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애사(有愛寺)는 원래 상업을 주로 하는 종교집단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세력이 미치는 곳은 상업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골라골라'라는 그들의 붉은색 현판은 몇 몇 곳을 제외하고는 세계 어디에나 걸려 있었고
이러한 현판들은 곧 그들의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척도가 되었다.

유애사는 모든 품목을 취급하는 상인들로 알려져 있으나,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무기판매가 그들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과거 무림대전 때 등장했던 맥아도(麥芽刀)였다.

당시 원자단과 함께 그들의 최고 병기로 여겨지던 맥아도는 이승마니의 요청에 의해 파견된 미국군에 의해 그 위력을 떨쳤다. 미국군이 이것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특히 허리 베기에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했다고 한다,
맥아도를 한 번 쓰면 왠만한 무사 1000명은 죽어난다 하여 맥아도의 사용을 인천살육(人千殺肉)이라 묘사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 모습을 본 하누 아버지 이승마니는 미국군의 무공과 맥아도에 매료당해 무림보물 중 하나인 군사주권(軍司主拳)을 아예 미국군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전장 뒤로 도망쳤었다.
이 일로 인해 수십년간 무림맹이 유애사의 하부기관이란 소리를 듣게 될 줄 이승마니는 몰랐던 것이다.


유애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 외딴 섬에 창건된 조그마한 문파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무림들이 수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에 비하면 유애사의 전통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유애사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인가.
유애사의 창건 당시 세계 강호를 주름잡던 문파는 양국왕(揚國王)이 이끌던 양연방(揚鳶方)이었다.

그러나 양연방은 잇달은 싸움으로 인해 그 소모가 극심했고, 특히나 일갑자 전 히두라가 이끄는 도길군단과의 싸움으로 인해 거의 파탄의 지경에 이르러 이름만 남았던 것이다.

이 때 유애사 또한 싸움에 참가했으나, 근거지가 전장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망하기는커녕 엄청난 실전 경험을 쌓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섬에서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 막강한 힘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후 유애사는 솔연군이 이끄는 솔연방(率然方)과 양대 문파로 세계 강호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실상, 솔연군의 공력은 유애사에 의해 과대포장된 것이었고, 유애사가 강호의 실질적인 최강 문파 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것을 평가하는 이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이후 솔연군이 주화입마하고, 솔연방이 붕괴된 뒤부터는 유애사가 내놓고 강호를 지배하게 되었다.

유애사는 수 십년간 강호의 패자로 군림하며, 자신들의 본업인 무기제작과 판매에 열을 올렸다. 무림대전 이후 그들의 최고 병기중 하나인 맥아도는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이들의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인해, 맥아도보다 훨씬 강력한 병기가 탄생한다.













허리우도.....




허리우도는 이전의 맥아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시무시한 병기였다. 맥아도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던 미국군이 여러 전투에서 내상을 입자 자신들이 직접 나서 싸우지 않고 무기만 팔아도 되는 허리우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허리우도에는 그것을 한번이라도 사용하면,
그 사용자가 무의식 중에 유애사의 뜻에 따르게 되는 특이한 힘이 있어 유애사는 이것으로 자신들에게 반발하는 세력들을 없에나갔다.

이러한 목적으로 허리우도가 강호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침해하는 일이 생기자 각 문파에서는 허리우도를 사용하는 일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을 눈치 챈 유애사는 하부기관인 시장개방(市場開方)을 움직여 각 문파가 허리우도를 억지로 쓰도록 강요하기 시작했다.
시장개방은 허리우도를 판매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상술을 썼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끼워팔기 였다.
'허리우도를 익히면 자신네 내공인 나이기(羅異氣)를 전수해 준다.'
'맥도날도(脈道捺刀)를 하나씩 공짜로 준다' 를 내세워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여기에 영업상인들을 파견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가장 우수한 영업상인이 비구니인 대주니(岱主尼)였다.
대주니는 허리우도를 써서 고수가 되었다는 사람들을 대동하고 다니면서 허리우도를 광고했는데, 그 때 거느리고 다닌 이들이 람보(覽甫)와 검한도(劍恨盜) 였다.
이들은 몸에 허리우도 뿐 아니라 그 자매품 맥도날도(脈道捺刀)를 차고 다니며 위세를 과시하고 다녔다.

