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강호 최강 고수 4인방 안에 들어간다는 대가 예수(禮手)
구리수도(久狸手道) 가 태어난지 1997년이 흐른 어느 겨울날
무공 천하 제일을 가리는 비무대회가 열렸다.

무림 지존!!!
얼마나 대단한 자리던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어렸을적 무공일지에
'장래의 무림지존 XXX.'
라는 글을 한번쯤 써보며 자라나지 않던가.

각 파의 고수가 1대 1 대결을 벌여 진정한 강자를 가리는 시합

이 자리에는 4명의 고수가 서 있었으니

구라장이(龜羅掌彛) 김데중
다이어투(茶異御鬪) 이해창(利害蒼)
살가마니(殺苛麻尼) 인재화상(印材和尙)
노동당수(老童當手) 거녕기리(擧寧期痢)

그러나 이 대회는 일반 무림지존 선발과는 의미를 달리하는
비무대회 였다.


당시 상황은 5년 전
현직 무림지존 당모가지(唐毛價脂) 기명사미(寄命蛇尾)가
무림지존에 등극하고부터 시작되었다.

5년 전
기명사미와 김데충은 피나는 혈투를 벌였다.
그들의 무기인 전라도(戰羅刀)와 경상도(徑像刀)가 부러질때까지...

그러다가 막판에 무기마저 파괴되고 맨손만 남자 기명사미는
자신의 생사는 물론, 아이큐의 손실까지 감수해야 하는
비장의 무기 '깡(强)'을 이용한 박치기(博緇氣)를 시전했다.
김데중도 마빡(麻薄)의 강도에 있어서는 뒤지지 않는 공력을 지녔으나.
특유의 소심함과 눈치보기(嫩幟寶氣)가 단전(丹田)에서 내공이 올라와야 하는
박치기(博緇氣)의 운공을 막았다.
더군다나 기명사미는 삼당합당(三唐合當)신공까지 익혔으니
그 박치기(博緇氣)의 위력은
바다를 가르고 산을 뒤덮을만 하였다.

그리하여 기명사미는 필생의 라이벌 김데중을 물리치고
무림지존에 오른다.


무림지존에 올라
처음엔 넘치는 체력을 바탕으로 의욕있게 무림맹을 이끌던 기명사미...

취임하자마자 그는
각종 신종 무공들을 개발해 나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무공인
칼국수(渴鞠手), 놀라지(羅指), 깜작수(感作手) 등은
상당한 공력을 지닌 무공으로 평가받아
무림 동도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어나갔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나 나쁜놈은 있는법
기명사미의 주변에는 그의 넘치는 체력을 다른데로 돌려
그의 권력을 뒤에서 좌지우지할
생각을 하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당삼(塘渗)...
좃선당이었던 것이다.


좃선당을 중심으로 한 무리들이
여인들을 기명사미에게 진상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진상한 여인 세계화(世界花)...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했던가...

기명사미는 이내 자신의 넘치는 체력을 과신하고
여색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이어 그들이 진상한 여인들은
오(吳)씨(氏) 와 이(李)씨(氏)로 전해지는 미녀들로
세계 고수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화류계의 꽃 들 이었다.

머리는 빌릴수 있어도 체력은 빌릴 수 없다던 기명사미...

매일 조깅하던 체력......
죽으라고 등산하던 체력.....

어릴적 바다에서 수영하던 체력.....
밤늦게 무공일지에 수도없이 '미래의 무림지존 기명사미'라고 적어넣던 체력..

암튼 모든 체력을 동원하여
남의 체력을 빌리지 않고 혼자 많은 여인을 상대해 나가기 시작한다.

세계화(世界花)를 상대하고
남는 힘을 모아 이내
오(吳),이(李)씨(氏)뒤를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붙은 또 하나의 별호 '오이씨(吳李氏)뒤'

그러나 어디 오이씨 들이 체력하나에 만족할 여인들이었던가..
이내 기명사미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하고,
기명사미는 땅문서(當文(書), 집문서(集文書)와 같은 고급 무공비급 들을
그들에게 다 내놓고 우리가남이가(牛李嘉南夷家) 속에서
더욱 주지육림에 빠져든다.


이때 처들어온 서역고수 아매부(亞賣鳧)는 오이씨를 통해 기명사미의
모든 약점을 다 파악하게 되었고 기명사미와의 대결에서
단숨에 외환위기(外換渭氣)와 돈업지(敦 指)의 무공을 이용해
기명사미의 강력 박치기(博緇氣)를 분쇄해 나간다.

자신의 약점을 다 노출한 상태에서 시전하는 어떤 무공도 먹혀들지 않았고
어렸을 적부터 마신 아일비무림맹주(我壹飛武林盲酎)의 체력
조차 여인네들과의 체력소모로 다 소진되어 버렸다.
마지막에는 그의 최상승무공 '깡(强)'을 펼쳐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기명사미는 패배하고, 아매부는
중원 무림계의 최고(最高) 권경 경제주권(經濟鑄拳)을 빼앗아 갔다.

이에 기명사미는 무림맹주자리에서 물러나 상도동(爽島洞)에 은거하며
그의 마지막 남은 애재자 박종옹에게 새롭게 창시한 그의 무공
석파계란(石派溪卵)을 전수해 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잽싸게 기명사미에게서 등을 돌린 무리들이 있었으니
좃선당!!!

세계화(世界花)와 오이씨(吳李氏)를 진상한 무리들이 누구였던가!
그들은 패배한 기명사미의 마빡에 제일먼저 극독인 달갈(澾渴)을 투척하고

기명사미가 후계자로 지명한
다이어투(茶異御鬪) 이해창에게
자신들이 다음 비무대회에서 신종 무공을 전수해
차기 무림맹주로 만들어 주겠으니
기명사미에게 등을 돌리라고 주문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덮으려 했다.

이들은 이해창이 무림맹주로 뽑혀 기명사미처럼
자기네들 꼭두각시 노릇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 가지 무공을 전수한다.
내공심법으로는 밀어주기(密御疇氣), 편들기(鞭 氣),
남발갱이만들기(嵐魃坑履灣 氣)등을..
장풍으로는 세풍(稅風), 총풍(銃風) 등을
무기로는 죽창(竹槍)을 지급하였다.

이러한 무공을 통해 이해창은 무공서열 3,4위에서
일약 강호 최고 고수급으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좃선당의 지원에 힘입어 거녕기리(擧寧期痢) 와 인제 화상(印材和尙)을
비무대회에서 탈락시킨다.

이제 남은건 김데중
그러나 돌아온 김데중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좃선당과 이해창이 손잡고 엄청난 공력을 드러냈지만
김데중또한
가만히 놀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과거에 자신의 적이던 강종필(强悰弼)과 손을잡고
강호 4대 보물 중 하나인 충청도(忠聽刀)를 손에 넣었던 것이다.
이어 전임(前任) 포철사(抛徹寺)주지 박태주니(膊泰鑄 )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강종필, 박태주니와 무릎을 맞대고
신공을 창출한다.

공동정권(恐動正拳)!!!

비무대회는 끝까지 숨막히는 접전이었다.
그러나 충청도(忠聽刀)와 공동정권(恐動正拳)의 공력이
좃선당의 밀어주기(密御疇氣)보다 공력이 2푼 정도 앞서
김데중이 무림지존에 오른다.

앞으로의 장래를 걱정하게 된 좃선당과 중앙당
그러나 그들은 이를 갈며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투비컨티뉴(投 健態漏),,,,,,,,,,,,,,,,,,
Posted by taichiren
,

에___

한문가지고 따질 거면 읽지 마시길....



원쓰 어폰 어 타임

강호는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동안 강호를 지배해 왔던 극우파(極右派)의 아성이 바야흐로 무너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극우파........
바야흐로 수 십년간 강호를 호령해 오던 거대문파 아니던가.
특히 20년 전의 전투였던 시비시비 사태(是非是非蛇 로
군소 문파를 흡수해 바야흐로 최강문파(最强門派)가 된 극우파..........
수십년간 독재정권아부하기(獨裁政權阿附下旗)를 매달고 강호를 호령하지 않았던가.

당시 극우파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집단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좃선당(朝鮮黨)


사실 이들이 원래 강력한 문파는 아니었다 그러나 좃선당 당주가 수십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환약을 당 수뇌부에 보급해
최강의 전사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 환약은

보통사람도 한 번만 먹으면 무림 동도들의 피를 빠는
흡혈귀로 만들어 내공을 높여준다고 전해지는 신비의 환약,

전두환(前頭 )!!!

육사(六巳)를 모아 수십차례 액기스를 추출해 만들었다는 이것을
자신의 당원에게 복용시켜 강호 최강의 당이 되지 않았던가.

그에 이어 연달아 신약개발과 새로운 무공을 창조해 내니,
최근 장법과 한랭내공을 겸비한 신흥무공 김치냉장공(金緻冷掌功)
까지 연성해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좃선당의 조직은 크게 두 가지 집단으로 나뉘었으니
좃선일보(組仙日步와 월간좃선月?組仙) 이었다.

이들은 당주의 비밀 지령에만 움직이며 평시에는 그들의 정체를 신종 가면인 문화면(文化免)으로 가리고 다녀 다른이의 이목을 피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일이 있을 때 모두 단결해 외적을 맞아 싸우는
단결력을 과시한다.

좃선일보에 숨어있는 좃선 보주(保主)는
그의 충직한 심복인 김대충 검객에게 명령, 자신의 뜻을 펼친다.



김대충........
그는 누구인가.

일찍이 좃선당에 입문해 당내 무공 제 1위에 오른 인물 아니던가.

일찍이 무공의 정수를 깨닫고
구라문법(拘羅紊法)과 知照代輅(지조때로)鑑賞法(감상법) 같은 武功書(무공서)까지 남긴 無林界(무림계)의 고수였다.

특히 그의 무기인 붉은색 붓(朱筆)은 싸움에 있어서 신비한 위력을 과시하곤 했다.구라주필(九羅朱筆)이라 불리는 이 무기는 내공이 낮은 초심자에게는 단순히 기냥 뻗은 붓처럼 보이나 실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살수(殺手)를 뻗어내는, 아홉 번이나 구부러진 암기(暗記)였던 것이다.

일개 노(老)동(童)자(者) 들이 궁시렁거리기라도 할 때면 여지없이 출수하여 장팔사모(障八邪矛) 보다 더 무섭다는 국가전복음모(國家全鰒陰謀)로 무찔러 버리는 창술의 대가기도 하였다.

특히 노(老)동(童)자(者)들의 무공을 폭도(暴徒)의 무공으로 규정짓고 전설속의 보물 국가신인도(國歌申認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폭도를 화끈하게 섬멸해 출처를 추궁해야 한다며 전경부대(典京負袋)에 각종 무기와, 그들의 내공을 높여주는 최루단(催淚團) 보급하기 운동을 펴는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茨測?많은 법 그와 쌍벽을 이루는 걸출한 인재가 월간조선안에서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으니

일찍이 몽골기마민족(蒙骨期馬民 )에서 길러진 조깟재가 그인 것이다.
그는 보는이의 시각을 혼란케하여 승기를 잡는 김대충의 무공과는 상반된

강력 외공을 시전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러한 무공은
단순무식함(丹脣無識函)의 무공비급에서 익힌 음주후교련공(飮酒(後敎鍊功)
이라 전해진다.


최근 그는 신비의 무공비급 하나를 연성하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은

1갑자 이전 서양의 절세 고수였던 희두라(戱頭羅)가 최고의 수준까지 연성했다고 전해지는 파시수투공(波市樹投空).......
최고의 경지까지 오르면 고함 한마디로 수 십만을 전멸시킬 수 있다고 하는 공포의 무공인 것이다.

20여 년 전 이땅의 박통(博通)이라던 고수가 거의 최고의 수준까지 도달하였으나 시파수리갈(嘶擺秀利渴)의 극독에 중독되어 주화입마(鑄貨入麻)에 빠지는 바람에 실전되고 이제는 세인의 관심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던 무공!!!

그는 이 무공을 재발견 하기 위해 실로 엄청난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던 것이다
햇볕막기(太陽幕氣)로 다진 내공을 이용해 박통의 무덤에 침을 수 억번 뱉은 결과 얻을 수 있었다는 비급 파시수투공 (波市樹投空)....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이 비급을 혼자 독차지할 생각을 버리고 자신과 동문수학한 무림동도들과 나눠보는 모습을 보여 무림계의 훈훈한 미담으로 남았다.

그의 동문들로는 사제 일구라주인영웅(一口羅主人英雄) 이무녈
인간의기(人間意氣)를 연마하는 리인화 사매가 있다.
이들 각자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었으니
같은파 무림 동도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리인화에게는 국가감사하기(國家鑑査下氣)를 익히게하고,
이무녈에게는 절기중 하나인 가부장(家父長)이란 장법을 익히게 하였다,

하류무사이기는 하지만 충성심으로는 이들 못지 않은 김지명에게는 몸소만든 원자단(原子團)을 주어 무공을 배가시키고 배수투살라(倍數透殺羅)라는 별호를 지어주었다.

자신은 주체사(主體司)의 주지로 유명한 귀순대사가 만든 황장엽(黃掌葉)이란 차와 김영환( 永煥)이란 단약(丹藥)을 복용하고 편집장(編輯掌)을 연마해 단숨에 강호 일류 고수의 반열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특히 김영환을 복용하고는 극좌공을 단숨에 극우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극우파에는 의술의 대가도 있었으니 이름하여 이그난(蘭).......

