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자명단(落選者名丹)의 보급은 강종필이 몰래 유통시킨
모택동미(毛宅童未)로 인해 난관에 봉착한다.
사람이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그러나 뜻있는 이들이 모택동미를 먹느니 밥을 꿔서 먹겠다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밥꿔' 운동

이들은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으니
일부만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밥꿔! 밥꿔!
모든걸로 다 밥꿔!
사람들 다 밥꿔!

이로 인해 힘을 잃어가던 초선연대는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비무 대회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한편 신무기'음모(陰矛)'를 완성한 이무녈은
중앙당주와 함께 초선연대를 찾아가 도전장을 내민다.
초선연대를 만난 이무녈이 말했다.
"죽을래? 음모에 찔릴래?"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해봐"

"우리는 죽을지언정 음모에 맞을 수는 없소"
"그래? 죽는게 음모에 찔리는거야"

이런 식으로 초선연대를 공격하던 이무녈에게 멀리서 다가오는
붉은 옷의 인영이 보였다.
투기로 가득찬 모습으로 볼 때
이무녈은 자신에게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본 이무녈은 아연실색 하고 만다.
그는 최근 강호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쥔중권!

몽골무사 조깟재와 침뱉기 대결을 펼쳐 무림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
40대가 되지 않으면 무술을 배울 자격이 없다고 강종필이 그랬던가?
그러나 다가오는 그는 나이 40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미남자? 였던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 상대와 싸우는 것이 체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무녈은 싸움을 하지 않으려 하나,
옆에 있던 중앙당주는 싸움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무녈을 종용하고 마침내 이무녈은 그와 싸우기로 마음을 굳힌다.

음모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이무녈에게 쥔중권은 맨몸으로 대응한다.

이무녈과 같은 고수와의 싸움에서 무기를 들지 않는다는 것은
자살을 의미하는 것.........
그러나 무기를 잡지 않은 쥔중권에게서 이상한 검기가 느껴졌다.

"무슨 무기를 쓰는 거요?"
"본좌는 내공을 이용해 무형의 검기를 만들어 사용할 뿐
달리 사용하는 무기는 없소"
"그렇다면 그 무공의 이름이 뭐요?"
"우리모두점검 이라 하오"

우리모두점검(羽理矛竇點劍)!
인물과사삼(人物果思蔘)을 달이고 달인 물
얼오부어수(孼吾部於水)를 마신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무형검!

애초에 좃선점검(朝鮮點劍) 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
지금 쥔중권은 이무녈에게 우리모두점검을 사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음모와 맡붙은 우리모두점검

삼국지(三國指),가부장(家父掌),침뱉기로 대표되는
둘의 무공이 화려하게 시전되며 한 시진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디선가에서 어린아이를 업은 여인이 나타나 그 싸움을 보기 시작했다.

그 여인을 본 중앙당주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여협의 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제 성은 진이옵고, 강호에서는 저를 젖소부인이라고 한답니다"

젖소부인! 강호에서 가장 뜨겁다는 여인?
젖소부인이 여기엔 왜 왔단 말인가?
의아하게 생각한 중앙당주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아이는 누구요?"
"이무녈님의 아이 바람 입니다.
그런데 저 양반이 한사코 아니라고 우기는 바람에......
이렇게 쫓아왔습니다"

영웅본색(英雄本色)... 이무녈이 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강호가 다 아는 일이었고
그가 열녀(熱女)를 좋아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강호 제일 열녀 진두희라면....
그의 아내 현모양처(賢母陽妻)보다
더 뜨거운 여인..........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둘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군중들의 동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항상 무림동도들 앞에서 체면 차리는 것을 즐겨하던 이무녈
그가 싸우면서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을리는 없었다.
속에서는 불이났지만 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쥔중권의 무공은 생각보다 훨씬 고강했고,
쥔중권의 우리모두점검으로 음모는 부서지고 있었다.

이윽고 쥔중권이 시전하기 시작한
파로두이신공(波盧斗異神功)은 이무녈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파로두이신공은 상대의 무공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되돌리는 무공!
이무녈은 자신이 시전하던 모든 무공까지 방어해야 하는 수세에 몰렸다.

이무녈의 생명이 경각에 달하려는 순간

갑자기 산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뛰어내려 쥔중권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저 호랑이가 엊그저께 순이네 박 깬범이라면서?"
"맞어". "맞어"

쥔중권같은 고수에 그러한 호랑이 따위가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귀찮다는 듯이 쥔중권이 휘두르는 진벙장(眞兵掌)
"소옥~"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호랑이는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틈을 놓칠 이무녈이 아니었다.
음모를 크게 휘둘러 거리를 만들고
어딘가를 향해 절을 하며 빌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정한 검객은 상대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때는 공격하지 않는 법
쥔중권은 그냥 이무녈이 하는 일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저자가 무슨 사술을 쓰는 것일까?"
"저자가 역경에 정통하다고 하던데, 혹시......."


이윽고 이무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그의 옆에는 한 괴인이 서 있었다.
얼핏보기에도 그의 얼굴은 이 세상 사람의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죽은지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얼굴.....

쥔중권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헉! 그렇다면 저자가 부린 사술은 다름아닌 공자강시환생술!"

공자강시환생술(孔子糠 還生術)!
수 천 년 전 죽은 고수를의 이름을 빌어 왠갖 잡신들을 모아 강시를 만들고
그것을 만든 이의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술법이었다.

강시와의 싸움에서는 인간의 내공이 먹힐리 만무했고
우리모두점검도 소용이 없었다.
전세는 역전되어 쥔중권은 수세에 몰린다.
이윽고 강시가 쥔중권의 목을 조여오는 순간.......

쥔중권은 몸 속에서 작은 단도를 하나 꺼내 강시에게 찌른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강시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무기가 귀신에 먹힌단 말인가?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유를 몰라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수인 중앙당주와 이무녈의 눈에는 그 단도에 쓰인 작은 글자가 보였다.
공자가살아나도(孔子可殺亞羅刀)............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하는 강호에 몇 안되는 무기중 하나인
공자가살아나도 였던 것이다.

평생 사람들에게 '그 영웅 시대' 란 소리만 듣던 이무녈에게 있어
패배란 수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무녈은 가전의 경공 이씨족보(李氏足步)를 전개해 줄행랑을 놓는다.


강시와의 싸움으로 지친 쥔중권은 차마 그를 쫓지 못하고
초선연대의 감사인사도 받지않고 어디론가 떠났다.


이무녈이 패퇴되고 모택동미도 보급에 실패하자 낙선자명단은
점점 빠른 속도로 강호에 전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에 좃선당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으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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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봄은 돌아오고 시간은 흘러
강호를 대표하는 200여 인의 고수를 뽑는 비무대회가 다가왔다.
그 고수단의 이름은 국해우원단(國害遇員)....


천하에서 가장
멱살잡기(覓殺雜氣)를 잘하고
단상점거(單相店車)를 잘 몬다는 200여인의 고수들....


비록 자기들끼리의 수련으로 강호에 도움 되는 일 하는 건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굉장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이들이 선출되는 방식은 내공의 높낮음을 가리지 않고
순전히 초식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선출하는 것이었으니
가히 쇼우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을
제대로 된 주먹을 가졌다 하여 유권자(有拳者) 라 칭했다.

