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가 생각 안 남.. 우리모두나 진보누리였던 듯>

그저께 저녁,허름한 선술집에서 한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아니다. 처음엔 기울였지만 나중엔 퍼 부었다는것이 옳은 표현이리라.

우리가 앉은 상 옆에는 누군가 보다가 던져 놨는지 신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근세 우리 역사의 풍운아 여운형의 딸이 피붙이를 만나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 선풍기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그친구는 국악을 업으로 하는친구다. 대학 강사로 일하며 소위 말하는 알바도 뛰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고있다. 얼마전 다른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가끔 생각나면 소주한잔씩 하는 사이다.그런데 이친구 경력이 특이하다.
국악한다는 그 친구의 출신교가 엉뚱하게도 모 공업전문대이다.난 공과와 국악의 상관관계를 아무리 생각해도연결 할 수 없었다. 몇번 물어봤으나 친구는 싱긋이 웃는것으로 답하곤 했다.

술자리는 통상 하듯 안부로 시작해서 일상 신변의 얘기로 시작 되었다.그리고 8시. TV에서 뉴스가 방송이 되었다.자연스레 얘기는 정치로 흘렀다.그때부터 우리는 술을 퍼붓게 되었다. 그렇게도 내 궁금증을 싱거운 웃음하나로 넘기던 친구가 속내를 조금씩 조금씩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누구나 한번쯤 할 만한 소리로 시작되었다
'얌마. 이래뵈두 나 어릴때 나 가야금 신동이란 소리 듣고 자랐다.내가 리틀 앤젤스 1기야. 젤 대빵이라구.내후배들 아주 빵빵해. 너 리틀엔젤스가 무언지 알어?'
'통일교 문선명이가 한거? 니 아부지 통일교도 이셨니? 그거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갖다 바쳐야 한다며?'
'우리 아버지?...'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친구는 소주잔을 벌컥 들이켰다.

'나 울 아버지 무지 싫어한다.'
'왜? 약주를 좋아하셨니?'
'응.알콜 중독자라 해야겠지....근데 그 분이 일제때 유명한 일본 모 대학 출신이야.'
'그럼 한 자리 하셨겠네'
'아니 사거리에서 뻥튀기 장사 하셨어. 뻥 하고 강냉이 튀기는것..아주 거지생활이지.'
'.....'
'생활도 생활이지만 신분을 속이려고.....'
'음? 무슨신분?'

친구네는 친구의 부친을 일본에 유학 보낼정도의 꽤 있는 집안이었다.그런데 당신의 친구분 중 한분이 여운형의 동생이였단다.
그 영향 이었을까? 당신께선 여운형의 철학과 인품과 열정에 반하였고 여운형의 비젼까지도 사랑했단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청년기를 보내셨다 그런데 결과는... 다 알다 시피 여운형은 암살되었다. 여기서 여운형의 암살의 배후니 의의니 그런것은 생략하련다.그 얘기가 길었지만서도...

친구의 부친은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상상이 가지 않는가? 빨갱이로 몰린..아니 공산당조차도 반동분자로 몰고 가던 그들(건준)의 처지가...결국 진정한 민족주의를 꿈꾸었던 당신은 어느 한쪽을 택 해야하는 처지가 되버렸다.
당신 생각은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친일 앞잽이 놈들이 미군정과 야합하여 일제때와 다름없이 호위호식하는 남쪽 보다는 북쪽이 좀 더 정의롭다고 판단 했을지도 모른다. 뿐만아니라 그시대의 사회가 당신을 애궂게 빨갱이로 몰면서 북쪽으로 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은 북한군 장교가 되었다.

그리고 당신은 또 좌절한다. 어느날 홀연히 북한군에서 탈주하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동족상잔의 전쟁은 그가 꿈꾸던 조국을.. 그토록 위하고자 했던 이땅의 민중의 위상마저 모두 그의 가슴으로 부터 죽여 버린것이다.
남은 것은 피폐해진 마음과 빨갱이로 찍힌 낙인 뿐이었다.

얼마나 자책 했겠는가?남보다 많이 배워서 죄인가?아니면 자신이 바라던 조국이 감히 꿈꾸어선 안될 금기였단 말인가? 그자책 보다도 그업보가 자신보다 자식들에게 쏟아지는 현실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펐으리라. 누구를 위해 꿈꾸던 세상인데... 자손만대에까지 내조국 내땅에서 행복하라고 꿈꾸고 열정을 다했던 당신의 일생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손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돌아오다니... 술을 마시며 달래고 또 달랬으리라. 그리나 그 술마저 이기지 못했다. 울분탓에 주사가 심해졌다. 마누라에게 주먹질이나 하는 룸펜으로 전락했다.

