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 0308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


열린당 정 의장이 빠른 시간 내 당사를 비우겠다고 선언했다. 창당 과정에 '검은 돈'이 유입 되었고 당사 임대 보증금으로 낸 4억원 중에 포함 되었다는 의혹이 제기 된 직후였다.

한 걸음 더 나아 가 '폐 공장 부지로 가든, 천막을 치든 당장 나가야 한다'는 결연한 각오를 밝히기 까지 하였다. 정 의장과 열린우리당이 화들짝 놀라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상대적'이란 수식어는 구차하다. 진솔한 사과와 빠른 실천만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란 걸 알기 때문이리라.

똥 싼 놈이 방구 낀 놈 나무래는 것이 어디 어제 오늘 일이랴? 이 소식을 접한 차떼기당 의원 님들께서 게 거품을 무신다. 정치 쇼래나 뭐 래나? 얼척이 없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열린당'을 욕 해도 딱 두 넘은 해선 안 된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다. 부정부패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당. 그런 당을 이 땅의 진정한 보수라며 쌩 깐 조선일보. 아가리 닫고 자숙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터이다.

이 둘은 수십년간을 음침한 뒷골목에서 주무르고 빨아 준 불륜의 무리들이다. 오랄도 모자라 똥꾸녕 까지 벌려 줘 가며 환락의 마약쇼를 벌인 자들이다. 흘러 나오는 신음 소리가 하도 기이하고 괴이하여 눈살을 지푸리고 가래 침을 뱉어도 꺼뜩 없던 그들이었다. 한 쪽의 썩은 악취가 만 천하에 드러나자 헤어진 척, 결별한 척 한다. 허나 다 안다. 살쾡이 마냥 사람들의 눈을 피해 '쇠벌밝기다래 밤드리 노닌다'는 걸.

그런 자들이 무슨 낯짝으로 손 한 번 잡은 불륜을 욕 한단 말인가? 아서라 말어라 지나가는 똥개세끼가 웃을 일이다.

'보수'가 대한민국에 와 쌩고생이다. 온갖 사이비들이 '보수'라 지랄들하니 참 더럽게도 되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만큼은 '도덕'이 보수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청렴은 그들의 존재 가치였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이후로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켜 왔던 것이다.

도덕과 청렴을 쌈 싸 먹어 이미 그 존재 가치를 상실했던 자들. 이들이 날만 새면 '보수'를 참칭하고 있다. 뽕 맞은 돌대가리 조선헤벨레~들 역시 여기에 동조한다. 지구상 유일한 나라.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를 따라 마산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창녕'이란 곳이 나온다. 부곡의 온천과 화왕산 십리 갈대 군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근자에는 우포의 늪으로 더 잘 알려졌다.

산세가 수려해서인지 인물들도 많다.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씨가 이 지역 출신이요. 한나라당의 대표 저격수 홍준표 의원도 창녕산이다. 전두환의 충실한 꼬봉이자 공수부대를 이끌고 한강 다리를 건넌 박희도 전 육참총장. 만수대를 찾아 객기를 부린 강정구 교수 등도 있으니 가히 좌우를 넘나드는 인물군이다.

산 좋고 물 맑은 그곳은 단일 성과 본을 가진 창녕 성 씨 문중이 대대로 터를 잡은 지역이기도 하다. 많을 땐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성 씨였다 하니 그 지역에서의 성 씨 문중 영향력을 얼추 가름해 볼 수 있을 터이다. 말석의 군 의원에라도 출마하려면 창녕 성 씨를 끼지 앉고서는 어림도 없는 일. 선출직 공직 후보자들의 첫 행보는 당근 창녕 성 씨 문중을 찾는 일이었다. 창녕 성 씨 문중이 미는 후보. 물론 당선은 따논 것이나 진배 없었다.

정작 성 씨 문중에선 이렇다 할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성삼문의 절개를 종중의 큰 자랑으로 여겼던 이들. 해방 후 사이비 정치판과는 어울리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성 씨 문중에 삼대구년만에 인물이 났다. 바로 성낙현 씨란 분이시다. 성낙현 씨는 박정희 쿠데타가 성공한 후 벌어진 총선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후보로 나섰다. 공화당과 정부에 의해 막걸리와 돈 봉투가 판을 쳤지만 성낙현 씨는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이 되었다. 박정희의 공화당이 농촌 지역을 싹쓸이 하든 그런 시기에. 중심에 창녕 성 씨 문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창녕 성 씨 문중의 자랑이요.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성낙현 씨.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슬슬 꼬이기 시작한다. 1969년이 되자 박정희는 약속을 깨고 삼선개헌을 추진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족수를 확보해야만 하는 데 공화당 의석수만으로는 모자랐다. 뒤가 구린 야당인사들이 포섭 대상이 된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 그기에 성낙현 씨가 딱 걸려 들었다. 개인 비리 혐의를 잡아 협박하고 자리 보장을 미끼로 던진 것이다. 결국 성낙현 씨는 문중과 창녕 군민들을 배신(?)하고 공화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기 반 년도 못 채운 체. 이후 공화당 소속으로 치른 선거에서 성낙현 씨는 당선된다. 허나 박빙의 승부였다. 성 씨 문중에서 성낙현씨를 비토하였기 때문이다. 성낙현 공화당 의원 님. 적어도 겉으로는 새로운 둥지에서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건 그로부터 몇 년 후. 그러니 박정희 정권이 내리막을 걷던 70년 후반 쯤이었다. 이른 바 '여고생 성 추문'사건이 터진 것이다. 성낙현 공화당 의원이 가난한 여고생을 꼬셔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원조교제의 원조였던 셈이다. 정치 생명이 끝장 나고 쇠고랑을 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낙현 씨는 건재했다. 그렇다. 그는 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거디었다. 하기사 배꼽아래 야그는 거론하지 않는다는 철칙. 쪽발이식 사나이 의리를 각하께서 직접 거론하던 시절이 아니었나? 이른 바 '성낙현 스캔들(?)'은 그렇게 유야무야되는 듯 보였다.

이듬 해 총선이 있었다. 여고생 성 추문의 주인공 성낙현 씨는 손 쉽게 공화당 공천을 받았다. 성추행이 무슨 대수랴? 우리의 자랑스런 각하께서 친히 공천을 주신 것이다. 한 동안 자숙한 척 했던 성낙현 씨. 재기하는 듯 보였다. 얼라? 사단은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성 씨 문중에서 집단적으로 성낙현 씨를 거부한 것이다. 출마하지 말라며 압박하였다. 성추행으로 문중의 이름을 더럽힌 자는 고향을 찾지 말라는 노골적인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성낙현 씨는 창녕 출마를 강행했다. 결과가 어땠을까? 당시 창녕 성 씨 문중에선 무소속으로 나온 신영주 후보를 밀었다. 독재정권의 횡포가 발악을 하던 시절. 여당에 의해 막걸리, 돈봉투가 노골적으로 뿌려지던 그런 시절에 여당 후보이자 가문의 후손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선 라이벌이었던 신 씨 가문의 후손을 민 것이었다. 성 씨 문중의 조직적인 지원으로 무소속 신영주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신 후보를 밀었다기 보다는 성낙현 씨를 낙선시켰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쪽 팔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내 세끼 내 자식이 귀여워도 도리에 어긋나면 회초리를 든다는 문중의 자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접 나서 문중의 후레자식을 심판했다는 얘기는 창녕 향토사에 자랑스럽게 전해 내려온다. 그러니 그 시절만 하더라도 우리의 보수는 나름의 원칙과 자존심을 지켰왔던 것이다. 내 자식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 데는 아름다운 '보수'의 전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지역에 휘둘리지 않고 혈연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참보수들의 명맥이 남았던 것이다.

두 번의 대선에 패하고서 한나라당에선 심심하면 당사를 매각하겠다고 공언 해 왔다. 올 초 연두기자회견에선 당 대표가 직접 거론하기도 하였다. 말 뿐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덩치가 너무 크고 제값 주겠다는 작자가 안 나타나 지연된다고 한다. 무슨무슨 위원회를 구성 해 팔겠다고 한다. '열린당'에서 단 돈(?) 2억 받은 것에 놀라자빠져 저 지랄을 하는데, 수백억씩 차떼기로 받아 쳐 먹은 당. 수백억 짜리 사옥을 갖고 있는 당에선 깜깜 무소식인 것이다. 이런저런 구차한 핑계를 대며 안 팔 궁리나 하고 자빠진 것이다. 제 값 타령이나 하고 자빠진 것이다.

성추행 같은 경미(?)한 건으로 문중의 후손을 낙선시켰던 창녕 성 씨 문중. 그런 진짜 보수주의자들이 살아 남았다면, 그런 자들이 한나라당 지지자였다면 작금의 사태를 보고 어떤 액션을 취할까? 수백억씩 해 쳐 먹은 꼬라지를 보고선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 앞장 서 한나라당 의원들 낙선운동에 돌입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신 번쩍 들게 하였을 것이다. 쭉정이들을 골라 냈을 것이다. 사이비들을 단죄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보수를 지켜내었을 것이다.

작금의 보수연하는 사이비들의 꼬라지를 보라. 오히려 차떼기당을 옹호하고 자빠졌다. 열린당 니들은 깨끗하냐며 적반하장식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 당 공천 못 받아 환장한 작자들도 있다. 참 보수가 망해버린 대한민국에 사꾸라가 창궐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 창녕 성 씨 문중의 원칙과 자존심이 새삼 와 닿는 시절이라 하겠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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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에 대한 세대별 주절주절 1 - 1세대 무협(미디어몹 - 판터)


구, 신무협 까대기라는, 제 기준으로는 좀 엉뚱한 내용의 글이 있어서 여기 저기 주워들은 하수가 나름대로 주절거립니다.



한국 창작 무협 세대를 편의상 나눈다면, 1세대부터 3세대 정도로 대강 구분할 수 있다.
1세대는 80년대 등장한 대본소용 박스형 무협소설들의 작가들이다. 70년대 등장한 번역 무협소설과 번역 가장 창작 무협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들은, 만화방에 공급되는 질 단위로 박스에 담긴 세로줄로 인쇄된 무협소설이 주 활동 영역이었다.

이들의 소설은 주인공의 탄생부터 시작하는 일대기적 구성과 주인공의 성장 등 고전 소설을 연상케 하는 구성이 대부분이었는데, 주인공이 차츰 힘을 쌓아가다 패업을 달성하는 게 주된 결말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전적 이야기 구조가 소설들에 지나치게 반복되면서 독자들의 식상을 불러왔고, 그 식상에 대응하고자 나오는 소설들이 뒤로 갈수록 묘사되는 주인공들의 힘이 드래곤볼 주인공들마냥 뻥튀기 되기에 이른다. 또한 다른 이의 작품 표절 일본제 사무라이물 표절 자기 작품의 표절 등 끝간 데 없는 표절이 작가들의 명예를 더럽히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서 무협을 읽던 독자들은 점점 빠져나갔고, 그러면서 독자들을 잡겠다는 안간힘은 소설 속 성행위 묘사가 갈수록 진해지는 걸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무의미한 성행위 묘사의 증가는 독자들의 이탈을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만화방이란 곳을 위한 지속적인 작품 공급을 위해, 이름만 빌려주고 그림자 작가들이 적당히 짜깁기한 글을 쓴 이른바 대명무협이 범람하면서 전체적인 작품의 질은 급속도로 저하되었다. 이런 상황들 속에 90년대 초반에 이르면 1세대 무협은 와룡강 상표 사마달 상표인 자기복제성 성행위 묘사 가득 글들을 제외하곤 멸종에 가까운 상황에 이른다.