선정 방식은
선거(船車) 위에 올라가 자신의 무공을 시전하면 그것을 본 유권자 들이
그 무공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때
표를 던져주어 많은 표를 얻은 이가 선출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을 투표(投票)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게 당선된 이들이 강호를 돌볼 의무를 저버리고
매일 동내에서 힘없는 사람들 돈이나 뜯고
지들끼리 싸움이나 하는 추태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로 할 비무대회를 기다리며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 유권자들을 매수할 준비에
여념이 없던 국해우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그동안 자신들의 말에 순종만 하고 고분고분하게 따라만 오던
유권자들이 스스로 일어서 국해우원들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한 삼국지의 '초선'의 뚯을 기려
'초선(初選)연대(連帶)'라 자신들을 칭하고는

그동안 선善을 땅에 떨어뜨린 국해우원들을 심판할
투표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눈을 밝게 해주는 신약
'낙선자명단(落善者名丹)'을 조제해 무상으로 나누어 주기로 했다.


이제 악행을 일삼아 왔던 국해우원들의 미래가 암담해 지려는 순간

이번 비무대회를 위해
김데중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나온 강종필이
지난날 악행을 해온 자신의 부하들이
많이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음모(陰謀)논에서 재배한 홍위벼의
모택동미(毛宅童未)를 무림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모택동미.......

이것을 복용한 자가 '우리가남이가(牛李家南夷家) 로 들어가지 않으면
중독되어 목숨이 위태롭다는 극약


강종필은 이것을 치료해 준다는 명목하에
우리가남이가(牛李家南夷家)를 세우고 그 안에서 무림인들을 세뇌시키는
'하파지(夏波指)'를 쓴다고 한다.
자고로 하파지를 맞으면 모택동미의 중독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뇌에 충격이 가해져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만 하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강종필은 이들을 세뇌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충청도(衝淸刀)를 지닌데다,
내공이 9성 이나 된다는 고수 강종필의 이러한 작업으로
초선연대의 힘은 초반과 달리 약해져만 갔다.





그러던 중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무공 삼국지(三國指)의 이무녈이 나타났다.


이무녈.......


당금 천하에서 무공서 만들기에는 당할 자가 없다는 이가 아니던가.
그의 특기는 괜히 무공을 복잡하게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공부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있다고 하나
바로 이점이 무서운 것이었다.


또한 스스로가 상당한 고수로 알려진 이무녈.....
그가 연성한 무공 삼국지(三國指)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제자가
영웅문(英雄門) 의 창시자 김용의 제자를 능가하는 사상 최다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공부건 무공이건 어려운 책 붙잡고 앉아 있는 것이
뭐 하는 기분내기엔 좋은 것 아니던가.


암튼 여기서 이무녈에 대해 집고 넘어가자.


원래 이무녈은 무사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서생들의 모임인 사대(士帶)출신으로
무공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속해있었던 사대가 보통 사대였던가.
이름도 찬란한 '공자가라사대(孔子價羅士帶)'
그곳에서는 '온고지신(溫故知神)이
장유유서(長幼遺書)를 가지고 무공 또한 가르쳤으니
그 또한 무공을 익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무녈은 무림의 대의는 도외시한채
스스로의 권익만을 위한 길을 그동안 걸어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나 부자유친(富者有親)을 내세워
부자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고 전해진다.
이 와중에서 그는 선물도 받았다고 전해지니 어떠한 무리고도 뚫기
어려운 군신유의(軍神流依) 란 갑옷이었다.
이 군신유의는 부부유별이란 별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이렇든 가진자로부터 온갖 환대를 받아가며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일만 해오던
이무녈이 이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이 초선연대와 한 번 싸워 피해를 입은게 하나이면
그것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 자신이 얻는 '이문이 열'이었기 때문이다.



이무녈은 초선연대를 공격하기 위해 신무기를 개발했으니
이것이 그 악명높은 창 음모(陰矛) 였던 것이다.


전설속에서 내려오던 음모는
여인네들의 음기를 받아들여야 된다고 전해진다.
이 음기를 받아 들인다는 것은

(어허 이상한 상상을~)


음기가 많은 여자들을 잡아 패는 것이었는데



이무녈은 여기서 문제에 봉착한다.
별호인 일구라주인영웅(日龜羅廚人英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도 영웅임을 내세우던 그..


영웅본색(英雄本色)이란 말이 있듯이 이무녈도 여자를 좋아해 왔으나
이무녈은 양기가 많은 가진 열녀(熱女) 들 만을 좋아해 왔고
그의 아내역시 현모양처(賢母陽妻) 아니던가?


그러나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제자 가사노동(家事勞童)과 함께 여자를 패러 나갔다.


그러나 신나게 여인들을 쥐어패며 음기를 모으는 자신과
달리 제자 가사노동은 차마 여인들을 패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화가난 이무녈이 제자에게 말했다.


"옛날에 간큰넘이란 분이 계셨다"

"간 큰넘..........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자를 패신 분이지......

그분 스타일이 이래

너.......여자?? 나 간 큰넘이야 그러고 머리끄뎅이를 딱 잡어
딱 잡고 XX리 치는거야~


그분이 어느날 무소랑 마주친 적이 있었지..


막 가 ..... 그냥 가는거야
그러면 무소가 막 이래

어 뭐 이런 XX가 다 있어? 이거

이러면서 뒤로 움찔, 피하게 돼 있어
그때 뿔을 딱 잡고........XX리 치는거야~

그럼 걘 혼자서 골로가게 돼있어!"


이러한 스승의 설교를 들은 가사노동은 크게 깨우침을 얻어


그동안 갈고 닦은
여자만하기(女子灣河氣)의 무공을 이용해
여인들을 패기 시작한다.



이무녈의 가부장(家父掌)과
무기까지 동원하기 시작한 제자의 광기.
특히 가만있던 제자는 스승의 사주에 더욱더 날뛰다가
무기까지 동원하기에 이른다.
여인들이 가장 무서워 한다는 '명절날도(名節捺刀)'...


이들에 의해 피해본 것은 비단 여인네들 뿐만 아니라
길가던 동물들까지도 수없이 목숨을 잃었으니
'달마(達馬)' 와 '누이소' 등이 거의 씨가 말랐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목표한 음기를 다 채운 이무녈


당장 짐싸들고 외딴 섬으로 가 자신의 내공을 담은 무기를 제작한다.




'구리할만도해(究理割灣刀海)'의 '증거업서도(證據業書島)'
에서 이무녈은 음모의 제작에 성공하고 다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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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산을 오르는 한 인영이 있었다.
망태를 지고 산을 오르는 그의 모습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약초꾼의 그것이었다.


그는
위수곤신(衛戍昆神)의 제자로
신방고수(神房高手)라 불리우던
청년 무림인 '심마니'였다.
대관절 그가 이런 차림으로 두메산골엔 왜 나타났단 말인가?



산을 오르던 그의 눈에
그가 찾아 해메던 약초가 들어왔다.

보기엔 그냥 평범해 보이는 약초였지만
그것은 강호에 일대 파란을 가져 오게 될 영약이었던 것이다.


그약은 인삼보다도 홍삼보다도 산삼보다도..... 영삼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전설속의 약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인물과사삼(人物過私蔘)"


이를 복용하면
내공이 증진될 뿐 아니라
강호와 무림에 대한 안목을 높여준다고 한다.
상대의 무공을 보기만 해도 그가 어느 문파에 속하는지
간파해낼수 있어

실명비(實名碑) 아래에 뭍혀 있다는 무공비급과
같이 연마한다면
엄청난 위력이 나온다고 전해진다.

이 것의 더욱 무서운 점은 복용한 이의
의협심을 길러주어 악을 죽도록
미워하게 한다는데 있었으니

일찍이 해놓은 짓이 많은
좃선당과 같은 무리들은 이 약초가 강호에 나도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노력하고 있었다.

심지어 인물과사삼을 복용하는 자는
'선대이서(先代以西)우리'. 에 가두어 진다는 유언비어까지
유포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심봤다"를 우렁차게 외친
그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인물과사삼을 캐냈다.