친구의 부친은 정치보다는 예인이 더 어울렸나보다.말년에 그분께 글도 얻어가고 자문도 받으러 유명한 대학 교수도 자주 왔다고 하니까...그 와중에도 친구에게 국악을 가르치고 국악고등학교까지 보내신것은 자신이 피우지 못한 재능을 막내 아들에게 기대 한것이 아닐까? 덕분에 친구도 현실생활과 재능사이에서 고민하며 대학을 3군데나 다녔다고한다. 내 궁금증이 풀렸다.

'난 잊을수없어.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곤 해.장사 갔다 돌아 오신 어머님을 형사놈이 들이닥쳐갖곤...주머니를 뒤지고.. 돈을 다뺏는거야. 어머님은 땅에 업드려서.. 두손을 싹싹 빌며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빌고...우리 엄니가 무얼 잘못했냐구! 우릴 먹여 살리려고 장사 갔다 오셔서 그 돈 다 뺏기며..'
'설마,형사가...'
' 임마! 내가 어릴때 부터 보고 살아 왔다. 겁을 먹어 부들 부들 떨면서..... 나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놈과 술 한잔 하시더군. 당신은 용서 하신게지... 하지만 지금도 난 그놈을 죽이고 싶어'

살인을 할 만큼 그 친구가 험상궂냐고?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
작고 갸날픈 체구에 대학교수다운 지성을 갖춘 외모다.깔끔하다. 심하게 말하면 기생오래비 타입이다.

북에서 온 여운형의 딸이 피붙이들, 사촌들을 만났다고 언론에 대문짝나게 실린날이다. 그리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동정을 TV에서 보도하고 있었다.여운형이 죽고 반세기가 지났다.그 시절에 여운형과 뜻을 같이 했던 한 청년의 자식들은 친형제지간도 같은 남한땅에서 살면서 서로 경원하고 산다. 생활이 불편하고 살아온 기억이 불편한 까닭이다.

그친구가 내게 술 한잔 하자고 전화 한것은 내가 보고픈 것이 아니라 여운형 딸 때문이었다. 아니다. 그녀 때문에 아직도 못내 원망하는 아버지가 생각 나서였다. 황폐한 가슴에 술을 쏟아부으며 달래야 했던, 그러나 그마음마저도 못 잡아서 주사가 심했던 그 아버지가 보고파서였다.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이 절규가 누구의 것인지 우린다 안다.그때도 난 울었다. 하지만 그날은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한 천륜 때문에 우리는 절규 대신 허름한 선술집과 호프집을 전전하면서 새벽까지 술을 퍼부었다.
퍼붓다가 퍼붓다가 아주 망가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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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6개월만에 ‘청취율 사각지대’라는 새벽 3시 프로그램으로 방송에 복귀한 뒤, 두 번째 방송을 했던 2003년 10월 21일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말지의 이오성 기자에게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이 세상은 마이크나 펜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계급적 기반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거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SF 영화 같은 세상 아닌가요. 모든 것이 나의 물적 좌표에 따라 바둑판처럼 이미 짜여진 세상.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난 비록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나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노동자, 농민 이야기는 그들의 생리나 환경과 맞지 않아서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말은 심각하지만, 그게 일상으로 돌아가면 전혀 심각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우리 옆에서 투명인간화되어 버리는 청소하시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뿐인데."

2003년 11월 18일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월간 말] 이오성 기자의 글을 참조한, '하종강의 노동과 꿈' 싸이트 하종강 님의 글을 다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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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4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한탕을 노리는 은행털이범들, 위험한 음모를 가슴에 품고 있는 매혹적인 여인, 인질이 된 채 탈출을 계획하는 경찰관. 거미줄처럼 얽힌 그들의 관계는 끝을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치닫는다. 과연 승자는 누구인가?"

그동안 여기저기서 영화를 봐왔지만 이 영화처럼 인터넷에서 자료구해보기 어려운 영화도 참 오래간만이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자료중에 대강의 스토리란 것이 이것이다. 어이가 없다. 게다가 장르 구분을 보면 드라마/범죄/스릴러다. 그런데 점혀 드라마스럽지 않고, 범죄스럽지 않으며, 스릴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참 애매한 영화다. 오히려 나보고 분류를 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팜므파탈'영화,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팜므파탈'영화라고.