그의 의술의 경지를 논하자면 인조인간 만들어낸 후랑간수타인(後浪間水打仁)박사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강호 무명 소졸도 일류 적색공 고수로 재탄생 하게 되는 것이다. 즐겨 보던 고문(古文)을 통해 의술을 배웠다고 전해지는 그..
그의 고문에 대한 조예또한 엄청나 세인들은 그를 고문기술자(古文技術者)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이그난 하면 역시 의술 아니었던가.
환자를 신분에 따라 차별하던 다른 의원들과 달리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전혀 따지지 않고
몸소 칠성판(七聲販)위에 올라가 시전했다고 전해지는 그의 신비로운 의술.....

특히 그의 의술이 고추장뿌리기(考推將簿莉氣)의 내공을 동반할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적색공 고수로 업구래이두(業龜崍吏斗) 되었다 전해진다.

그의 명성이 알려지자.
그의 의술이 편작(編鵲)을 능가한다 하여 세간에는
그를 일러 용공조작(容共造作)이라 부르게 되었다.



위의 극우 고수들은 모두 강호 일류 고수라 전해지는데 이들은 모두 공자(公子)가 말한 무공 최상승의 경지를 이미 돌파하였다고한다.
'내 맘대로 무공을 만들어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독자들께서는 눈치 채셨겠지만 여기의 법은 당삼 빠따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라 하겠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최근들어 이들이 통치해오던 강호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계속-------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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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인터넷 싸이트 우리모두의 묻고답하기 게시판에 올라온 한 네티즌의 질문에 대한 솔바람 님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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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님, 안녕하세요? 이리 글을 나누게 되어 기쁘네요.
저는 조서닐보(저는 이리 표현합니다)가 ‘문제 있다’고 인식하게 된 지 1998년 10월(keyword : 최장집)부터 시작하여 이제 3년 남짓되었지만,
왜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안티조선’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짧은 글로 풀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내공이 딸린다고 표현하지요.
다만 초급 수준의 인식을 제공하고자 이 글을 시작합니다.

저는 님께서 조서닐보에 대해 현재 어떤 경로로 어떤 인식을 갖고 계시는지 당연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혀 관심이 없거나 경로를 가질 기회가 없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도의 초급 인식에 도달되지 않은 단계를 기준으로
이 게시물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그 경우 제 경험상 만나서 이야기하면 평균 세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기에, 게시판 글은 보는 이가 스스로 확장할 수 있도록 keyword를 중간중간에 넣고 상세는 생략하겠습니다.

1. ‘열린 사회’란?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아냐, 최악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keyword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파시즘, 전체주의)

조서닐보 문제를 논하는데 웬 ‘열린 사회’? 느닷없을 터입니다. 제가 인식하게 된 경로에 이 개념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이리 시작하는 것이구요, 어디서 시작하든 연결은 되리라 봅니다.
이래저래, 이 글은 무지 길 것입니다. 옛 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읽더라도 때때로 참조될 구석이 있다면 좋겠네요.

조국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군화발굽에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고, 칼 R 포퍼는
나치즘, 파시즘의 근원을 규명하고 비판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영국에서 출판한 책이 <열린 사회와 그 적들(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45>
이고, 역사주의, 전체주의에 대한 탁월한 비판서라는 평을 받는다고 하는군요.

포퍼가 찾아 낸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시조는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는 질문을 중심으로 답을 작성해 나갑니다. 요지는, 변증법에 능통한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사회, 그것이 플라톤이 제시한 유토피아, 이상향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전제는 ‘오류가 없는 지도자’였습니다. 항상 적중되는 직관을 지닌 신과도 같은 ‘영도자’가 있다면, 매우 효율적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사회는 철학자 왕, 수호자, 전사, 인간 가축의 네 계급으로 이루어집니다. 상위 세 계급이 의사결정과 체제 수호를 담당한다면, 하위 농경, 상업, 공업에 종사하는 ‘인간 가축’이 체제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손발이 됩니다.
당연히 이 사회에서는 토론이 불필요합니다.

즉, ‘지도자’가 방향을 결정하면, 아래 계급은 시키는대로 자신이 맡은 기능에 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군더더기 없이 신속한 의사 결정, 인적자원 효용 극대화 따위 장점만 있게 되지요.
그 전제가 ‘똑똑한 지도자’이기에, 플라톤은 이 체제의 핵심인 철학자를 양성하는 방법에 상당 부분을 할애합니다.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엘리트 자질을 가진 애를 선별해내는 방법, 교육 과정, 자격 시험, 철인으로 등록되는 최소 연령 따위.

1차 대전에 패하여 도저히 앞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의 독일 사회에 등장하여 플라톤의 유토피아를 충실히 체현한 것이 히틀러의 나치 체제입니다. 소수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 군중의 열화와 같은 지지.
전제에 충실하기 위해 ‘영도자’를 신의 수준으로 끌어 올립니다. 다중의 미덕은 튼튼한 신체이고 여성의 미덕은 조직의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 아기를 잘 낳는 것이 됩니다.

엘리트 집단이 이끄는 대중은 선택 받은 백성이 됩니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노력과 더불어 체제 단결을 위한 희생양이 채택됩니다. 민족주의가 민족우월주의, 민족 팽창주의로 귀결된다는 사례를 인류에게 남기지요. 이 과정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끊임 없고 광범위한 대중 조작이 필수적으로 행해집니다. (keyword : 괴벨스)

포퍼는 인류가 배울 교훈을 여기서 찾습니다. 즉, 그 전지전능하다고 믿어져온 ‘영도자’ 또는 엘리트 집단이 맛이 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히틀러와 그 집단이 생생한 사례가 되거든요.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이 체제는 재앙이 되지요. 자신만 파멸하면 낫겠지만 따르는 집단, 주변국 백성들을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맞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포퍼는 ‘인간의 이성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명제를
찾아내고, 아테네 민주주의의 시조인 페리클레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서 다시 시작하며 묻습니다. 즉,
“우리는 최악을 면하기 위하여 어떻게 정치 체제를 조직할 것인가?”

긴 사유 끝에 포퍼가 도달한 체제는, 누구나 사회의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체제였습니다.
개체가 체제 비판을 해도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사회, 어떤 권력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그래서 구성원들끼리 갑론을박 치고 받아 조직의 의사 결정에 반영될 수 있다면,
최악은 면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사회를 그는 ‘열린 사회’라 이름한 것이지요. 유토피아가 구조적으로 불능이라면, 이것이 차선이 됩니다.

포퍼가 이렇게 점진적 사회 개조를 주장한 반면, 구조적으로 열린 사회가 되기 어려운 사회라면 답이 여전히 안 나오는 측면이 있습니다. 1960년대 하버마스와 벌였던 논쟁이 유명하다고 하는군요. (keyword : 위르겐 하버마스, 이성적 사회, 의사 소통)

어쨌든, 대립되는 개념인 ‘닫힌 사회’는, 인류가 수도 없이 많은 사례를 갖고 있습니다. 체제나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을 조금이라도 하면 몸이 성할 수 없는, 당장 불이익이 오는 사회지요. 중세의 교황 체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만 해도 조선시대에 왕정체제, 일제시대, 유신 정권, 전두환 정권 따위. 닫힌 사회는 대개 전체주의의 속성을 갖습니다.

전체주의에서 개인 하나하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도구가 되지요.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되어도 좋다”고 멀쩡하게 이야기하는 이 지금도 많습니다. 소수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고 집단주의, 획일주의가 특질이 되지요.

닫힌 사회가 정당화되는 조직도 있습니다. 기능상 전시 체제의 군대 조직이 그것이지요. 병사들끼리 토론해서 전투 방침을 건의하고 장교가 검토한다면, 이거 비효율적입니다. 빳빳한 상명하복, 까라면 까라, 사병이 똑똑하면 군대가 안돌아간다는 이야기의 근거가 됩니다. 그저 엘리트집단이 의사 결정하면 사병은 기능에 충실하는 것이 미덕이지요.

그 효율성을 높이 사서 사회 모든 분야에 군대 체제를 도입한 것이 군국전체주의입니다. 전 사회의 병영화, 일본 군국주의를 차별 없이 적용한 동네가 박정희 정권이었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20세기의 대부분 90여 년 간을 군국전체주의로 일관한 곳입니다. 그에 대립되는 열린 사회, 그 주요한 도구인 토론은 불필요할 뿐더러 일신의 화를 초래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재벌 그룹 대우와 현대의 해체, 몰락도 이 측면으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 제왕적 의사결정자인 그룹 총수는 신과 동격이었다는 것이지요.
돌이켜보면 차선을 찾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 이르기 위한 토론시스템은 기능하지 않았던 게지요. 님이나 어르신의 말씀을 감히 비판하거나 거스르면 당장 밥줄이 끊어지는, 이 사회에 권위주의가 뿌리 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리 길게 쓴 이유는, 조서닐보가 닫힌 사회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경로는 무수히 많겠지만, 그 신문의 속성, 이력, 현재의 능력을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고구마 줄기마냥 줄줄이 딸려 나옵니다.

2. 조서닐보가 꿈 꾸는 세상

어떤 절대 권력도 절대 부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권을 비판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 언론이구요.
정권과 언론이 밀월관계가 되어 서로 봐주면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지요. 그 언론이 맛이 간다면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언론을 비판하는 세력이필요하게 됩니다.
근데 그걸 정치권은 못합니다. 신세 망치려고? 적어도 이 한국사회는 그래 왔습니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언론을 비판해야 하는데, 시민단체 다수도 언론의 눈치를 보나 봅니다. 언론은 무소불위의 성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적어도 2년 전까지는. 그래서 언론 끼리의 비판, 언론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판의 존재가 절실했었지요.
근데 원체 오랫동안 닫힌 사회에서 살다 보니, 그거 힘든가 봅니다. 언론사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이는 소유주거든요. 그러기에 ‘족벌 언론’이란 표현이 쓰이고 있습니다.

님께서 참여하실 토론에서 반드시 나올 ‘안티조선의 부당성’을 설명할 논리는
“왜 하필 조서닐보인가?” 이거 정권을 비판하기에 꽤심죄가 적용된 것 아닌가? 따라서 안티조선에 참여하는 이는 현 정권의 나팔수 또는 홍위병일 것이다,
일 겁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언론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조서닐보는 언론이다, 따라서 조서닐보는 비판의 대상이다, 다른 언론도 문제가 많지만 조서닐보는 특히 연구 대상이다, 왜? 아래와 같다, 는 구조를 가지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정권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할 말은 하는 신문’ 매우 바람직하지요. 근데 그것이 사실에 기초했느냐, 어떤 의도이냐를 포함해서 그 경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비교적 합리적인 판단에 도달할 수 있지요. 근데 이 설명이 무지무지 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부분만 씁니다. 이것 역시 ‘딱지 붙이기’가 되는데 그 정합성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확장이 가능하다는 뜻.

2-1 조서닐보는 ‘민족 정론지’가 아닙니다.
조서닐보든 동아일보든 스스로 민족지라 일컫지요. 근데 한국 사회의 ‘주류’집단 중 친일 경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동네는 별 없다는 것이 제 인식입니다.
조서닐보가 그나마 ‘민족지’로 기능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좌익 계열 지식인들이 기자 역할을 할 때였고, 일제 말 방응모가 조서닐보를 인수한 후 지면은 지극히 낯뜨거울 정도로 일제에 부역했습니다. (자료는 얼마든지 참조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조서닐보는 정직하지 않은 것이지요.

한국 사회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갖습니다. 일제에 부역한 이들이 고스란히 해방정권에서 중책을 맡은 데에는 국내 지지기반이 부실한 이승만 정권의 필요, 미 군정의 극단적 반공 정책이 자생적 좌익 세력에 대한 탄압과 어울리고 6.25 전쟁을 겪으며 친일 세력이 다시 득세하고 민족주의 진영은 빨간 딱지가
붙여져 거세되는 경로를 밟습니다. (keyword : 태백산맥, 해방 전후사의 인식)

그 친일파에 기반한 정권의 수장인 이승만을 ‘국부’라 부르고,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일본군국주의를 충실히 이 땅에 심은 박정희를 아직까지도 신격화하는 신문이
조서닐보입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아라!)(조갑제)를 파시즘 계열로 비판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진중권)를 필독서로 추천하는 바, 조서닐보가 여하히 파시스트 노선과 일치하는지 명료한 논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요점은, 조선일보는 자신=엘리트가 이끄는 세상을 꿈 꾼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조서닐보나 박정희가 딱 들어맞는 의미의 파시스트라는 뜻은 아닙니다. 차이점도 꽤 되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유사파시즘, 하나의 변종이라 둡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의 박정희 비판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는 잘했지 않아?라는 분들이 많은데, 그와 관련한 새로운 인식은 여기 쟁점토론방에서 주제 검색을 하면 원 없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2-2 안보 상업주의, 지역 차별
빨갱이라면 이를 가는 분들이 많지요. 6.25전쟁을 거쳐 미소 냉전의 상징으로 한반도가 기능한 50년 간, 남북 모두 상대 체제에 동조한다는 딱지를 붙여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충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사상이 의심스럽다, 이 한 마디면 끝났지요.이건 지금도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keyword : 매카시즘, 국가보안법)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순서로 가면 갈수록 조서닐보는 안보를 팔아 신문 장사를 했다, 즉 영향력을 확대해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왜곡이나 오보, 때로 소설도 용인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김영삼정권의 대북정책이 냉탕과 열탕을 하염없이 오간 데에는 조서닐보의 공이 으뜸이지요. (keyword : 금강산 댐, 서울 불바다, 북한식량 군량미, 인공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북한을 대화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이들의 사상을 ‘검증’한다며 논쟁을 주도하거나 무대에서 끄집어내린 사례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keyword : 한완상, 이장희, 최장집, 황태연)

극단적인 반공을 추구하는 이 신문이 김대중 정권의 대북 포용 정책(일명 ‘햇볕정책)이 긍정적일 리 만무하지요. 존립 기반과 관계되는 문제거든요.
이 신문은 그래서 부시의 대북 강경 노선을 지지합니다. 저는 대북 포용 정책이 매우 논리적인 접근이라고 판단합니다만, 논리가 현실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반대 논리(?) 개발은 얼마든지 가능함을 이 신문은 몸으로 거의 매일 같이 보여주지요.