인물과사삼을 집어든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순간부터 나의 삶이 어떤 고난의 길을 갈지라도
후세의 누군가는 내가 하고자 했던 작업을 알아줄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이 가지고 온 망태에서 붓을 한 자루 꺼내
그 붓에 인물과사삼의 씨를 집어 넣었다.


강호에서는 좃선당의 수작으로 인해
인물과사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무림공적으로 매도되기
일수였기 때문에 붓뚜껑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붓뚜껑에 종자를 담아 돌아온 심마니는
그 날로부터 인물과사삼의 재배에 열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한 좃선당이 이미 모든 논을
인물과사삼이 자랄 수 없는 양비논(攘臂)으로 만들어 놓아
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만다.

그러던 중
심마니는 좃선당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한 군데 땅을 찾아낸다.


개마고원!
고위평탄면 지대인 개마고원은 밭농사 지대로써

양비논이 생성되기엔 기후가 맞지 않았고
인적도 드물어
좃선당원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이곳에 그는 인물과사삼을 재배하기 위해
조그마한 절을 하나 세운다.
인물과사삼사(人物過私蔘寺)!


시간이 흐른뒤

마침내 그의 작업은 결실을 맺고
수많은 인물과사삼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수확을 앞두고 자라난 인물과사삼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지난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강호를 떠나 인물과사삼 재배에만 매달려 온지 어인 수년......
강호는 어떻게 변했는지..........'
왠지 모를 위기의식이 그에게 느껴졌다.


가을이 되고
그는 자신이 길러온 인물과사삼을 캐내어 하산한다.


새로이 강호 무림에 돌아온 그는
재배한 인물과사삼을 강호에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 시큰둥하던 사람들은 차차 그의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처음엔 그저 심마니라 부르다가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자며 고군분투하는
그의 활약에 감복하여 그를
"악과 맞서 싸우는 깡을 주는 심마니" 라고 칭송했다.

이 '깡을 주는 심마니'가 강호인들에 의해 더욱 간단하게 불려져
그는 '강준마니'라 불리게 되었다.
(무협 언어화 현상)



초기엔 여기저기의 비난과 공격에 힘들어했지만
차차 여기저기에서 인물과사삼을 복용한 후
그의 뜻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생겨나 인물과사삼을 보급하는
그의 일에 같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거나
알아도 그들의 세력을 두려워해 묵과하고 있던
좃선당의 악행을 세상에 알린
일세 고수 "강준마니"와 인물과사삼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投 乾太尼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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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매부의 등장이래
무림계의 혈전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여기저기엔 그간 싸움으로 죽은 시체들이 널려있고,
지나가던 몇 몇 승려들이 하류무사들의 주검들을 수습하고 제사지내며
부디 반처창업(班處創業)을 쌓아 죽은 이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빌었다.


염불 소리와 죽은 이들의 영혼을 빌어주는 반처지원금(班處至 琴)이
서쪽 하늘에 울려퍼졌다.

계속............

승려들의 기원때문이었을까?
강호에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반처창업(班處創業)을 쌓는 반처기업가(班處氣業家)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나 반처기업가(班處氣業家) 들이 주식투자(株式鬪子)를 만나 수련할 경우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최근 반처기업가(班處氣業家)중에서 세놈기술(氣術)이라 불리는 3인의 내공이
수십만 제자를 거느린 정주옹의 무공중 하나인
헌대중공업(現代重工業)의 내공을 능가했다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는 점점 미궁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김데중의 수하 중에는
공자식의 치정주의를 아주 싫어하는 이가 있었으니

도올 도사가 스스로
자신과 함께 고려쌍절(高麗雙絶)이라 주장하는 채장집이 그다.

채장집은 손은 안으로 굽는다는 유교식 논리를 배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채장집은 김데중의 불애인(不愛仁) 이라는 소리를 듣는이였다.

김데중이 무림맹주에 오른 뒤에
좃선당은 무림계의 장래는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무림맹주를 공격하기에바빴다.
니발갱이지(尼發更異指)와 태양막기(太陽幕氣),
발목잡기(撥木雜氣) 등 각종 무공이 난무하는 가운데
김데중은 좃선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기만 한다.


그러던 중..
좃선이괴중 아우되는 조깟재가 일을 내기에 이른다.

과거 한고조가 항우와 싸울 때 범증, 영포, 팽월을 떼어냈던 것을
초한지에서 발견하고

김데중 주변의 고수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김데중의 주변 고수들을 하나둘씩 제거할것을 계획하고
김데중 수하의 채장집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좃선당이 채장집과 싸우기 위해서는 구실이 필요했고
채장집이 과거 써논 무공분류표에서
과거 마교교주 기밀성의 무공은
머리가 없고 힘만 쓰는
역사적(力士的) 무공이었다. 라고 쓴 것을 찾아냈다.


그러자 좃선당은 그것을 가지고
역사적이란 뜻은 변강쇠와 같은 위대한 사람들에게나 쓰는
호칭인데 그런 호칭을 마교 교주에 붙인 것은 채장집이
마교인물이라는 증거라며 공격해 대기 시작했다.


조깟재가 너발갱이지로 선공을 하자
채장집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니가문대사(尼加紋玳沙)와 사상검증해(思賞檢症海)에서 연마한
채장집의 무공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좃선은 자기 편들을 때로몰고와 갑자기
채장집을 공격했고 채장집은 수 많은 고수사이에서곤경에 처한다.


공인은 검증되어야 한다며
공인중계사(公人中棨寺)의 송뽁과 정진숙이
좃선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해외에서 달려온 독일공무원(獨逸公務員) 박상조까지....


지하철광고판(地下鐵廣告板)에서는 월간좃선의 공세를 받고
신문지상(新聞地上)에서는 좃선당주의 명을 받고 달려온
용병고수들과의 혈전에 벌여졌다.
송뽁, 정진숙 모두 난다 긴다하는 강호 일류 고수 아니던가


지상과 지하에서 그들과 한꺼번에 맞서 싸우던 채장집은
고발장으로 간신히 그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전심전력으로 수비를 하던 채장집에게 멀리서 다가오는
8척 거구의 제자가 보였다.

해석박사(海石薄紗) 마도사(魔道士) 이하누
고려 무도관에서 채장집에게 무공을 배운 그의 제자였다
항상 채장집만 보면
강호 무림의 거목이시라고 쫓아다니며 찬사를 늘어놓던
아부가 심한 제자였다.

그러나 그게 문제던가.
채장집은 개의치 않고 이하누에 도움을 구한다.


싸움에 뛰어든 이하누의 지원으로
3대 2의 싸움에서 이제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제자 이하누가 방심한 채장집의 등 뒤에 칼을 꽃는다.
이어 하누가 시전하는 정신분열장.......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겨를도 없이 이하누의 공격이
채장집의 몸에 격중된다.

피를 토하고 쓰러지며 등 뒤에 붙었던 비수를 뽑는 채장집
그러나 그 비수를 보고는 스스로 저항할 의지를 잃고 만다.

'왜곡보도(歪曲寶刀)'
좃선당의 병기 였던 것이다....

하누..............너마저..........크윽.......


'당신은 나를 너무 모르고 있었소.
무도관을 졸업하고
내가 좃선에서 기를 수련한 좃선기자(朝鮮氣子)란 것도...
우리 아부지가 이승마니란 것도........

이승마니......
흐릿해져 가는 채장집의 머릿속에 이승마니에 대한
기억이 스쳐갔다.

전임 무림맹주로
친일파(親日派)를 자신의 친위부대로 삼은 인물
막판에는 독재정권까지 연성했던 이승마니

이승마니의 친위부대였던 친일파들이
수십년간 연성한 무공이 바로 작금의
수구기득권(守舊氣得拳)이었다.

더구나 좃선기자라니........