실제로 영화속의 '거미줄처럼 얽힌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단단하게 얽힌 것이 아니다. 은행털이범들은 은행원과 공모하여 아주 손쉽게 은행을 턴다. '인질이 된 채 탈출을 계획하는 경찰관'역시 별 문제없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은행털이범들은 또 자기네들끼리 이리저리 티격태격하다 하나둘 죽어 나간다. 그 모든 죽음과 주저함의 정점에 바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인 '밀라 요보비치' 즉, 팜므파탈이 자리하고 있다.

그 녀는 현실에서 자기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남자를 매혹시키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영화속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몰아가는데 성공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결말을 이끌어 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속 밀라 요보비치가 보여주는 팜므파탈로서의 능력이 다른 영화에서 보이는 마녀나 가지고 있을 법한 카리스마넘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속에서 그 녀에겐 별다른 선택권한이 없다. 실제로 영화의 모든 갈등장면에서 그 녀는 결코 아무런 선택도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와 관련된 모든 남자들에게 자신은 적이 아니라 동지, 나아가 절대적인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된 연인관계임을 믿게 만든다. 그 결과는 은행털이범들이 모든 같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서로 다른 꿍꿍이를 품게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 경찰관으로 나오는 사무엘 잭슨조차도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녀의 그런 행동에 의심반 믿음반이란 태도를 견지하게 만든다.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다른 영화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점이 이것이다. 때로 에로와 스릴러를 짬뽕시켜놓은 몇몇 B급 비디오물에서 이런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현실에서 실행가능한 여성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팜므파탈은 오히려 잘 만들어졌다는 영화에서 더 보기 힘들다. 어찌 보면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이 현실과 괴리된 인물을 만들어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밀라 요보비치는 인물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만한 결정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물들의 삶을 비극으로 이끌어 간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녀는 선택하라는 경찰관의 요구에 은행털이범 두목을 선택한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그 녀는 은행털이범 두목모르게 경찰관에게 권총을 건네준다. 쉽게 설명하자면 자기는 책임을 질만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음으로 해서 양다리를 걸쳐놓고 '이기는 편이 내편'이란 대단히 여유로우며 방관자적인 자세를 취한다. 비록 그 행동의 결과가 자신의 일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무책임한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말하자면 현실속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처한 갈등관계에서 이런 행동패턴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많은 여성들이 어려운 갈등과 선택의 순간에 책임질만한 그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거나 심지어 도망쳐 버리기까지 한다는 말이다. 주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그저 묻어가면 된다는 식이다. 물론 그런 행동패턴이 여성들만의 고유한 방식이란 말은 아니다. 게다가 그런 행동패턴이 나오게 된 원인이 비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강요된 오래된 사회적 관습의 결과물이란 점에 대해서도 난 분명하게 동의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덧붙이고자 하는 말은 그것이 지금 현재 여성들이 보이는 비주체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변명은 결코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성들 스스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불평등하고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그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책임을 지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밀라 요보비치가 보여준 팜므파탈의 모습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현실적이다. 그리고 경찰관으로 분한 사무엘 잭슨은 그런 애매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가를 잘 보여준다. 고전적이고 보수적인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는 경찰관이고 그 녀는 은행털이범의 일원이다. 그러니 체포하면 된다. 그 녀가 그에게 어떠한 행동이나 말로 일반적인 친밀감을 넘어선 호감을 갖게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드라마/범죄/스릴러 영화가 아니라 새롭고 신선한 방식으로 변주된 연애/심리영화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드라마는 긴박감이 없고, 캐릭터는 붕 떠있는 별로 볼 것없는 이 영화를 그래도 그럭저럭 이끌어 가는 것은 밀라 요보비치와 사무엘 잭슨이고, 영화 내내 이 둘만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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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3 우리모두에 올리신 글>
1.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영화다. 마치 영화 '챔피언'에서처럼 돌아보면 보잘것 없고 촌스럽게만 느껴지던 그 시절도 사람들이 살았고, 서로 사랑했고, 열심히 살았다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점이라면 과거가 선명한 칼라로, 현재가 흑백의 모노톤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간 우리가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버릇을 거스르는 방식이다. 우리에겐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칼라가 흑백으로 변하는 상황이 익숙하지 그 반대는 어색하다. 게다가 이 영화의 감독은 그 유명한 장이모 감독이다.