이것이 먹혀들게 하는 요인이 지역 차별 정서입니다. 지역 감정 또는 지역 차별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요. 근데 그리 말하며 차별을 조장하는 논법이 먹혀드는 오묘한 동네가 한국 사회입니다.
그 뿌리는 1970년대 초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 진영이 개발한 ‘빨간 딱지 붙이기’ 무공이라고 합니다.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김대중은 그 딱지를 붙이고 죽을 고비 몇 번 넘겼다지요.

정치인 김대중을 대립점(희생양)으로 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온 세력인 박정희와 공화당, 그 계보를 잇는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이
지속적으로 집권하는 동안, 조서닐보는 그 세력에 적극적으로 영합합니다. ‘전두환장군’을 ‘구국의 영웅’으로 찬양하고 1980년 광주 시민군을 ‘난동자’로 묘사하지요. (keyword : 5.18, 김대중 사회부장)

다른 신문이라고 달랐느냐? 그거이 조서닐보의 내공 수준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경지입니다. 그 하일라이트인 김영삼정권,
이른 바 문민정부 때 조서닐보는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능력까지 보여주지요. 조서닐보 출신 장관이 서너 명 생깁니다. (keyword : 김윤환, 최병렬,밤의 대통령)
그리고 노골적으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후보 대통령 만들기를 주도합니다. 신문들이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급이 다르다고 저는 씁니다.

경로야 어떻든 그 선거에서 김대중후보가 승리합니다. 이것은 조서닐보로서는 재앙이었을 터입니다. 그래서 일 년 정도 그 정권이 어떻게 나올까 탐색하다가,
정권의 핵심브레인으로 자리잡아가는 고려대 정치학 교수 최장집 당시 국가정책 자문위원장을 상대로 1998년 10월 ‘논문 사건’을 터뜨려 사상 검증을 시도합니다.
이 사건이 이 사이트 ‘우리모두’가 생기게 된 단초가 되지요.

그 이후는 반 김대중 정서에 기반한 한나라당과 조서닐보가 하염 없이 현 정권을 흔드는 기간을 거쳐 오늘에 이릅니다. 현 정권의 취약한 지지 기반, 위기 관리 능력 부재, 무능력이 때 맞춰 호응을 해 온 것으로 저는 봅니다.
문제는 그 세력의 왜곡에 기반한 부풀리기가 먹혀들었다는 데 있지요. 그 토대는 물론 이 땅의 ‘다수’입니다.

‘열린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그나마 이론적 이상향에 근접하게 하는 필수 하부구조는 ‘토론 시스템’이며 그 주요한 구성 요소는 ‘합리적 사고’입니다.
그런데 20세기 이 땅을 지배해 온 ‘닫힌 사회’는 주입식 교육(이거 조서닐보가 지지합니다.
열린 교육이 애들을 깡통으로 만든다고 하지요)을 통치 수단으로 삼아 왔습니다. 기본 토대가 부실한 게지요.

집단주의, 획일적 사고가 일상 구석구석에 배어 있습니다. 대학 서클 모임에서 사발주를 돌리고(직장에서는 폭탄주), 튀는 개체는 환영받지 못하고
아직 고등학생의 머리는 관리 대상이지요. 외양, 학벌, 출신 지역, 직장이 개체를 판단하는 우선적 기준이 됩니다. (keyword : 임지현, 일상적 파시즘)

그래서 저는 오늘 날 한국 사회 만큼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는 명제가 설명해주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주류(主流 ; main stream?)의 허위 의식이 되는 것이지요.

2-3 주류, 기득권, 가진 자
조서닐보는 이른 바 주류를 표방하는 신문입니다. 주류의 개념에 대해 설이 분분합니다만, 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논의의 큰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부류로 둡니다.
때로는 양적인 우세 때로는 질적인 우세를 나타내는 그룹이지요. 정치권으로는 한나라당, 지역으로는 영남, 서울에서는 강남, 경제권에서는 재벌그룹 또는 대기업 또는 경영층입니다.

위에 열거한 ‘주류’의 본질은 소수 집단이고 다수는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조서닐보는 주류를 표방 또는 지지 또는 영합함으로써, 그 신문을 구독하는 이로 하여금 주류에 편입되었다는 만족감 또는 환상을 충족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그 소수에 들어갔느냐 아니냐는 그 신문을 보는 것과는 무관한 현실이지요.

일례로, 이 사회의 ‘다수’는 노동자입니다만, 조서닐보가 노동자 또는 노조 및 노동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오만 논리(?)가 동원되어 거의 능멸하는 수준의 기사가 양산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노동자 ‘다수’가 조서닐보를 보는 모양이예요. 늦게나마 최근 민주노총이 안티조선을 표방했는데, ‘다수’가 호응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저는 조서닐보가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김대중’, ‘노조’, ‘북한정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단어들은 있는 그대로 가치중립이지요.
그 주체들의 행위에 따라 잘 하는 측면과 못 하는 측면을 때로 비판, 때로 지지할 일입니다. 경로와 논리에 따라 시각이 정해지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인데,
조서닐보는 시각이 선행되어 논리가 정해지는 매우 특이한 신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할 말은 하는 신문’이 아니라 ‘하고픈 말을 하는 신문’이라 표현합니다. 현 정권이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했지요. 저는 매우 바람직했다고 평가합니다.
적어도 정권과 언론이 사이 좋게 밀월관계가 되는 방향은 아니거든요. 이것은 조중동이 주장하는 ‘언론 탄압’ 또는 ‘길들이기’라는 논리가 자가당착임을 보여줍니다만, 여지껏 썼듯이 논리가 현실 세계를 온전히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닌 모양입니다. 그 우기기가 상당히 먹혀들거든요.

이제까지 되든 안되든 밑반찬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이 글 역시 비판적 인식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여기서 확장하여 위에 링크된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대하여’를 참조하십사 하고, 이 게시판(묻고답하기)의 글을 처음부터 개괄하시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그럼, 하실 토론 잘 하시고 다양한 인식으로 확장하시기 바랍니다. 내내 유쾌하시길~


Posted by taichiren
,
< 20031104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


아마도 조서일보 판매부수가 그닥 줄지는 않았을 겁니다.
말이나 글로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는 쉽지 않지요.
그런 측면에서 님의 지적이 옳다고 봅니다. 특히 온라인 중심 운동은 한계가 있을 겁니다.

이 게시판의 조회수가 얼마 되지 않아진 것은 까닭이 몇 있습니다.
안티조선이 여러 갈래로 분화한 것이지요.
조아세, 국민의 힘, 노사모, 깨손, 진보누리, 서프라이즈, 동프라이즈, 남프라이즈, 시대소리,...

분화한 동인은 여럿이 있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적는 것은 무망할 노릇이구요.
다만 님께서 의지를 갖는다면 찾아보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조선일보의 논조 변화는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을 듯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향력이 줄고 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이른바 의제선점능력 면에서, 조선일보와는 대치되는 논리를 공급하는 주체들이 많아졌거든요.
그 결과가 지난 대선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 때는 결집이 있었다는 소리이지요.

대선이 지나고 결집된 세력이 또 현실공간에서 분화를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리멸렬이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고민을 거치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고...
저는 아주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낙관 쪽입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 일부를 이런 운동이 공급했다고 보고 있구요.

제가 보는 안티조선 운동의 목표는 개인의 변화입니다.
각성한 개인들의 연대가 사회를 덩달아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 이들을 결집시킨 효과는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조선일보를 보고 있던 이들을 변화시키는 데는 효용이 덜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요즘 노동계가 들끓고 있지요. 조선일보가 노동운동을 보는 시각은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안티조선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노동자들이 조선일보를 봅니다.
개인이 깨닫지 못하는 한 판매부수의 변화는 요원하지요.
다만 꾸준히 조선일보의 부당함을 전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는 한,
그런 이들이 그 목소리를 접할 환경이 된다는 데 이런 운동의 의의는 있을 겁니다.




정말 궁금님이 쓰신 글입니다<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안티조선운동으로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줄었나요?>
>안티조선 게시판이 시들시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재작년인가? 한번 여기 들렀던 적이 있는데 지금처럼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다 아는 얘기 하는 동아리 분위기는 아니었던 듯도 한데..
>
>조회수도 운영진 이라고 올라있는 분들 계산하면 정말 몇이 안되네요.
>
>그렇다 치고..조선일보의 논조의 변화를 개인적으로 전혀 찾아보지 못하고 있는데요.
>
>그리고 잘 기억은 안나지만 김대중시절 보다 요즘 조선일보의 부수가 증가한 듯한 통계를 본적도 있고..
>
>아시는 분의 분석글을 읽고 싶네요.통계치 그대로 말이지요.
>
>이런 운동이 정말 현실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지도 궁금하구요.
>
>유행가처럼 인기 좀 끌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는 식이라면 너무 무의미한 시간소비라는 생각이 들어서요.여기서 지금 이 글을 올리는 것도..
Posted by taichiren
,
< 20030827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

엊그제 전철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FOCUS라는 신문을 읽었는데,
신은경씨가 촬영 도중 눈을 다쳐 마이너스까정 갔다가 거진 회복되었다는 기사에 눈이 갔다.
시력이 마이너스래. 야, 마이너스? 와, 참 나쁘구나, 흔히들 그리 이야기한다.

근데 거기다 대고
그거이 말이지, 수정체 뒤 각막 사이에 이미지가 형성되는 X축 좌표가 있다고 하고,
정상촛점 보다 왼쪽이면 그 X축 좌표의 비율(디옵터랜다)이 마이너스인 것이며
따라서 근시라면 몽창 마이너스인 거야. 시력측정표의 맨 꼭대기, 0 이하라는 뜻은 아닌 것이지...
라고 설명하면 대개 뜨악해한다. 그래 너 참 잘났구나.

그래서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걸 모른다고 그 이가 무식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위의 기사에서 기자가 잘 모르고 쓴 것인지 신은경씨가 실제 그리 말한 건지도 모른다. 중요하지도 않다.

***

어느 자리에서 바둑이 취미라고 하면 급수를 묻게끔 되어 있다.
2급이라고 하면 아마2급이냐, 프로2급이냐 되묻는 사람이 꼭 있다.

근데 거기다 대고
프로2급이라는 건 세상에 없다, 아마 단증은 한국기원만 인허하는 것이고
기원에서 아마추어 2급이면 대개 한국기원 2~3단에 해당한다.
프로는 입단대회를 통과한 전문기사를 통칭하며 초단부터 시작한다...
라고 설명하면 알아들은 시늉을 한다. 근데 그가 알아들은 걸까?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체계를 그가 몰랐다고 해서 그 이가 무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식이나 정보의 쪼가리 한 점을 내가 먼저 알았다는 정도이며
다른 면에서 그 이가 나보다 현재 해박할 가능성,
설령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리 될 가능성은 언제든 있는 거다.
내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이건 영원히 유효한 판단일 게다.

***

최근 들은 이야기.
사람을 처음 만나면 15초 이내에 좋든 나쁘든 그 이의 이미지가 형성되며
한번 창고에 저장된 그 호불호 인식은 그 이후 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긴 세월 지나며 형성했을 그 이의 가치관을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어찌 감지하여 판단에 이르고 고정상을 만든단 말인가.
근데 밥 먹듯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다.
일상은 내게 바삐 판단할 것을 채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이 되지 않으니까.

나는 인식의 나약함을 말하고 있다. 논리는 그 다음 문제이다.
시방 형성되어 있는 내 인식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
위에 읊은 마이너스, 프로2급 따위...따지고 들어가면 잘 모르면서 아는 체 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걸 인정하면 그 뒤 부터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서로 새로운 인식을 주고받으며 '모름'의 품질이 계속 달라지게 되는 거다.

그 문턱이 어렵다. 그래서 게시판에서 소통은 대개 일어나지 않는다.
대립되는 관점의 게시물은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대개는 자기 확신이며 보는 제3자를 위한 글이 되는 거다.

***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조서닐보,
대구에서 북한 기자들과 '인권단체'의 충돌이 있었댄다.
북한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전두환을 죽여야 광주시민이 산다" 시위가 있고
조중동 기자들이 각목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해보라...는 흥미로운 비유도 나왔다.

그걸 보며 나는 소통의 메카니즘을 생각한다.
대화는 의지를 갖고 있는 쌍방이 있어야 가능한 물건이다.
상대가 대화할 진정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 들지 않는 한, 대개는 소통 초입에서 갈라진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지 않는 것이다. 왜? 이 바쁜 세상에 왜 확실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쓰나?

문턱을 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나오는 결론인데
대개는 윽박지르기로 시작한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는데 문턱을 넘는 경우란 드물다.

그 시위의 효용이 있었을까? 나는 의문이다.
소통의 대상이 기자단일 수 없다. 이건 자명하다.
김정일정권이 일인일당 독재체제라는 건 모두 안다.
근데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이들은 나름의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거다.