그들의 말인 즉, 맥도날도가 비록 끼워파는 일회용 병기이긴 하지만 맥아도의 맥을 이은 막강한 병기이고
자신들은 그러한 칼을 씀에 있어서 언제나 정의의 편을 드는 도날도덕(道捺刀德)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처럼 이들이 스스로 도덕을 지켜준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람보, 검한도는 술만 먹으면 횡포를 부리는 못된 습성이 있었다. 특히나 그들은 허리에 차고 다니는 수타어주(樹打御酒)를 먹으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져 내공을 자기 멋대로
포수(砲手)라 칭하며, 악행을 여기저기서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강호에서는 람보와 검한도만 보면
'재 온다이'를 외치며 사람들이 도망다녔고, 이러한 그들의 외침이 조금씩 변해 나중엔 그들의 출현을 알리는 외침이 '재다이'로 변형되어 불렸다고 전해진다.

허리우도의 보급에 재미를 붙인 유애사는 모든 무림인들이 허리우도를 쓰도록 대련의 규칙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우선 무기를 쓰지 않는 싸움은 엄금했다. 그러나 레슬링과 같은 대련에서는 무기는 정말 불필요한 것이었고, 여기에 허리우도의 판매 저하를 우려한 유애사는 레슬링을 불허하는
'不許 레슬링'이란 규정을 만들었다.

이렇게 허리우도를 통해 무림을 재패하려는 유애사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거기에 선정보도를 들고 가장 열심히 쫓아다닌 무리가 역시 좃선당이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별로 사랑스런 일을 하고다니지 않는 유애사가
왜 유애사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단 말인가?
그들에게 愛란 개념은 육체적인 면에 상당히 치중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애사의 풍속은 상당히 성(性)적인 면을 강조했고, 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포주를 제자로 거두고 있었다.
대표적인 포주들의 회의가 앤배회의였는데
여기의 수뇌역할을 하던 인물들이 '앤아파할', '애무앨배,' '앤에취할'과 같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만큼 선정적인 이름의 승려들이었다.

주지의 이름이 꼴린돈임을 보면 더 이상 말하여 무엇하랴...........

꼴린돈은 여자 좋아하기로는 어떤 위인이 열녀 좋아하는 것에 비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여자를 밝혔다.
얼마전에는 자신의 친척 누이인 숙희와 부적절에서 정을 통한 사실이 강호에 알려져 망신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당시 꼴린돈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자신의 소문에 진노한 꼴린돈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외부에 이러한 일을 퍼뜨렸다고 결론짓고, 주변 인물들을 조사했다.

결국 소문의 근원지가 자신의 경호대에 있던 특별검사(特別劍士) 수다(授多)의 수다 였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홧병으로 주화입마해 사경을 해맸으나,
유혹상원의원(誘惑上院醫員) 희라리(喜羅利)의 진료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꼴린돈은 비록 여색을 밝히기는 하나 허리우도와 같은 무기수출에 있어서는 온건한 축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그의 정적이던 '징그럽지' 보다는 일성교와 무림맹의 화합에 긍정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꼴린돈에게 타격을 입는 것은 유애사의 극우파(極右派)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고 여기에 좃선당과 중앙당이 선정보도를 꺼내들고 한 몫 거든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이러는 중에도 유애사가 판매하는 허리우도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는 노력들이 있었으니...
허리우도가 가지는 약점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허리우도는 그 이름과 같이 허리 위에서 쓸 때 위력을 발하는 무기였다. 허리를 구부리고 그것을 사용하면 효과는 커녕 되려 피해를 보기 쉬웠다.
그래서 허리우도를 쓰지 않으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서 허리를 수그리는 시전하는 무공이 개발되어 조금씩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유애사가 가만히 있을리 없었고,
강호의 규정을 이용해 이것을 막으려 했다.
이렇게하여 강호에 또 하나의 웃지못할 규정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니.....

싸울 때 수그리는 것도 불허한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힘없는 이가 당하는 곳이 강호인 것을........이렇게 강호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유애사가
스스로 군사주권을 가져다 바치고 자신들의 부하 노릇을 하다시피 하던 무림맹이 일성교와 통합해 독자적인 세력을 만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여기에 유애사 외에도 족발이가 이끄는 '신사(神寺)'와 장골아(掌骨兒)가 이끄는 차인회(差人會)와 같은 주변 문파들도 무림맹의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외부의 문제와 무림맹 내부의 문제들........과연 무림맹과 일성교의 통일은 올 것인지......

-계속-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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