싸움은 끝났다.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강호에 채장집의 패배가 알려졌다.


이 싸움으로 인해 채장집은 목숨은 잃지 않았지만
수십년 만에 겨우 익힌 정책기획위원장(定策企劃委員掌)을 잃게된다.


그러나..........
채장집이 잃은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수구기득권이 강호를 종횡하는데 대한 무력감과
자신의 영달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비겁한 무림인들의 모습은
그에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석양을 바라보고 서있는 채장집

강호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상처입은 고수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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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매부에게 경제주권(經濟鑄拳)을 빼앗기고 무림계는 최악의 위기에 봉착한다.
경제주권(經濟鑄拳)을 빼앗아 간 아매부는
경제주권을 이용 무림계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아매부가 무림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떠오른 것이다.

아매부는 자신에게 대적할만한 문파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려 간다.
그때 아매부가 타고다닌 배이름을 구조조정(鉤糟棗艇)이라 한다.
아매부가 구조조정(鉤糟棗艇)을 타고 나타나면 산천초목이 다 떨었다 전해진다.

아매부의 무공으로는 경제주권(經濟鑄拳), 저성장(低聲掌), 등이
있을뿐만 아니라
물어뜯는 무공까지 겸비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빨이 '고급니(高金利)'였기에 가능하였다고 한다.

이때 강호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갔고
무림맹주 김데중은 비대해진 체중으로 무공이 쇠퇴한 죄벌(罪閥)들에게
다이어투공(茶異御鬪功) 연마를 지시한다.
체내 지방 비율을 200% 이내로 낮추라는 무림맹주의 명이었다.
그러나 죄벌(罪閥)이 괜히 죄벌이던가

이들은 그동안 모아둔 살들을 고스란해 접어 숨기고
하류무사들에게 일방적 다이어투공(茶異御鬪功) 연마를 지시한다.
그리고는 각 죄벌(罪閥) 문파의 수장들은 서로 도망갈 구석만 찾고 있었으니

아매부가 대결을 신청하면 부하들만 남겨놓고 도망갔던 것이다.
모든 문파가 달려 들어도 모자랐던 판에 수장들은 다 도망가고.
아매부의 무공에 수많은 하위무사들의 목이 잘려나갔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무사들은
자결용으로 준비해 놓았던 약을 먹고 세상을 뜬다.
수백년전 노숙자(老熟子)가 만들었다는 가정파단(家庭波短)이 그 약이었다.

이때 살아남은 하류무사들은 나름대로 살기 위한 호신무공을 개발했으니
공공근로(公空勤老)가 연성한 일용지기(日傭地氣).....
이 무공을 이용해 일부 하류무사들이 목숨을 이어갔다 전해진다..

이 틈에 죄벌들과 협잡한 좃선당과 중앙당은 시장(市場)에서는 강자(强者)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무림 여론을 죄벌로부터 돌리기에 바빴다.
더군다나 이 와중에서 좃선당은 모종의 음모마저 꾸미고 있었으니.........



그러나 강호무림은 그리 쉽게 아매부(亞賣鳧)에게 무릎꿇지 않았다.
기명사미를 단숨에 패배시킨 아매부의
돈업지(敦 指)와 외환위기(外換渭氣)에 맞서기 위한 무공이
한쪽에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때 개발된 무공을 외환모우기(外換謀遇氣)라 한다.

외환모우기(外換謀遇氣)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장

검모우기(劍募優氣) - 하류무사에게는 무기의 유무가 무공에 큰 차이를
나타내는 법, 무림인 모두가 무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영하온도(零下溫度) 자갈치(炙渴嗤)가
수 십년간 모은 사시미를 내놓았고
금은방주(金銀房主) 박사장(薄謝長)은 검의 원료인
열(가지)쇠를 내놓았다.
비녀(婢女)로 유명한 애국사태(愛國沙汰)는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던 비녀를 주물에 넣어달라며
자신의 제자 검비녀(劍鼻女)와 함께 망설임 없이 비녀를 풀었다.

그러나
검개구리(劍開龜狸) 돈만군(豚萬君)과
강남졸장부(江南卒丈夫) 검괴덩이(劍傀 異)
검송아지(劍松亞指) 장롱속(欌籠屬)은 도망갔다 전해진다,




제 2장

노사화합(老師和合) - 일부 양식있는 문파에서 드물게 행해진 방식으로
늙은 스승과 제자들이 화합하여 개발한 무공이다.
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해고최소화(解 最小花)와 투명경영화(透明經營花)
를 고통분담(苦痛紛擔)아래에서 키워 그 꽃을
스승과 제자가 나눠 복용해야 한다고 한다.


제 3장

물배채우기(物背蔡郵氣) - 운동장수도가(運動場水道家)에서
흥구리정신(興龜利井神)의 제자
걸식아동(乞食兒童)이 개발한 무공,
장기간 연마할 경우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체구가 작아지는 수가 있다고 하는데

매우드문 경우로.......
심각한 경우 심성이 포악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전해진다.
일갑자 이전 박통(博通)이란 소년이 이 무공을 익히다
사마외도(邪麻外道)로 빠져
독재정권(獨裁正拳)을 연성했다하니
그 부작용이 어마어마 하다 할 수 있겠다..

일부지역에서는 이 무공의 무분별한 연마를 막기 위해
철가방(鐵枷房)의 중식당주(中食當主) 왕사장(王社長)이
급히 대체무공 간자장(諫子掌)을 전수시켜
더 이상의 물배채우기(物背蔡郵氣)가 유행하는 것을 막았다고한다


제 4장

복대조이기(腹帶調而氣) - 이 기간동안 거의 모든 무림인이 익힌 무공이다.
그러나 다이어투공(茶異御鬪功) 연마를 명 받은 죄벌들은
스스로의 뱃살을 가리고 이 시기를 넘기기만을 바라고 있어
무림동도들의 지탄을 받았다.

사재출연공(私財出燕功)을 연마하는 척하던
삼승자동자(三乘自動者) 이건니(移建尼)는 남몰래 자신의
사조(四祖)삼승반도자(三乘半島者)이병쇠에게 배운
내부거래후상장(內部去來厚傷掌), 물려주기(物麗主氣)를
이용해 뱃살을 숨기려하다 폐부가 세금이십어기(稅金二十於氣)의
주화입마(主和入麻)에 빠져 생사를 넘나들었다 전해진다.

또한 대우사(大優寺) 주지 기무중역시
사재출연공(私財出燕功)을 연마하는 척하며 뒤에서
왕복대차용하기(王腹帶借用荷氣)를 연성하다가
아매부가 채권단으로 매수한 자신의 수하 대우사태(大優沙汰)에게
배신을 당하여
대우사태(大優沙汰)의 부도(副刀)에 무공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불도자(不道者) 정주(頂珠)옹은 신약 금강산(金剛酸)을 복용하고
소몰기(召沒氣)를 연마하여 몸의 부피를 줄였지만
그가 아끼던 제자 자동자(自動者) 현다이(現多吏)를 파문시켜야 했다.


그 뿐 아니라 아매부가 기승을 부릴 무렵
또 하나의 제자를 잃어야 했으니

그 제자가 바로
덩치큰 몸을 자랑하며 농업에 정진해
헌두(憲豆)의 대량재배에 성굥하여
군량난을 해결하는데 탁월한 기량을 보인
거인제자 이익지(利益脂)였다.

저가에 헌두를 나누어 줄 때 사람들은 그가 헌두를 대량공급한다 하여
'그 사람은 헌두마니줘' 라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익지가
헌두를 정주옹의 문파에만 대량공급하는 일이 터졌다.

정주옹의 부하들은 남는 콩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고
그들이 만든 술이 무림에 유통 되면서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가격 문제였는데
수도 없이 만들어지는 헌두 때문에
다른 주류업자가 연달아 파산하는 것이었다.