장이모 감독의 전작들을 모두 섭렵하지 않고, 그저 '영웅'만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얼마나 색감에 공을 들이는 감독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영웅'은 한 사건에 대해 다수의 화자와 관점을 도입하는 수법(원래 일본의 어느 소설에서 유래한 것인데 불행히도 그 소설의 제목이 떠오르질 않는다)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영화다. 그런데 그 과하다 싶은 원색사용도 처음만 눈에 거슬릴 뿐 금방 익숙해진다. 즉 웃도리 하나만 촌스러운 것을 입으면 아무리 봐도 어설프지만 아예 머리에서 발끝까지 촌스러움으로 둘러 감으면 금방 익숙해지는 그런 이치다.

그렇다고 그런 원색의 사용이 장이모 감독의 원래 스타일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장이모 감독이 애용하는 원색은 사실 붉은 색 하나뿐이다. 그나마도 인위적인 색은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붉은 수수밭'만 해도 영화전체를 휘어감았던 색은 붉은 색보다는 오히려 황톳빛에 가까운 색이었다. 이런 경향은 '국두'와 '홍등'까지 이어진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나름대로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인위적 장치들과 색깔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귀주 이야기'를 거쳐 '집으로 가는 길'에 이르면 전작들에서 보이던 원색들마저 거의 자취를 감춘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달리 '영웅'에선 원색들이 떼로 등장하는 걸까?

그 이유를 정확히 알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영웅'은 그가 각본하시고 감독하시며 제작까지 한 영화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만들기만 하면 되던 감독이 아니라 감독뿐만 아니라 흥행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번째는 그의 이전 전작들과는 달리 '영웅'은 그야말로 상상속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원래의 스타일보다 좀 더 오버해도 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처럼 장이모의 영화에선 색깔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그런 그가 영화관습과는 달리 과거를 칼라로, 현재를 흑백으로 표현했을 때는 그 의미가 사뭇 크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보기에 촌스럽고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순수했던(혹은 맹목적이었던) 사랑이란 것이 남아 있었던 그 옛날이, 이거저거 잴만큼 재보고 따질만큼 따진 후에야 거래(?)를 성사시키는 요즘의 그런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보기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영화다. 중국의 어느 동네에서 훈장질하던 선상 하나가 밥숟갈을 놓으셨는데 도시사는 그 훈장의 아들되는 양반이 부음에 접하여 고향으로 돌아와서 장례식을 놓고 어머니와 이차저차 의견차이를 보이다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촌스럽고 우악스럽다시피한 러브 스토리를 듣고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하여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가 아니라 산길과 고갯길을 넘어넘어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온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길은 그 옛날 어머니가 꼭 돌아오겠다던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리던 바로 그 길이기도 하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이거 절대로 그렇고 그런 영화는 아니다. 요즘 우리네 러브로망처럼 별스러운 설정 하나없다. 게다가 여성이나 남성이 상대방 성에게 바라는 일종의 환타지같은 것조차 하나 보이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요즘 우리네 영화판에서 나름대로 사랑이란 주제를 다루는 영화들이 흥행을 위해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든 갖추고 있어야 할 두 가지 덕목(?)들중 단 한개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사랑영화'가 된다. 그것도 꽤나 잘 만들어진 영화로 말이다. 진실로 이런 곳에서 내공의 차이란 것이 느껴진다.