1세대 무협의 경우 일대기적 구성 외에도, 강시나 음산한 지하동굴의 괴물 등 괴기스런 묘사가 있는 작품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다. 또 작품 시작부에 작품의 설정을 느낌표로 마무리하는 거창한 문장으로 나열하는 점도 특징이다.

1세대 작가의 대표라면 금강 야설록 와룡강 사마달 등이 있다.
금강은 고전적인 일대기적 구성에 주력한 작가이고, 표절이 횡행하던 시기에도 거기 흔들리지 않고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야설록은 1세대의 고전적인 구성 속에서도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서정성을 통해 독특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야설록은 무협소설계의 대표적 폐혜인 대명무협에선 전혀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다.
와룡강은 초기 魔자가 어울리는 괴이한 분위기의 무헙을 쓰다 성행위가 가득한 도색무협으로 이름을 떨치면서 당시 청소년들이 리어카 카바이트 등불 아래의 책들 대신 무협을 선택하는 현상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름 빌려주기 자기소설 짜깁기 등 온갖 신공으로 저질 무협의 대명사로 지금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뭐 고독 3부작이라 불린 작품에선 주인공 이검한이 모녀 희롱은 기본에 천년만에 살아난 여자 소녀 과부 반인반수 의모 의이모 등 그야말로 나이와 종족을 넘어선 하렘을 차리는 위용을 보이기도 했으니. (여담이지만 이후 이 작품이 재간될 때에는 그 묘사와 하렘의 범위가 대폭 수정되어 일부 계층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사마달은 월락검극천미명 등 고전적인 1새대의 소재에 충실한 작품을 쓴 대표적 인기작가이나, 이름 빌려줘서 그림자 작가 쓰기, 빨간책 대용으로 무협 쓰기 등 1세대의 폐해에서도 앞서나가는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당시 출판사 두 곳과 이중계약을 하면서 그의 이름을 빌린 싸구려 무협이 범람했고, 이는 1세대 무협 몰락의 직접적 요인이기도 하다. 이 몰락기에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무음계]라고 하는 성적으로 여자를 홀려버리는 미소년이 등장하는 일부 계층이 걸작이라 꼽는 소설도 있다.



쯥. 간단히 적으려 했는데 길어져서, 2세대는 다음으로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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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소설에 대한 세대별 주절주절 2 - 2세대 무협(미디어몹 - 판터)


2세대 무협이라는 부흥의 배경에는, 김용의 영웅문이 국내에서 만들어낸 기록적인 히트가 있다. 영웅문이 엄청나게 팔리면서 무협소설이 서점에서 팔린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로 인해 만화방용으로 나왔던 무협소설들이 서점용으로 다시 형태를 바꾸어 나오기 시작했다. 또 이 시기에는 PC통신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하이텔 내 무림동이 무협소설 선호인들의 집합체로 떠오른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하이텔 무림동에, 과거 야설록의 그림자 작가로 시작해 1세대 말미에 활약하다 집필을 접었던 용대운이 태극문이란 작품을 연재하면서, 2세대의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태극문은 용대운 특유의 속도감있는 문체에, 1세대의 고전적인 전개도 일단은 바른생활 인간인 주인공도(1세대 주인공은 아무리 사람을 죽여도 여자들하고 놀아나도 일단은 공명정대! 가 모토이다.)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었고, 이것들은 당시 무림동에서 열광적인 호응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호응으로 인해 서점용으로 출간된 태극문은 히트를 쳤고, 이 태극문과 그 뒤를 이은 새로운 세대의 무협에 당시 무협소설 애호가들은 신무협이란 이름을 붙여주기에 이른다.

용대운이 2세대 무협의 여명을 열었지만 용대운의 뒤를 잇는 이가 없던 때, 회사 때려치우고 대학원 입학금 벌려고 아르바이트 삼아 무협소설판에 들어온 남자가 좌백이란 필명으로 작품을 출간하면서, 2세대 무협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2세대 무협을 주도한 곳은 무협소설 전문 출판사이던 뫼 출판사의 집필용 사무실이었다. 뫼는 야설록이 자신의 작품을 서점용으로 재간하기 위해 만든 회사로, 더불어 소설가들이 집필을 하고 신인소설가를 모집해 수련시키기도 하는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여기 들어온 삐딱함 가득한 장재훈이란 인간이 자신의 온갖 삐딱함을 담아 처음으로 써낸 소설인 대도오가 히트를 쳤다. 1세대 작품의 서점용 재간이 주류이던 상황에서 대도오의 히트는 신인 작가의 작품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며, 이후 뫼는 적극적으로 신인작가를 모집해 작품을 내면서 2세대 무헙을 주도하는 출판사가 되었다.

2세대 무협은 당시 이들이 얻었던 이름인 신무협처럼, 1세대와는 다른 무협소설을 추구했다. 절벽만 떨어지면 등장하던 기연이 사라지고 주인공이 힘을 얻는 과정에 최대한 개연성을 넣거나, 악인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1세대에선 악당이나 쓰던 독이 주인공의 주요무기이기도 하고, 일부다처는 기본이던 남녀관계도 아주 담백해지는 등 철저히 다름을 추구했는데, 이런 다름에 대한 추구는 역으로 다름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이어지면서 2세대 무협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2세대 무협의 최대 성과는, 피상에 머물러 있던 무협소설 속 세계, 강호란 이름의 세계를 생생하게 살려냈다는 점이다. 좌백은 대도오에서, 군대 막사에서 모티브를 따온 무사집단의 숙소부터 시작해 무사들의 움직임에 군대식 움직임을 도입했고, 거기다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의 흐름에 전에 없는 진실성을 불어넣으면서 소설 속의 세계를 읽는이들에게 생생하게 다가서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등장한 작가들은 당대 중국에 대한 전례 없는 고증과 소재에 대한 치밀한 묘사로 혹은 한국사의 한 부분을 작품 속 사건으로 치환하면서, 무협소설 속 세계는 이전 세대와는 차원이 틀릴 정도로 진실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진실성 추구는 작품 집필기간이 이전 작가들에 비해 한참 길어지는 결과를 초래했고, 계속해서 신인 작가가 등장하면서도 이들 중 안정적으로 계속 작품이 나오는 작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이러한 간격 사이를 사마달표 와룡강표 무협이 채우면서 2세대 무협의 전성기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2세대 무협소설이 1세대의 만화방용 박스판이 아닌 서점용 판형으로 등장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소비처는 만화방이었다. 뿐만 아니라 무협소설 읽기는 일반적으로 티비 드라마식의 소비양상을 보인다. 한 작품이 나오면 그걸 읽고 금새 새로운 작품을 찾게 되는 건데, 2세대 무협작가들의 긴 출간 간격은 소비자들의 갈증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 사이를 사마달 와룡강류 무협이 파고들었다. 사마달 와룡강류는 질이야 어찌되었든 양으로 2세대 작가들을 압도했고, 더군다나 커다란 홍보의 장이 없는 무협 시장에서 이들의 양으로 인해 2세대 작가의 작품들이 아예 묻혀버리는 결과까지 이른다. 거기다 사마달 와룡강류의 재범람은 무협소설 전체에 대한 인식을 다시 악화시키면서 무협소설은 다시 총체적 난국에 빠져들었다. (이런 소비양태는 무협소설만 이런 건 아니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2세대 무협 후기엔 시공사가 드래곤북스란 서점용 무협소설 시리즈를 펴내면서 판매용 무협소설의 중흥을 노리지만, 의욕적인 출발에 비해 시공사의 홍보나 마케팅은 부족하기만 했고, 문재천 같은 문제작가를 발굴해내긴 했지만 드래곤북스는 작은 성과에 그쳤다.

2세대 무협은 1세대 무협에 비해 여러 모로 발전했지만, 무협소설 독자층의 주요 욕구중 하나인 욕망의 대리충족을 간과한 면이 있다. 80년대 1세대 무협의 성공은 암울한 시대 속에 주인공의 강력한 힘과 패권 그리고 삼처사첩 놀이 등의 행위에 독자들이 큰 대리충족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면 때문에 1세대 무협은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말초적 욕구충족은 역으로 1세대 무협의 몰락을 재촉한 면이기도 하다.

대도오의 성공 역시 이 작품이 90년대의 달라진 욕망을 새롭게 충족시켰던 요인이 있는데, 뒤를 이은 2세대 무협은 대도오의 이런 면은 그리 잇지 못한 면이 있다. 강호라는 세상 속에서 살아숨쉬는 인간들이란 2세대 무협의 장점은 역으로 머리 텅 비운 채 시간때우기로 무협을 접하는 이들에게 부담으로만 다가왔고, 이 작품들의 완성도를 알아본 독자들의 열광 속에서도 2세대 무협을 외면하는 이들 또한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타를 날린 게 사마달 와룡강류 무협이다.

2세대 무협작가는 작가 면에선 황금기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넘치는데, 좌백 설봉 석송 진산 장경 이재일 풍종호 백야 문재천 한상운 냉죽생 몽강호 무악 등등등 열거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중 특히 영향이 컸다 싶은 사람인 좌백 설봉 이재일에 대해서만 대강 언급한다.

이재일은 하이텔 무림동에 연재된 [쟁선계]란 완결되지도 않은 작품으로 한국무협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작가다. 꽃미남이 주류이던 1세대 무협에서 벗어난 근육질 거한 주인공부터, 관습적으로 영락제 운운하던 것에서 벗어난 역사적 부분과 소설성의 조화, 무협소설의 단골이던 마교라는 집단에 대한 새로운 해석, 해박한 지식을 살려 음식부터 바둑까지 세세하게 살려낸 강호라는 세계, 운명의 굴레에 괴로워하는 늑대같은 주인공부터 시작해 생동감 가득한 등장인물들, 과거 무협에서는 의도적으로 무시되고 있던 강호의 문파와 세가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설정, 초식이름 외치기를 벗어난 강렬한 싸움 장면까지. 쟁선계가 당시 만들어낸 치밀함과 생동감은 새로움을 넘어서 사상 초유란 말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쟁선계의 영향이 원본없이 워낙 퍼지고 일반화되면서 쟁선계가 출판용으로 나오는 지금에 이르러선 쟁선계의 새로움이 관습적 표현이 되어있을 정도이니 뭔 말을 더 하겠는가. 쟁선계가 이후 무협에 끼친 영향은 판타지류에서 카르세아린이나 이드같은 글들이 영향보다 크면 크지 작지는 않다.
이재일은 쟁선계를 지지부진하게 무림동에 연재하는 한편 1권으로 끝나는 어떤 귀향을 다룬 [칠석야]를 출판했는데 여기서도 쟁선계에서 보여준 그의 장점을 한껏 발휘하며 명성을 떨쳤다. 이후 남만에서 올라온 야수같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인 묘왕동주로 그의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했다. 이후 무협 출판에 종사하면서 다른 작품 없이 쟁선계를 출간한다는 말만 양치기 소년마냥 퍼트리다 최근 들어서야 쟁선계를 출판본으로 내고 있다.