소주(蘇州)의 유명 주류판매 업자
진로(眞老)는 이로인해 스스로 부도(副刀)를 몸에 찔러 자결하고 만다.
진로의 죽음을 접한 무림동도들은 상거래의 질서를 파괴한 이익지를
주가조작(酒價造作)이라 부르며 매도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소리를 들은 김데중은 자신의 부하 이헌자(李憲者)를 보내어
이익지를 제거하게 한다.

커다란 덩치와 저돌적인 힘, 단단한 피부를 가져
'바위 골리앗' 이라고 불리던 이익지와
자그마한 체격의 이헌자

내가 너 '다위(茶慰)' 한테 당할 듯 싶으냐?

엄청난 힘과 덩치 그리고 검과 도를 잘써 검도자(劍刀者)란 별호를 가진
이익지는 일갈을 하며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돌맹이는커녕 아무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던 이헌자가 자신의 무공
금감위원장(金監委員掌)을 시전하자
이익지는 눈물을 쏟으며 쓰러지고 무림옥에 갇힌다.


제 5장

거대거래(巨大去來) - 포철사 주지로 유명하고 공동정권의 3인자
박태주니가 개발한 무공으로 아매부와의 대결시 고수들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적을 혼란케 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시다시피 죄벌총수 들이 저모양 이고
서로가 지 몸 보신에만 좋은 무기를 갖고 싸우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무산되고 만다.




어쨓든........
불완전한 무공 외환모우기 였으나
수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달려 드는데는
'그놈 참 깡도시다' 소리를 듣던 아매부도 지쳐가기 시작한다.

싸움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외환모우기의 위력은 날로 강력해져 가고
싸움은 진정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최근들어 김데중은 아매부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선포했다.
그러나 아직도 아매부의 무공 외환위기(外換渭氣)는 강호의 방심한 틈을
노리고 있다 전해진다.




아매부의 등장이래
무림계의 혈전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여기저기엔 그간 싸움으로 죽은 시체들이 널려있고,
지나가던 몇 몇 승려들이 하류무사들의 주검들을 수습하고 제사지내며
부디 반처창업(班處創業)을 쌓아 죽은 이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빌었다.


염불 소리와 죽은 이들의 영혼을 빌어주는 반처지원금(班處至 琴)이
서쪽 하늘에 울려퍼졌다.

계속............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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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강호 최강 고수 4인방 안에 들어간다는 대가 예수(禮手)
구리수도(久狸手道) 가 태어난지 1997년이 흐른 어느 겨울날
무공 천하 제일을 가리는 비무대회가 열렸다.

무림 지존!!!
얼마나 대단한 자리던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어렸을적 무공일지에
'장래의 무림지존 XXX.'
라는 글을 한번쯤 써보며 자라나지 않던가.

각 파의 고수가 1대 1 대결을 벌여 진정한 강자를 가리는 시합

이 자리에는 4명의 고수가 서 있었으니

구라장이(龜羅掌彛) 김데중
다이어투(茶異御鬪) 이해창(利害蒼)
살가마니(殺苛麻尼) 인재화상(印材和尙)
노동당수(老童當手) 거녕기리(擧寧期痢)

그러나 이 대회는 일반 무림지존 선발과는 의미를 달리하는
비무대회 였다.


당시 상황은 5년 전
현직 무림지존 당모가지(唐毛價脂) 기명사미(寄命蛇尾)가
무림지존에 등극하고부터 시작되었다.

5년 전
기명사미와 김데충은 피나는 혈투를 벌였다.
그들의 무기인 전라도(戰羅刀)와 경상도(徑像刀)가 부러질때까지...

그러다가 막판에 무기마저 파괴되고 맨손만 남자 기명사미는
자신의 생사는 물론, 아이큐의 손실까지 감수해야 하는
비장의 무기 '깡(强)'을 이용한 박치기(博緇氣)를 시전했다.
김데중도 마빡(麻薄)의 강도에 있어서는 뒤지지 않는 공력을 지녔으나.
특유의 소심함과 눈치보기(嫩幟寶氣)가 단전(丹田)에서 내공이 올라와야 하는
박치기(博緇氣)의 운공을 막았다.
더군다나 기명사미는 삼당합당(三唐合當)신공까지 익혔으니
그 박치기(博緇氣)의 위력은
바다를 가르고 산을 뒤덮을만 하였다.

그리하여 기명사미는 필생의 라이벌 김데중을 물리치고
무림지존에 오른다.


무림지존에 올라
처음엔 넘치는 체력을 바탕으로 의욕있게 무림맹을 이끌던 기명사미...

취임하자마자 그는
각종 신종 무공들을 개발해 나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무공인
칼국수(渴鞠手), 놀라지(羅指), 깜작수(感作手) 등은
상당한 공력을 지닌 무공으로 평가받아
무림 동도들의 엄청난 호응을 얻어나갔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나 나쁜놈은 있는법
기명사미의 주변에는 그의 넘치는 체력을 다른데로 돌려
그의 권력을 뒤에서 좌지우지할
생각을 하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당삼(塘渗)...
좃선당이었던 것이다.


좃선당을 중심으로 한 무리들이
여인들을 기명사미에게 진상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진상한 여인 세계화(世界花)...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했던가...

기명사미는 이내 자신의 넘치는 체력을 과신하고
여색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이어 그들이 진상한 여인들은
오(吳)씨(氏) 와 이(李)씨(氏)로 전해지는 미녀들로
세계 고수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화류계의 꽃 들 이었다.

머리는 빌릴수 있어도 체력은 빌릴 수 없다던 기명사미...

매일 조깅하던 체력......
죽으라고 등산하던 체력.....

어릴적 바다에서 수영하던 체력.....
밤늦게 무공일지에 수도없이 '미래의 무림지존 기명사미'라고 적어넣던 체력..

암튼 모든 체력을 동원하여
남의 체력을 빌리지 않고 혼자 많은 여인을 상대해 나가기 시작한다.

세계화(世界花)를 상대하고
남는 힘을 모아 이내
오(吳),이(李)씨(氏)뒤를 졸졸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에게 붙은 또 하나의 별호 '오이씨(吳李氏)뒤'

그러나 어디 오이씨 들이 체력하나에 만족할 여인들이었던가..
이내 기명사미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하고,
기명사미는 땅문서(當文(書), 집문서(集文書)와 같은 고급 무공비급 들을
그들에게 다 내놓고 우리가남이가(牛李嘉南夷家) 속에서
더욱 주지육림에 빠져든다.


이때 처들어온 서역고수 아매부(亞賣鳧)는 오이씨를 통해 기명사미의
모든 약점을 다 파악하게 되었고 기명사미와의 대결에서
단숨에 외환위기(外換渭氣)와 돈업지(敦 指)의 무공을 이용해
기명사미의 강력 박치기(博緇氣)를 분쇄해 나간다.

자신의 약점을 다 노출한 상태에서 시전하는 어떤 무공도 먹혀들지 않았고
어렸을 적부터 마신 아일비무림맹주(我壹飛武林盲酎)의 체력
조차 여인네들과의 체력소모로 다 소진되어 버렸다.
마지막에는 그의 최상승무공 '깡(强)'을 펼쳐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기명사미는 패배하고, 아매부는
중원 무림계의 최고(最高) 권경 경제주권(經濟鑄拳)을 빼앗아 갔다.

이에 기명사미는 무림맹주자리에서 물러나 상도동(爽島洞)에 은거하며
그의 마지막 남은 애재자 박종옹에게 새롭게 창시한 그의 무공
석파계란(石派溪卵)을 전수해 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잽싸게 기명사미에게서 등을 돌린 무리들이 있었으니
좃선당!!!