3.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단순한 영화다. 그렇다. 단순한 사랑영화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머리는 거기서 멈추질 않는다. 이건 온전히 내 관점의 문제이며, 일종의 장님이 코끼리 다리만지는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 중국엔 이른바 '하방운동'이란 것이 있었다. 도시의 엘리트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 일정 기간을 살게 함으로써 도농간의 격차를 줄이고 상호 이해를 넒힘과 동시에 향후 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엘리트들로 하여금 중국의 현실에 대해서 좀 더 넓고 깊게 알도록 만들려는 일종의 중국판 '민중속으로'였던 셈이다. 단 이 운동은 정부의 주도하에 시행되었다는 치명적인 약점때문에 당시엔 그다지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 했다. 그렇다고 그 의미까지 퇴색된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운동의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권력암투가 깔려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긴 명분없는 싸움이란 없는 법이고 명분만 타당하다면야 발생원인이 어찌 되었든 그 운동의 의미까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니까 크게 신경쓸 일은 못 된다. 특히 '귀주 이야기'에서 보여진 것처럼 권력층이 형식적이 된다고 해서 민중들까지 형식적이 되는 것은 것은 아니니까.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이것이다. 중국의 '하방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중국의 엘리트들이 민중들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저 계도하려고만 했지 민중들의 삶과 관점, 가치관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역사상 가장 풀기 힘든 문제중의 하나다. 그래서 엘리트들은 엘리트들대로, 민중들은 민중대로 서로에게 실망하고 각자의 길로 무관심하게 매진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선 약속이 지켜진다. 도시로 갔던 선생은 약속했던 것보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또 바로 이 지점에서 내 나라를 돌아본다. 진보든 보수든 과연 얼마나 약속을 지켰을까? 이루기 힘든 일을 잠깐의 주저함도 없이 함부로 약속해 버리지는 않았을까? 명분과 당위만 앞세우면서 말이다. 그 의문의 끝에서 내 결론은 어디를 봐도 그저 막막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과연 알고나 있는 것일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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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 굵은글씨 강조는 퍼온이)


1.
주말이면 학교에 각종 종교를 전파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기독교가 많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를 하나님의 품으로 모셔가기 위해 끈덕지게 오던 한 인간이 있었다. 물론 난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 인간이 나라는 인간을 아주 잘못 본 때문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러니까 콧물을 줄줄 흘리고 다닐 무렾부터도 난 협박에 시큰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다짜고짜 두드려 팬다면 경우가 다르지만 그냥 말로 하는 협박엔 아무 감흥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인간은 기독교 특유의 협박으로 나를 전도하러 들었다.

인간에겐 원죄가 있고 어쩌고 저쩌고, 그 원죄때문에 인류 최후의 날엔 지옥의 불구덩이로 어쩌고 저쩌고, 그 지옥을 피하려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품으로 어쩌고 저쩌고 아멘. 뭐 이런 식으로 나를 협박했던 것이다. 처음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나중엔 코웃음이 나왔다. 인간이 콧방귀를 흥흥 날리고 있는 나를 보고 의아해하면서도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을 때 내가 말했다.

"여보쇼. 내 그 때가 되면, 아니 그 전에라도 내게 힘든 일이나 고통이 닥치거든 나 혼자서 어떻게 알아서 해볼테니 여기서 시간낭비하지 말고 다른 사람한테나 가보쇼."

인간은 무지 기분이 나빴던지 나가는 길에 내 인생이 엄청나게 고달플 것이라는 저주까지 빼먹지 않았다. 난 여전히 콧방귀만 뀌었고.

2.
가끔 난 그런 생각을 한다. 종교적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사소한 인간인 양 취급하려고 드는 걸까? 내가 보기엔 저들에게서 그것을 빼내버리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보잘 것 없는 인간들에 불과하며, 그런 점에서 오히려 동정받아 마땅한 쪽은 종교적인 믿음이 강한 사람들 쪽인데 말이다.

뭐 이런 경우는 비단 종교적인 믿음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대체로 모든 종류의 믿음에 적용되는 현상이다. 그 믿음의 대상이 이념내지는 사상이든 미신이든 간에 말이다. 그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에게선 그것을 빼면 그는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더 그 믿음에 집착하게 되고, 자신의 믿음을 부정하는 사람, 아니 자신의 믿음에 대한 무관심한 사람에 대해서조차 쉽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은 항상 믿음과 함께 사랑을 강조한다.

3.
내 친구는 강아지를 키운다. 친구와 내가 결론내린 바에 의하면 그 강아지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강아지다. 이 곳에서 몇 번 말한바 있는 이 강아지는 무엄하게도 나의 신체를 두 번이나 물어 뜯어서 피를 본 사이이기도 하다. 내가 그 정도이니 그 강아지와 한 집에 기거하는 친구는 오죽하겠는가. 아무튼 그 강아지의 성깔머리가 얼마나 싸가지인가 하는 것은 그 친구와 안면이 있어서 그 집을 방문했던 모든 종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구동성으로 "갖다 버리라"는 답안을 제출토록 할 정도였다. 그 집을 방문했던 모든 사람들이 강아지는 식용정도로 아는 사람들이라거나, 혹은 동물보호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파렴치한 인간들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다 버리라'는 공통된 의견이 나올 정도면 그 강아지의 성깔머리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매주 주말 일요일이면 늘 하는 것처럼 오늘도 난 저녁무렾 느지막하게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강아지를 대면했다. 그동안 별로 신경쓰지 않고 지나쳤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눈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강아지의 정서 상태는 확실히 많이 나아져 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에 내 눈에 띈 것이었다. 친구 녀석이 물경 1년이 넘는 시간과 끝없는 인내심을 투자한 결과였다. 그리고 내 친구의 인내심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출발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어떻게 버리냐?"