1980년 나는 실상을 몰랐다, 소수 깨어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다들 그랬을 거다.
북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하여 그 인식이 깨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었을까?
이건 의문인 거다. 그 대다수는 북한에서 나오는 말을 믿지 않는 상태였을 거다.
나의 가치체계에서 내편(전두환)이 상대(북한 시위대) 보다는 믿음이 더 가기 때문이다.

문턱을 넘지 않고, 상대의 가치체계를 능멸해가며 무슨 소통을 한다는 건가?

그럼 해외의 시각을 염두에 둔 시위여야 말이 되는데,
김정일 체제의 실상을 모르는 동네가 어디 있겠냐. 그래서 뻘짓이라는 거다.

비록 뻘짓에 닭짓으로 판단하지만, 그 이들이 열정을 갖고 있다는 감은 온다.
사랑하기에 증오와 미움을 표출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그 사랑을 몸 담은 땅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 보다 더 쏟는다면 좋으련만. 가슴 아프다.

***

물 건너 "The Serenity Prayer (평온을 위한 기도?)"란 게 있다고 한다.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게 하는 용기를 주시고
그 두 가지 일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를 주소서...정도로 해석 되는갑다.

북한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의지를 발하고 진정을 전하여 소통 초입 문턱을 낮추는 일,
꼴통에게도 보석이 묻혀있으며 그가 언제든 '다메섹 가던 사울'이 되리라 여기며 손까락 운동을 하는 일
따위가 내게는 용기 되겠다. 당장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그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지혜는? 모르겠다.

Posted by taichiren
,
< 20031108 진보누리 사이트에 올리신 글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경제학은 참으로 재미있다. 근데, '좌파'가 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좀 피곤한 일이 되기 쉽다.
왜냐하면, 좌파는 우파의 경제학도 '이해'해야 할뿐만 아니라 우파의 경제학을 '넘어서는' 좀더 거시적이면서도 그것이 탁상공론이거나 관념적이지 않게끔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안목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판.적. 경제학>을 습득하는 과정은 어느 정도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경제학에 대한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는 약간 도식적이긴 하지만 다음의 범주들에 대한 개략적 학습이 요구된다.


1. 경제사
2. 또는 경제사상사 (역사적 맥락 파악 수준에서.)
3. 주류 경제학의 기초 이론 (거시경제학+미시경제학)
4.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기초 이론
5. 현대자본주의론 (자유주의 ->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 신자유주의로 변화하는 과정)
6. 최근 경제흐름에 대한 동향 파악 (세부적인 현안보다 1∼3년 단위의 동향)
7. '세부적인' 현안에 대한 별도의 연구 (가령, 재벌문제, 한국경제위기 원인, 부동산 대책 등
의 세부적인 현안들은 별도의 연구가 필요함. )

그리고 경제학의 학습방법으로 가장 권장하고 싶은 것은 <재미론>의 관점에서 접근하라는 것이다. 즉, 재미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그것을 먼저 공부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새롭고 낯선 개념과 용어들이 등장할 때 질려버리게 될 것이다. 해서, 학습방법론에 관해 권유하면 다음과 같다.

1. <재미론>의 관점에서 '주제' 선정을 하고 학습에 들어갈 것.
2. 세세한 개념의 암기보다는 <기본적인 논리구조>와 '맥락'을 파악하는 것에 주안점을 둘 것 (심지어 경제학자들도 세부적인 것을 암기하고 있지는 않음. 그런 것은 나중에 다시 책을 참고하면 됨. )
3. 가급적, 50~60% 정도는 이미 알고 있고, 40%~50% 정도가 '새로운' 내용으로 된 교재를 선택할 것
4. 한가지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지향하기 보다 <수박 겉핥기>방법을 사용할 것. (수박겉핥기처럼 계속 대충 대충 여러번 보다 보면, 나중에는 개념의 '용법'이 익숙해지고 기본적인 논리구조가 보이게 됨.
중요한 것은 '용법'이고, 암기가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임. )



[참고]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
주류경제학 교과서의 기본은 거시경제학(巨視經濟學)과 미시경제학(微時經濟學)으로 나뉨.
거시경제학은 '국민경제'를 단위로 분석하는 것임. 가령, 실업률, 국민수지, 재정, 경제성장 등의 범주가 여기에 해당됨.
반면, 미시경제학은 '개별 경제행위 주체'를 분석단위로 하는 것임.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가계(소비자), 기업(생산자), 정부라는 3주체가 여기에 해당함. 그래서 여기서 주로 배우는 것은 효용곡선(소비자), 생산함수(생산자), 수요-공급 곡선, 비용-효용 극대화와 관련된 이론 및 개념틀이다.
이런 개념틀을 접하면 그것을 일일이 암기할 필요는 없고, 기본적인 <사고방식>과 <논리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념틀이란 어차피 논리구조를 정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앞으로 권하게 될 책중에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교재는 '우선적'으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관점이나 내용도 몹시 알차고, 분량도 얇은 편이고, 그리고 가격도 일반 책 가격의 1/2∼1/3 수준이기 때문이다. 구입은 아무곳에서나 할 수 없고 교보문고에서 '불법유통'(?)되고 있는 것을 사거나, 거기에 없는 책은 대학로 방송대 본관 뒤에 있는 <동화서점>이라는 곳에 가면 살 수 있다. )


0. 학습전에 맛배기용 학습
『경제학개론』,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변형윤 외

* 위 책은 초보중의 초보를 위한 책, 경제사상사, 거시, 미시, 현대자본주의사까지를 아우르는 책임, 분량도 초보용으로 250페이지정도밖에 안되고 내용도 초보를 위한 내용임. 근데 내용은 아주 알참.


1. 경제사상사 (초급)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푸른나무, 유시민
『경제학사』,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변형윤 외
『경제사상사』,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권광식 외


1-1. 경제사상사 기타 (내용은 엉성하지만 봐서 나쁠 것은 없는 책들)
『경제학200년』, 새로운사람들, 김경훈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김영사, 토드 부크홀츠


2. 경제사 (현대자본주의 이전까지)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책벌레, 리오휴버먼 {<- 봉건제부터 1929년정도까지}
『경제사개설』,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윤영자 외 {<- 고대부터 현대자본주의까지}
『경제사 기초지식』, 중원문화, 김호균 엮음 {<- 봉건말기부터 자본주의 초기까지}
『경제사와 자본론』, 한울, 松尾太郞(송미태랑) 지음, 최규성 외 번역 {<- 고대부터 자본
주의 초기까지, 그러나 내용이 맑스주의 역사유물론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입각해서 몹시 알참, 그래서 강추(!!) }
『소유와 생산양식의 역사이론』, 비봉출판사, 芝原拓自(지원탁자) 지음, {<- 고대부터 자본주의 초기까지, 역사유물론의 기본 해석 첨가}



3. 주류 경제학의 기초 이론 (초급)
『스티글리츠의 경제학』, 한울, 조셉. E. 스티글리츠, (<== 미시, 거시가 통합된 책)
『스티글리츠의 거시경제학』, 한울, 조셉. E. 스티글리츠
『스티글리츠의 미시경제학』, 한울, 조셉. E. 스티글리츠

『맨큐의 경제학』, 교보문고, 그레고리 맨큐
『맨큐의 거시경제학』교보문고, 그레고리 맨큐
『맨큐의 미시경제학』, 교보문고, 그레고리 맨큐

* 스티글리츠는 '당대 최고의 공력'을 가진 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임. 우파라고 하기에는 너무 따뜻한 가슴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공력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좌/우의 합리적 핵심을 내면화하며 사유하는 경지에 오른 사람임. 또한, 이해수준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설명을 '아주 쉽게'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합리적 핵심만 술술~ 알아먹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그래서 강추(!!)함.

맨큐의 경제학은 불과 2~3년전에 미국경제학 교과서를 평정했다는 책임. 맨큐는 뉴케인즈언으로 분류되는 사람임. 맨큐의 경제학은 영어 원서 독해 능력이 있다면,
원서로 보는 것이 더 편할 것임. 원서로 보면 쉽게 이해가는 문장도 번역으로 보면 좀더 어렵게 되었다는 평.



4.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기초 이론 (초급)

『경제와 사회』,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김수행, 김기원 공저
『시장과 자본주의』,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김수행, 김기원 공저


4-1. 맑스주의 정치경제학 (중급 ??)

『한국사회와 자본론강의』중원, 황태연
『신정치경제학 개론』, 이론과실천, 김호균
『경제원론』, 풀빛, 平田靑明(평전청명) 지음, 강석규 옮김


*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쟁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와의 관계, 그리고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와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위에서 소개한 황태연, 김호균, 평전청명의 책은 맑스의 소유권 이론을 가장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는 책들이다. 김수행씨의 『정치경제학 원론』(한길사)는 그래서 일부러 뱄다. 내용도 초보가 보기에는 몹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관점도 그다지 올바르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5. 현대자본주의론 (신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초급 ?)

『현대자본주의론』,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김기원, 양우진 공저
『세계없는 세계화』, 시유시, 피터고원 지음, 홍수원 옮김
『투기자본과 미국의 패권』, 연구사, 이찬근 {<- 미국의 금융패권을 흥미진진하게 잘 정리, 그래서 강추(!!) }
『경제변동론』, 한국방송대학교출판부, 김수행, 김기원 공저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문화과학사, 강상구 저(민주노동당 연대사업담당) {<- 아마도 좌파학생운동권의 기본 교재로 쓰일 것으로 짐작됨. }



* 현대자본주의의 작동메커니즘은 단지 경제학적 현상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심화된 이해는 사민주의체제에 대한 성립과 위기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자유주의-사민주의(사회주의)-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이론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그
리고 또한 각 나라별로 특징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 그리고 참고로, 1929년 이후의 자본주의에 대한 정리된 '통사'는 몹시 드물다. 경제사로도 별로 없고, 역사로도 별로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은 자신이 직접 발로 이 책 저 책, 그리고 이 논문, 저 논문을 찾아야 하며 스스로 개념적 체계를 세우고, 자기 머리로 정리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6. 현대자본주의론 (중급 ?? )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두산동아, 필립 암스트롱 외, 김수행 역 {<- 초강추 (!!), 이윤압박설의 관점에서 쓰여진 책인데 나라별로 풍부한 사례와 데이터가 제시되고 있음. }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 당대, 전창환, 조영철 외, {<- 초강추(!!), 가장 깊이 있는 내공을 가진 글을 쓰는 분들임. 경제학의 분파중 제도주의 좌파에 해당하는 국내 소장파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제도경제연구회'의 연구저작중 하나}
『미국 자본주의 해부』, 풀빛, 김진방, 성낙선 외 (<- 역시 제도경제연구회 분들의 책)

『유럽자본주의 해부』, 풀빛, 김진방, 이상호 외 (<- 상동)

『위기 그리고 대전환』, 풀빛, 김균 외 (<- '제도경제연구회'의 한국경제 분석과 제언)
『한국경제 재생의 길은 있는가?』, 풀빛, 이병천 외, (<- 상동)


『위기와 조절』, 창작과비평사, 정명기 (<- 조절이론 관련 논문 모음집)
『대안없는 자본주의』, 한울, 요하힘 히르쉬, 정명기 옮김 (<- 조절이론 논문 모음집)

『현대자본주의의 미래와 조절이론』, 문원출판, 전창환 (<- 얇은 책이지만 본질을 꿰뚫는 아주 알찬 내용 )

『자본주의 조절이론』, 한길사, 미셀 아글리에타 (<- 아글리에타의 박사논문이며 동시에 '조절이론'의 시작을 알리는 책, 전후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책임. )

『자본의 세계화』, 한울, 프랑수와 세네
『금융의 세계화』, 한울, 프랑수와 세네


7. 에세이 (주류 경제학 기초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는 사람에게는 무난.)

