깟재가 돌아온 뒤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전의 싸움에서 강준마니의 내공을 본 깟재는 이번엔 사술을 쓰기로 했다.

세마을운동가(世麻乙運動歌)를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세마을운동가(世麻乙運動歌) ......

한시간 동안 똑같은 음률의 노래를 반복해 불러듣는 이를 주화입마 시키는 강력한 사자후였다.

깟재는 강준마니를 향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새벽종이 울연내(塞壁鐘李蔚然來) 새아침이 발간내(塞亞侵李發幹來)
....................................
......................................"

내공이 약한 사람이 들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빗자루 들고 뛰어다니다 쓰러져야 하건만...

어째 강준마니는 이 사자후를 듣고도 별 기색이 없었다.

'어잉? 이게 아닌데...'

사자후가 통하지 않자 깟재는 다시 무공을 쓰기로 한다.

단순무식 외공의 초절정 고수로 강호를 누빈지 어인 십여년... 그간의 연륜이 담긴 막강한 외공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박통덕경제성장(博通德經濟成掌),
니발갱이지(尼魃坑異指)

여기에 더해 내공심법 서 너 가지를 번갈아 가며 운공했다.

주석궁당구몰고가기(酒席宮堂狗沒龜佳氣)
몽골기행기(蒙骨機行氣)
발갱이잡기(發更異雜氣)

'후우~ 인물과사삼을 복용하고 실명비 판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면 이자의 손에 벌써 쓰러졌겠구나.'

강준마니는 연속으로 수세에 몰렸다. 서 너 장을 물러선 뒤에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지...'

"당신의 무공은 다양해 보이나,
전부 다 파시수투공(波市殊鬪功)에 뿌리를 두고 있구려

역시 파시수투공은 대단한 무공이오. 일갑자 전 강호가 그것으로 뒤흔들렸던 것도 무리는 아니겠구려

그러나 , 그것은 이미 일갑자 이전의 일 그간의 무공 진보를 우습게 보지 마시오"

이 말과 함께 강준마니가 니파시수투지(尼波市殊鬪指)를 펼치며 달려 들어갔다.

진북대고수(眞北大高手) 강준마니와
월간좃선의 수괴 조깟재....

두사람 일생의 공력이 스쳐지나며 펼쳐진
마지막 한 번의 공수에 모두 쏟아졌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날 무렵, 한참을 노려보고 서 있던 둘 중 깟재의 몸이 서서히 쓰러져 가고 있었다.

쓰러진 깟재가 강준마니에게 물었다.

"대체 당신이 왜 날 공격하는 거요?"


"지금껏 좃선당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많은 죄 없는 이들을 니발갱이지로 살해해 왔소,

월간 좃선의 수장이던 당신은 그런 좃선당에 과잉충성을 해왔소.

당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쳐왔소? 한안상, 김전남, 한순주 등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오.

본좌 당신의 악행을 응징하려 했으나, 그간 망설이고 있었소. 따지고 보면 당신도 이용당한 것이기 때문이오.
솔직하고 우직한 당신을 이용하는 것이 좃선당 쪽에서도 좋았을 테지...

그렇지만 얼마전 채장집 사범을 마도사 하누를 시켜 비겁하게 습격한 것은 본좌를 더 이상 참을수 없게 했소..."

당황한 얼굴로 깟재가 대답했다.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오"

사실 강호에서는 하누가 채장집에 감행한 비열한 공격 뒤에 깟재가 직접적으로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깟재는 이 점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강준마니의 표정이 엄숙히 변했다.

"내가 그 사건을 조사해 보던 중 현장에서 특이한 창을 하나 발견했소,
거기엔 우장창(愚將創)이라고 쓰여 있었소,
우장창이 당신이 아끼는 무기란 것은, 전 무림이 다 아는 사실이오. 이래도 발뺌을 하겠소?"

깟재의 눈앞이 암담해 지기 시작했다.

'이자가 이렇게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 줄이야...'

"그렇지만, 굽힐 순 없다."

"그건 북쪽에 일성교가 있었기 때문이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악의 무리 아니오.

그들에 비하면 내가 따랐던 박통, 본인운, 수태우 등이 훨씬 선하지 않소?

"인간은 능력 면에선 차이가 크지만 도덕성에선 다 비슷하오, 단지 위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정의? 세상에 정의가 어디있소?
힘이 바로 정의이고, 정의가 힘인 것이오.

"인간은 이해 관계의 포로요,
누가 감히 이해 관계를 부정할 수 있소?"
"당신네들이 말하는 건 위선일 뿐이오.

"박통, 본인운, 수태우는 강했던 사람들이오,
당연히 그들은 칭송 받아야 하는 이들이오."

"천재는 자신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자기 생애를 던지는 영웅적 기질의 소유자요"

"따지고 보면 무림의 영웅은 그대와 같은 사람들이 잡아 죽였소,


깟재의 말을 듣고 있던 강준마니가 대답했다


"그러니까 싸움 잘 하는 좃선당의 행동대장인 당신은 영웅이오? 허허 어떻게 세상에 도덕이 없을 수 있단 말이오.

"그대는 일성교주가 극악이라 했지만 본인운 같은 무리는 극선이라 칭송했소, 그대의 기준에 따르면 일성교주는 본인운 보다 훨씬 더 오래 자신의 문파를 이끌어 왔던 더 강한 영웅이고 천재요,

당신이야말로 공삼단인지 의심스럽구려.'