혹여 버린다 한들 그 강아지가 당장에 죽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내가 아직까지 아는 진정한 사랑은 이것뿐이다. 그러니 청하건데 제발 사랑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종교나 이념, 사상따위에 목을 매는 인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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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7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 알만한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도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 학상이던 시절에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읊어대던 것이며, 때로 신입생용 노래모음 테이프에도 심심찮게 들어가던 바로 그것의 제목이다. 물론 그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그 때야 누구나 그런 마음으로 살지 않으면 마른 하늘에 벼락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중압감으로 가득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아무튼 그 시절엔 그랬다.

첼로를 공부하던 여학생이 있었더랬다. 첼로라는 악기는 여학생이 이고지고 다니기엔 무리일 정도의 크기와 무게를 갖고 있다. 그 여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그 큰 악기를 교문에서 연습실까지 그야말로 이고지고 다녔다. 매번 볼 때마다 참 안쓰럽다고 생각이 들었고 몇번인가는 도움을 준 기억도 있다. 나중에야 안 이야기지만 그 여학생은 사실 자가용 차가 있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자가용을 타고 와서 학교 근방에 주차시킨 뒤에 그 큰 첼로를 메고 학교로 왔던 것이다. 입학해서 졸업하는 그 4년동안 내내. 이유는 '괜히 미안해서'였다. 그 시절엔 그랬다.

'그 시절'은 한편 이렇듯 '염치'라는 것이 살아있는 시절이면서도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버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타도 자리양보하는 넘, 뇬 하나없는 지금이란 시절을 살다보면 그 시절의 중압감이, 염치가 참 그리워지기도 한다. 하다못해 자는 척이라도 했으면 싶은 것이 요즘 내 심정이니까. 한때 열심히 데모질하던 선배중의 하나가 근 2년동안 휴학하고 학교바깥 세상에서 뭔 짓을 하다왔는지 초췌해져서는 중얼거리던 말 '기초질서나 잘 지키라고 해' 요즘은 새삼 그 말이 자주 떠오른다. 아무튼 그 이상하고도 그리운 구석이 많은 시절에 회자되던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이 있었다. 비장함으로 범벅이 되어야 자세가 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오늘도 친구 사무실로 마실을 왔다. 친구는 작업이 밀려 있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전화를 걸었다. 두어 시간동안 시도를 했지만 계속 통화중이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전화기를 붙잡고 계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여자들의 긴 통화시간으로 옮아 갔다. 다들 알만한 그렇고 그런 허물을 늘어 놓다가 대화 말미에 녀석이 이렇게 말했고, 난 '이런 내가 되어야 한다'란 제목만 기억나는 문구를 떠올렸다.

"여자들은 전화료 싸게 해줘야 한다니까"

저런 내가 되어야 한다. 비록 잘때 코를 심하게 골고,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면허조차 없고, 장가는 커녕 여자친구 하나 없으며, 통장의 잔고가 늘상 달랑거리는 넘이지만 항상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일까?'를 한탄하게 만드는 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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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해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았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라고 말하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주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 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 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 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에도 난 감옥 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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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터뷰 중 하신 말씀>


상대를 이해하라는 말은 어리석은 말 같아요.
내 꼬라지를 알아가다 보면, 남은 저절로 이해가 되요
.
아.. 내가 그러니 상대도 그럴 수 있겠다. 전 규호 캐릭터를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규호 캐릭터를 쓰면서 처음 안 것은
옛날에는 내가 이런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되게 재미를 주더군요.
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 때문에 항상 즐거워요.
이런 사람들이 주는 시원시원함이 있어요.
자기의 이기심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잖아요.
이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더 깊은 우정도 생겨나요.

 

저는 누군가를 판단할 때, 내가 너무 표면적으로 보고 있지 않나, 나의 이득에 따라 보고 있지 않나 살펴봅니다. 그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되면, 좋고 나쁜 것이 따로 없어요. 모두가 괜찮은 그만그만한 사람이예요.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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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2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이라크 파병에 대한 매우 상반된 논리전개들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일제식민치하에서 우리 선조들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딜레마에 빠졌었고 또 그 때문에 많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몰론 그 심각함에서는 큰 차이가 나겠지만.

