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어느날 한척의 배가 정보의 바다를 건너 인터내도(忍攄來島)를 향하고 있었다. 조그만 배에는 늙은 사공 한 명과, 약관의 청년이 타고 있었다.

'저기 보이는 저것이 인터내도란 말인가?'

"여보쇼, 사공, 저 섬엘 자주 드나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우선 스스로 전용선(專用船)을 한 척 구해서 타고 다니는 방법이 있고, 큰 문파에서 사용하는 배를 얻어 타고 다니는 방법이 있지요. 자주 쓰시는 분이 아니라면 저희 피쉬방을 통해 드나드시면 되고. 전화선(電話船)이란 고물 배를 사셔서 사적으로 이용하시면 느리긴 해도 이곳에 드나들 수는 있지요. 하지만 그건 많이 쓸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지라....'

그들이 탄 배의 속도는 그리 느리지 않았으나, 지금껏 많은 이들을 날랐기 때문인지 배는 상당히 지저분했고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아까전부터 지저분한 배 때문에 불쾌했던 청년은 다음에 올 때는 기필코 배를 한 척 마련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때 저 뒤에서 작은 배 한척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 배를 쫓아오는 것이 청년의 눈에 들어왔다.

그 배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대한이 홀로 노를 저어 가고 있었는데 조만간 청년의 배를 따라잡을 기세였다.

"아니? 저 배는 무엇이길래 저렇게 빠르단 말이오?

사공이 대답했다.

"저 배는 좃선(船)이란 것으로, 좃선당에서 특별히 당원들을 위해 개발한 쾌속정이지요.
저 배를 타는 사람은 당에서 마련한 와래주(蛙來酒)를 먹고, 특수 제작된 포루노(砲累)를 저어 오기 때문에 우리 같은 배들보다는 훨씬 빠르답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저 사람 덩치를 보십쇼. 힘 무지하게 쓰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과연......그 배에 홀로 탄 대한의 덩치는 정말 엄청났다. 청년은 무서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배를 저어오는 큰 흑의인의 모습에 위압감을 느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좃선당원이란 말이오?"

사공이 대답했다.

"저 사람이 차고 있는 칼을 보십쇼. 선정보도(煽情寶刀)라고 쓰여 있지 않습니까?"

"강호에 선정보도를 쓰는 문파는 여러 곳이 있지만, 그 중 좃선당에 필적할 만한 세력은 없지요. 평소엔 점잖은 척 하면서도 그네들이 자주 쓰는 인피면구인 문화면(文化面)만 쓰면 동화당, 중앙당, 한결회 같은 곳보다 훨씬 선정보도를 심하게 휘두르지요."

약관에 불과한 청년은 평소 강호 일류 문파로 이름 높은 좃선당이 그런 행위를 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오? 좃선당은 강호 일류 문파인데 그런 짓을 할리가 있소?"

"청년은 아직 모르나 보구료. 좃선당의 선정보도는 다른 당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오.
저들이 글보다는 그림으로 설명된 무공서를 즐겨 읽는다는 것은 청년도 잘 알 것이오.

내 언젠가 그들이 익히는 무공서 좃선당보를 우연히 보았는데, 내부가 춘화(春畵)로 완전히 가득차 있었소.

전에 어떤 역사(力士)는 그걸 읽고 있다가 내가 쳐다 보니까 굉장히 놀래 하더이다. 그 놀래하는 역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었이겠소? 그런 것을 읽고 있던 자신도 부끄러웠기 때문이오.

얼마전엔 좃선당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단지일보(單志一步)란 신흥 세력을 누르기 위해
서역 유애사에서 월도누수(月盜累手)로 유명한 타불로이두(打不老異斗) 위굴리(危屈異)
를 초빙해와 당원들을 모아놓고 집중 수련까지 감행했었소. 이 점을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생전 처음 듣는 말에 청년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강호에 매일 찍혀 굴러다니는 좃선당보를 본 기억을 더듬어 보니, 무의식중에 보았던 춘화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 떠올랐다. 스스로도 거기 나온 춘화들을 많이 오려 갖고 다닌 기억이 나자, 은근히 부끄러워졌다.

"흐음.....들어본즉 그럴 듯은 하구려 그렇지만 좃선당은 강호의 도리를 내세우는 명문 정파 아니오. 설마 그런 좃선당이 유애사의 저질 무림인 위굴리 따위와 손을 잡았겠소?"

사공이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청년은 이번이 인터내도에 가는 초행길이오?
"그렇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륙에만 있었던 모양이구려.

이보시오

나는 이 인터내도에 오가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면서 이 섬과 인연을 맺은지 어인 수년이 다 되어 간다오. 강호에서는 좃선당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이 도덕군자인 양 행세를 하고 있지만 저들의 세력이 아직 미치지 못한 이곳에서는 좃선당의 행패가 널리 알려져 있소.

