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7. 14 자정 전후 우리모두 쏠로예찬, 진보누리 누리까페 동시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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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본인 사는 걸 돌아보면 '어쩌다 보니'가 너무 많다.) 앰네스티 인권학교 17기에 등록하게 되었다. 누리까페에 생명연습 님이 올려 준 홍보글을 본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어 새삼 감사드린다.

9시에 어제(글쓰다 보니 오늘이 어제가 되었다.) 강의가 끝나고, 501번(지랄염병 중에 파란색 병 버스이다.구 142-1)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찾았다.
시청역 8번 출구 맞은편에 시내 가는 쪽 정류장이 있기에 반대편엘 갔지만
원래 142-1번이... 서울역 근처에서 가는 길과 오늘 길이 다르다. 가는 맞은편에 오는 버스가 없는 구간이 있다는 얘기다. 혹 바뀌었나 하고 찾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버스의 관악구 방향 정류장 중 하나가 서울역에 있는 건 확실하다. 해서 서울역으로 걸어다가, 아는 분을 만났다. '아는'이라고 해도, 실은 며칠 전 우리모두 싸이트 내의 한 게시판에서 알게 된 다른 분 모친상에 가서 처음 뵙게 된 분이다. 너무 넓어서 문제인 서울 한복판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덕분에 서울역으로 가는 길이 헷갈리던 차에,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압축된 것이다. 적지 않은 노숙자들을 보았다. 정정한 3,40대 쯤의 남자부터 호호백발 할머니까지. '인권학교에서 룰루랄라 아오는' 길에 본 그들은 내 죄책감과 무력감을 부채질한다. 젠장.

서울역사(삐까번쩍해진 그 서울역사) 앞에 백인계 외국인 4명이(어두워서 확실히는 모르겠다. 최소한 2명은 백인계)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모자...인지 뭔지 하여간 돈을 받는 것 같다. 자신들의 필요에 충당할 돈인가? 아니면 근처 노숙자들에게 도움을? 혹은 둘 다?
모자(?)를 보고 순간적으로는,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 이따위 생각을 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한국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냥, 인간으로서 혹은 '세계시민'으로서 부끄럽다고 하면 되는 것을.
그런데 그들이 연주하고 내가 듣고 있던 곡... 멜로디를 가만히 되새기니 '베사메무쵸'이다. 번역하면 '키스를 많이많이'던가? 문득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여우주연 황정민 씨가 생각이 났다. 그 노래를 깔고서 멋진 밧줄묘기를 보이지 않았던가.
(<지구를 지켜라>는 언젠가 화려하게 '재발견/재평가'되지 않을까.)
발이 꿈틀꿈틀한다. 내가 암기식 교육에 워낙 잘 적응했던 나머지 '공부만 할 줄 아는' 중등시절(여전히 본인은 그러하다.)을 보내지 않았다면 춤꾼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도 해 본다. 내 눈 앞에서... 연주자들 앞에서 제멋대로 흥에 겨워 활개를 치는 내 모습이 보인다. 술도 안 취했는데.

버스를 타고 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서울생활 내지는 '현실'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게다. 먼 소린고 하니 서울역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서울문화사(아아! 순정만화의 산실(?) 서울문화사여 영원하라~~~!) 직전인가 직후에서 인간정육점을 본 탓이다.
501이 멈추어선 어떤 정류장 바로 옆에 창분 방향으로 짧게 쑥 들어간 골목길이 있다. 골목길이 끝나는(그리고 그 좌우로 또다른 골목길이 펼쳐지는) 딱 그 지점에, 윈도 안에 붉은 등 아래 흰 반팔 티랑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4명이 서 있다.(원 세상에, 이런 것만 잘도 기억난다.)
버스가 출발하는데 정류장 끝에 서 있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서로의 팔을 얽어잡은 '이성애 커플'이 눈에 들어온다. 웃고 있는 여자 얼글을 보면서 나는... 나는...... 이 대비가 오늘 겪었던 일 중 가장 큰 충격으로 마음에 남을 듯하다.
살면서 별다른 차별을 받아 본 적 없는, 그나마 자랑(?)할 것이라곤 최소한 의식적으로는 차별하는 쪽에 서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척 해 온 것 정도인, 나는 대체 이 사태에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모르겠다. 정말이지 나는... 나는......