좌백은 대도오로 2세대 무협의 신화가 된 작가다. 자기 필명만큼이나 삐딱한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인 대도오는 일대기적 구성을 벗어난 사건 중심의 전개와 반사회적인 주인공으로 90년대의 욕구를 채우면서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다. (대도오에 대해선 나름대로 잘 알려져 있으니 일단 이걸로 끝)
이후 좌백은 버추어 파이터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는 [생사박]에서 이전 창작 무협소설들이 생각도 하지 않던 근접 격투의 맛을 선보이며 새로운 충격을 던졌다. 생사박의 주인공인 팔의 힘줄이 끊어진 파계승 흑저는 전작의 주인공인 대도오의 뒤를 잇는 반사회적 주인공으로, 이 작품으로 그는 데뷔작의 명성을 이어갔다.
이 작품 후 많은 무협 팬들은 대도오의 뒤를 이은 생사박처럼 이와 비슷한 형태의 무협을 기대했으나, 그는 후속작인 [야광충]으로 무협 팬들의 기대를 배신하면서 자신이 독자야 어쨌든 간에 자기 쓰고싶은 대로 쓰고야 마는 작가임을 만인 앞에 드러내었다. 야광충은 1세대 무협의 여러 요소 중 괴이한 분위기와 음모론 식의 반전, 세력 키우기라는 부분을 좌백 나름대로 해석한 작품으로, 사람의 피를 빨고 햇빛 속에 사느니 사람의 피를 빨지 않고 어둠 속에 살기를 택한 주인공의 면모 이외에는 1세대 무협의 재탕이란 소리를 들으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야광충에서 좌백이 선보인 1세대 무협이 가진 요소들에 대한 사실성 부여란 측면을 무시한 시각이다. 특히 그는 이 작품에서 이전 무협에서 흑도라 불린 방파들의 특징에 현대 폭력조직의 특성을 부여해 이전과는 궤를 달리하는 생명력과 사실감을 부여했는데, 이는 이후 이어진 여러 무협소설들이 따르는 충실한 관습으로 자리잡았다.
야광충 이후 좌백은, 1세대 무협의 일대기적 구성과 성장물이란 요소를 계승하면서, 과거 무협에서 주인공의 무적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 정도이던 금강불괴란 요소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작품인 [금강불괴]를 세상에 내놓는다. 여기서 그는 성장물을 선보이면서도 이전 무협과는 틀리게 수련 과정에 독특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묘사를 선보이면서, 그가 단순히 1세대 무협을 거부하는 것도 따르는 것도 아니란 것을 증명해냈다.
헥헥... 독행표 금전표 광협대요마전기 혈기린 외전까지 말할 작품은 널렸지만, 마지막으로 그의 최근작이며 일단 나오고 있는 중인 [천마군림]만 말하고 넘어가자. 지금 좌백론 쓰는 것도 아닌데 말이 너무 길어지고 있으니까. 천마군림은 애니메이션으로 비유하자면 용자왕 가오가이가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해도 가오가이가 모르는 사람은 뭔 소리인지 모를 말이겠군...). 마도로 가득찬 세상에 주인공이 등장해 새로운 패권을 확립한다는 1세대 무협의 관습적 반복과도 같은 구성이면서도, 그는 그 구성 속에 그가 지금까지 쌓은 모든 능력을 동원해 개연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무협에 흔히 나오는 북해 빙궁. 빙궁은 얼음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는데, 정말 얼음으로 된 건물이 있을 수 있는가란 문제가 있는데, 천 마군림에서 좌백은 '얼음으로 된 건물이라면 북극점에 있으면 된다!' 란 단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교라 불리는 조직, 마교라고 해도 무협물에 따라 어디선 조로아스터교 어디선 백련교 어디선 시체 부리는 종교 집단 등 그 형태가 천차만별인데, 이 소설에서 좌백은 정부에 의해 배척당한 종교는 전부 마교라 통칭되었고 역대 마교라 불리운 여러 조직이 연합해 중원을 완전히 정복한 후 분할통치하고 있다는 골때리면서도 그럴듯한 설정을 보여주고 있다. 천마군림을 근래 나오는 판타지 전쟁물 정도로 폄하하는 의견도 있지만, 사람들이 판타지 같다는 명왕 소환식은 1세대 무협에서 나오던 소재 중 하나이고, 전쟁물 같은 움직임은 과거 무협에서 나오던 몇 만명이 어울리는 대규모 싸움은 결국 전쟁과 같은 움직임이 가장 개연성이 있다는 좌백의 생각에서 나왔다고 본다.

아아. 설봉은 제일 좋아하는 작가다 보니 말하기가 더 힘들어 정말 간단히 말한다. 설봉은 [암천명조]에서 눈봉우리란 그의 필명만큼이나 외롭고 처연한 주인공과 함께, 진법이란 소재와 배경이 되는 명나라의 시대상에 대한 고증적인 치밀한 접근을 선보였다. [독왕유고]에선 이전까지 악당 A 수준이던 당문이란 집단 출신인 주인공에 현대적 해석을 치밀하게 가미한 독이란 소재를 쓰면서 무협의 배경인 강호란 세계를 치밀하게 구축하는 결과물을 선보였다, 이런 치밀한 접근이 갈 때까지 간 작품이 [산타]다. 현대 중국무술의 대련을 말하는 산타라는 제목에다 이전에는 엑스트라 A 정도의 존재이던 낭인 출신인 주인공, 거기다 여자를 부르는 호칭에다 현대 중국어의 그것을 쓰는 등 여러 면을 보인 이 작품은, 2세대 무협의 완성이란 말부터 갈 때까지 가버린 작품이란 말까지 여러 모로 말이 많은 작품이었다.

언급 안 하려 했지만 정말 간단히 말한다. 2세대 무협 작가 중 다른 작가들에게 전혀 영향을 끼지치 못한 2세대 최고의 문제 작가는 문재천이다. 그는 [호접락어수상] [환검미인] 등에서 이게 무협인지 보르헤스 소설인지 모를 정도로 현실과 환상을 엮은 정말 독특한 무협을 선보였다. 거기다 수식 가득한 화려한 문체까지 곁들어져서, '무협이란 소재를 통한 문학성이 이런 거다'란 환호부터 '문학소설 쓰려면 문단에나 가지 왜 무협소설 쓰느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같은 비아냥에 이르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뭐 제일 많았던 건 처음 몇 페이지 보고 아예 보지도 않은 경우겠지만.


마무리겸 하나만 덧붙인다면, 2세대 무협 최대의 굴레는 3권 1질 혹은 4권 1질이 기본 판매 단위라는 당시 무협과 뫼 출판사의 관습적 규정이 아닌가 싶다. 이런 저런 판매상의 편이성 덕에 만들어진 이 암묵적 규칙은 사건 중심의 작품인 경우나 1세대 무협식의 묘사 없는 전개에는 큰 상관이 없지만, 세부적인 묘사가 많은 2세대 무협의 경우 권수를 맞추려다 전체적인 구성이 틀어지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았다. 3권 1질의 변형으로 3권은 1부로 나오고 3권은 2부로 나오는 식의 방식도 등장하나, 이 역시도 부족하거나 역으로 2부 3권을 채우기 위한 늘어지는 구성을 보이거나 하는 식의 양상이 나오기도 했다. 좌백의 야광충 2부를 보면 뭔가 더 많은 말이 필요한데 얼렁뚱땅 넘어간 부분이 여럿 보이고, 설봉의 경우 마지막권 후반에 가서 허겁지겁 뒷수습하느라 개판되는 모습을 상당히 자주 보였다.


1세대와는 달리, 2세대의 대부분 작가들은 아직도 현역이다.(라고 해도 90년대 후반 이후 한참 작품이 없다가 예고만 계속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진산은 민해연이란 다른 이름으로 로맨스 계에서 짭잘한 수익을 올렸고 게임피아에 울티마 온라인 유람기를 연재하면서 자신의 수입과 함께 울티마 온라인 붐이 한 때 조성되는 데 한몫 더하는 등 무협 외의 활동에서 여러 활약을 보이고 있다.) 천마군림은 얼렁뚱땅 여기서 말해 버렸지만 나머진 기회되면 3세대 말할 때 좀 더 붙이겠다.

[덧붙임]
애니메이션 팬들이나 알 소리지만, 1세대 무협과 2세대 무협의 관계는 묘하게 일본 로봇물의 변천이 연상된다. 1세대 무협 작품이 마징가제트나 볼테스V 라이딘 등이라면, 쟁선계나 대도오는 건담 독왕유고는 더그람 같다고 할까.





... 젠장.., 써놓고 보니 오지게 길군요. 거기다 말들이 이어지지 못하고 영 따로 노니 읽기도 안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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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1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다'는 말이 있다. 유식한척하자면 '감탄고토(甘呑苦吐)'라고 쓰면 된다. 그런데 우리 말 사전을 보면 이것을 <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자기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함. >이라고 풀어놓고 있다. 웃기지도 않는 엉터리 풀이이다. 도대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어떻게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짓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쓰면 삼키고 달면 뱉는 것이 사리에 맞는 짓이란 소리인가?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함>이란 소리도 웃기기는 마찬가지이다. 좋은 것이란 비위에 맞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싫은 것이란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풀이인지 모르겠다. 비위에 맞으면 싫어하고 맞지 않으면 좋아하는 것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바른 자세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니 이것은 인체의 신비함, 그리고 대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혀가 달고 짜고 맵고 씀을 나누는 기능을 가진 것은 그런 나눔이야말로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것은 될수록 많이 먹게 하기 위하여 비위에 맞게 달게 하고 먹어서 좋지 않은 것들이 입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비위에 거슬리게 그 맛을 쓰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인체와 자연의 만남인가.


그런데 이른바 배운 척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이 당연한 말을 위의 사전에서처럼 저렇게 나쁜 뜻으로만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대자연의 섭리에 대한 경외감이 너무 부족해서 일까? 인체의 신비에 대한 무지함이 지나쳐서 그럴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식자(識者)님들 생각하는 폭 좁기야 세상에 소문 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거창하게 멀리 갈 것도 없어 보인다. 이른바 '권위' 있는 것이거나 그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냥 다 받아들이는 것이 몸에 벤 사람들이 사전에 쓰인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무례를 범할 리가 없다.


하기야 이런 소리를 하면 우리 식자님들 어떤 것을 들고나와 소리 지를지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란 것이겠지. 이 말은 고사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데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패덕(悖德)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이건 한마디로 공자님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 옳고 또 옳은 말이 된다. 그래서 우리 식자님들 이 가르침을 뼈에 새기고 마음에 깊이 담아 잊지 않는 모양인데...... 뭐, 그건 잘하는 짓이다. 어린 아이가 한 말도 새겨들어야 군자가 되는데 공자님의 말씀이야 달리 말할 것 없다. 그러나 아무리 공자님 말씀이라도 알아듣기를 제대로 해야지 제멋대로 해석해서 '孔子 曰'이라고 나불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식자님들은 불행하게도 좋은 약 입에 쓰다는 말을 입에 쓰니 몸에 좋다는 말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고 말씀했다해서 귀에 거슬려야 충언이라는 말씀으로 곡해한 듯 하다. 그러니 '달면 뱉고 쓰면 삼키자!' '욕 같지만 욕으로 듣지마.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야.' 따위의 헛소리를 하고 다닐 수 있지.