세계화(世界花)와 오이씨(吳李氏)를 진상한 무리들이 누구였던가!
그들은 패배한 기명사미의 마빡에 제일먼저 극독인 달갈(澾渴)을 투척하고

기명사미가 후계자로 지명한
다이어투(茶異御鬪) 이해창에게
자신들이 다음 비무대회에서 신종 무공을 전수해
차기 무림맹주로 만들어 주겠으니
기명사미에게 등을 돌리라고 주문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덮으려 했다.

이들은 이해창이 무림맹주로 뽑혀 기명사미처럼
자기네들 꼭두각시 노릇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여러 가지 무공을 전수한다.
내공심법으로는 밀어주기(密御疇氣), 편들기(鞭 氣),
남발갱이만들기(嵐魃坑履灣 氣)등을..
장풍으로는 세풍(稅風), 총풍(銃風) 등을
무기로는 죽창(竹槍)을 지급하였다.

이러한 무공을 통해 이해창은 무공서열 3,4위에서
일약 강호 최고 고수급으로 발돋움하게 되었고
좃선당의 지원에 힘입어 거녕기리(擧寧期痢) 와 인제 화상(印材和尙)을
비무대회에서 탈락시킨다.

이제 남은건 김데중
그러나 돌아온 김데중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좃선당과 이해창이 손잡고 엄청난 공력을 드러냈지만
김데중또한
가만히 놀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과거에 자신의 적이던 강종필(强悰弼)과 손을잡고
강호 4대 보물 중 하나인 충청도(忠聽刀)를 손에 넣었던 것이다.
이어 전임(前任) 포철사(抛徹寺)주지 박태주니(膊泰鑄 )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강종필, 박태주니와 무릎을 맞대고
신공을 창출한다.

공동정권(恐動正拳)!!!

비무대회는 끝까지 숨막히는 접전이었다.
그러나 충청도(忠聽刀)와 공동정권(恐動正拳)의 공력이
좃선당의 밀어주기(密御疇氣)보다 공력이 2푼 정도 앞서
김데중이 무림지존에 오른다.

앞으로의 장래를 걱정하게 된 좃선당과 중앙당
그러나 그들은 이를 갈며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투비컨티뉴(投 健態漏),,,,,,,,,,,,,,,,,,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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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___

한문가지고 따질 거면 읽지 마시길....



원쓰 어폰 어 타임

강호는 바야흐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동안 강호를 지배해 왔던 극우파(極右派)의 아성이 바야흐로 무너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극우파........
바야흐로 수 십년간 강호를 호령해 오던 거대문파 아니던가.
특히 20년 전의 전투였던 시비시비 사태(是非是非蛇 로
군소 문파를 흡수해 바야흐로 최강문파(最强門派)가 된 극우파..........
수십년간 독재정권아부하기(獨裁政權阿附下旗)를 매달고 강호를 호령하지 않았던가.

당시 극우파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집단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좃선당(朝鮮黨)


사실 이들이 원래 강력한 문파는 아니었다 그러나 좃선당 당주가 수십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환약을 당 수뇌부에 보급해
최강의 전사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 환약은

보통사람도 한 번만 먹으면 무림 동도들의 피를 빠는
흡혈귀로 만들어 내공을 높여준다고 전해지는 신비의 환약,

전두환(前頭 )!!!

육사(六巳)를 모아 수십차례 액기스를 추출해 만들었다는 이것을
자신의 당원에게 복용시켜 강호 최강의 당이 되지 않았던가.

그에 이어 연달아 신약개발과 새로운 무공을 창조해 내니,
최근 장법과 한랭내공을 겸비한 신흥무공 김치냉장공(金緻冷掌功)
까지 연성해 내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좃선당의 조직은 크게 두 가지 집단으로 나뉘었으니
좃선일보(組仙日步와 월간좃선月?組仙) 이었다.

이들은 당주의 비밀 지령에만 움직이며 평시에는 그들의 정체를 신종 가면인 문화면(文化免)으로 가리고 다녀 다른이의 이목을 피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일이 있을 때 모두 단결해 외적을 맞아 싸우는
단결력을 과시한다.

좃선일보에 숨어있는 좃선 보주(保主)는
그의 충직한 심복인 김대충 검객에게 명령, 자신의 뜻을 펼친다.



김대충........
그는 누구인가.

일찍이 좃선당에 입문해 당내 무공 제 1위에 오른 인물 아니던가.

일찍이 무공의 정수를 깨닫고
구라문법(拘羅紊法)과 知照代輅(지조때로)鑑賞法(감상법) 같은 武功書(무공서)까지 남긴 無林界(무림계)의 고수였다.

특히 그의 무기인 붉은색 붓(朱筆)은 싸움에 있어서 신비한 위력을 과시하곤 했다.구라주필(九羅朱筆)이라 불리는 이 무기는 내공이 낮은 초심자에게는 단순히 기냥 뻗은 붓처럼 보이나 실은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살수(殺手)를 뻗어내는, 아홉 번이나 구부러진 암기(暗記)였던 것이다.

일개 노(老)동(童)자(者) 들이 궁시렁거리기라도 할 때면 여지없이 출수하여 장팔사모(障八邪矛) 보다 더 무섭다는 국가전복음모(國家全鰒陰謀)로 무찔러 버리는 창술의 대가기도 하였다.

특히 노(老)동(童)자(者)들의 무공을 폭도(暴徒)의 무공으로 규정짓고 전설속의 보물 국가신인도(國歌申認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폭도를 화끈하게 섬멸해 출처를 추궁해야 한다며 전경부대(典京負袋)에 각종 무기와, 그들의 내공을 높여주는 최루단(催淚團) 보급하기 운동을 펴는 적극적 성격의 소유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茨測?많은 법 그와 쌍벽을 이루는 걸출한 인재가 월간조선안에서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으니

일찍이 몽골기마민족(蒙骨期馬民 )에서 길러진 조깟재가 그인 것이다.
그는 보는이의 시각을 혼란케하여 승기를 잡는 김대충의 무공과는 상반된

강력 외공을 시전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러한 무공은
단순무식함(丹脣無識函)의 무공비급에서 익힌 음주후교련공(飮酒(後敎鍊功)
이라 전해진다.


최근 그는 신비의 무공비급 하나를 연성하고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은

1갑자 이전 서양의 절세 고수였던 희두라(戱頭羅)가 최고의 수준까지 연성했다고 전해지는 파시수투공(波市樹投空).......
최고의 경지까지 오르면 고함 한마디로 수 십만을 전멸시킬 수 있다고 하는 공포의 무공인 것이다.

20여 년 전 이땅의 박통(博通)이라던 고수가 거의 최고의 수준까지 도달하였으나 시파수리갈(嘶擺秀利渴)의 극독에 중독되어 주화입마(鑄貨入麻)에 빠지는 바람에 실전되고 이제는 세인의 관심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던 무공!!!

그는 이 무공을 재발견 하기 위해 실로 엄청난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던 것이다
햇볕막기(太陽幕氣)로 다진 내공을 이용해 박통의 무덤에 침을 수 억번 뱉은 결과 얻을 수 있었다는 비급 파시수투공 (波市樹投空)....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이 비급을 혼자 독차지할 생각을 버리고 자신과 동문수학한 무림동도들과 나눠보는 모습을 보여 무림계의 훈훈한 미담으로 남았다.

그의 동문들로는 사제 일구라주인영웅(一口羅主人英雄) 이무녈
인간의기(人間意氣)를 연마하는 리인화 사매가 있다.
이들 각자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었으니
같은파 무림 동도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리인화에게는 국가감사하기(國家鑑査下氣)를 익히게하고,
이무녈에게는 절기중 하나인 가부장(家父長)이란 장법을 익히게 하였다,

하류무사이기는 하지만 충성심으로는 이들 못지 않은 김지명에게는 몸소만든 원자단(原子團)을 주어 무공을 배가시키고 배수투살라(倍數透殺羅)라는 별호를 지어주었다.