『경제학의 향연』, 부키, 풀 크루그먼 (<- 1970년대∼1990년대 통화주의자(신자유주의자)와 케인즈주의자 사이의 논쟁을 서술한 책)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부키, 풀 크루그먼 (<- 상동, 크루그먼은 뉴 케인즈언으로 분류됨. )

『세계화와 그 불만』, (<- 스티글리츠의 IMF 비판 책, 스티글리츠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책)



* 아래 책은 경제학 책이라기보다는 사회학 또는 역사학 책에 가까운 책들, 그러나 현대자본주의론 이해에 필요한 내용들

『세계화와 복지국가』, 나남출판, 송호근 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나남출판, 안병영 외
『복지국가의 이해』, 고려대학교출판부, 고세훈,
『혼돈의 기원』, 이후, 로버트 브레너 (<-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불황의 원인을 맑스주의 경재학의 관점에서 심도있게 분석한 책)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한길사,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까치, 에릭 홉스봄 (<- 에릭 홉스봄의 역사씨리즈, 자본주의 초기부터 현대까지)



* 1929년 대공황 관련 연구 책

『대공황 전후 유럽경제』 동서문화사, 양동휴 외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양동휴 편저
『대공황의 세계』, 부키, 킨들버거


* 사회민주주의 관련 책들

『왜 다시 사회주의인가』, 당대, 송병헌 (<- 사회주의 운동사에서 주요 이론적 전개를 잘 요약. 맑스, 로자, 레닌, 베른슈타인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 )
『한국사회민주주의 선언』, 사회와 연대,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지음 (<- 사회민주주의의 나라별 역사적 사례를 잘 정리 )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주의 계획경제』, 아카넷, 한넬로레 하멜, 김호균 역, (<- 동독 계획경제와 서독 사회적 시장경제를 이론적.실증적으로 비교한 책, 몹시 재미있음. )
『사회민주주의 연구 1』, 새물결, 까갈리츠끼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 이병천 외 엮음 (<-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사를 다룸)
『민주사회주의의 딜레마』, 한울, 피터 게이, 김용권 옮김 (<- 독일 사민당 수정주의 이론가였던 베른슈타인의 전기, 혹은 평전)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백산서당, 아담 쉐보르스키 (<- 흔히 '쉐보르스키 딜레마'라고 불리는 사민주의의 딜레마(?)를 분석하고 있음. 쉐보르스키는 흔히 분석적 맑시즘으로 분류됨. )
『민주주의와 계급정치』, 백산서당, 김수진 역, (<- 유럽 계급정치와 민주주의의 변화 추적.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
『사회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 인간사랑, 주성수 (<- 노동자정당의 파워, 노동조합조직률 등이 사민주의와 경제민주주의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각종 통계자료로 제시)




* 《제도주의 경제학》이라는 흐름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은 다음의 교재를 참고.
제도주의 경제학은 우파적 흐름과 좌파적 흐름이 있는데, 20세기 후반 가장 강력한 '사회과학 혁명'(?)으로 불리며 급속하게 세를 확산하고 있는 중임. (참고로, 경제학적으로 나는 맑스주의에서 제도주의자로 '전향'했음. 물론, 나는 맑스의 역사유물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이 제도주의 흐름이라고 보고 있지만... )

『신제도이론』, 민음사, 송현호 {<- 특히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함 !! 구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대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 제본하면 됨.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임.}
『경제행위와 제도』, 스레인 에거트슨, 장현준 역,
『제도, 제도변화, 경제적 성과』, 더글러스 노스, 이병기 역

그밖에 위에서 추천했던 '제도경제연구회' 분들의 책을 봐도 되고, 약간 흐름이 다르긴 하지만 스티글리츠의 『시장으로 가는 길』(고급용?)이라는 책도 도움이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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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aichiren
,
20030812 진보누리


96년이다... 인근 학교에서 한 학생이 시위 도중 죽은 것에 대한 항의로 대학가가 들끓던 3월이었다.
이어지는 분신... 자살... 마침 그 해에 학부제가 시행되어 과학생회 기반이 무너졌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91년 강경대 타살 정국으로 회귀할 뻔 했다...
당시 우리과는 한총련 헤게모니 하에 있었고
가입한 학회 역시 87년에 NL운동을 목적으로 결성된 곳이었다.
오죽했겠는가? 유시민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로 입가심하고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로 시각 수정을 거치고 집회에서 노래, 구호 외우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한 한총련 출범식...
지금 생각하면 "한총련 진군가"와 "청년의 기상" 두 노래로 날밤 까며
4만 여명이 연출하는 라이터 불꽃의 물결이 나치 집회마냥 여겨지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 미성년인 어린애에게 혼연일체가 된 청년학생들의 스펙터클이
얼마나 장관이었을런지는 상상에 맡긴다. 말해 뭐해.. 뻑가지...

그 때 한총련에 대한 나의 첫번째 의혹도 같이 생겼다.
"근데 북한이 아니라 그 정권을 어떻게 믿나요?"
선배의 말씀, "왜 못 믿어?"
그 선배도 당시 달랑 2학년... 지금은 그냥 평범한 졸업생이다.

12월 노동법 날치기... 이어진 한보 사태 등등
연대 사태로 한총련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97년 상당히 뜨거웠다. 얼마나 뜨거웠냐면 학교 앞에 하루 건너 불바다 였다.
학생들만 뜨거웠겠는가.
청바지, 청카바, 운동화에 쇠파이프 두개를 이어 아예 쌍절곤을 만들어 휘두르는 '백골단' 아저씨 들...
스릴 만점이 따로 없다.
그 앞에서 목숨 걸고 대치해야 하는 짓거리가 뭐 그리 신났던지
3월 첫 폭투(폭력 투쟁) 직후 "앞으로 이런 투쟁이 매일 벌어질거야~~"라며
싱글대던 타과 선배를 보며 속으로 "이런 된장... 좋기도 하겠다..."

경찰도 심하긴 했다. 당시만 해도 집회는 곧 모종의 각오를 수반하는 것...
지하철을 넘나들며 집결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그냥 하염없이 가다가
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일제히 뛰쳐 나와 경찰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거나
골목 골목 짱박혀 행인인 양 하다가 깃발이 도로로 나서면 일제히 뛰쳐나가
구호 1분 외친 후 목숨 걸고 토끼던 때였다...
(당시엔 안전을 위해 선배 하나가 후배 하나를 에스코트하게 했는데 내가 맡은 후배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어 끌고 업고 하며 신촌 로타리에서 홍대까지 뺑이쳤던 기억도 난다...)

고구려 관련 사료를 들고 다니다가 북한 지도라고 끌려가 닭장차에서 기합받은 놈도 있고
불법 불심 검문이 횡행하여 전경들이 ㅋㄷ거리는 가운데 핸드백 안 생리대 까지 수색 받던 때다...
시국 또한 오죽했을까.. 영삼이 지지율 바닥... 온갖 비리가 다 드러나더니
심지어 여당 대선 후보가 대통령 허수아비를 패대기치는 퍼포먼스를 벌여야 했을 정도로
정권이 막 나가던 때였고 그것도 정권이라고 "경제 전선 이상없음" 옹호하던 조선일보만
믿다가 결국 암에푸 직격탄 맞던 그런 때였다.

한총련에 대한 2, 3번 째 회의는 거의 동시에 터졌다.
북한 인민들이 속절없이 굶어죽어가던 때...
기독교 학생회도 동포 돕기에 나서는 판에 우리가 안 나서랴...
선배들이 다 군대간 터라 동기와 나 2학년 둘이 나서서 일일호프=적자 를 의미하던 과 전통을 깨고 간만의 흑자를 올려 뿌듯해하던 그 때 한총련 중앙에서 날라온 문건...

"겨우 수십만 죽었는데 수백만 죽었다고 과장하여 북한 기아 위기를 과장하여
혐북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한겨레는 각성하라."

이런 씨발넘들... 수십만 밖에 안 죽었으니 김정일의 위대한 영도력을 찬양이라도 할 일이다..

그리고 이어진 이석 씨 치사사건... 사실 프락치가 많았던 건 사실이랜다.
"안 맞으면 돈 못 받아요~~"하며 때려 달라고 하던 애들이 꽤 있었단다.
김영삼 일당이 오죽하랴... 그렇다고 그걸 잡아다 패 죽였다....
상대가 프락치가 아니라 이완용이라도 그렇게 사적인 린치로 죽여서는 안된다.

그 섬뜩함...

덕분에 어느 선배와 싸웠다.
"한총련도 애도하고 있지 않느야. 언론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현상과 본질을 가리자."
개겼지, 뭐...
"한총련 중앙이 '프락치 심은 정권의 책임이고 한총련은 잘했다'라고 성명 냈어도 그런 이야기 했겠소~"

이러니 물러선다. 조직 논리가 이래서 무서운 거다.
(당시 당사자 및 책임자들은 모두 사법 처리를 받았다.

그 문제로 현재의 한총련도 폭력 집단이라고 할 일은 아니다.
실제 그 이후로 화염병, 쇠파이프 쓰고 사람 죽인 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당시 한총련 하던 애들은 지금 졸업했다.
폭력 행위와는 상관없는 요즘 애들가지고 폭력 집단이라고 해봐야 씨도 안 먹힌다.)

그 때부터 입대 전까지 주구장창 방황하고 입대하고 다시 제대....
죽어라 책 보고, 이런 저런 알바도 해보고, 이런저런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리고 복학~~
이런 환장하게 기쁠... 과 분위기가 뒤집혔다.
NL일색이던 학회에서 PD 좌파 계열 부총학생회장이 나오고
이듬해에는 NL계열 총학생회장도 나오고~
그 판국에도 과에선 10 여년 만에 좌파계 여성주의 학생회가 서고~

애들도 틀리다. 역시 인터넷 세대다.
우리 때야 관변 논리는 기본적으로 안 믿고 선배들 말이 진리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예전엔 "적들의 심장에 피의 불벼락을 내리"고 "붉은 기 휘날리며 씨를 말려 버리자"는 노래를 불렀는데 요새는 이쁘고 상식적인 노래를 주로 부른다.
기껏해야 초딩도 아는 뻐킹 유에스에이가 과격한 축에 속한다.
어느 선배가 은밀히 건넨 수령님의 영웅적 무용담을 담은 "항일 무투사"같은 황당한 책도 없다.
하기사, 시대가 어떤 시댄데~
이른바 아지 뜨는 법도 모른다. 그래도 이쁘기만 하다.
그딴거 배워봐야 선동질에 꾸역꾸역 집단 감동먹고 집단 꼴통 되기 바쁘지....

그렇다고 한총련 자체가 본질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아직도 주사파 꼴통들이 자신들의 북한 추종을 민족주의적 수사로 위장하여
암약하는 꼬락서니가 남아있다.

그래도 불패의 전대협 신화가 자랑하듯 "말잘듣는 놈 후려" 지들끼리 모여 의장으로 내정하고
전체 회의에서 만장일치 박수로 선출이 아닌 추대를 해버리는 북한식 풍습은 고쳐졌지만....

현재 한총련 내의 갈등이 어쩌구 하는데 아마 걔들 이럴거다.
"한총련 내의 사소한 의견 차이를 과장한 한총련 분열 책동이며 어쩌구~~"
막상 지들이 몰리면 "민족 반역자"니 "무원칙"이니 "부르주아 이념에 투항했"느니 거품 무는 것들이 운동권 짬밥만 믿고 아직도 군림하고 있다.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비이성적 비난이 아니라 비판을 하라. 애정없는 비판은 비난이다~~"

어절씨구....
그 논리대로라면 저희들도 부시에 대한 애정이 있어 비판을 하거나 애정없는 '비이성적' 비난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게다.
애정없어도 비판은 할 수 있는 거다.

97년에는 더 엽기적인 "매맞는 아내" 버젼도 있었다.
한총련= 매맞는 아내... 그래도 우리 안식구인데 우리마저 때리면 어떻하냐~~ 징징....

미친 것... 누가 쥐어 패자고 했는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해야지
우리 마눌... 한총련~~ 마니 아프지? 호~ 호~~ 삽질들 하고 있다...
쟤들이 이렇게 촌스럽다.

(촌스럽지만 알아먹기 쉬워 통하는 면도 있다.예컨데 PD 좌파 언어는 화려하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주의 대학혁명~~" "혁명의 시편을 노래하라" "파괴된 것에 대한 파괴, 거부된 것에 대한 거부" 어쩌구~ 이런 수사보다는
"함흥가서 냉면먹고 평양색시에게 장가가자~~"는 유치한 구호가 더 잘먹히는 법이다.)

한총련 일부세력의 과도한 발언권으로 그 바닥이 아직 이 모양이지만
현 학생운동권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들을 그것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이거야 말로 쥐새끼 잡으려고 63빌딩 태우는 짓이다.
한총련에 우호적인 애들 중 저런 꼴통 주사파가 얼마나 될까?
걔들은 대부분이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이루겠다고 나서는 애들이다.
얘들에게 "주사파 또라이들, 뒈져라!!" 해보라. 아마 대부분이 이럴게다.
"난 김정일이 싫은데 나더러 주사파라고 하는군... 역시 수구들의 주사파 운운하는
공세는 순 개구라야~~투쟁~~!!"

박홍의 주사파 발언이 왜 마녀 사냥이었겠는가? 주사파가 없는데 있다고 해서가 아니다.
그 안의 극소수 주사파들을 전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시민운동 심지어 정부와 정당에까지 확대시켜
온 나라가 김일성 민족이 된 양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상식적 보수주의자들마저 "극우 꼴통, 조갑제 기쁨조"라고 몰아쳐 보라.
그들이 "아~~ 반성하겠사와요~~" 눈물같은 닭똥을 떨구며 회개할까?
오히려 자기들 옹호하는 극우 꼴통 품으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빌어먹을 사태가 벌어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다수의 민족민주주의적 NL 청년들을 전부 주사파로 몰아붙여
애들은 애들데로 누명을 씌우고 주사파는 주사파대로 그 안에 묻혀 헛소리를 삐약거리며
탄압받는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공동 운명체로 만들어버렸다.

얘들은 주사 꼴통으로부터 분리하여 상식적 범주로 끌어들일 대상이지
"이 주사파 개 빨갱이 새끼들!!!" 이라고 윽박질러 주사파가 암약하는 아지트로
몰아넣을 애들이 아니다.

21세기에 주사파가 발흥하는 것....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을 배제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과 같은 탄압으로 몰아낼 수 있는게 아니다.
전두환 시절에 잡아다가 발가벗시고 물고문을 해도 오히려 번창했던 애들이다.
오히려 "고문 피해자". "국보법의 희생자"로 대중을 설렁설렁 속여 넘겨 혁명 투사 행세하던 애들이다.

차라리 한총련을 합법화시키고 주사파들에게 덧 씌워진 '수난 예수'의 아우라를 걷어내라.
그리고 백분 토론에 정식으로 초대해라.
"국보법으로 절대 안 걸리니까 김정일 만세든 뭐든 맘대로 말하세요.
그래, 김정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새내기용 노래책에 별 볼일 없는 보천보 전투를 찬양하는 노래를 왜 넣었나요?
북한 핵무장이 과연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기서 헛소리하며 말 돌리면 "비겁한 새끼들"이 되는 거고
구라까면 "비겁"한 것도 모자라 북측 장군님의 진노를 사게 되고 (얘들 이거에 대한 공포심있다.)
솔직히 대답하면 우하하하 우습다~~ 꼴통으로 청사에 길이 남게 되는 거다.