잠깐, 여기서 양약(良藥)이란 무엇인지 공부 좀 하자.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란 말은 <史記 - 留侯世家>에는 [毒藥苦於口而利於病]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나중에 한나라의 고조가 되는 유방의 막료 장량이란 사람이 한 말인데 직역하자면 '독약(毒藥)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는 말인다. 풀이하자면 '먹으면 입에 쓴 독약- 당연히 몸에 해로운 것- 이라 할지라도 큰 병을 고치자면 어쩔 수 없으니 쓴 것을 참고 독약을 먹어서라도-몸을 약간 상하는 정도로만 - 병을 고치는 것이 좋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장량이 말하는 독약(毒藥)은 요즘 우리가 쓰는 독약(deadly poison)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고대 중국에서 독과 약의 구분은 모호하다. 같은 독약이라도 잘 써서 몸에 좋거나 병을 고치면 그게 약(藥)이고 잘못 써서 병을 고치기는커녕 몸을 더 나쁘게 만들면 그게 바로 독(毒)이다. 그러니까 양약이란 그 본색이 독약임에도 불구하고 처방이 적절한 경우에만 독이 아닌 약이 되는 것이니 결코 함부로 다룰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장량이 [毒藥苦於口而利於病]라고 말한 것은 주군보고 독약 먹고 병 고치라는 막가는 소리로 들을 게 아니라 그 약 처방(處方)이 매우 좋다는 주장이라고 봐야한다. (물론 이 처방으로 초패왕 항우를 무너뜨리는 대박 터트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고사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에서 양약(良藥)도 처방이 잘된 독약이지 단순히 입에 쓰기만 한 독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양약(良藥)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병 고침을 위한 것일 뿐 몸에 좋다고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니 이래서 '약 좋다고 남용 말자'는 구호가 아직도 나오는 것이다.


아무튼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 논리로 귀에 거슬려야 충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쓰면 삼키고 달면 뱉는 것'은 미친 짓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사리에 맞다.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함이 정상이다. 비위에 맞는 것은 싫어하고 맞지 않는 것을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른바 식자님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런 미친 짓을 강요한다.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가벼운 것들이라면서.



도대체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하고 입맛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을 왜 하나로 묶는지 모르겠다.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니. 우리가 달지 않은 것을 삼키면서 달다하고 쓰지 않은 것을 쓰다하고 뱉고 있나?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탄고토'를 욕할 이유는 없다. 입맛이 병들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면 몰라도.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다. 맛있는 것은 맛있게 먹고 맛없는 것은 먹기 싫다. 우리 주위엔 이렇게 '감탄고토'란 대자연의 섭리를 천박한 것들의 몽매한 짓거리인양 비난하면서 '양약고어구' 같은 소리나 되뇌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니 엄청나게 많다. 이건 사실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사정이 이 정도라면 억지로라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소리하는 분들은 남의 입에 맞는 맛있는 것을 만들 능력도 없이 무언가 만들어 내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요 또 이들이 겨우 만들어 낸 것은 맛이라고는 없거나 모두들 싫어하는 쓴맛만 나기 때문일 거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들이 입에 쓴 것이 몸에 좋고 귀에 거슬려야 충언이라는 이상한 말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설마 이들 모두가 "내가 권하는 것은 전부 '약'이다"라는 의·약사 분들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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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424 우리모두 >


[늪중] 골목길을 것다

내 취미 중 하나가 골목길을 걷는 것이다. 골목길을 무작정 걸으면서 담 넘어 혹은 창문 넘어 전해 오는 생활의 온기를 느끼게 될 때 무척 기분이 좋아진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집들 사이로 제멋대로 난, 회색 정사각형 보도블럭이 놓인, 좁은 골목길을 걷기도 하고, 제법 반듯하게 정리된 골목길을 걷기도 하였다. 담벼락에 시멘트로 뾰족하게 만들어 놓고 담장 위에는 사이다 병이며 콜라병 조각을 세워 놓은 살벌한 집을 지나기도 하였고, 낮은 담장 너머로 마루에 고즈넉하게 쌓이는 햇볕이 보이는 집을 지나기도 하였다. 굴뚝 끝에 달린 가스 배출기에서 흘러나오는 연탄 가스를 가볍게 맡기도 하였고, 삐죽이 나온 가스 보일러에서 나오는 매케한 매연을 피하려고 몇 발자국 피해 가기도 하였다.

보도블럭 사이의 잡초나 담벼락 그늘진 곳에 있는 곰팡이가 있으면서 깨끗하게 청소된 골목길을 보면 정말 기분이 상쾌하다. 구석진 골목 한 켠에 너른 평상이 있어서 여름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흐믓해진다. 해가 지고 불켜진 창문 너머로 김치 찌게며 된장 찌게며 구수한 냄새가 전해져 올 때면 생침을 삼키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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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가 어린 시절을 뛰어 다녔던 골목길을 걸어 보았다. 나를 맞이하였던 것은 어둠과 자동차, 그리고 골목길을 성처럼 둘러싼 새로 지은 다세대 주택 뿐이었다. 골목길은 그냥 길이었을 뿐이었다. 자동차를 피해서 골목길을 뛰어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조금 안쓰러웠고, 내가 어느 길을 걷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뀐 골목길이 너무 낯설었다.

내가 걸었던 골목길이 아직도 서울에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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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re] 골목길을 걷다


저하고 취미가 비슷하시군요. 저는 종로5가에서 광화문 방향.
글고 지명을 알수없는 서울의 어느거릴 골목으로 자주 다녔던 적이 있슴다. 지루하지가 않죠.
저는 걸어서 출퇴근을 하는데 빠른 걸음으로 이십분 정도 걸립니다. 그길도 매일 걷기가 지루해서 요리조리 방향을 틀어 안가본 골목으로 걷곤 합니다. 완전 한바퀴 돌수도 없고 이젠 새로운 골목도 바닥났지요.

그 좁다란 공간에도 신통하게 만들어진 상추와 고추밭.줄에 매달려 팔랑 거리는 빨래. 설겆이 하는 소리.몇일전엔 등이 굽은 할머니가 개를 자꾸 부르는데 할머니를 힐긋 힐긋 처다만 보고 오질 않슴다.거리가 멀어지니까
할머니께서 바디 랭귀지를 하시는데 밥먹으라고 말임다.어린애한테 하듯이 말임다.
골목 사람들은 골목을 벗어나야 겠지만 저는 골목이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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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모두 사이트에서 오갔던 글>



[각시탈] 고등어와 소주한병

친구가 약속을 파토내어 물놀이 목적지가 바뀌었다.
포천방향으로 차를 달렸는데 너무나 길이 막혔다.휴가차량 때문인것 같다.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행했다. 집근처 똥개울서 새끼 피라미를 사냥했다.
길 지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을지도 몰겠다.좀 맛이 간넘 아닌가 하고 말이다. 똥물속에서 반두들고 돌아당기니 말이다.간혹 김치통을 열어 보시는 분들도 계신데 좀 쪽팔리긴 하다. 동막골은 혼자라도 낼 가볼 생각이다.집에는 더워서 못있겠다.

조금은 엄살이고. 난 여름을 잘 견디는 편이다.추운건 정말 싫은데 더운건 오히려 즐기는 측면이 있다.집에 성능좋은 에어컨이 있긴하다.누가 와야 한번 틀까말까 하기 땜에 있어봐야 무용지물이다.절전 차원서 틀지 않는게 아니라 그냥 참을만 하기에 틀지 않는것같다. 누구 주던지 팔던지 해야 할텐데..(솔직히 중고값으로 파느니 주변사람한테 공짜로 주는게 더 맘이 편하다.중고 장사꾼들은 순 날도둑 같아 말이다.)

지금 나오는 노랜 그룹 키스의 아이 워즈 러브..길어서 기억 못하겠다.
하여간 이런 제목의 노랜데. 이 노랜 다소 유치하고 촌스럽고 그렇지만 한편으론 멎지기도 하다.난 어려서 부터 그룹 키스를 좋아 했지만 실상 소유하고 있는 음반은 몇해전에 구입한 카셋테잎 하나가 전부이다.키스에 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다. 테잎도 한번 듣고 다시 찾은 기억이 없다.이 노랠 한번 쭉 듣고는 땡였다. 그래도 난 이상케도 키스를 응원한다.이미 사라진 그룹이지만 하여간.

중학교때 일본 잡지 뮤직 라이프 74 년도 판이던가 헌책방서 샀는데 그 책속에 키스의 사진들이 특집으로 실려 있었다.멎지다고 생각했다.지금 보아도 이들의 화장과 스테이지 메너 (동영상은 본적은 없지만) 는 괜찮은 것이라 생각한다. 리더 짐시몬스의 길다란 혓바닥도 매력있고 말이다. 이들의 면모가 매우 미국적인 프로 레슬링.(타이틀은 몰겠는데 요즘의 젊은 한국 학생들도 매니아가 형성되어 있는것 같다.) 과 유사한 부분이 있는지도 몰겠다.
난 전부 쇼인데 왜 그리 열광하는지 알다가도 몰겠는데 키스도 그렇고 화려한 의상과 액션으로 무장한 미 프로 레슬링 역시,맘편히 속는것도 괜찮다란 정신의 산물 아닌가 싶다. 물론 난 프로 레슬링 보다 키스의 공연이 백배 낫다고는 생각한다.

삶의 질이란 무얼까.
난 젊거나 늙은 정치인들이 웅변하듯 외치거나 가래가 끓어 지글거리는 목소리로 삶의 개선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길 내뱉는걸 보면 구역질과 함께 이민을 가고 싶다.정말 정떨어져 이땅에서 살고 싶지가 않다.음..약간 흥분한것 같다.
몇해전에 친구집서 허구한날 술을 마신적 있다.밤낮 가리지 않고 말이다. 당시 친구의 마누라는 내게 눈알을 째리며 문화생활좀 하면서 살라고 했다. 듣고 있던 친구는 문화생활이란 단어 자체가 무식한 이야기라고 반문했드랬다. 그건 맞는 말이다.문화생활이란 용어(?) 자체가 다소 역하다.
테레비서 문화코너 어쩌구 하면서 각종 미술 전시회 영화 연극등등의 시간표를 일러주지만 이런게 무슨 문화냐.대문을 열고 나가봐라.내 경우 직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약 이십분 정도 걸린다.
집에서 직장까지 도보로 걷는 그 사이. 어떠한 문화가 있느냐 말이다.
아무것도 없고 신경질만 난다.
문화란 어느 특정장소에 찾아가서 무얼 건네받고 그런게 아니다.그냥 주변.자신이 서있는 그 어느곳의 주변.거기서 주고 받는게 문화이다. 어린 학생이야 이해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이 무슨 강연이나 박물관에 가서 열심히 수첩에 필기 하는 모습을 보면 참 개똥같은 훈련도 잘되어 있단 생각을 한다. 그거 종이에 적어서 뭐하나? 책보면 다 나오는데.

급성장한 우리나라는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비웃는 경향이 있다.
경향 정도가 아니라 주제파악 못하고 마구 못살게 군다.
인도.필리핀.방글라데시 어디 어디...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모두가 이야기 한다. 미국의 유명 식료품회사 켈러그 가 어느 경쟁 회사에 의해 매출이 급감했단 뉴스를 몇해전에 접한바 있다.켈러그는 운전하면서 먹을수 있는 시리얼을 개발하지 못했기에 그렇단다.부자나라 미국도 그렇다.
앙드레 김은 휴일과 일요일이 젤로 지겹다고 한다.그날은 일을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난 앙드레 김의 의상이 더 지겹다.
하여간 이런 사람들도 세상엔 존재한다.
가보지 않아서 몰겠는데 난 한국보다 인도 필리핀 방글라 데시가 더 살기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물론 나같은 넘 말이다.난 생긴것도 좀 동남아인 같다. 우리나라가 나으니까 돈벌러 오는 것이지만 난 솔직히 필리핀 여자.인도여자.방글라데시 여자 만나서 그여자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한국인들의 선입견 처럼 게으르게 살려고 말이다.
그러니 게으르다고 욕하지 말아라.부지런해지면 큰일 이니까.

