 바로 눈치의 고수 밴댕이와 잔머리의 고수 골뱅이렷다.
밴댕이는 본인이 밴댕이 소갈딱지라 하여 자칭한 것이고
골뱅이는 쫀쫀하기가 골뱅이 같다하여 자칭한 것임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도사들은 원래 말이 필요 없다.
서로 텔레파시로 통하거나 지극히 간단한 표현들을 사용한다.
TV를 보다가 다른 채널을 원하면 턱을 그대로 옮겨 상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면 되고 맘에 드는 프로면 움직일 필요 없이 입술만 살짝 미소를 지으면 된다.
간단하다.
하지만 밴댕이가 보고싶어하는 프로가 아닐 때는?
더 간단하다.
끈다.
미소짓는 밴댕이....
골뱅이 일어나서 리모콘을 갖고 안방으로 사라진다.(리모콘 없이는 채널 전환이 안됨)
그 다음은 생각하지 말자.
식사 할 때
밴댕이가 맛이 없다고 무표정을 보인다.
내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거나 반응이 신통치 않다.
골뱅이 풀 죽은 한숨 소리 죽여 낸다.
그리고 다음 끼니... 굶긴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밴댕이는 혼자서 숨겨 놓은 막걸리로 배를 채운다.
질세라 소주병을 들고 나오는 골뱅이
이 또한 그 다음 얘기는 거론하지 않겠다.

솔직히 이런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그냥 서로가 말없이 생활하는 것을 상상해 보니
이렇게 황당한 허무개그를 지어내고 말았다.
아~ 나도 허무하다.
용서.Please.


하지만 그는 분명 고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절대 이 골뱅이 고수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 누워 있는 모습을 아직 보지 못 했고
멍청하게 시간을 그냥 보내는 걸 보지 못했다.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청소를 한다.
음악을 즐기거나 차를 즐긴다.
TV도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보질 않는다.
그런 와중에도 절대 눕지 않는다.
내가 그를 고수로 인정하는 것은 일단 이런 면들이 나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부분에서 진실성이 약간 결여된다.ㅋㅋ)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던가
그런데 너무나도 서로가 지피지기 하다보니 승패가 안 난다.
역전과 반전을 오고 가며 피터지는 혈전 속에 드디어 골뱅이가 밴댕이에게
무너지는 순간이 생겼으니...
그것은 술 때문이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의 술자리에 홀로 참석했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어라 마셔라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뿔싸 우리집이 공기 좋고 인심좋은 동두천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축지법을 배워 둘 것을....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리타분한 것을 배우지 않는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 좋은 시절을 누리지 못하고 축지법을 배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가
돈만 있으면 편하게 비행기도 탈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어쨌거나 쫀쫀하기로 소문난 골뱅이는 일주일 분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부들부들 떨며 택시 비로 날리고 그 다음 날부터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참패의 형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으니 고양이 앞의 쥐가 따로 없다.
"어머니가 당신 며느리가 고주망태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으헉
"앞으로 당신은 소주 반병이상은 안 돼!"
허걱
"패널티로 일주일 간 별거야"
꽥!
-흥 그래 ? 당신은 여기에서 실수를 한 거야. 내가 죽부인(밴댕이는 이전까지 골뱅이의 죽부인 노릇을 했었음)없으면 잠 못 든다는 것을 이용하는 모양인데 쥐도 길을 트면서 몰아야 한다는 전법을 모르고 계시는군.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필살기다.-
일단 밴댕이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근사한 아침상을 준비한다.
약간 밝고 경쾌한 음악을 틀고 옷도 화사하게 입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침착하고 다정한 어조로 그에게 대한다.
흐흐흐 밴댕이는 분위기에 약하다.
흐흐흐 밴댕이는 골뱅이한테 잘 홀린다.
절대 이 대목에서 귀여움을 떨면 안 된다.
목소리가 크거나 너무 쳐져도 안 된다.
오직 지성적이고 우아해야 한다.
밴댕이는 지성에 가장 약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소주 한 병까지 낙찰을 보았다.
패널티도 바로 해제되었다.
사실 패널티를 이용해 그를 반격할 수 있으나
그런 수를 쓰는 것은 배수진의 수법과 동일한 것이기에 되도록 피하여야 한다.
한 고비는 넘겼다.
다시 우리는 서로를 주시하며 살아갈 것이다.
가끔씩 허점도 보이며 서로에게 미끼를 던질 것이고 서로 도사가 되는 그 날까지
팽팽한 접전을 누릴 것이다.
(아래의 글은 IQ 80 이상만 읽으시오)
이런 접전은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라는 상처를 줄뿐이다.
이런 상처로 깁스하고 이런 상처의 흉터가 건달들 등판에 문신하듯 새겨지길 바란다.
쌍방 사랑의 대 결전 후유증이 너무 심해 불치의 병이 되고 말았소 라는 진단을
받았으면 좋겠다.

세상을 살다 보니 반 도사가 되신 분들 내지는 도사 지망생 여러분들
그러나 절대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관심이라는 도끼는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 자신의 일부에 치명타를 줄 것이므로

고수가 되고 싶은가
관심이라는 주문을 늘 꾸준히 외워라.
천리안을 갖게 한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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