버스는 달리고, 나는 내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누나는 자기 방에서 자고 있다. 어제부터 몸살 비슷한 게 난 모양이다.
내 방에 있는 빨래 건조대엔 오늘 누나가 빤(내가 안 했으니까 당연하다.) 빨래가 걸려 있다. 우리집 세탁기는 2001년부터 사용한 중고세탁기인데... 이 놈이 신기하다. 장마철만 되면 무슨 센서라도 달린 양 작동중지 상태가 된다. 당근 요즘은 작동중지다. 장마 지나면 다시 잘 돌아간다. 태풍치고 소나기 와도 잘 돌아간다. 장마철만 아니면 말이다. 정말이지 장마철 감지 센서가 달린 것 같다.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면서 4년째다. 장마철 내내 참다참다 결국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새로 사러 갈 각오(?)를 하면... 그때쯤이 또 장마 끝물이다. 올해는 지난 세 번의 경험 덕에 머리 끝까지 화가 나진 않을 것 같다. 순전히 - 일일이 손빨래 내지 발빨래하기가 - 귀찮은 마음에 '새 중고세탁기'를 살까 고민중이다. 4년이면 중고 오래 쓴 거 아닌가 하는 자기위안을 품고서 말이다.

인터넷을 이것저것 돌아보는데, 켜 놓은 테레비에선 영웅시대 방영중. 나 원, 영웅이란 -애초에 단어 자체의 마초성은 둘째치고라도 - 새 체제를 만든 사람 아닌가? 체제의 보호 안에서 갖은 착취를 저지르며 배불린 사람들(그들이 나름대로 '업적'이 전혀 없단 얘기는 아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은 아직 아주 흐리멍덩히다.)이 어떻게 영웅이 되는 거지? 정히 칭찬하고 싶다면 다른 단어를 써서 그들을 경칭할 일이다. 영웅이라니!

그게 끝나니까 PD수첩 방영 - 송두율 교수와 국가보안법을 다루었다.
(힘차게 외칩시다. 국보법은 국보가 아니다!!!)
인터넷 돌아보는 중이라 그냥 흘려보냈다. 솔직히 시간이 남아돌면 모를까 PD수첩이며 100분 토론이며 열심히 안 본다. 대충 내가 아는 얘기(너무 오만한가;;;;;;) 나온다. 특히 100분 토론은, 누가 나와도 '논쟁'이 아니라 '말싸움' 같다. 품격, 논리적/사실적 치밀함, 상대에 대한 기본적 존중 - 적어도 내 방영경험 중에 앞의 것들을 본 적은 없다. '어느 경우에나 존재하기 마련인' 예외를 제외하곤 말이다.

아, 자야 한다. 자고 일어나야 직장에 지각하지 않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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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모두 쏠로예찬 방 20040403



제목이 참 어정쩡하지만 부족한 표현력으로는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 한다.