나도 그랬지만 한국 입시 교육이 시대추세에 사맞디 아니할쎄
대학교 1학년의 의식 수준이란게 아직 그런 걸 잘 분간하기 힘들다.
이걸 분간하게 해주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해대는 꼬라지를 보자.

정부는 당장 몰리니까 한총련을 조져 수세국면 타개하겠다고 엄살...
야당은 이 때문에 장관을 해임하자는 비정상적 오버질....
총리는 미군 관계자 불러 "죄송하다"고 밥까지 대접하며 애교...
이러니 한총련 애들이 수긍을 하겠는가?
주사파라면 치가 떨리는 나조차도 한총련을 옹호하게 만드는 이 오버의 극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미군을 팼나? 왜 장관을 자르고 애들을 수십명 감방에 쳐넣고 밥을 사먹여가면 아부를 해야하나?
아~~ 미국이 힘이 세서? 현실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보기에 영판 좋지가 않다.
이완용이라고 일본이 마냥 좋아서 그런게 아니다.
현실, 현실 하다보니 러시아보단 일본에게 먹히자고 그 오버질을 한거다.

작년 총리가 여중생 부모를 불러 위로했단 이야기, 미군 고압선에 팔다리 잘린
전동록씨 빈소에 화환 하나라도 보냈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봤다.
기지에 학생들이 난입해 장갑차를 몇 분 점거하는 천인 공노할 사태에
밥을 사먹이고 장관을 자르자고 난리치는 이 짓거리의 반에 반만 했어도
작년처럼 촛불시위가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미군의 일방적 수사를 멀건히 구경만하다가 일이 커지니 허둥대고
언론이랍시고 제 나라 국민이야 죽건 말건 수개월간 쌩까다가 역시 일커지니까
그제서야 "할만큼 했다~ 조용해라 (미군은 몰라도 니 새끼들은 할만큼 안했다. 닥쳐라) "
윽박지르고 자빠졌고.......

이 따위 행태에 이런 식의 대응으로 한총련을 정상화 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한총련은 백날 천날 주사파 입김을 못 벗어난다.
잡아다 총살을 시켜봐라. 걔들이 반성하나.

이 나라는 왜 한총련에 반대하는 나같은 사람마저
한총련을 옹호할 수 밖에 없는 엿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일까?
하기사 지금까지 해 온 짓거리가 늘 그랬었다.
잘 하는 짓이다.
계속 그래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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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논평을 첨부합니다..


[민주노동당 논평] 한총련은 합법화되어야 한다.


정부가 지난 7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경기도 포천 주한미군 사격훈련장 진입 시위에 대해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며 한총련의 합법화를 재검토키로 한 것은 또 한번 자가당착에 빠진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과 우리 사회 일각의 보수강경세력들이 사안의 본질은 헤아리지 않고 연일 한총련을 불법·폭력 집단으로 매도하며 정부의 강경대응을 부추기는 것은 또 다른 색깔공세에 다름 아니다.

이번 시위에 나선 학생들이 선제공격을 위해 신설된 '스트라이커 부대'가 첫 훈련지로 한국을 선택한 것은 한반도가 그 첫 투입장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명백한 전쟁훈련이기 때문에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군훈련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또한 아무리 사격훈련장에서 이루어진 시위라 하더라도 맨몸에 평화적으로 진행된 것을 과격과 폭력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흐리는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발생한 주한미군 범죄는 한국 재판에서 단 한 건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범죄에 대해 지금껏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범죄도 아닌 시위에 대해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 정부에게 엄정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오만함과 적반하장의 극치이며, 명백한 '내정간섭'이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신속하게 미국 정부에게 사과하는 것은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굴욕외교'로 강력히 규탄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게 한반도 전쟁위협 중단을 촉구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특단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신속하게 한총련 합법화를 추진하여 '시위'와 '탄압'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아울러 한총련은 국민앞에 밝힌 대로, 한총련 시위에 대한 국민여론에 귀 기울여 감안할 것이 있다면 적극 감안하고, 항상 국민의 성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해 나가길 바란다.<끝>

민주노동당 대변인 이 상 현


[사회당 논평] 정부는 한반도 평화 투쟁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
- 미군훈련장 기습시위를 빙자한 정부의 한총련 탄압에 부쳐 -

정부는 지난 7일 한총련 소속 학생이 벌인 미국의 신속기동여단, 즉 '스트라이커' 부대의 훈련장에서의 시위 빌미삼아 시위 참가자 전원을 구속한데 이어 9일 오전에는 이에 항의하여 연행된 학생들을 태운 호송 버스 앞에 드러누워 농성을 벌인 학생 전원을 연행하는 등 이번 사태에 대해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의 신속기동여단, 일명 '스트라이커' 부대는 신속하게 분쟁지역에 투입, 임무를 수행할 목적으로 창설된 실전용 전투부대이다. 이 전투부대가 창설되자 마자 '첫' 해외훈련지로 삼은 것이 바로 우리나라이다. 이는 바로 언제든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미국의 의지를 드러내는 명백한 전쟁위협이며, 따라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실질적 도발행위이다.

우리당은 이런한 미국의 명백한 전쟁위협에 맞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투쟁한 한총련 학생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전한다. 아울러 초강경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와 강경탄압을 부추기고 있는 보수 우익 언론에게 대체 어느나라 정부이고 언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당은 이번 사태를 한총련 합법화와 연결시키려는 비민주적 작태에 대해서도 규탄한다. 한총련 합법화는 조건부 거래를 통해서가 아니라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확립 차원에서 조건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여 탄압을 일삼은 법적 근거가 되고 있는 반민주 악법인 국가보안법 또한 철폐되어야 한다.

우리당은 정전협정 체결 50주년을 맞아 지난 50년 동안 항시적인 전쟁위기에 시달려온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힘차게 투쟁해 왔다. 전쟁은 가진자들과 지배자들, 제국주의자들의 배만 불릴 뿐, 노동자-민중에게는 죽음을 가져다줄 뿐이다. 우리당은 이런 전쟁을 한반도에서 일으키려 하는 모든 세력에 반대하며 노동자-민중의 힘으로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 투쟁할 것이다.

2003년 8월 11일
사회당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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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6 진보누리 사이트에 올리신 글>


오늘날 우리는 행동이나 사고의 합당한 기준을 놓고 고민한다. 개인적인 윤리 문제 부터 사회생활의 행동규범까지 그리고 나아가서 정치 경제적 차원에서 사회의 공동관리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행동기준은 여러가지로 많은 도전을 주는 주제가 아닐수 없다. 개개인의 생물학적 사회적 개성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현대사회는 사상, 이념, 지식이 학술적으로 전문화되고 분화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 환경도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행동규범의 근거로써 인간 개인의 표준적 정체성을 크게 두가지 면에서 찾는다. 그것은 바로 평균인과 상식이다.

평균인은 무엇인가? 평균인은 (homme moyen) 통계적 인간을 말하는 것으로 정치 사회 경제에서 수리적 인간측정의 기본이 되는 개념이다. 영어로는 Average Person 이라고도 한다.

평균인의 개념을 알려면 먼저 평균의 개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평균을 쉽게 Average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평균에는 세가지 개념이 있다. Average, Medium, Mean 이 바로 그 개념들이다. 그런데 평균인은 정규분포 즉 Normal Distribution에 따른 Mean에 의해 구해진 평균수치의 인간을 말하는 것으로 정확히 말하자면 average person 보다는 mean person 이 옳은 영어 표현일 것이다. 19세기 초 벨기에의 천문 통계학자였던 케틀레가 선배 천문학자 가우스의 정규분포 곡선 즉 종형분포도의 표준편차를 토대로 인간의 신체 사이즈를 나이와 인종 성별의 평균으로 구분해 비만지수를 창시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종형분포도는 오늘날 수능시험이 끝난뒤 신문에 나오는 통계 곡선으로 가운데 평균 부분을 중심으로 볼록하게 모자 혹은 종 모양을 그리는 곡선을 말한다. 또 옛날에만 해도 동네 목욕탕에 가면 흔히 보는 체중계 저울에 몸무게와 체중의 상관관계가 비교표로 나와 있는데 이것도 케틀레의 평균인 지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케틀레의 비만 지수는 개인의 건강 측정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케틀레는 통계학자였지만 자신이 창시한 평균인의 개념을 사회학에 응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19세기 자연법 사조의 영향을 받은 케틀레는 평균개체야 말로 그 군체의 진선미를 대표하는 최고의 표상으로 생각했다. 케틀레의 이 낭만적인 사고는 20세기 들어와서 좀더 복잡하고 세분된 개념으로 확장되어 권력이 좀더 영악하게 사회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주요수단이 되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물건하나를 만들어 팔때 예를 들어 타깃 소비자 계층이 20대라면 기업은 20대 평균 치수에 따라 물건의 사이즈를 정하고 20대 소비자 계층의 구매력과 머릿수를 계산해 수익을 예상하거나 생산 시설투자를 결정한다. 상품을 생산할때 사용되는 테일러 모델이나 생산공정 관리도 평균인에 입각한 노동자의 생산능력을 전제로 한다. 나아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거나 구 소련이 생필품이나 빵을 배급할때도 평균인의 소비량이 배급량을 결정하는 통계 지수가 될만큼 평균인은 현대사회에서 체제를 초월한 기본개념이다.

그러나 평균인은 물리적 개념이지 관념적 개념은 아니다.

케틀레는 평균인이 최고의 진선미를 증보하는 자연의 정화라고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인류보다 훨씬 먼저 지구상에 서식하다 멸종했던 모든 생물 개체군의 평균도 전부 자연의 정화이고 진선미였을 것이다. 사실 케틀레는 평균인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물리적 사회법칙을 찾아보려고 했고 상당부분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다. 분명 평균은 현상에 의한 인과나 개연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 개념의 가장큰 단점이자 장점은 이것이 순수 통계적 관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데 있다. 통계의 장점이 운동 경향성의 측정을 통한 미래 예측에 있다면 단점은 인간과 사회의 유기적 운동 즉 아메바 같이 호흡하며 확장 변환하는 인간의식과 사회의 불확정성을 선형의 기하로 밖에 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들쭉 날쑥한 데이터의 중간점을 연결해 직선처리하는 것. 그것이 통계적 평균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통계처리가 가공될수록 단순화되고 직선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우기 큰 문제는 사회 정치 의식으로 치환했을 때 평균인적 사고는 개체적으로 피동적인 자아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즉 평균인은 분명 경제현상과 관련해서는 의미있는 수치를 제공하지만 사회의 가치규범을 추구하는 정치적 시각에서 보자면 능동적 주체가 아닌 수동적 군체의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식인은 누구일까?

상식인은 간단이 말하면 의식을 가진 평균인이다. 영미권에서는 상식인을 OPRP 라고 하는데 <합리적 신중함을 가진 보통사람- Ordinary Person with Reasonable Prudence>의 준말이다. 여기서 키워드는 가치 중립어인 보통사람이 아니라 <이성적 신중함>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Reasonable Prudence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이성적 혹은 합리적 신중함- RP 는 상당이 범위가 넓은 개념이다. 이는 개인의 도덕에서 부터 법적인 행동기준은 물론 사회와 정치적 의식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사실 유럽에서 Reasonable Jurisprudence의 개념을 처음 체계화한 사람은 헤겔로 신학자이자 법학자기도 했던 그는 개인의 동기와 의식 그리고 행동등은 모두 우주의식이 자기를 실현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으며 인간의 핵심본체는 이성(Reason)이라고 설파했다. 오늘날 시각으로 보자면 지독한 국가주의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지만 그는 법은 객체화된 우주의식이며 이 의식은 국가의 사법활동을 통해 이성/합리성(Reason)과 보편성을 구현한다고 믿었다. 대륙계 법리 전통이 영미권의 개인주의와 결합해 정착한 것이 바로 Reasonable Prudence의 개념이다.

상식은 사회정치적 의식을 말한다.
혹자는 상식을 논하면 Common Sense를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부터 300년전 토머스 페인이 처음 사용한 Common Sense라는 책은 상식에 대한 어떤 명확한 철학적 관념적 정의도 주지 않는다. 물론 수단이 목적을 합리화할수 없다는 잠언이 나오긴 하지만 페인이 독창적으로 말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왜 영국 왕실의 신대륙 지배가 잘못된 것이고 왜 왕정제도가 낙후된 것이며 왜 미국이 독립해야 하는가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토머스 페인은 미국이 독립하는 것이 바로 상식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즉 페인의 <상식>은 300년전 뉴잉글랜드 지식인들이 공감했던 특정 사회 정치적 규범이었던 것이다.

경제가 평균인의 개념을 중시하는 반면, 운용하는 반면 법과 정치는 상식인을 주목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법적인 문제로 변호사를 찾게되면 관련법에 관한 질문을 하지만 변호사는 오히려 내방자에게 팩트를 물어볼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법이 사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따라 법을 적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법적으로 양편 주장에 전부 일정부분 장점이 없는 경우가 드믈다. 그럴경우 설득력이 관건인데 그 설득의 과정이 바로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법조문을 구체적이고 복잡한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이며 이를 <법정심리- 즉 Jurisprudence>라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이 법정심리의 능력마저 시장원리에 좌우되는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는 모순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심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식이다. < 길거리에 떨어진 새끼줄을 집에 가져온것 뿐인데 알고보니 옆집 황소가 딸려 왔더라>는 말을 보통사람은 믿을수 있을까?