자신은 주체사(主體司)의 주지로 유명한 귀순대사가 만든 황장엽(黃掌葉)이란 차와 김영환( 永煥)이란 단약(丹藥)을 복용하고 편집장(編輯掌)을 연마해 단숨에 강호 일류 고수의 반열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특히 김영환을 복용하고는 극좌공을 단숨에 극우공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극우파에는 의술의 대가도 있었으니 이름하여 이그난(蘭).......

그의 의술의 경지를 논하자면 인조인간 만들어낸 후랑간수타인(後浪間水打仁)박사를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강호 무명 소졸도 일류 적색공 고수로 재탄생 하게 되는 것이다. 즐겨 보던 고문(古文)을 통해 의술을 배웠다고 전해지는 그..
그의 고문에 대한 조예또한 엄청나 세인들은 그를 고문기술자(古文技術者)라고 불렀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이그난 하면 역시 의술 아니었던가.
환자를 신분에 따라 차별하던 다른 의원들과 달리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전혀 따지지 않고
몸소 칠성판(七聲販)위에 올라가 시전했다고 전해지는 그의 신비로운 의술.....

특히 그의 의술이 고추장뿌리기(考推將簿莉氣)의 내공을 동반할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적색공 고수로 업구래이두(業龜崍吏斗) 되었다 전해진다.

그의 명성이 알려지자.
그의 의술이 편작(編鵲)을 능가한다 하여 세간에는
그를 일러 용공조작(容共造作)이라 부르게 되었다.



위의 극우 고수들은 모두 강호 일류 고수라 전해지는데 이들은 모두 공자(公子)가 말한 무공 최상승의 경지를 이미 돌파하였다고한다.
'내 맘대로 무공을 만들어 행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독자들께서는 눈치 채셨겠지만 여기의 법은 당삼 빠따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라 하겠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최근들어 이들이 통치해오던 강호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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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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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인터넷 싸이트 우리모두의 묻고답하기 게시판에 올라온 한 네티즌의 질문에 대한 솔바람 님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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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님, 안녕하세요? 이리 글을 나누게 되어 기쁘네요.
저는 조서닐보(저는 이리 표현합니다)가 ‘문제 있다’고 인식하게 된 지 1998년 10월(keyword : 최장집)부터 시작하여 이제 3년 남짓되었지만,
왜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안티조선’이 정당화 될 수 있는지 짧은 글로 풀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내공이 딸린다고 표현하지요.
다만 초급 수준의 인식을 제공하고자 이 글을 시작합니다.

저는 님께서 조서닐보에 대해 현재 어떤 경로로 어떤 인식을 갖고 계시는지 당연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전혀 관심이 없거나 경로를 가질 기회가 없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도의 초급 인식에 도달되지 않은 단계를 기준으로
이 게시물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그 경우 제 경험상 만나서 이야기하면 평균 세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기에, 게시판 글은 보는 이가 스스로 확장할 수 있도록 keyword를 중간중간에 넣고 상세는 생략하겠습니다.

1. ‘열린 사회’란?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
<아냐, 최악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keyword :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파시즘, 전체주의)

조서닐보 문제를 논하는데 웬 ‘열린 사회’? 느닷없을 터입니다. 제가 인식하게 된 경로에 이 개념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에 이리 시작하는 것이구요, 어디서 시작하든 연결은 되리라 봅니다.
이래저래, 이 글은 무지 길 것입니다. 옛 이야기 듣는 기분으로 읽더라도 때때로 참조될 구석이 있다면 좋겠네요.

조국 오스트리아가 나치의 군화발굽에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고, 칼 R 포퍼는
나치즘, 파시즘의 근원을 규명하고 비판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영국에서 출판한 책이 <열린 사회와 그 적들(Open Society and its Enemies), 1945>
이고, 역사주의, 전체주의에 대한 탁월한 비판서라는 평을 받는다고 하는군요.

포퍼가 찾아 낸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시조는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누가 왕이 되어야 하는가?”는 질문을 중심으로 답을 작성해 나갑니다. 요지는, 변증법에 능통한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사회, 그것이 플라톤이 제시한 유토피아, 이상향이었습니다.

플라톤의 전제는 ‘오류가 없는 지도자’였습니다. 항상 적중되는 직관을 지닌 신과도 같은 ‘영도자’가 있다면, 매우 효율적인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사회는 철학자 왕, 수호자, 전사, 인간 가축의 네 계급으로 이루어집니다. 상위 세 계급이 의사결정과 체제 수호를 담당한다면, 하위 농경, 상업, 공업에 종사하는 ‘인간 가축’이 체제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손발이 됩니다.
당연히 이 사회에서는 토론이 불필요합니다.

즉, ‘지도자’가 방향을 결정하면, 아래 계급은 시키는대로 자신이 맡은 기능에 충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군더더기 없이 신속한 의사 결정, 인적자원 효용 극대화 따위 장점만 있게 되지요.
그 전제가 ‘똑똑한 지도자’이기에, 플라톤은 이 체제의 핵심인 철학자를 양성하는 방법에 상당 부분을 할애합니다.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엘리트 자질을 가진 애를 선별해내는 방법, 교육 과정, 자격 시험, 철인으로 등록되는 최소 연령 따위.

1차 대전에 패하여 도저히 앞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의 독일 사회에 등장하여 플라톤의 유토피아를 충실히 체현한 것이 히틀러의 나치 체제입니다. 소수 엘리트가 이끄는 사회, 군중의 열화와 같은 지지.
전제에 충실하기 위해 ‘영도자’를 신의 수준으로 끌어 올립니다. 다중의 미덕은 튼튼한 신체이고 여성의 미덕은 조직의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 아기를 잘 낳는 것이 됩니다.

엘리트 집단이 이끄는 대중은 선택 받은 백성이 됩니다.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노력과 더불어 체제 단결을 위한 희생양이 채택됩니다. 민족주의가 민족우월주의, 민족 팽창주의로 귀결된다는 사례를 인류에게 남기지요. 이 과정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끊임 없고 광범위한 대중 조작이 필수적으로 행해집니다. (keyword : 괴벨스)

포퍼는 인류가 배울 교훈을 여기서 찾습니다. 즉, 그 전지전능하다고 믿어져온 ‘영도자’ 또는 엘리트 집단이 맛이 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히틀러와 그 집단이 생생한 사례가 되거든요. 전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이 체제는 재앙이 되지요. 자신만 파멸하면 낫겠지만 따르는 집단, 주변국 백성들을 모진 놈 옆에 있다 벼락맞는 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포퍼는 ‘인간의 이성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명제를
찾아내고, 아테네 민주주의의 시조인 페리클레스, 그리고 소크라테스에서 다시 시작하며 묻습니다. 즉,
“우리는 최악을 면하기 위하여 어떻게 정치 체제를 조직할 것인가?”

긴 사유 끝에 포퍼가 도달한 체제는, 누구나 사회의 문제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체제였습니다.
개체가 체제 비판을 해도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사회, 어떤 권력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그래서 구성원들끼리 갑론을박 치고 받아 조직의 의사 결정에 반영될 수 있다면,
최악은 면할 수 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사회를 그는 ‘열린 사회’라 이름한 것이지요. 유토피아가 구조적으로 불능이라면, 이것이 차선이 됩니다.