1996년 대학생활을 시작한 첫 해부터 지금껏 몸담아오고 있는 동아리가 있다. 학생운동하고 그런 동아리가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일종의 중국 권법을 수련하는......몇몇 분은 이미 들었고(대개의 반응 : 권법한다는 인간 몸이 왜 그러냐?)... 하여간 오래도록 애정을 느끼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근데 이놈의 권법이란 게 그냥 팔 휘두르고 다리로 차고 하는 따위를 수련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하나의 학문(이를테면 경제학) 내부에도 학파가 나뉘어 경쟁하듯이 '남들' 보기엔 똑같은 한 종류의 권법인데도, 그 권법에 접근하는 기본적인 관점에서부터 동작 하나하나의 올바른 형태까지 의견을 달리하는 수련자들의 공동체/계보가 있다. 편의상 '계파'라고 부르자.
(유파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유파라는 것은 좀더 공인된, 객관적인 구분이 가능한 틀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를테면 태권도라는 무술이 있고, 여기에는 WTF와 ITF라는 유파가 있는데 WTF 내에서도 어떤 방식의 태권도 수련이 WTF 정신과 자세에 더 잘 부합하는가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수련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각각의 수련자들의 모임을 '계파'로 부르겠다는 뜻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동아리는 그리 크지도 않아서 대개는 하나의 계파만 있거나 하나의 계파가 지배적이다.
그 계파는 96년부터 지금까지 내 기억하기로만 서너 차례가 바뀌었다.
정확한 설명은 아니지만...대개는 이렇다. 우선 선배들이 추종하는 '주류' 계파가 있다. 그 선배들은 그쪽 계파의 권법가에게 배우고 그걸 후배들에게 가르친다. 그런데 이전까지 소수 계파였던 쪽 선배가 이런저런 계기로 후배들에게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혼자서 열심히 이것저것 공부(이론 공부 쯤 된다.)하고 수련하던 후배가 이전까지 동아리에 없던 계파에 속한 선생님께 배워 와서 퍼뜨리기 시작하여 성공하거나 한다.
그러면 양 계파 간에 경쟁이, 더 정확히는 일종의 감정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심오한 이론과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논쟁할 수도 있었지만... 선배라고 해도 결국 20대 중반 이전의 어린(?) 사람들이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힘든...
결국 생산적인 논의 같은 것은 기대도 못하게 되고, 감정싸움의 연속이 되고 후배들의 지지를 적게(대개는 거의 못) 받는 쪽 선배들은 동아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렇게 떠나간 선배들 중에는 내가 참 좋아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던 선배도 몇 있었다.
좀더 설명하자만 나는 졸업 전까지 늘...... 과 생활과 동아리 생활 사이에서 과 쪽에 더 비중을 둔 채 왔다갔다 하는 편이었고 해서 '싸움의 현장'에는 - 이것이 대체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 가 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97년 쯤이었나 내가 한참 동아리에 신경 못 쓰고 거의 못 나가고 할 때 동기들이 거의 모두 합심해서 선배를 몰아낸(그리고 다른 선배를 수련의 지도자로 받들게 된) 경우는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그때 떠나간 선배는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그래서 그런지 그 선배는 지금에 와서도 나만은 웃는 얼굴로 대해 준다.)
덧붙이자면, 좀 말이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그렇게 내 동기들이 그때 맞아들인 그 분을, 나 역시 마음속으로는 다른 누구보다 스승으로 여긴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선배 축에 들게 되었다.
새로운 흐름은 또다시 밀려왔다. 이번엔 아주 열성적인 동아리 사람(표현이 애매한데, 그는 학번은 95로 나보다 한 살 많되 동아리에는 나보다 늦게 들어온, 그러나 참 열심히 수련하는 선배다.) 하나가 외부의 선생님께 권법을 배워 왔다. 그 선생님은 전국 각지에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고 큰 곳에는 수련생 지부(라고 해서 으리으리한 시설이 쫙 갖추어진 것까진 아니고.)들도 있는 그런 분이었다. 실력 역시 훌륭하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도 우리 동아리와는 별개로 그 계파의 권법수련회가 생겼고 내 후배들은 - 전부는 아니지만 - 하나하나 그 수련회에 나가 배우면서 또 그것을 자신의 후배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즈음해서 군대를 갔다가 제대한 것으로 기억한다. 제대해서
나나 나와 계파가 같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편이었다. 아니 나머지는 거의 군대에 간 상태(동아리에 여학생이 거의 없다.ㅠㅠ)에서 내가 가장 먼저 제대한 셈이었는데
하여간 가만히 있으면서 나 혼자 내가 기억하는 대로의 수련을 했다.

고통스러운 일들이 가끔 일어났다.
개인적으로는 참 친한 - 동아리에서 유일하게 안티조선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고, 적극 동의하던, 지금은 열우당 지지자 쯤인 - 후배가 내가 마음으로 스승삼은 선배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것을 알고 화도 났다(엄격하게 말하면 화낼 일은 아니다. 생각하면 부끄럽다.). 성격이 좀 심하게 직선적인 또다른 후배가 - 아마 의식하지도 못했을 거다 - 쓰레기, 정신나간 따위의 단어로 내 쪽 계파를 표현할 때도 있었다......기억엔 없지만 아마 난 그때마다 그 녀석을 후려치고 싶었을 거다.
참고로 내가 스승 삼는 선배는 오래 전에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쪽에 주력하는 분인데 그래도 가끔은 동아리에 와서 지도도 해 주고 그러시는 상태이다. 학교에 나오시는 빈도가 점점 줄긴 하지만.

여튼 동아리 안에서 나와 같은 계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내 선배들과는 좀 다른 길을 택했다. 될 수 있으면 계파 차이로 말을 나누거나 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면서 동아리 생활을 계속했다. 그냥 버틴 거다.
이후 학번은 두 학번 아래지만 나보다 뛰어난, 나와 같은 계파라 할 수 있는 후배가 제대하여 동아리에 돌아왔고 지금은 그 후배가 동아리를 주도하는 상태이다.
앞으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제대한 직후부터 이곳을 알게 되었으니... 동아리 일로 고민하던 시기와 안티조선에 관심을 가지게 된(물론 다른 앙들과 몰입의 정도를 감히 비교할 자신은 없다.^^) 시기는 상당 부분 겹친다.
내가 2001년 이후 있었던 게시판의 여러 '싸움'들을 보면서 자꾸 동아리에서 겪은 일들이 겹쳐 보였다면 착각일까. 일 수도 있도 아닐 수도 있고......



