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801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다'는 말이 있다. 유식한척하자면 '감탄고토(甘呑苦吐)'라고 쓰면 된다. 그런데 우리 말 사전을 보면 이것을 <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자기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함. >이라고 풀어놓고 있다. 웃기지도 않는 엉터리 풀이이다. 도대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어떻게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는 짓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쓰면 삼키고 달면 뱉는 것이 사리에 맞는 짓이란 소리인가?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함>이란 소리도 웃기기는 마찬가지이다. 좋은 것이란 비위에 맞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고 싫은 것이란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풀이인지 모르겠다. 비위에 맞으면 싫어하고 맞지 않으면 좋아하는 것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바른 자세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니 이것은 인체의 신비함, 그리고 대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혀가 달고 짜고 맵고 씀을 나누는 기능을 가진 것은 그런 나눔이야말로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에 좋은 것은 될수록 많이 먹게 하기 위하여 비위에 맞게 달게 하고 먹어서 좋지 않은 것들이 입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비위에 거슬리게 그 맛을 쓰게 하였으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인체와 자연의 만남인가.


그런데 이른바 배운 척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이 당연한 말을 위의 사전에서처럼 저렇게 나쁜 뜻으로만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대자연의 섭리에 대한 경외감이 너무 부족해서 일까? 인체의 신비에 대한 무지함이 지나쳐서 그럴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식자(識者)님들 생각하는 폭 좁기야 세상에 소문 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거창하게 멀리 갈 것도 없어 보인다. 이른바 '권위' 있는 것이거나 그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냥 다 받아들이는 것이 몸에 벤 사람들이 사전에 쓰인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무례를 범할 리가 없다.


하기야 이런 소리를 하면 우리 식자님들 어떤 것을 들고나와 소리 지를지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란 것이겠지. 이 말은 고사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데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패덕(悖德)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이건 한마디로 공자님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 옳고 또 옳은 말이 된다. 그래서 우리 식자님들 이 가르침을 뼈에 새기고 마음에 깊이 담아 잊지 않는 모양인데...... 뭐, 그건 잘하는 짓이다. 어린 아이가 한 말도 새겨들어야 군자가 되는데 공자님의 말씀이야 달리 말할 것 없다. 그러나 아무리 공자님 말씀이라도 알아듣기를 제대로 해야지 제멋대로 해석해서 '孔子 曰'이라고 나불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식자님들은 불행하게도 좋은 약 입에 쓰다는 말을 입에 쓰니 몸에 좋다는 말로,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고 말씀했다해서 귀에 거슬려야 충언이라는 말씀으로 곡해한 듯 하다. 그러니 '달면 뱉고 쓰면 삼키자!' '욕 같지만 욕으로 듣지마.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야.' 따위의 헛소리를 하고 다닐 수 있지.



잠깐, 여기서 양약(良藥)이란 무엇인지 공부 좀 하자.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란 말은 <史記 - 留侯世家>에는 [毒藥苦於口而利於病]라고 되어있다. 이것은 나중에 한나라의 고조가 되는 유방의 막료 장량이란 사람이 한 말인데 직역하자면 '독약(毒藥)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는 말인다. 풀이하자면 '먹으면 입에 쓴 독약- 당연히 몸에 해로운 것- 이라 할지라도 큰 병을 고치자면 어쩔 수 없으니 쓴 것을 참고 독약을 먹어서라도-몸을 약간 상하는 정도로만 - 병을 고치는 것이 좋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장량이 말하는 독약(毒藥)은 요즘 우리가 쓰는 독약(deadly poison)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고대 중국에서 독과 약의 구분은 모호하다. 같은 독약이라도 잘 써서 몸에 좋거나 병을 고치면 그게 약(藥)이고 잘못 써서 병을 고치기는커녕 몸을 더 나쁘게 만들면 그게 바로 독(毒)이다. 그러니까 양약이란 그 본색이 독약임에도 불구하고 처방이 적절한 경우에만 독이 아닌 약이 되는 것이니 결코 함부로 다룰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장량이 [毒藥苦於口而利於病]라고 말한 것은 주군보고 독약 먹고 병 고치라는 막가는 소리로 들을 게 아니라 그 약 처방(處方)이 매우 좋다는 주장이라고 봐야한다. (물론 이 처방으로 초패왕 항우를 무너뜨리는 대박 터트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고사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약고어구(良藥苦於口)에서 양약(良藥)도 처방이 잘된 독약이지 단순히 입에 쓰기만 한 독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더구나 양약(良藥)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병 고침을 위한 것일 뿐 몸에 좋다고 쓰는 것은 결코 아니니 이래서 '약 좋다고 남용 말자'는 구호가 아직도 나오는 것이다.


아무튼 입에 쓴 것이 몸에 좋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마찬가지 논리로 귀에 거슬려야 충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쓰면 삼키고 달면 뱉는 것'은 미친 짓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사리에 맞다.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맞지 않으면 싫어함이 정상이다. 비위에 맞는 것은 싫어하고 맞지 않는 것을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른바 식자님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런 미친 짓을 강요한다.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가벼운 것들이라면서.



도대체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하고 입맛에 따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을 왜 하나로 묶는지 모르겠다.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니. 우리가 달지 않은 것을 삼키면서 달다하고 쓰지 않은 것을 쓰다하고 뱉고 있나?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탄고토'를 욕할 이유는 없다. 입맛이 병들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면 몰라도.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다. 맛있는 것은 맛있게 먹고 맛없는 것은 먹기 싫다. 우리 주위엔 이렇게 '감탄고토'란 대자연의 섭리를 천박한 것들의 몽매한 짓거리인양 비난하면서 '양약고어구' 같은 소리나 되뇌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니 엄청나게 많다. 이건 사실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지만 사정이 이 정도라면 억지로라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소리하는 분들은 남의 입에 맞는 맛있는 것을 만들 능력도 없이 무언가 만들어 내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요 또 이들이 겨우 만들어 낸 것은 맛이라고는 없거나 모두들 싫어하는 쓴맛만 나기 때문일 거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들이 입에 쓴 것이 몸에 좋고 귀에 거슬려야 충언이라는 이상한 말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설마 이들 모두가 "내가 권하는 것은 전부 '약'이다"라는 의·약사 분들은 아닐 테니까.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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