"그간 좃선당은 스스로 무림 정파를 참칭하며, 박통, 본인운, 수태우 같은 이들이 무림성녀 민주화(民主花)를 강간할 때 그것을 옆에서 고무찬양 해 왔소,

거기에 더해 소위 정파의 소임을 저버리고
그들이 저지른 악행을 무림에 불고지해 강호를 어지럽혔소

이래도 좃선당의 죄가 없소?"

"일성교가 독재하고, 힘없는 이들을 괴롭히면, 무림맹도 똑같이 그래야 하는 거요?

당신은 툭하면 본인운 수태우 박통같은 타락한 무림맹주들을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왔소,

그렇게 이해심 많은 당신이 굶어 죽어 가는 일성교도 들을 이해하는 데는 왜 그렇게 인색한 것이오?

당신들은 일성교를 비난하지만 실제로 당신들이 하는 짓도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소.

단지 당신들이 그들을 욕했던 건 지금까지 전수해 내려온
수구기득권(手具旣得拳)을 유지하기 위한 술책이었을 뿐이오."


깟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의 지금까지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무림에서 그가 누렸던 온갖 지위와 명예는 물거품이 되고, 자신의 삶의 의미가 부정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과거엔 당신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무림맹주의 지위를 놓고
소위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던
기명사미와 김데중이 싸우는 것을 보고는,
박통지도(博通志道)를 따르기 시작했소.
이것은 나의 잘못, 좃선당의 잘못도 아닌 그들의 잘못이오,"

강준마니가 고개를 저었다.

"제발 솔직해 지시오.
당에 충성해 일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 그런 일을 벌이게 되었다고...."

깟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멍하니 쓰러져 있던 그는 삶을 포기한 것처럼 조용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허, 나는 그를 죽이거나 무공을 폐할 생각은 없었고, 그저 선도하려 한 것 뿐인데.....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다니 죽음을 준비하는가?

다른 사람도 다 자기 같은 줄 아는 모양이군..........'

강준마니는 땅을 파는 깟재를 측은한 눈으로 처다봤다.

'깟재도 어차피 좃선당이란 조직의 소모품일뿐...... 불쌍한 인간이지...'

순간 깟재의 몸이 사라졌다.

'아차, 그가 월간좃선에서 땅굴파기(波氣)를 꾸준히 연마해 왔다는 것을 깜박하고 있었구나.'

강준마니가 정신을 차릴 때 쯤 어느새 좃선모까지도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강준마니는 깟재가 사라진 땅굴로 달려갔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그의 앞을 수십 인이 막아섰다.

강준마니의 눈에 그들의 얼굴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당신들은...."

강준마니는 어안이 벙벙해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그의 앞에 선 자들 중 몇몇은 맨 얼굴로,
몇몇은 문화면(文化面)을 쓰고 서 있었다.

그 중엔 널리 알려진 이무녈과 같은 인사도 있었지만, 강준마니를 놀라게 한 것은,

앞을 막아선 사람들 중 태반이 약자를 보호하는 협객으로 지금까지 무림에서 칭송 받아오던 고수들이었던 것이다.

"아니....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들이
조깟재 같은 악인을 싸고 돈단 말이오?"

"그러고도 당신들이 협객이라 자처 할 수 있소?"

앞에 선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들은 좃선당주의 부탁을 받고 여기에 왔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소."

강준마니가 물었다.

"아니 어떻게 좃선당의 부탁을 받아들일 수 있소?"

"좃선당은 강호 최대의 문파이고 명문 정파요. 좃선당도 무림맹의 일원인 이상, 그 쪽에 서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소."

"어찌 정의로운 인물임을 자처하는 자가 좃선당의 편에 설 수 있단 말이오 좃선당이 무림맹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하는지 정녕 모르시오?"

강준마니는 허탈해 하며 깟재가 사라져버린 땅굴을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강준마니의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좃선당이 저토록 강하게 버티고 있는 데에는
조깟재 같은 부하들 보다 외부에서 들여오는
저들 용병무사들이 더 무섭구나,

난 채장집 사범이 당한 것을 보고 용병 무사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용병무사들이라야

이무녈, 송뽁, 정진숙 같은 자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저들이 저렇게 많을줄은..... 저토록 다양한 배경을 지니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입만 열면 도덕군자 같은 소리만 하던 자들이 어떻게 좃선당의 하수인 노릇을 한단 말인가. 저들조차 좃선당의 편을 드는데, 누가 좃선당이 무림맹을 말아먹고 있다고 믿겠는가.

저런 자들이 좃선당에 붙어 좃선당을 감싸고 도는 한
좃선당의 문제를 모든 강호인이 인식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겠구나.

좃선당의 횡포를 없에려면 저들부터 먼저 좃선당에서 이탈시키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좋소, 본좌 여기서 물러나리다. 하지만, 조사부께 다음에는 각오하라고 전해주시오"




'아! 박통의 파시수투공에도 꿋꿋하게 맞서시던 이영이 고수는 뭘하고 계시단 말인가?'
'창작과비평사(創作過批評寺)의 백낙정(白樂政)주지께서는 언제 선술(仙術) 수련에서 벗어나실 것인가?'

이분들만 나서 주셨어도
저들이 지금처럼 좃선당을 싸고 돌지는 못할 것을......'


다 잡았다 놓친 조깟재....
하지만 강준마니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간 힘들게 키워 온 인물과사삼(人物過私蔘)이 강호에 유포되고 있었고,

그에게는 자신이 공들여 기른 인물과사삼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인물과사삼에 대한 기대와 좃선당을 지탱하는 힘의 실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는 생각이 인물과사삼사(人物過私蔘寺)로 돌아가는 그에게 힘을 더해주고 있었다.

------계속---------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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