충성을 바칠 '나라'가 사라져버린 일제 식민치하에 사는 조선인들, 발전과 융성을 더해가는 일본제국의 식민지 반도 조선인이 처한 상황에서 조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책이란 일제의 식민지통치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서 하루빨리 황국신민이 되어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선일들은 이 길을 걸었다. 육당도 춘원도...... 그리고 많은 식견있는 지도자급 조선인들 대부분이 이 분명한 흐름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로서는 그 당시에 주어진 '조건'을 가장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매우 타당한 선택이다. 그러나 일부 이른바 '불령선인'들은 이렇게 분명한 상황에서 주어진 '조건'을 거부하고 그 반대의 길을 갔다. 우리가 지금은 '독립지사'라고 부르는 애국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왜 그들은 눈에 분명히 보이는 쉬운 길로 가지 않고 그 험난한 가시밭길을 택했을까? 위험은 하더라도 잘만 하면 크게 대박이라도 터뜨릴 수 있을 것 같아 도박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을까? 희망이 있어서? 대한독립이 눈에 보여서? 사실 1920~40년의 아시아와 세계정세를 살펴보면 이런 것이 눈에 보이면 '착란'이고 여기에 희망을 걸면 '맹신'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분들의 말씀이나 글에는 희망이 아니라 확신이 넘친다. 이것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이 무엇을 믿고 일제의 대동아에 도전을 하고 나선 것일까? 꼴통분들^^


오늘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성인남녀 중 지금 대한민국이 겉으로야 어떻든 간에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아메리카합중국에 반 쯤 종속된 반쪽의 독립국에 불과하여 매사가 아메리카합중국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많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이번 이라크 전쟁과 같이 아메리카합중국이 저들의 국력을 다하여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민국의 '참여'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운신폭이란 극히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는 일' 이라고 못 박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과 '파병반대'의 목소릴르 드높여 주위로 부터 현실을 보지 못하는 꼴통들이란 소리를 사서 듣고 있다. 도대체 '파병반대'를 외치는 그들은 무엇을 보고 또 믿기에 감히 전지구적 흐름인 팍스아메리카나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것일까? 이게 제 정신으로 하는 짓일까? 도대체 논리가 없어, 논리가!


나는 이것이 하나의 '상황'을 두고도 그 보는 눈은 전혀 다를 수 있으며 이 눈은 그 눈의 주인이 가진 '삶의 자세' - 철학, 역사의식 인생관 등 여러가지로 부를 수 있겠지만 - 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상황에 순응 또는 적응하는 '현실론자'들에게 '상황'은 하나의 주어진 '조건'이지만 이른바 '꼴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그 '상황'은 극복해야 할 하나의 장애, 풀어야 할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그럼 우리는 위의 두 가지 자세 중 어는 것을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물론 이 시점에서 어느 쪽이 바른 선택인지를 가를 수 있는 '증거'는 자지고 있지 않다. 만약 일제가 패망하지 않고 대한민국이란 독립국가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지금 독립운동가라고 칭송하는 사람들은 그저 반체제 '테러리스트'거나 '비적집단'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수도 있으니 팍스아메리카나의 성공을 바라고 또 믿는 자들이라면 이 상황과 이 조건을 잘 이용하는 것이 잘하는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일제의 패망을 바란 우리 '선조 꼴통분'들처럼 팍스아메리카나의 도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니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 선택은 분명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선택은 언제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이다. 꼴통들에겐 꼴통들 나름의 논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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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로그아웃 화면에 올라온 글 2004.05.13 17:17

 

 

처음 뵙겠습니다.

이 1초의 짧은 말에서 일생의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고마워요.

이 1초의 짧은 말에서 사람의 따뜻함을 알 때가 있다.

 

힘내세요.

이 1초의 짧은 말에서 용기가 되살아날 때가 있다.

 

축하해요.

이 1초의 짧은 말에서 행복이 넘치는 때가 있다.

 

용서하세요.

 이 1초의 짧은 말에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안녕.

이 1초의 짧은 말에서 일생 동안의 이별이 될 때가 있다.

 

 

 

1초에 기뻐하고 1초에 운다.

일생에 걸쳐 열심히, 한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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