정치의 경우 유권자의 상식에 호소해 선거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기본이다. 87년 대선을 전후해 노태우 시절 <보통사람>이라는 말이 남발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겠다는 신군부의 말장난 이었지만 저 18세기 낭만주의 성속투쟁의 유물인 이른바 < 범인들이여! 그대에게 축복이 있도다> 는 Blessed Mediocre ( 범인 축복론)을 깔고 당시 기득권 질서에서 철저이 소외되던 다수를 겨냥했던 나름대로 치밀히 계산된 프로파간다였다. 물론 신군부는 <보통사람>과 거리가 먼 계층이었고 당연이 <보통사람>을 외쳤지만 유권자를 <능동적인 상식인>이 아닌 <수동적인 평균인> 프로파일로 상정한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그러나 상식을 외면하는 정치모순은 신군부가 역사적으로 심판받은 지금도 아직 없어지지 않은 것 같다. < 정치 하려다 보니 필요해서 받았다>. <우리는 좀 덜 받았다...1/10 아니면 물러난다..> 는 식의 부패 합리화나 <경쟁당은 특정지역만 위한 정치를 하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 는 식의 지역 패권주의론은 모두 유권자의 상식에 호소하는 형식이면서도 정작 그 메시지는 정치적 패배의식을 조장하고 이에 편승해 유권자의 상식을 정파이익에 짜깁기하는 퇴행적 조작이 아닌가? 상식에 호소하면서도 상식을 배반하는 정치의 변명이 아닐수 없다.

상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 이유는 사회가 변하기 때문이다. 상식이 사회를 변하게 만들기도 하니 양자는 상호 역동적 관계다. 정치건 사회건 법이건 도덕이건 모든 분야에서 상식 즉 보통사람의 합리적 신중함을 담보로한 가치판단 기준은 역사적으로 변해왔으며 지금 이순간도 변하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한국에서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면서 독재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지식인들도 있었다. 지금은 더이상 그 누구도 독재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여자는 얌전해야 하고 무조건 남자에 순종해야 한다는 이른바 여필종부의 사상도 사라진 것들의 일부가 된 느낌이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젊은 사람들의 언어와 의식은 장유유서나 가족주의의 인습을 상당부분 극복했다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상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나 계급문제 (쉽게말해 빈부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상식이 정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희망은 이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상식은 분명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주의로 소모적 논쟁을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 기성 정치권은 개혁의 담지자로써 의지와 능력의 한계를 보였으며 오히려 다음시대의 정치아젠다인 빈부문제는 계급정당의 본격적 활동을 통해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 소비에트식 국가 독점 자본주의는 평등에 초점을 마추다 인격 존중의 가치와 조화하는데 실패했지만 미국식 금융 독점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잃고 점차 야만과 폭력에 가까와지고 있다는 것. 노동자의 연이은 분신이나 비정규직, 서민 생활고, 극단적인 빈부격차의 심화등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풀어가야할 진정한 정치적 아젠다라는 것 등이 모두 우리 시대가 고려해야할 상식이다. 그리고 진보적 인간은 그같은 시대의 정치적 상식을 타인보다 조금 먼저 감지하거나 체득한 사람들이 아닐까?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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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17 진보누리 사이트에 올리신 글>


1. 여왕의 재판

마르크스가 사망한 뒤 1년뒤, 그리고 파비안 협회가 결성된 1884년,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명의 어부가 극악 범죄로 기소되어 왕실 재판대에 서게 된다. 살인에 인육 마저 나눠먹은 엽기적인 사건 이었다. 희생자의 이름은 리차드 파커, 남자, 사망 당시 15세를 조금 넘긴 소년으로 피살당시 마지막 직책은 고기잡이배의 선실사환 이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죄로 어린 나이에 자기 밥벌이를 해야 했던 이 불쌍한 소년을 죽이고 그 고기 까지 먹은 혐의로 기소된 <극악범>들은 누구였나?

사건기록은 두명이 공모해 한명이 죽이고 세명이 고기를 나누어 먹은 것으로 되어 있다. 살인 공모를 주도하고 사실상 피해자를 살해한 주범은 이름은 토마스 두들리, 살인공모에 주도하고 고기를 먹은 공범은 에드윈 스테픈스 그리고 살인음모는 거부했지만 인육을 나눠먹은 목격자 부룩스. 세사람 다 장년으로 직업은 어부, 피살자와 같은 어선에서 일했던 선원 들이었다.

이름하여 <레지나 v. 두들리> 케이스, 바로 <여왕과 어부>의 재판사건이다. <레지나 Regina>는 <거룩한 여왕>을 뜻하는 말로 이들을 기소한 사람이 바로 영국의 당대 최고의 통치권자이던 빅토리아 여왕이었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왕실 재판에 오게된 이유는 원래 강력 범죄는 왕실에서 재판하던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법의 발전은 중세부터 사회적 평화를 저해하는 사건이나 이슈에 대한 권력의 심판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그이유는 <왕관>에 < 영토와 백성들의 평화를 보장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형법은 검사가 용의자나 범인의 유죄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일하는데 여기서 검사는 사회나 국가 권력을 위임받아 대표하게 된다. 즉 형법 재판에서 피고의 상대는 피해자가 아니며 국가나 사회전체가 피해자를 기소한다.

당시 보통 살인죄의 경우 지방관이나 귀족, 성직자들이 재판을 하기도 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재판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왕실 재판으로 심리해줄 것을 청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는 왕실에서 여는 Royal Court 일명 King's Bench의 재판은 국가에 포고령이 내려져 심리절차나 내용이 개방됨으로써 사람들의 여론이 공정한 지렛대 역할을 했으며 최고의 명 재판관들이 왕을 대신해서 벤치에 앉게되기 때문이다. 즉 왕실 재판은 지방의 인맥이나 권력이 개입되는 지방 재판보다 훨씬 편견이나 이해 관계에 자유로운 평결을 내렸으며 귀족이 연루된 사건에서 평민들에게 <상대적으로 공정한> 절차를 보장했던 것이다.


2. 어부의 비극

날씨 좋은 리버풀을 출항할때 만 해도 피해자와 범인들은 자신들 앞에 다가올 잔인한 운명의 시련을 전혀 알지 못했다. 소년 파커는 분명 선장의 호령속에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잔심부름을 했을 것이고 범인 두들리와 스테픈스도 그 모습에 미소지으며 힘차게 돛을 올렸으리라. 그러나 배가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 무렵 이들은 엄청난 폭풍을 만난다. 배가 파선되면서 선원 대부분은 몰살, 바다에 수장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피해자 파커, 가해자 두들리, 스테픈스, 그리고 목격자인 부룩스였다. 대략 희망봉에서 1600마일 떨어진 해상위에서 4인은 표류하는데 운좋게 탑승한 구명 구명보트에 먹을 것이라고는 오직 몇개의 마른 무우뿌리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한 이들은 또 다시 절망에 빠진다.

표류 4일째 부터 이들은 바다거북을 잡아 날로 먹으면서 버티게 되는데 그나마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식수였다. 그릇도 물도 없는 상황에서 마실 물이라고는 오직 바닷물이지만 조갈을 부추기는 바닷물은 마시는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이들 어부들은 잘 알고 있었다.

표류 17일째 두들리가 스테픈스와 부룩스를 불렀다. '....이대로 있으면 모두 굶어 죽는다....기다리는 가족이 있는데 바다에서 죽을수는 없다..... 우리중 하나가 죽어 그 피와 고기를 먹을수 있다면....갈증과 허기를 조금더 버틸수 있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제일 죽을 가능성이 큰 사람이 바로 저 소년 파커다..... 봐라. 이미 기진해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어차피 내버려 둬도 그는 죽는다. 차라리 그를 죽이고 우리가 산다면...' 이상은 두들리 본인의 자백과 목격자들의 진술로 확인된 법정기록이다. 다른 두사람 - 스티픈스와 부룩스-은 두들리의 이같은 말에 놀라며 본능적으로 구명보트 저쪽에 누워있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가련한 소년 파커는 이미 허약해 질대로 허약해 져서 말할 기운도 움질일 기운도 없었으며 잠자는 듯한 상태에서 가끔 신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 시점에서 스티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들리의 말에 동의했다. 그는 만일 필요하다면 두들리를 도와 소년을 죽이겠다고 까지 했다. 반면에 부룩스는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반대했다. 아무리 굶어죽어도 사람을 죽이고 그 고기를 먹을 바에야 차라리 이대로 죽는편이 낫다고. 아직은 버틸힘이 조금이라도 있으니 구조를 기다려 보자고..두들리는 두사람에게 생각해 보라고 말한 것으로 이날 대화는 끝난다.

표류 20일째... 먹을 것. 마실물. 아무것도 없이 3일이 또 지나갔다. 구조선은 나타나지 않고 섬하나 안보이는 망망한 바다만이 계속되는 상태였다. 허기에 지친 부룩스가 잠든 것을 확인한 두들리가 조용이 스티픈스를 깨웠다. '...지금 결행하자. 부룩스가 일어나기 전에....' 두들리의 말에 동의했던 스티픈스 였지만 막상 사람을 죽이기는 어려웠고 그역시 일어날 기운도 없었다. 스테픈스가 일어나는 동안 두들리는 혼자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 파커는 이미 탈진이 극에 달해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두들리가 이름을 부르며 깨웠지만 눈조차 뜨지 못했다. 마침내 두들리는 하늘에 '....신이여 나를 용서하소서...' 라는 마지막 기도를 올린뒤 울면서 소년의 멱을 땃다. 이미 탈진한 피해자는 비명도, 반항도 없었다고 했다.

표류 24일째..세사람은 살아남았다. 두들리가 가져온 <고기와 물>이 스테픈스는 물론 부룩스도 살렸던 것이다. 소년의 살해를 거부했던 부룩스 였지만 피해자가 죽자 아무말없이 그 고기를 먹었다. 한 인간의 육신을 식량삼아서 3명의 다른인간이 버틸수 있던 기간은 4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죽지 않았고 허기와 갈증을 해소할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굶주림과 바다.

표류 29일째.. 영국의 한 상선이 아프리카 바다에서 표류하던 작은 구명 보트를 발견한다. 구명보트안에는 세명의 탈진한 인간들이 널부러져 가는 숨결로 호흡하고 있었고 소년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의 엄청나게 훼손된 시신도 함께 있었다. 이들을 발견하고 구조한 배의 선원들은 만일 하루만 늦었어도 이들은 필시 모두 죽었을 것 이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세사람은 영국으로 송환되었고 런던 도착 즉시 감옥에 수감, 살인혐의로 기소되었다. 사람고기를 먹은 부분은 필요성이 인정되 기소되지 않았지만 살인 부분은 기소되어 주범 두들리와 공범 스테픈스라는 두 사람의 어부는 여왕의 법정에(Queen's Bench) 서게 되었던 것이다.


3. 소송의 경과

우선 당시의 법부터 소개하자면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인 사람은 살인죄가 (Murder )적용되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관례였다.

의도적이라 함은 부주의나 실수로 인한 과실치사와 구분되는 것으로 형사적 의미의 처벌이 가능한 마음의 상태를 (Mens Rea) 말하는 것이다. 사건의 내용상 분명 사람을 죽이고저 하는 의도가 있었다. 왕실재판의 원심을 주재한 허들스턴 경은 <배고픔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뺏는 것은 변명이 안된다. 정당방위의 경우를 제외하고 사람은 자기가 살기위해 타인을 죽여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 Hunger is no excuse for taking the life of another person. Except in self-defense cases, one person cannot kill another to save himself.)

그러나 피고인 두들리의 변호인은 피고의 행위는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정당방위 였으며 상황에 의해 정당화 될수 있는 행위 였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인 소년 역시 피고가 죽이지 않았어도 정황상 구조선이 그들을 발견했을 당시 피고들 보다 먼저 죽어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판결에 참가한 배심원들 사이에서 이문제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면서 배심원단은 <이경우를 살인으로 볼수 있는가?> 에 대해 특별 판정 (Special Verdict)을 발부했다. 이는 사건의 특수정황을 인정하며 이문제만을 특별 이슈로 다시 법원에서 재심할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들리와 스티픈스 두사람은 원로 판관인 코울릿지 경이 주재하는 왕실 특별심에서 이문제를 다시 심판을 받게 된다.

독자라면 이같은 사건을 어떻게 판결하겠는가? 만일 배심이 무죄를 선고하면 재판장은 피고를 방면하게 된다. 만일 배심이 유죄를 선언하면 재판장은 사건 유형에 따라 형을 선고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살인의 경우 유죄라면 사형을 선고하게 된다.

이 사건을 오래전 읽은 뒤로 나는 가끔씩 지인들에게 판단을 물어보기도 한다. 대충 통계를 보자면 12명을 배심으로 한다고 했을 경우 5명은 무죄를 7명은 유죄를 선고하는 것 같다. 이런 유형의 사건일 경우 오늘날 미국 평균 배심원단의 무죄: 유죄의 가치 스펙트럼이 40: 60 이니 대충 평균 배심원단의 의식이 생활속에서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다만 미국에서는 진보적인 사람들일 수록 이런 유형의 사건에 대해 무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흥미롭다. 궁금해할지도 모를 독자를 위해 120년전에 치뤄졌던 이 사건의 재판 최종 결과는 이글 맨 나중에 소개하도록 한다.