떠나가는 선배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결심한 게 있다. 나는 떠나지 말아야지.
'권법 동아리'니까 권법도 중요하고 동아리도 중요하다. 다만 사람에 따라 어느 한 쪽에 더 무게를 둘 수는 있겠다.
잘못 아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내 짐작엔 떠나간 사람들은 권법 쪽이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내 경우엔...동아리 쪽이 더 중요했던 걸 수도 있고 혹은 내 나름 '둘 다 중요하다'는 생각의 표현이 불만은 있어도 동아리에 남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나간 이들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심지어 그 선택이 존경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내 선택 역시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지인들에게 자기비하가 좀 심하다는 말까지 듣곤 하는 내가 괜찮다 여길 정도면... 정말 나름대로 괜찮은 선택인 거 아닐까. 혹은 장고 끝에 악수? ..;;;;;;

(녹색 글씨 이후 부분을 우리모두에 대한 내 생각을 돌려 말한 것으로 애써 생각하실 필요는 없다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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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2 우리모두

내가 1학년 때부터 줄곧 발을 들여놓고 있는 '태극권연구회'라는 
대학 동아리에는, 지금은 전보다 드물게 오시지만, 한때 많은 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수련이 엄청나게 깊은 81학번 선배가 있다.

그 선배는 고시를 준비중인데 그러다 보니 고시생 중에 건강에 관심 있는
다른 고시생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 중에는 같은 단과대의 선배인 79학번 선배님도 있었다.

내가 군대 있어서 알지 못하던 3년 여 전부터 그 선배님은 매우 맹렬하게 연습을
해 왔고 이제는 태극권의 사부인 81학번 선배에게
혼자 수련해도 되겠다......는 평까지 받았다고 한다.(혼자 하는 거 위험하다)

난 연수로는 5년 가까이 동아리에 들락날락 하고 있지만 늘 수련에는 게을렀기
때문에 잘 안다. 그만큼의 경지까지, 그것도 몸이 굳어가는 그 나이에 시작하여
그만큼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 무서울 정도의 노력과 집념을 잘 알긴 하지만
내가 제대해서 만나 온 선배님의 모습은 잘 웃고, 잘 이야기하는...
호인 풍의 모습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 나는 선배님을 따라 우리 동아리에서 수련터로 애용하는,
사람의 왕래가 적은 편인 풀밭으로 갔다.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배우려는 생각이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선배님의 '바로 그 표정'을 보게 되었다.

그 분은 태극권의 투로
(태권도의 품새 같은 것. 공방의 동작을 순서대로 연결해 놓은 것)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방탕한 생활로 몸을 혹사하기 쉬운 20대 젊은이보다 오히려 활기 넘치는 몸놀림,
단정하고 유연하며 힘이 느껴지는 다리의 움직임,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들어가야 할 것이 모두 있는, 한마디로 깨끗한 동작들.

언제 봐도 감탄스런 모습이다. (당연히,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비록 찬탄을 거듭해도 모자람이 없을 그 모습이지만, 자주 보던 것이었다.
어제, 정작 그때까지는 보지 못하다가 보고 놀란 것은 선배님의 얼굴이었다.

언제나 웃음을 띠던, 아니면 웃음까진 아니더라도 온화한 분위기를 주위의
공기에 흘려보내던 선배의 얼굴은 참으로 엄격하고
매섭기까지 했다. 심약한 내가 순간 움츠러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내가 겁먹을 필요는, 냉정하게 따지자면, 없다.
그 엄격하고 매서운 표정은 남이 아니라 선배님 자신에게 향한 것일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투로를 펼치는 바로 그 때만은 자신을 대하는 선배님의 모습이
숨김없이 드러난 것이라고, 나는 느꼈다.
(81학번 선배가 말한 적이 있다. 수련하는 모습을 잘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얼마나 귀한 순간인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짓는 표정을,
그것도 참으로 본받고 싶은 표정을 볼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을 뿐더러 또다른 의문을 가지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과연 나는 나에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당장은 남들에게 보여드리기 부끄러운 표정임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문들.
과연 나는 내가 지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의 바로 그 표정을 보았던가?
나는 그들이 안심하고 그 표정을 보여 줄 만큼의 신뢰를 심어주었던가?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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