선정보도를 끼고 사는 저들이 어떻게 군자인양 행세할 수 있단 말이오. 그대가 대륙에 살면서 수 십년간 눈이 가려져 있었으니, 나 같은 일개 사공의 설명에 동의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하지만 이제 이 인터내도는 마음만 먹으면 한나절만에 뚝딱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소.

이곳은 바깥 세상처럼 특정한 문파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지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 이제부턴 이 섬에 자주 드나들면서 스스로 그 답을 찾아보시오"

이렇게 몇 마디 말이 오가는 동안 배가 나루터에 닿았다.

청년은 배에서 내려 사공에게 인사를 했다.

"말씀은 고마웠소, 하지만 좃선당이 강호에서 초일류 문파로 행세하는 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아니겠소? 그대가 좃선당과 무슨 감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좃선당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바보취급하지 마시오. 아무튼 여기까지 수고 하셨소."

사공의 입에 냉소가 흘렀다.

'훗.........그래, 지금은 무슨말을 해도 소용 없겠지 소위 고수들이란 사람들부터가 서로서로 잘못을 덮어주며 공생하는 더러운 바깥 세상속에서 길러진 젊은이가 좃선당이 가지는 패악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 하나와의 만남으로 알아내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청년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사공은 새로운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부두를 나오는 청년을 몇 몇 아이들이 둘러쌌다.

"아저씨! 절 이매인으로 쓰세요. 따로 돈은 안 주셔도 되고요. 아저씨가 전하고자 하는 소식을 다른 사람들한테 전해준답니다. 여기는 익수풀이 우거져서 아저씨 같이 커다란 어른들보단 우리 같은 애들이 훨씬 잘 돌아 다닌다구요.

절 쓰시면 아저씨 필요로 하시는 정보들 많이 모아다 드릴 께요."

대뜸 공짜라고 외치는 호객행위에 깜짝 놀란 청년은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매인, 야호, 올지도..."

그들의 옷에는 자신들의 소속을 나타내는 듯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누더기로 된 옷을입고 허리춤엔 패수어도(覇守御刀)라고 쓰인 조그만 칼을 차고 있었다.

"그럼 너희가 원하는 건 뭐냐?"

"아저씨 인적사항이요.

저희들 수익은요. 이 옷에 붙은 누더기들을 아저씨께 보여 드리는 걸로 대신합니다."
우리같은 사람 없으면 인터내도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인터내도는 우리랑 손을 잡아야 들어가실 수 있다구요. 그래서 이매인을 고용하는 일을 인터내도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가입(加入)이라고 한답니다."

과연 그들의 누더기엔 많은 글자들이 놓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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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도가 초행길인 청년은 그 중 서너명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입을 시작했다.

"내 이름은 강정(康丁)이라고 하네. 무림맹을 세계 최강의 문파로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나 할까? 아직은 고등무도관에서 수련하는 몸이지만, 이미 차력특기자(借力特技者)로 대무도관(大武道官)으로 선발되었지"

인터내도엔 초행이지만 여기서 기필코 유애사 휘하 "피파(被派)"의 대아불로(岱阿佛老)가 연성했다는 수타구래후투(守打龜來帿投)를 넘어설 수 있는 무공을 개발해 무림맹을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려 놓을 것이네......

하하하....대단하지 않은가?

패기만만한 청년의 웃음소리가 인터내도에 울려퍼젔다.







가입을 마치고 일어서려는 청년을 붙잡고 한 이매인이 말했다.

"아저씨, 저희를 데리고 다니실 때는 때와 장소를 잘 가리셔야 합니다.

인터내도에선 가면을 쓰고 아이 뒤만 쫓아오면 어딜 가시든 아저씨가 바깥 세상에서 무슨일을 하시는지 쉽게 밝혀지진 않습니다. 덩치 큰 아이를 하나 구해와 그 뒤에 숨어다니면, 그 아이 뒤에 누가 있는지 간파할 수 없지요.

하지만 싸움이 벌어질 때 우리를 대동하고 다니시면 우리는 무공을 거의 못 쓰기 때문에 쉽게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립니다.

내공이 강한 사람이라면 우리 피를 추적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일단 추적이 시작되면, 이 가입과정에서 밝히신 아저씨의 정체를 금방 알아 냅니다. 이걸 일컬어 아이피 추적한다고 하지요. 정말 고수라면 상대가 이매인을 대동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 무슨 경로로 인터내도의 어느 곳에서 얼만큼 머무르며 무슨 일을 했는지 밝혀 낼수 있답니다.

따라서 이매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자신에 대해 반쯤 공개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여기서 벌어지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동네 사람들은 이매인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습지요.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이매인 없이 다니는 사람은 사람 취급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이매인 없이 다니는 이들을 유령이라 부르더군요.

계속.......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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