실제로 현대인들은 바쁜걸 전혀 불편하게 생각지 않는 눈치다.
참 이상하지만 요즘 자주 나오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쫒기는 시간으로 이해 하는것 같다
내일 더 이어서 써야 겠다.오늘은 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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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enus] kiss


노래제목은

I Was Made For Lovin' You 입니다.

그리고 전 앙드레김을 좋아합니다. 그 의상도,
고등학교 때엔가 경복궁으로 사생대회를 갔더랬습니다.
비가 와서는 일찍 끝나서 그 앞을 돌아다니는데 그 때는
앙드레김 의상실이 광화문에서 삼청동 올라가는 경복궁
앞 프랑스 문화원옆에 있더랬습니다.

친구들과 가랑비를 맞으며 그 옷들을 구경하였는데 앙드레김이
내다 보더니 여직원을 시켜 들어오라고 하더니 뜨거운 핫쵸코렛을
타주라고 하더니 그 이는 일하려 들어가더군요.

몇년전엔가 강남의 어디 백화점 주차장에서 보았는데 기사가 짐을 다
싣도록 옆에서 거들어 주는데 참으로 다정한 사람 같았습니다.

맨날 그 옷이 그옷 같아도 제 눈엔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각시탈님과 전 여름을 즐거워 하는것이 같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추운 겨울이 무지 싫습니다.
이렇게 더워야 일할 맛도 나고 움직이기도 좋습니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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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29 우리모두 동호회 영화방(영화동아리 끼노 인 그랑까페)


와호장룡

- 감독 : 이안
- 주연 : 주윤발, 양자경, 장지이, 장진

나는 무협장르를 잘 모른다. 영화든 소설이든, 내게 무협은 어느날 갑자기 물밀 듯 밀려온 홍콩산 싸구려 다작들 중 하나였거나, 허풍 심한 마초들의 자기과시 욕구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된 무협영화들은 손에서 장풍을 뿜어내고, 목숨을 걸만큼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칼이나 낡은 책을 뺏기 위해 어처구니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별로 대단치도 않아 보이는 무림의 고수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 상대에게 자기 무술을 뽐내며 자신들의 골빈 마초근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협들은 또 어떤가. 그닥 흔하게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등장하는 여협들은 언제나 남자고수들보다 한 수 아래인 주제에 그들에게 도전하며 내 무예를 한번 봐줘, 하고 애처로운 사랑을 구걸하거나 굳이굳이 남자 고수를 이긴 대단한 협객으로 인정받기를 구걸한다. 그들은 손에서 장풍을 뿜어내고 미세한 자객의 움직임을 파악해낼 재주는 갖고 있을지언정 주책맞게 복수의 대상한테 정신이 홀리거나 하여 파멸하는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었다. 대부분 일가의, 스승의, 자신이 속한 무예파의 복수를 한답시고 떠돌아다니며 주막에서 폼이나 잡는 남녀 협객들에게 내가 본 것은 그저 상대를 누르고 나의 잘남을 과시하려는 천박한 파괴욕과 허영 뿐이었다. 그나마도 현란한 폭발음과 칼끝에서, 혹은 바늘 끝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바람에 단역들을 쓰러뜨리는 장면들은 눈요기는 될지 몰라도 '아무튼 떼놈들의 허풍이란!' 하며 코웃음을 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와호장룡>을 보러 간 것은 그것의 장르 때문이 아닌 이안감독에 대한 신뢰감 때문이었다. 최근에 지각개봉한 <라이드 위드 데빌Ride With The Devil>(이 영화는 미국에서는 이미 작년에 개봉된 바 있다.)을 제외하고는 <쿵후선생>부터 그의 모든 영화를 다 봐온 나로서는, 이상한 영어제목으로 알려진(세상에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이라니!) 영화를 이안감독이 차기작으로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2년 전부터 꽤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협장르의 영화에 전혀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감독이 이안이라면, 뭔가 다르리란 신뢰감 하나만 갖고 기대를 해 왔던 것이다.
백인 아해들은 이 영화를 보며 Wonderful!!을 연발하면서 내년 아카데미상의 강력한 후보작이라고 떠들고 감격해할지 몰라도, 워낙에 황당하고 현란한 과장으로 뒤범벅된 무협영화를 많이 접해 본 한국관객들에겐 이 영화가 좀 심심하다. 꼭 그것 뿐은 아니더라도, 씨네21에서 지적했듯 플롯이 의도적으로 느슨해진 이 영화는 좀 심심하다. 그런데, 그 심심한 이야기와 심심한 화면 뒤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와 자연, 그 속에 어우러진 (비주얼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인간사에 짙게 배인) 여백과 깊이는 이상하게 마음에 파고든다.

초절정 고수이지만, 이제 강호에 대한 미련을 버린 리무바이의 그 득도한 듯한 풍모와 칼놀림새, 그리고 공중을 '날아가는' 복면의 협객을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가' 추적하는 여협 수련의 몸짓에 배인, 삶의 희노애락을 겪어본 나이든 자의 지혜로움은, '무예'를 통해 삶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수도자의 경건함이 배어 있다. 한 손은 뒷짐을 진 채, 세상에 저 혼자 잘난 줄 아는 철없는 아해를 상대할 때 리무바이의 얼굴에 떠오르는 웃음은 상대를 깔보고 비웃는 냉소가 아니다. 그에게는 굳이 상대를 죽임으로서 자신의 우월감을 입증하려는 자기과시욕적인 마초근성이 없다. 스승의 복수를 한다고는 하나, 그에게는 복수하려는 자의 파괴적이고도 맹목적인 증오심이 보이지 않는다. 여협 수련에게 있어서 무예는 사랑하는 이와 연결된 끈이고, 사랑하는 이에게 신의를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녀는 철없이 날뛰는 아해를 오히려 지켜주고, 그 아해가 스스로 그 잘못을 돌이키고 수습할 기회를 준다.
수련과 용은 완전히 남남으로서 자매애를 나누지만, 이것은 씨네21에서 지적한 대로 이상적인 아버지(리무바이)와 어머니(수련), 그리고 막 사춘기를 맞은 혈기방장한 딸(용)로 구성된 유사가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딸은 아버지에게 계속적으로 도전하고 아버지를 이기기 원하며, 그럼으로써 아버지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녀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보살펴주고, 자신이 기댈 수 있으나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얻는 과정에 놓인 방해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춘기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지만, 아버지의 사랑 앞에서 그것은 철없는 불장난에 속할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딸을 보는 어머니로서의 수련은,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는 일렉트라 콤플렉스를 겪는 딸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느낄 뿐이다. 그녀는 용에게 특별한 적대감이나 증오를 품지 않는다. 오히려, 도전해 오는 딸을 지켜주려다가 철없는 딸에게 칼을 맞을 뿐이다. 용과 수련의 두 번의 결투씬은, 처음 복면을 한 용과 수련의 결투씬의 경우 최초로 어머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는 딸을 보며 문득 딸이 성숙한 여자로 컸음을 깨닫게 되면서도 계속 야단을 쳐야 하는 어머니의 당혹감과 딸의 자기과시로 해석할 수 있다면, 자매지연을 끊으며 벌이는 결투는 딸과 어머니의 본격적인 대립이라 할 수 있겠다. 어머니는 노련하고 여유로운 테크닉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제 막 피어오르는 꽃인 딸의 매혹적인 자태나 힘, 날렵함은 따라잡지 못한다. 수련이 보다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을 띄는 반면, 용이 보다 신세대적인 여성의 모습을 띄는 것은 근래의 여성의 위치변화와 그리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제 어머니의 시대가 가고 한창 나이의 여성으로서 엄마를 능가하게 된 것을 깨닫게 된 딸이 속으로 느끼는 당혹감은, 오히려 파란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표출된다.


이들에게 칼, 혹은 무예란 무엇일까. 이들을 연결해 주는 것, 이들을 비로소 2세대로 구성된 '가정'의 형태로 묶어주는 데에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청명검'이다. 더러운 피를 묻힌 적이 없다는 이 청명검은 아버지에게는 마침내는 버려야 할 세상의 번뇌 그 자체이자, 끊어버려야 할 속세의 연이다. 딸에게 그 보검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관심을 다시 속세로 끌어들이는 매개체가 된다. 어머니는 남편의 뜻을 이해하고, 남편이 세상에 던져진 하나의 존재로서 본질로 향하는 발걸음을 돕지만, 딸은 끊임없이 속세의 '관계'를 요구하고, 어머니와 대립한다. 용이 (장난으로 훔쳐본 거라 말하면서도) 그토록 청명검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청명검을 매개로, 그들은 '무예'를 겨룸으로써 서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눈다. 또 한편으로 무예는, 자기 자신이 속세에서 영혼의 본질로 나아가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다. 아버지에게는 득도와 해탈을 향한, 스스로와의 싸움이자 정진의 과정인 이 무예의 본질을 딸에게 가르치려 하지만, 딸에게는 어떻게든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관계를 얽게 되는 매개체가 바로 이 무예이다. 따라서 '수제자로 들어오라'는 아버지의 말은, 너와 부녀 간의 관계를 맺겠다는 선언이라기 보다는, 네가 네 자신의 길을 가도록 돕겠다는, 오히려 정신적인 독립에 대한 권유이다.
아버지는 죽음 직전에서야 자신의 번뇌의 본질을 깨닫는다. '성(聖)'과 '속(俗)에 대한 풀리지 않는 번뇌의 끈이랄까. 인간은 정신과 육체를 가진 존재이며, 그는 두 세계를 조화시키지 못했음을, 그렇기에 자신이 향했던 해탈의 경지는 결국 '반쪽' 밖에 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아버지는 성을 위해 속을 버렸고, 결국 자신은 평생을 허비했다고 고백한다. 딸에게 성은 존재하지 않는 경지이며, 끊임없이 속의 최고 경지를 열망하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속의 허망함을 깨닫고 추락한다. 둘 다, 선택한 길은 달랐으나 방향점은 같았다. 성을 통해 속을 초월하는 것, 그리고 그 성조차 버리는 것이 아버지의 길이었다면, 속의 최고경지에 올라섬으로서 성을 초월하는 것, 그리하여 속을 버리는 것이 딸의 길이다. 딸이 주막에서 덩치들과 무예를 겨루며 자신을 '신선'과 같은 존재로 소개하는 대목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결여된 득도 혹은 해탈은 본인은 물론 다른 이에게도 역시 상처와 회한을 남긴다. 그리고 성과 속의 변증법적 결합은 두 경우 다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용의 추락을, 생물학적 목숨의 죽음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살았다 죽었다라기 보다는 사실 제 3의 선택이라고 해야 가장 정확하겠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용의 추락을 마침내 자유를 향한 득도의 경지로 해석하는 일부의 견해에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여기서 파란 여우의 존재를 한번 보자. 그녀는 아버지(리무바이)의 정신적 아버지를 살해했으며, 리무바이의 육체적(세속적) 어머니가 될 뻔한 사람이다. 그녀는 용을 선택해 자신의 딸로서 대하지만, 딸이 자신에게 반항함을 알았을 때 그 사랑은 100% 분노로 전환된다. 육체의 어머니 혹은 세속의 어머니는 정신적 어머니(수련)와 달리, 반항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상한 친모에서, 자식이 반항을 시작하면서 사악한 계모로 둔갑한다. (주: "옛이야기의 매력"의 저자 브루노 베텔하임의 정신분석학적 분석에 의하면, 옛이야기에서 사악한 계모의 존재는, No!를 말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노출시키기 시작하는 자식에게 엄격해지는, 그래서 자식에게는 '야속하게' 다가오는 어머니를 또다른 인격체 형상화시킨 대상이라 한다.) 그러나 독립된 개체로서 서지 못하는 딸은 육체적 어머니와의 연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파란 여우에게 종속되어 끌려다니다가 결국 죽음의 위기까지 겪는다. 결국 용에게 어머니의 이미지는 둘로 분열된 인격체이다. 한쪽은 사악한 의도를 감춘 채 겉으로만 자상하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고 마는, 딸에게 야속하고 결국 딸의 길을 막는 세속적 어머니 파란 여우와, 엄격함과 진정한 모성을 함께 감추고 있는, 그러나 여전히 그녀에게는 극복의 대상인(딸에게 있어 어머니는 언제나 극복의 대상이다.) 정신적 어머니 수련.