4. Retrobutivism v. Utilitarianism ( 응보주의 v. 용도주의-ie 공리주의)

긴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가치관의 문제다. 추상적 도덕기준에서 시작해 구체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가치관이란 굉장이 개념이 포괄적인 용어이기도 하다. 다만 형법적 관점에서 보자면 크게 두가지 관점이 항상 충돌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오랜 역사와 전통 법리를 이루는 이루는 기본 개념은 사실 <응보주의> 이다. 신탁이나 계시에서 시작된 신의 정언명령에서 ( you must do.. ie: 십계명) 시작된 응보주의는 잘못을 하면 그에 대한 댓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물론 제-정이 분리되고 국-교가 분리된 오늘날 응보주의는 도덕에 기반해 윤리의 토대위에 법리를 세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극단적 응보주의자들이 사회적으로 범죄 억제 효과가 별로 없다 하더라도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때 신학도였고 법학도였던 칼 마르크스가 혁명론에서 부르좌의 Bloody Legislation에 (유혈 입법) 치를 떨며 부르좌를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할때 계급적 심판의 도구로 채용했던 개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신의 정언명령 대신 유물론적 변증법을 도덕기준으로 삼은 것이 다른점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스승이었던 헤겔은 법은 사회적 보편의지의 자기발전의 형태라고 규정한 사람으로 사실상 사회도덕에 입각한 처벌론 성향을 보였으며 응보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응보주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형집행에서 나타난다. 의도적 살인범의 경우 남의 생명을 빼앗는 자는 자기 생명을 내놓는 것이 당연하며 피해자와 사회를 대신해서 법이 동등한 응보를 주어야 하므로 사형집행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설사 억제 효과가 별로 없다 해도 살인자에 대한 심판으로써 사형은 그 자체가 최선의 공평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논리다. 응보주의의 라이벌 공리주의의 가장 큰 관점이 < 억제효과>를 기준한 가치인데 비해 응보주의는 <공평한 심판>을 최우선 가치로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는 <공리주의>는 범죄행위와 범죄 처벌행위의 사회적 불쾌지수를 비교해 처벌을 조정한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범죄는 사회의 행복을 해치는 요소지만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도 사회적 불쾌 요소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도둑의 처벌로 인해 다른 유사한 범죄들을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범죄 처벌 행위가 유사범죄 재발에 별 도움이 안된다면 그 처벌의 성격을 재고해야 한다는 것이 공리주의인 것이다.

공리주의라는 말을 하면 존 스튜어트 밀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존은 말년에는 공리주의에서 멀어져 사회주의에 기울어졌다. 또 그의 사상은 아버지 제임스 밀에서 온 것이고 제임스 밀은 제레미 벤담의 측근이었으니 영국의 변호사 제레미 벤담이야 말로 공리주의의 시조이며 법적 개념의 공리주의를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연관시켜 사회-경제사상으로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노동계급 독재도 다수에 의한 통치라는 점에서 공리주의 요소가 숨겨져 있으며 마르크스 자신도 제임스 밀의 스카치 댄디즘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긍정적 평가를 숨기지 않았다.

용도주의 혹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보자면 살인범에 대한 사형은 통계적으로 살인 억제와 상관이 없으며 사회에 대한 살인의 불쾌지수를 (-100) 이라고 했을 경우 범인을 죽임으로써 또다른 불쾌지수 (-100) 이 추가되 결국 불쾌지수가 배가되는 (-200) 모순이 있다. 반면에 살인자를 가만 놔두면 본인의 재범(-100) 이나 타인의 모방범죄 (-100 * X )로 사회는 동일한 불쾌 지수의 무한증가를 체험하게 된다. 대신 살인자를 감옥에 가두면 사회의 불쾌지수는 (-30)으로 토탈 불쾌지수는 (-130)이 되니 살인자를 가만 놔두거나 사형시키기 보다는 감옥에 보내는 편이 가장 나은 것이다. 유용론 주류가 사형집행에 반대하는 이유이다.

이상의 두 관점을 위의 어부의 살인케이스에 비춰보면 재판부가 응보주의에 가까울수록 어부는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크고 공리주의에 가까울수록 어부는 무죄에 가깝게 되는 경향을 볼수 있다.


5. 피상의 심판을 넘어서

세상의 일들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우리는 우리 자신은 물론 타인의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아니 인간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존재다.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인간에게는 위악적인 면과 위선적인 면이 있으며 가학적인 면과 피학적인 면이 공존한다. 노출증이 있는가 하면 관음증도 있다. 결국 세상일의 판단에 대한 고민은 인간 스스로의 자기 판단에 대한 고민과도 같다. 사회, 정치적 판단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나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인간의 본질적 자기 고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궁금해 하는 독자를 위해 어부의 살인사건 재판 결과를 끝맺어야 겠다. 특별심에서 왕실재판부는 원심의 판결을 재확인, 두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피고 토마스 두들리, 리차드 파커 살인사건 주범으로써 유죄가 인정되므로 사형.......'
'...............피고 에드윈 스테픈스, 리차드 파커 살인사건의 공범으로써 유죄가 인정되므로 사형.........'

특별심 재판부는 응보론의 원조인 브랙턴 경의 (Lord Brackton) <도둑은 도둑론>과 공리론의 원조 격인 헤일경의(Sir Hale) <필요성에 의한 살인 정당론>을 설명하고 <베이컨> 경의 <실용적 귀납론>을 차용해 장광설을 늘어놓았지만 결과적으로 두사람의 어부를 교수대로 보내는데 필요한 마지막 서명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은 끝났지만 의문은 남는다.
그같은 상황에서 두들리가 파커를 죽이고 그 고기를 먹은 것은 정말 원심의 판결대로 <악마> 같은 일이었는가? 그가 악마였다면 왜 소년을 살해하기 직전 울면서 신에게 기도했을까? 그는 왜 스테픈스를 강권해 소년을 죽이는 일에 동참시키지 않고 스스로 주범이 되었던 걸까? 스테픈스는 왜 두들리의 살인에 동의했으면서도 마지막 살인의 순간에 움직이지 않았는가? 두들리의 살인에 처음부터 완강히 반대했던 부룩스는 왜 살인의 열매였던 소년의 고기를 먹었나? 죽어가면서 십대의 피해자 파커는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가?

이런 정황들을 좀더 세밀히 판단해 본다면 법정 심리학의 응보주의나 공리주의 논쟁도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진리에 비하면 수박 겉핡기식 말장난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누군가를 심판하고 무언가를 평가할때 우리는 드러나지 않는 진실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위의 <여왕 v. 어부>의 판례에는 꼭 덧붙여야할 유명한 에필로그가 있다. 피고들은 유죄가 확정됐지만 그들의 사형은 결코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치권자였던 빅토리아 여왕이 군주의 사면권을 활용해 재판후 그들을 감형, 사면했던 것이다. 공범 에드윈 스테픈스 특별사면. 즉시 석방. 주범 토머스 두들리 감형 및 특별사면으로 징역 6개월 형. 여왕의 법정은 유죄를 평결했지만 여왕은 그들을 사면했고 이 사건은 훗날 살인범의 정황과 동기에 따라 형량이 바뀌는 선례가 된다.

120년전 유럽의 한 판례를 덮으며 한가지 아쉬운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인간이나 사물에 대해 피상적 심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아쉬움이 어디 법정 심리 뿐이랴! 생활의 하루하루, 매순간의 결정이 실제적 판단으로 점철되는 우리의 인생과 사회속에서..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싫어하게도 된다. 또 무언가에 심취했기 때문에 다른 무언가를 멀리하는가 하면 무언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부터 떠나게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깊이 알지 못하는 우리는 타인의 이같은 행위에 대해 피상적 판단에 머물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피상의 심판. 그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아는자 끼리 인정하는 위선의 묵계일수도 있고 스스로 부족함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우매한 교만일수도 있다. 그러나 위선은 위선대로 위악은 위악대로 과실은 과실대로 선의는 선의대로 인정하고 음미한다면 공리주의나 응보주의 같은 언어의 한계나 피상적 심판을 넘어 언젠가 우리는 인간과 세상의 진실을 조금 더 이해 할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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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624 진보누리 사이트에 올리신 글 >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그 자체 보다도 수많은 종류의 프라모델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국내 공중파에서 방영된 건담 시리즈는 '기동전사 건담 0083 극장판' (그나마도 참 많이 편집된..) 단 하나 뿐이다. 케이블 에서는 '기동전사 건담 W' 가 방영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프라모델은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진퉁' 반다이의 제품이 있고,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하는 아카데미 과학의 정교한 모작들이 있다. 우리는 그 조그만 플라스틱 모형들을 질리도록 봐왔지만, 정작 그것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할 뿐이다. 뭐 그거이.. 그냥 로보트 만화겠구만.. 

과거의 로봇 만화들 (이를테면 마징가 Z 와 같은) 의 구도라는 것은 참으로 명쾌하고 단순한 것이었다. 영웅 로봇이 절대 악인 미케네 제국의 헬 박사와 아수라 남작을 물리치고 인류의 평화를 수호하는 뭐 그런 것. 기동전사 건담은 아마 이러한 구도를 최초로 무너뜨린 로봇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에 등장하는 적은 절대 악이 아니다. 우주로 진출한 인류가 지구권의 부당한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을 요구하며 지온 공국을 만들어 내고 시작된 1년 전쟁, 그리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적들도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고뇌가 있으며 휴머니티를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은 최소한의 리얼리티의 반영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모습을 우리는 항상 보아왔다. '빨갱이' 란 말이 그랬고 '수구 꼴통' 이라는 말이 그랬다. 

기동전사 건담은 그 리얼리티를 로봇물에서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그런데 정작 79년에 처음 방영 되었던 기동전사 건담의 최초 시리즈를 보면, 분명 그러한 리얼리티가 곳곳에 드러나긴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참으로 촌스러운 것임에 틀림 없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기동전사 건담 0083은 바로 이러한 역설 위에서 출발한다.

기동전사 건담 0083은 기본적으로 외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동전사 건담에서 소멸 되었던 '지구' 대 '우주' 의 구도가 어째서 기동전사 제타 건담에 이르러 '지구 연방 군사 독재 정권 티탄즈' 대 '반 지구 연방 에우고' 대 '지온의 후예 액시즈' 로 변화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시기적 으로는 1년 전쟁의 종전 3년 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설정 이라는 것이 그랬다는 것이고, 실제로 기동전사 건담 0083이 제작된 시기는 91년 이다. 설정상의 시기는 3년 후지만, 실질적으로 제작된 시기는 원작이 제작된 때로부터 12년 후라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좀 의미심장 하다.

앞서 언급하기를, 기동전사 건담이 나름대로 로봇물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최초 시리즈 자체를 가지고 본다면 촌스러운 것 이었다고 했다. 이게 시리즈를 거듭 하여 기동전사 제타 건담, 기동전사 더블 제타 건담, 기동전사 건담 - 역습의 샤아 - 로 이어지면서 원래의 의의가 미친듯이 확장되어 버렸다. 즉,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 밀리터리물의 형식이 더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때마다 나오는 건담 시리즈에만 적용된게 아니라, 과거에 나왔던 건담 시리즈들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건담의 팬들은 촌스러웠던 79년 건담에도 자기 최면을 걸며 멋대로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즉,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제 기동전사 건담 0083 은 그러한 유사-밀리터리물의 관점에서 기동전사 건담의 초기 시리즈를 다시 재구성 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작화나 메카닉 디자인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어딘가 아둔하고 엉성해 보였던 기동전사 건담 RX-78 은 건담 시작 1호기 GP01 의 날렵하고 번쩍이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동전사 건담에서 어색하고 제멋대로였던 군인들은 정말 리얼한 군인의 모습으로 다시 그려지게 되었다. 건담의 세계에서 모빌 슈트라 불리는 로봇들이 균형을 잡으며 움직이기 위해 몸에 달린 각종 버니어 들을 작동시키는 세부적인 묘사들, 그리고 지상 전용 이었던 GP01 이 우주에 나가서 보여주는 무력한 움직임 들.. 이 모두가 리얼리티적 표현의 산물이었다.

기동전사 건담 0083은 1년전쟁 중 연방의 적이었던 지온 공국의 잔당들이 전술 핵 탑재 모빌슈트인 건담 시작 2호기 GP02A 를 테스트 기지로부터 탈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통적인 로봇물의 관점에서 '적' 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온 공국의 잔당들은 대부분 신념과 긍지에 불타는 인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물론 시마 가라하우와 같은 비열한 캐릭터는 예외.) 그들은 연방 군인들을 게으르고 규율이 없는 제멋대로인 녀석들 이라며 저주한다. 연방 군인들은 지온측 병사들을 극도의 이상주의에 빠진 극단적인 혁명론자 쯤으로 치부하며 싸움에 임한다. 그들의 서로에 대한 평가는 반쯤은 옳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그러한 규정이 좀 더 처절하게 싸우기 위한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지온의 잔당들은 결국 커다란 스페이스 콜로니를 지구의 곡창지대에 떨어뜨리는데 성공하고, 이는 결국 군부 독재의 빌미를 제공한다. 군부 내의 사병 집단인 '티탄즈' 는 '거봐라,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따위의 구호를 외치며 전 지구적 단결과 군비증강을 주장하며 정권을 잡는다. 기동전사 제타 건담에서 독단적이고 오만한 집단으로 그려졌던 티탄즈.. 기동전사 건담 0083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과 함께 지온 잔당의 콜로니 낙하 작전을 저지하려 최선을 다했던 전함 알비온의 승무원들이 티탄즈의 새 군복을 입고 신이 난 표정으로 거울을 보는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요컨대, '적' 은 '절대악' 이 아닌 것이다.

여하튼 이 작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 두 가지. 하나는 로봇물 에서 전쟁물 로서의 리얼리티 추구라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이후의 시리즈에서 제기된 리얼리티에 대한 문제가 어떻게 이전 시리즈에 적용이 되는 가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 초점에 신경을 쓰며 감상하면 나름대로 느끼는 바가 생기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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