이안 감독의 영화에서 아버지, 어머니, 자식의 직계 2대의 '온전한(?)' 가족이 등장한 적은 없다. <쿵후선생>부터 (<라이드 위드 데빌>은 안봤으니 제외하고) <와호장룡>까지, 자식들은 버려져 혼자 사는 조부에게 맡겨지거나(쿵후선생), 실질적으로 세대 간, 성적취향 간, 사는 공간 간 단절이 되어 있거나(결혼피로연), 오랫동안 어머니 없이 산 아버지는 이미 부권을 상실했거나(음식남녀), 부모의 빈 자리를 큰 언니가 메꿔야 하거나(센스, 센서빌리티), 부모는 부모이되 이미 부모가 아닌(아이스 스톰) 상황이다. 하긴, 현대에서 온전한 가정이 등장하는 영화의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마는. 그래도, 그나마 이전의 가족들은 혈연으로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었지만, <와호장룡>에서의 가족은 혈연관계가 무시된 유사가족이다. 그럼에도, 이안의 작품들에서 <와호장룡>의 유사가정은 그나마 가장 가정답다. 물론 그나마도 아버지의 회한의 죽음, 딸의 허무한 추락으로 귀결되긴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나무 가지 위에서의 결투씬일 것이다.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온화한 미소를 띄운 채 가볍게 균형을 잡고 여유만만하게 싸움에 응하는 리무바이의 모습이 너무나 눈부시다. 어린애가 기술부터 연마하면 삐뚤어지기 십상이라고 농을 치긴 하지만, 용의 날카롭고 강하고 힘찬 무술의 멋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 뿐 아니라, 또다른 리무바이 대 용의 결투씬은 물론, 사실은 수련 대 용, 용 대 호가 서로 쫓고 쫓기며 결투(용과 호의 체이스를 과연 '결투'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를 벌이는 모든 (무협)씬들이 아름답다. 결국 용이나 리무바이나, 우리가 범접할 수 있는 평범한 경지의 사람들은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지고 가야 하는 수련과 호에게서, 수도의 길을 가되 극단의 길을 가지는 못한 자와, 속에 모든 것을 걸었으되 결국 상실만을 맛보아야 하는 우리네 평범한 인간들의 인생이 조금 보일까.

notice :
1. 여기서 딸, 아버지, 어머니 등의 가족관계적 호칭은 혈연관계와는 무관하다.
2. 육체적 어머니란 호칭 역시 혈연관계와 무관한, 세속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관계를 뜻한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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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420 우리모두 / 토론 / 문화연구, 이대로 좋은가 >
 
유학생으로 처음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나는 그 지루한 열 몇 시간을 미국의 모습을 상상하며 보냈다. 그동안 책, 영화, 텔레비전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미국은 개인적 정서와 만나 이미 분명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나는 그 이미지와 '실제' 미국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자 마음 한 편에서 '실제 미국'에 대한 순진한 기대를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제 미국'을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뉴욕의 허름한 뒷골목에서 어떻게 갱스터 영화가 일러준 범죄의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있으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보면서 어떻게 <러브 어페어>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들마저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의미를 안겨주게 될 터였다. 채 도착하지도 않은 저 먼 땅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외모, 옷차림, 표정, 피부색 등에 악몽처럼 배어있는 이미지에 의해 판단 받게 될 것이다. 무서운 일이었다.

['가상의 도시'를 향해 가다]

현대사회에서 '낯선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들은 처음 떠나는 행선지에 대해서조차 분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실제' 방문은 이 인식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을 '가상의 세계'로 파악한 보드리야르의 시각은 이해할만 하다.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통한 간접경험이 실제경험을 압도하는 시대에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운 장소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뉴욕만큼 이미지에 가위눌린 도시가 있을까.

뉴욕의 형편없는 날씨나 악취 풍기는 지하철마저 '뉴요커'라는 가상적 이미지에 의해 낭만화되곤 한다. '뉴요커'가 문자 그대로 뉴욕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입고, 거주하고, 소비하는 (정확히는 그러할 것이라고 믿는) 상품과 연관된 문화적 이미지라는 점에서 '뉴요커'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개념일 뿐이다.

이처럼 현실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미지라는 매트릭스 세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미국으로 향하는 시간 내내 포기할 수 없었던 미국의 '현실적인'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을지라도 서로 다른 문화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비교적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나의 이런 기대를 뒷받침해 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위해 읽었던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인권운동가였던 킹 목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계단에 서서 수많은 인파들을 향해 감동적인 메시지를 쏟아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그 노예를 부리던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의 식탁에 마주앉게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불의와 억압의 열기로 이글거리는 저 황폐한 사막인 미시시피주가 언젠가는 자유와 정의의 단물이 흐르는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제가 낳은 네 명의 자식들이 언젠가는 피부색이 아닌 인품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꿈]

내가 킹 목사의 연설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깨닫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였다. 당시 이 연설문을 읽었던 고등학생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100년이 지났는데도 ‘왜 노예와 노예의 후손이 더불어 사는 것이 '꿈'에 머물러야했는지’ 의아해하기보다는 그 글에 포함된 '관계부사의 용법'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만 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한 나는 영문법 책보다 더 두꺼운 토플책을 들고 다니게 되었지만 (더 정확히는 그 토플책이 주인 대신 도서관 자리를 맡는 데 사용되었지만), 킹 목사의 '꿈'이 미국 현실과 얼마 정도의 거리에 놓여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다만 킹 목사의 정신을 기리는 '마틴 루터 킹의 날'이 미국의 국경일로 정해져 있는 것을 보아 고인이 생전에 가졌던 꿈이 상당부분 진척되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을 뿐이다.

그런 나의 기대는 케네디 공항에 비행기가 닿으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8월의 태양 아래에서 활주로 보수공사를 하거나 화물 하역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들이었으며, 지친 얼굴로 택시 승강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들은 대부분 아랍계 이민자들이었다.

모든 직업이 고귀하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지켜온 신념이었지만 그들의 피로한 기색은 자신들의 직업이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택시가 시내로 들어서자,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의 시가지가 드러났다. 행인들 가운데 유모차를 끌고 도심지를 여유 있게 걷는 여자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기는 대부분 백인이었고, 그 수레를 미는 손은 거의 예외 없이 검었다. 이들의 현대적 옷차림과 뒤의 화려한 네온간판을 제외한다면, 흰 아기를 돌보는 검은 피부의 여인은 미국 역사상 어느 때든 변함없이 볼 수 있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여인들은 더 이상 노예의 신분이 아니며, 일과시간 가운데 짬을 내어 아기를 돌보는 시간제 유모(baby-sitter)가 미국에서 보편화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모차 안에 앉은 아이의 피부와 손잡이를 미는 사람의 피부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 킹 목사의 꿈은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인식 속에 살아남은 노예제도]

'피부색이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나라.' 다소 거칠게 말해 이것이 내가 미국에 대해서 느낀 첫인상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미국의 전혀 다른 모습도 접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 사회에 대한 판단 역시 상당부분 조정되었다. 그러나 피부색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애초의 판단은 여전히 그 설득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깨닫게 된 가장 고통스러운 사실은 미국사회가 인종차별적인만큼 내 머리 속도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이며, 내 속에 자리 잡은 인종차별 의식의 출처는 바로 한국사회였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흑인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과 혐오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미국을 잠시 방문하거나 심지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교민들조차 부당한 맥락에서 '흑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볼 때마다 당혹스럽다. 그들이 '흑인들 많은 위험한 동네' 혹은 '흑인들 없는 부촌'이라는 말을 쓸 때 나는 이렇게 묻곤 한다.

"혹시 흑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하신 경험이라도 있나요?"

물론 이런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흑인들과 이야기조차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인들의 이런 인종적 고정관념이 한국사회와 외국 교민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이는 흔히 두 가지 상반된 결과로 나타난다.

하나는 스스로를 '유색인종'이라고 부르는 자기모멸적 열등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무시하고 지배계층과 스스로를 상상적으로 동일시하는데서 나타나는 정치적 보수성이다.

한국의 언론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나 "한국 찾은 외국인들 '원더풀' 연발" 혹은 "한국인… 미국 명문대학 합격" 등의 발언이 열등의식에 근거한 것이라면, 다른 소수인종과 연대하기를 거부하고 백인중산층 위주의 정책을 펴는 공화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정치적 보수주의는 상상적 동일시의 결과다.

[과자 포장지 위의 '짐 크로우(Jim Crow)']

미국사회에서조차 오래 전에 용도폐기 된 '유색인종'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에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유색(colored)'이라는 말은 백인은 아무런 피부색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른 인종' 만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국 이 언어를 채택하는 것은 자신에게 백인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다른 인종을 '그들'이라는 이름으로 타자화하는 행위다. 투명인간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무색인종'이 될 수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와 좋아하던 과자의 포장에 그려진 흑인의 친근한 모습이 실제로는 가혹한 노예제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역시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검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큰 흰 입술로 웃고 있는 '토인'의 모습은 노예사회로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짐 크로우(Jim Crow)'라는 이름으로 백인들의 오락을 위한 웃음거리가 되었던 흑인의 희극적 이미지다.

이 '짐 크로우'는 킹 목사가 앞의 연설을 하던 시대까지 흑인들을 학대하던 인종차별법의 이름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는 이 차별법에 따라 학교, 식당, 상점, 세탁소 등 온갖 공공장소에서 '백인용'과 '흑인용'이 엄격히 구분되었다.

"백인만 출입가능"이라는 표지판은 예사였고, "개와 검둥이는 출입금지"라는 모욕적인 안내판까지 길가에 걸려있던 시절이었다. 백인과 흑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버스에서도 백인이 흑인에게 자리를 요구하면 즉시 내 주어야 하는 것이 당시의 법이었다. 심지어 죄없는 흑인들을 목매달거나 산 채로 불태우는 잔혹한 범죄행위를 보면서도 경찰들이 뒷짐 지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55년 12월 1일, 백화점에서 고된 일과를 마친 한 흑인여성이 버스에 올랐다. 마침 빈자리를 발견한 그녀는 녹초가 된 몸을 그 곳에 앉혔다. 몇 개의 정류장을 더 지나자 빈 자리가 모두 찼고, 그 가운데는 좌석을 찾지 못해 서있는 백인도 생겨났다. 그녀는 법에 따라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했으나, 피곤한 몸을 일으키지 못해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후 백인들의 항의에 따라 운전사가 다가와 일어날 것을 요구했으나 그녀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달려와 그녀를 차에서 억지로 끌어내렸고, 여자는 '좌석을 양보하지 않은 죄'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리사 팍스(Risa Parks)로, 이 사건은 흑인들이 인종차별법에 대항하여 싸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증오에 맞선 평화의 행진]

흑인들은 그들을 차별하는 버스를 이용하지 말자는 보이콧운동을 시작했고, 이것은 인종차별행위에 비폭력 저항으로 맞서는 흑인인권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 운동의 중심에 마틴 루터 킹이 서 있었다. 그는 이 일로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되기도 했으나, 결국 미연방법원까지 가서 버스 안에서의 차별행위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이렇게 시작된 평화적 투쟁은 흑인들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 식당에 가서 묵묵히 수모를 겪으며 앉아있는 침묵의 시위로 이어졌고, 이들의 정당한 요구에 적지 않은 백인들도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함께 식당에 앉아 그들의 머리 위에 술과 소금을 쏟아 붓는 백인들의 조롱을 온 몸으로 견뎌냈다.

피부색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비인간적 인종차별에 맞서는 목소리는 전국적으로 퍼져갔고, 이것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디시(Washington D.C.) 행진으로 이어졌다. 당시 2십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찰견에 물리고 소방차에서 내뿜는 물에 쓰러져가면서 묵묵히 이 대열에 참여했다.

링컨 기념관 앞에 모여든 군중을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킹 목사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후 민권법이 통과되었고, 흑인들이 공적인 차별행위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킹 목사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으나, 흑인들을 향한 차별의 시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당시 흑인들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킹 목사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1968년 4월 4일, 킹 목사는 결국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의 총탄에 숨을 거두었다. 무장투쟁을 주장하던 반인종차별단체의 요구를 평화의 이름으로 설득하던 킹 목사였으나, 그마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증오의 탄환을 피할 수는 없었다.

[40년 후의 눈물]

지난 주, 차를 손보기 위해 카센터에 들렀다. 차가 수리되는 동안 대기실에 앉아 노트북을 켜 글을 쓰고 있는데, 출입문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들어선다. 고개를 들어보니 키가 훤칠한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모건 프리먼을 닮은 그 할아버지는 당신도 노트북을 하나 사야겠는데 어떤 기종이 좋을지 모르겠다며 조언을 구한다. 노트북에 대한 기술적 이야기는 곧 내가 당시 쓰고 있는 글에 대한 화제로 바뀌었다.

킹 목사를 추모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의 표정이 일시 굳어지는 듯싶더니, 곧 한숨 섞인 고백이 흘러나왔다.

"킹 목사가 옳았어" 그는 당시 무장투쟁을 요구하던 '흑표범단(Black Panther)'의 일원이었으며, 비폭력저항을 내세운 킹 목사의 입장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온건주의'로 비판했다는 것이다.

잠시 후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할아버지에게 '말씀 잘 들었다'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때 그의 눈에 괸 눈물을 보았다.

영수증을 받아 들고 출입문을 나서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 눈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킹 목사를 추모하는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40년 전 그를 비판한 자신의 입장을 반성하는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킹 목사의 꿈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흘리는 눈물이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눈물 속에서 할아버지가 내민 연대의 손길을 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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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4014 우리모두 / 토론 / 문화연구, 이대로 좋은가 >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다큐멘터리 <콜롬바인을 위한 볼링 Bowling for olumbine>은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날이었다. 우유배달부는 어김없이 우유를 나르고 있었고, 농부들은 어제와 같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으며,
대통령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름 모를 어느 도시를 폭격하고 있었다."

"우리는 총에 미친 멍청이들인가, 아니면 그냥 멍청이들인가?(Are we a nation of gun nuts or are we just nuts)"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말해주듯, 마이클 무어는 총과 폭력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특유의 재치와 풍자를 통해 효과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웃음이 작품의 문제의식을 결코 무디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어의 유머는 특별하다.

무어는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사건부터 시작해서 여섯 살 아이의 총에 죽은 다른 여섯 살 여자 어린이, 그리고 전국총기연합회의 집회로부터 대형 슈퍼체인의 총기판매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이 총에 가진 집착과 이것의 원인 및 결과들을 추적해 나간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결코 총기규제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캐나다인들은 미국인들보다 더 많은 총을 소지하고 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총기로 인한 사고가 일년에 평균 300번인 반면, 미국에서는 총 11,000번으로 캐나다의 35배를 넘어선다. 그렇다면 단지 총이 많다는 것이 총기사고의 주된 원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총기사건의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서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주 손쉬운 해결책이 있다. 바로 대중문화를 비난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영화, 음악, 뮤직비디오가 그들 내부에 잠재된 폭력성향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콜롬바인 총기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마릴린 맨슨의 음악과 매트릭스 등의 영화였다. 수많은 청소년들을 앗아간 그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대해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이 수없이 많은 '처방;을 제시하였다. 폭력적인 영화, 선정적인 텔레비전, 비이성적인 대중음악,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요즘 애들'의 혈기 등.

하지만 그런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어디 미국인들 뿐인가? 캐나다는 미국문화의 가장 큰 소비시장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사회의 폭력의 손쉬운 용의자로 대중문화를 공격하는 것은 그다지 공정한 처사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잠시 죽은 시늉을 했다가 다시 일어서는 배우들과 주권국가의 상공에 수십만 개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살륙을 선두지휘하는 대통령 가운데 누가 더 폭력적인가?

마이클 무어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묻는다. 부시 대통령의 학살과 맨슨의 락음악 가운데 누가 더 청소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고. 자신이 뽑은 대통령이, 자신이 낸 세금으로 수백만의 머리 위에 폭탄을 쏟아붓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식들이 학교에서 주먹질을 배워올까봐 걱정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두 명의 고등학생이 13명의 학생들을 사살했던 콜롬바인 고등학교는 미국 콜로라도주의 리틀튼(Littleton)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 사람을 먹여살리는 가장 큰 기업은 군수회사인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이다. 무어가 그 회사의 책임자에게 콜롬바인 사건의 왜 일어난 것 같느냐고 묻자, 그 역시 앞에서 '전문가'들이 제시한 '정답'을 나열한다. 세태를 한탄하는 그 관리 뒤로 미사일 조립 라인은 계속 가동되고 있다.

대량학살 무기를 만들어 팔면서 자기의 아이는 폭력을 모르고 살기를 바라는 이 '순진한' 가장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 옳지 않다고 믿는 전쟁에 대해 '국익을 위해' 군대를 보내기로 한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들이 '이익을 위해' 주먹과 칼을 꺼내드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이클 무어가 주목하는 것은 총기 자체보다는 이처럼 우리 주위에 일상화된 폭력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이 지지하고 이에 열광하기까지 하는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무감하면서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작은 폭력에 대해서는 한없이 소심하고 민감하다. 그리고 이 폭력은 상대에 대한 증오보다는 공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무어의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미국인들이 이라크인들을 공격하는 이유는
그들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허구적인 공포는 권력과 언론이 대중을 선동하고 동원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가 지금 그들을 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쏠 것이다."

무어가 보여주는 폭력에 대한 무감함과 비이성적인 공포는 단지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쟁을 부추기는 한국언론들을 보자. 그들의 눈을 들여다 보면 공황에 가까운 공포심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이라크를 두려워하고, 북한을 두려워한다. 이런 비이성적인 공포는 상대를 이해하고 대화하기보다는 총의 방아쇠를 당기도록 요구한다.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폭력을 낳는 법이다.

공포에 퍼렇게 질린 한국의 언론들은 말한다. "나는 그들을 믿지 못하겠다"고. "전쟁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전쟁 뿐"이라고 말이다. 공포는 끊임없이 남에게 위해를 가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피해자라고 믿도록 한다. 그리고 야만의 땅으로 변해버린 미국과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허구적인 공포다.

오늘도 일면기사를 통해 '국익을 위해' 전쟁에 나서야 하며, 북한에도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보수일간지들. 그들이 바로 뒷장에서는 '유해한 대중문화'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날 나의 미래의 아이를 위해 애도사를 쓴다.

<후기>

<콜롬바인을 위한 볼링>은 칸느에서 20분이 넘는 기립박수를 받으므로써 칸느사상가장 긴 기립갈채를 받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부시를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써 갈채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열정적인 반전연설 이후 <콜롬바인을 위한 볼링>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두 배 넘게 늘었으며, 그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로 한 극장의 수가 세 배가 넘게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50주 넘게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누려오던 그의 저서 <멍청한 백인들 Stupid White Men>이 다시 베스트셀러 1위로 올라왔으며,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 비디오 예약주문의 수가 영화 <시카고Chicago>를 넘어섰다. 황폐한 모래사막에도 봄꽃은 피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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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31 우리모두


목적이 동일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유지되지 않는다. 안티조선은 '공정한 사실보도'라는 언론의 금도를 벗어난 조선일보의 일탈과 왜곡을 지적하고 정론의 제자리로 돌아오라고 촉구하는 애정어린 질책으로 시작되었다. 그 애정은 조선일보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몸담고 있는 우리사회에 대한 애정이다.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애정은 각자의 정치색을 넘어선다. 정치색이란 자기 사회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나 심리적 호오의 감정에서 나온 경향성에 불과하다. 사회가 급변할수록 사회의 변화하는 필요와 가능성에 따라 각자의 정치색도 수시로 교정된다. 이념적, 지역적, 당파적인 정치색이란 불변적이거나 근원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치적 선택을 좌우하는 원천적인 힘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각자의 순수한 애정이다. 

  안티조선의 원천은 사회에 대한 애정이었고, 안티조선의 목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이었던 조선일보가 최소한 '공정한 사실보도'라는 기본을 갖추게끔 요구하는 것이었다. 상습적으로 폭주하는 언론사에게 정론의 기본을 갖추라고 요청하는 사회적 요구는 그 자체로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요청자들 각자의 정치색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우리모두앙의 자격은 그저 우리사회에 대한 애정을 갖는 시민들이면 족한 것이었다.

  안티조선 우리모두는 태동과 번성, 전성기와 쇠퇴기의 한 순환을 겪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조선일보가 약화되었다는 점에 있다. 조선일보는 언론으로서 무능력하고 미숙하다. 사회변동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결과, 과거처럼 여론의 향방을 좌우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민주화시대에 상호의사소통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사회의 판단 역량이 크게 신장한 탓이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이러한 시대변화를 '정치적 권력투쟁'의 탓에 돌리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사고방식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데에 놓여있다. 조선일보는 언론으로서는 기준미달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언론으로서의 기준미달성과 정치적 당파성이라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안티조선운동이 '언론개혁운동'이냐, 아니면 '정치개혁운동'이냐의 두 가지 목적성을 놓고 분열될 수 있다. 

  안티조선운동이 언론개혁운동일 때, 조선일보의 당파성은 '공정한 사실보도'의 기준 하에서 비판받지만, 이때 비판자들의 당파성은 문제시되지 않는다. 문제시되는 것은 '언론의 공정한 사실보도 여부'일 따름이다. 한편 안티조선운동을 정치개혁운동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할 때, 안티조선운동의 향방은 자기 당파의 '당리'에 따라 좌우된다. 당리들이 충돌할 때, 당파들이 분열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과연 안티조선운동에서 무엇이 우선적이고 무엇이 중요한가?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왜곡된 용어를 채용하면서 정명을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귀감삼아 경계하지 않으면 삼투되기 쉬운 상징들이 존재한다. 합법적 의무사항인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자유 탄압의 상징으로 왜곡되었다. 법률집행이 안티조선운동의 성공인 것처럼 오해되었다. 운동의 열매를 각자의 당리에 따라 분배하자는 '공정성'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그 결과 안티조선운동은 원래부터 정치개혁운동의 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해석되었고 도처에서 당파들은 깃발을 들고 헤쳐 모였다. 

  정치적 무관심도 사회적 병폐이지만, 정치과잉심리도 심각한 병폐다. 사실상 수십년 간 국회의 기능은 거수기에 불과했으며 태업이냐 아니면 파업이냐를 놓고 고심할 뿐이었다. 국회의 상시적인 기능마비와 고착된 지역감정은 표리의 관계에 놓여있다. 언론은 삼김상징을 통해 지역감정을 관리해서 시민들의 정치심리를 대권의 향방에만 쏠리게 만들어 놓고 대권 아래 여당은 거수기, 야당은 파업정당이라는 정치 무력화 현상을 정착시킴으로써 혼맥과 인맥으로 중첩된 기득권의 중추를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이제 전라도는 천민이 아니며 경상도는 선민이 아니다. 오직 시민이 존재할 뿐이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좌파와 우파의 대립도 체제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마다 경기의 부침에 따라 주어진 재정 하에서 정책적 선택의 우선성 문제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정치개혁은 안티조선이나 노사모의 운동을 통해 온 것이 아니라 개혁세력이 지역세력을 넘어설 정도에 도달했기 때문에 온 것이다. 

  민주헌법의 작동과 정권교체의 보장이라는 거대한 정치개혁 이후에는 지역정당을 탈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들 각자가 거수기나 상시파업을 벗어나 소신에 따라 정책대결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회가 일하고 경쟁하게 하라. 그러면 이러한 선의의 정책경쟁을 통해 사회적 필요에 따라 불가피하게 지역감정 자체가 와해될 것이다. 

  수십년 간 입법부는 놀면서도 우리사회는 발전해왔다. 첫째로는 일상에 충실한 시민들 덕분이며, 다음으로는 우수한 행정관료들 덕분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회의 활성화를 통해 행정부의 관료주의를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시점이다. 복지제도가 점차 중요해질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사회의 정치적 단계이다. 언론과 여론의 과도한 대권중심 정치상징들은 이제 말소되어야 한다. 사회전체는 대통령 일인이나 청와대 참모조직의 일거수 일투족에 매달리기에는 너무나 거대해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전체로서의 우리 사회다.

  조선일보가 다소 약화되면서 조선일보가 수행했던 정치적 상징놀이를 각 정파의 입장에서 지속하는 인터넷 대안언론들이 등장했다. 그것은 재미있고 여전히 잘 먹힌다. 시민으로서 그 정도의 오락을 즐길 권리는 있다. 단지 오락을 오락인 줄 알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는 서구의 어떤 이념이나 사회과학을 암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다른 사회의 역사성에서부터 나온 이론들은 참고사항에 불과할 뿐 우리사회의 역사법칙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사회는 자신의 것을 스스로 연구하고 체득해야 한다. 사회관계는 논리법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연역되는 것이 아니라 현행 추세의 확률을 고려한 각자의 결단과 책임성의 문제이다. 

  따라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각자의 지성적이고 양식있는 판단력이다. 누가 내 판단을 대신해주지 않으며, 내가 내일 하게 될 판단을 지금 내릴 수도 없다. 안티조선운동은 언론에게 공정한 사실보도를 요청하며, 그에 따라 내가 나의 지성을 동원해서 판단을 내리고 그 책임을 스스로 떠맡고자 하는 시민들의 운동이다. 판단에 스며드는 경향성이 선입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시 주입된 이념성을 경계해야 한다. 각각의 판단은 매 사안마다 사안이 요청하는 만큼의 충분성을 갖추면 된다. 그것이 바로 자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다. 

  우리모두는 언론개혁운동으로 시작했으며 여전히 언론개혁운동으로 남아있다. 그 과정에서 언론개혁운동을 정치개혁운동과 혼동한 사람들이 각자의 당파성에 따라 갈려져 나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에게 공정한 사실보도를 요구하는 언론개혁운동은 그저 시민이면 충분하다. 헌법에는 좌파시민과 우파시민이 없으며, 전라도 시민과 경상도 시민이 없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시민이면 충분하다. 언론개혁운동이 정치개혁운동에 대해 배타적인 것도 아니다. 단지 지금 이곳의 주도적인 목적에 충실하기만 하면 우리모두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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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동호회/지적성감대 / 20030224>

사랑이 생활이 되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다.
굳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것까지야 없지만 연애할 때의 감정에 비한다면
왠지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섭섭하다.
맛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달든지 짜든지 맵든지 강렬하고 자극적이었던 것이었으나
지금의 것은 심심하고 싱겁고 맛이 좀 덜한 것 같다.
이미 중독이 되어버린 까닭 일게다.
그리고 또 하나.
새벽안개처럼 사라진 대상에 대한 신비감.
신비감이라는 것은 여자에게만 표현되어지는 것은 아닐 터.
오죽 관찰력이 좋은 내가 아니냐
이 남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살피니
아~불행인가 다행인가
벌써 이 남자의 뒷모습만 보아도 그의 심적 상태 및 행로를 알 수 있게 되어 버렸다.
(그 사이 허풍이 늘은 사실을 본인도 모르지 않는 바, 이해하시고 읽어 주시길 바란다
-이 글의 진실성과 명확성은 48%이다)
어찌됐건 간에 결론은- 뻔하다-는 것이다.
그와의 생활은 내게는 초등1년짜리 산수 문제가 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는 이렇게 하겠지...딩동댕!
요런 말을 하면 요런 대답을 하겠지?...역시 딩동댕!
그는 곧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그렇게 한 다음 어떻게 하겠지?...으음 역시 아니나 달라?! 부처님 손바닥이 따로 없군.
이런 경지는 필시 나만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나에 버금가는 잔머리와 눈치의 대가이다.
솔직히 아이큐는 그가 나보다 20이 더 높지만 눈치와 잔머리는 내가 으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라 사실이라고 증명할 수는 없지만 ,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증명까지 한 단 말인가.
어쨌거나 고수 아닌 고수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됐는데....

그 이름하야 바로 눈치의 고수 밴댕이와 잔머리의 고수 골뱅이렷다.
밴댕이는 본인이 밴댕이 소갈딱지라 하여 자칭한 것이고
골뱅이는 쫀쫀하기가 골뱅이 같다하여 자칭한 것임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도사들은 원래 말이 필요 없다.
서로 텔레파시로 통하거나 지극히 간단한 표현들을 사용한다.
TV를 보다가 다른 채널을 원하면 턱을 그대로 옮겨 상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기만 하면 되고 맘에 드는 프로면 움직일 필요 없이 입술만 살짝 미소를 지으면 된다.
간단하다.
하지만 밴댕이가 보고싶어하는 프로가 아닐 때는?
더 간단하다.
끈다.
미소짓는 밴댕이....
골뱅이 일어나서 리모콘을 갖고 안방으로 사라진다.(리모콘 없이는 채널 전환이 안됨)
그 다음은 생각하지 말자.
식사 할 때
밴댕이가 맛이 없다고 무표정을 보인다.
내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거나 반응이 신통치 않다.
골뱅이 풀 죽은 한숨 소리 죽여 낸다.
그리고 다음 끼니... 굶긴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밴댕이는 혼자서 숨겨 놓은 막걸리로 배를 채운다.
질세라 소주병을 들고 나오는 골뱅이
이 또한 그 다음 얘기는 거론하지 않겠다.

솔직히 이런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그냥 서로가 말없이 생활하는 것을 상상해 보니
이렇게 황당한 허무개그를 지어내고 말았다.
아~ 나도 허무하다.
용서.Please.


하지만 그는 분명 고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절대 이 골뱅이 고수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잠자는 시간 이외에 누워 있는 모습을 아직 보지 못 했고
멍청하게 시간을 그냥 보내는 걸 보지 못했다.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청소를 한다.
음악을 즐기거나 차를 즐긴다.
TV도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보질 않는다.
그런 와중에도 절대 눕지 않는다.
내가 그를 고수로 인정하는 것은 일단 이런 면들이 나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부분에서 진실성이 약간 결여된다.ㅋㅋ)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였던가
그런데 너무나도 서로가 지피지기 하다보니 승패가 안 난다.
역전과 반전을 오고 가며 피터지는 혈전 속에 드디어 골뱅이가 밴댕이에게
무너지는 순간이 생겼으니...
그것은 술 때문이었다.

어느 날
서울에서의 술자리에 홀로 참석했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어라 마셔라의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뿔싸 우리집이 공기 좋고 인심좋은 동두천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축지법을 배워 둘 것을....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고리타분한 것을 배우지 않는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 좋은 시절을 누리지 못하고 축지법을 배우느라 시간을 허비하는가
돈만 있으면 편하게 비행기도 탈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어쨌거나 쫀쫀하기로 소문난 골뱅이는 일주일 분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부들부들 떨며 택시 비로 날리고 그 다음 날부터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참패의 형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으니 고양이 앞의 쥐가 따로 없다.
"어머니가 당신 며느리가 고주망태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될까?"
으헉
"앞으로 당신은 소주 반병이상은 안 돼!"
허걱
"패널티로 일주일 간 별거야"
꽥!
-흥 그래 ? 당신은 여기에서 실수를 한 거야. 내가 죽부인(밴댕이는 이전까지 골뱅이의 죽부인 노릇을 했었음)없으면 잠 못 든다는 것을 이용하는 모양인데 쥐도 길을 트면서 몰아야 한다는 전법을 모르고 계시는군.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나의 필살기다.-
일단 밴댕이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근사한 아침상을 준비한다.
약간 밝고 경쾌한 음악을 틀고 옷도 화사하게 입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침착하고 다정한 어조로 그에게 대한다.
흐흐흐 밴댕이는 분위기에 약하다.
흐흐흐 밴댕이는 골뱅이한테 잘 홀린다.
절대 이 대목에서 귀여움을 떨면 안 된다.
목소리가 크거나 너무 쳐져도 안 된다.
오직 지성적이고 우아해야 한다.
밴댕이는 지성에 가장 약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소주 한 병까지 낙찰을 보았다.
패널티도 바로 해제되었다.
사실 패널티를 이용해 그를 반격할 수 있으나
그런 수를 쓰는 것은 배수진의 수법과 동일한 것이기에 되도록 피하여야 한다.
한 고비는 넘겼다.
다시 우리는 서로를 주시하며 살아갈 것이다.
가끔씩 허점도 보이며 서로에게 미끼를 던질 것이고 서로 도사가 되는 그 날까지
팽팽한 접전을 누릴 것이다.
(아래의 글은 IQ 80 이상만 읽으시오)
이런 접전은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라는 상처를 줄뿐이다.
이런 상처로 깁스하고 이런 상처의 흉터가 건달들 등판에 문신하듯 새겨지길 바란다.
쌍방 사랑의 대 결전 후유증이 너무 심해 불치의 병이 되고 말았소 라는 진단을
받았으면 좋겠다.

세상을 살다 보니 반 도사가 되신 분들 내지는 도사 지망생 여러분들
그러나 절대 주의하여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관심이라는 도끼는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 자신의 일부에 치명타를 줄 것이므로

고수가 되고 싶은가
관심이라는 주문을 늘 꾸준히 외워라.
천리안을 갖게 한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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