포퍼가 이렇게 점진적 사회 개조를 주장한 반면, 구조적으로 열린 사회가 되기 어려운 사회라면 답이 여전히 안 나오는 측면이 있습니다. 1960년대 하버마스와 벌였던 논쟁이 유명하다고 하는군요. (keyword : 위르겐 하버마스, 이성적 사회, 의사 소통)

어쨌든, 대립되는 개념인 ‘닫힌 사회’는, 인류가 수도 없이 많은 사례를 갖고 있습니다. 체제나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을 조금이라도 하면 몸이 성할 수 없는, 당장 불이익이 오는 사회지요. 중세의 교황 체제는 물론이고, 대한민국만 해도 조선시대에 왕정체제, 일제시대, 유신 정권, 전두환 정권 따위. 닫힌 사회는 대개 전체주의의 속성을 갖습니다.

전체주의에서 개인 하나하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도구가 되지요.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되어도 좋다”고 멀쩡하게 이야기하는 이 지금도 많습니다. 소수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고 집단주의, 획일주의가 특질이 되지요.

닫힌 사회가 정당화되는 조직도 있습니다. 기능상 전시 체제의 군대 조직이 그것이지요. 병사들끼리 토론해서 전투 방침을 건의하고 장교가 검토한다면, 이거 비효율적입니다. 빳빳한 상명하복, 까라면 까라, 사병이 똑똑하면 군대가 안돌아간다는 이야기의 근거가 됩니다. 그저 엘리트집단이 의사 결정하면 사병은 기능에 충실하는 것이 미덕이지요.

그 효율성을 높이 사서 사회 모든 분야에 군대 체제를 도입한 것이 군국전체주의입니다. 전 사회의 병영화, 일본 군국주의를 차별 없이 적용한 동네가 박정희 정권이었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20세기의 대부분 90여 년 간을 군국전체주의로 일관한 곳입니다. 그에 대립되는 열린 사회, 그 주요한 도구인 토론은 불필요할 뿐더러 일신의 화를 초래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재벌 그룹 대우와 현대의 해체, 몰락도 이 측면으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 제왕적 의사결정자인 그룹 총수는 신과 동격이었다는 것이지요.
돌이켜보면 차선을 찾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거기 이르기 위한 토론시스템은 기능하지 않았던 게지요. 님이나 어르신의 말씀을 감히 비판하거나 거스르면 당장 밥줄이 끊어지는, 이 사회에 권위주의가 뿌리 깊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리 길게 쓴 이유는, 조서닐보가 닫힌 사회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경로는 무수히 많겠지만, 그 신문의 속성, 이력, 현재의 능력을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고구마 줄기마냥 줄줄이 딸려 나옵니다.

2. 조서닐보가 꿈 꾸는 세상

어떤 절대 권력도 절대 부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권을 비판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 언론이구요.
정권과 언론이 밀월관계가 되어 서로 봐주면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지요. 그 언론이 맛이 간다면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언론을 비판하는 세력이필요하게 됩니다.
근데 그걸 정치권은 못합니다. 신세 망치려고? 적어도 이 한국사회는 그래 왔습니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언론을 비판해야 하는데, 시민단체 다수도 언론의 눈치를 보나 봅니다. 언론은 무소불위의 성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적어도 2년 전까지는. 그래서 언론 끼리의 비판, 언론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판의 존재가 절실했었지요.
근데 원체 오랫동안 닫힌 사회에서 살다 보니, 그거 힘든가 봅니다. 언론사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이는 소유주거든요. 그러기에 ‘족벌 언론’이란 표현이 쓰이고 있습니다.

님께서 참여하실 토론에서 반드시 나올 ‘안티조선의 부당성’을 설명할 논리는
“왜 하필 조서닐보인가?” 이거 정권을 비판하기에 꽤심죄가 적용된 것 아닌가? 따라서 안티조선에 참여하는 이는 현 정권의 나팔수 또는 홍위병일 것이다,
일 겁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은, 언론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조서닐보는 언론이다, 따라서 조서닐보는 비판의 대상이다, 다른 언론도 문제가 많지만 조서닐보는 특히 연구 대상이다, 왜? 아래와 같다, 는 구조를 가지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정권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할 말은 하는 신문’ 매우 바람직하지요. 근데 그것이 사실에 기초했느냐, 어떤 의도이냐를 포함해서 그 경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비교적 합리적인 판단에 도달할 수 있지요. 근데 이 설명이 무지무지 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드러난 부분만 씁니다. 이것 역시 ‘딱지 붙이기’가 되는데 그 정합성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확장이 가능하다는 뜻.

2-1 조서닐보는 ‘민족 정론지’가 아닙니다.
조서닐보든 동아일보든 스스로 민족지라 일컫지요. 근데 한국 사회의 ‘주류’집단 중 친일 경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동네는 별 없다는 것이 제 인식입니다.
조서닐보가 그나마 ‘민족지’로 기능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좌익 계열 지식인들이 기자 역할을 할 때였고, 일제 말 방응모가 조서닐보를 인수한 후 지면은 지극히 낯뜨거울 정도로 일제에 부역했습니다. (자료는 얼마든지 참조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조서닐보는 정직하지 않은 것이지요.

한국 사회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갖습니다. 일제에 부역한 이들이 고스란히 해방정권에서 중책을 맡은 데에는 국내 지지기반이 부실한 이승만 정권의 필요, 미 군정의 극단적 반공 정책이 자생적 좌익 세력에 대한 탄압과 어울리고 6.25 전쟁을 겪으며 친일 세력이 다시 득세하고 민족주의 진영은 빨간 딱지가
붙여져 거세되는 경로를 밟습니다. (keyword : 태백산맥, 해방 전후사의 인식)

그 친일파에 기반한 정권의 수장인 이승만을 ‘국부’라 부르고,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일본군국주의를 충실히 이 땅에 심은 박정희를 아직까지도 신격화하는 신문이
조서닐보입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아라!)(조갑제)를 파시즘 계열로 비판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진중권)를 필독서로 추천하는 바, 조서닐보가 여하히 파시스트 노선과 일치하는지 명료한 논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요점은, 조선일보는 자신=엘리트가 이끄는 세상을 꿈 꾼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조서닐보나 박정희가 딱 들어맞는 의미의 파시스트라는 뜻은 아닙니다. 차이점도 꽤 되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유사파시즘, 하나의 변종이라 둡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의 박정희 비판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경제는 잘했지 않아?라는 분들이 많은데, 그와 관련한 새로운 인식은 여기 쟁점토론방에서 주제 검색을 하면 원 없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2-2 안보 상업주의, 지역 차별
빨갱이라면 이를 가는 분들이 많지요. 6.25전쟁을 거쳐 미소 냉전의 상징으로 한반도가 기능한 50년 간, 남북 모두 상대 체제에 동조한다는 딱지를 붙여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충분한 분위기였습니다.
사상이 의심스럽다, 이 한 마디면 끝났지요.이건 지금도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keyword : 매카시즘, 국가보안법)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순서로 가면 갈수록 조서닐보는 안보를 팔아 신문 장사를 했다, 즉 영향력을 확대해왔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왜곡이나 오보, 때로 소설도 용인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김영삼정권의 대북정책이 냉탕과 열탕을 하염없이 오간 데에는 조서닐보의 공이 으뜸이지요. (keyword : 금강산 댐, 서울 불바다, 북한식량 군량미, 인공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북한을 대화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이들의 사상을 ‘검증’한다며 논쟁을 주도하거나 무대에서 끄집어내린 사례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keyword : 한완상, 이장희, 최장집, 황태연)

극단적인 반공을 추구하는 이 신문이 김대중 정권의 대북 포용 정책(일명 ‘햇볕정책)이 긍정적일 리 만무하지요. 존립 기반과 관계되는 문제거든요.
이 신문은 그래서 부시의 대북 강경 노선을 지지합니다. 저는 대북 포용 정책이 매우 논리적인 접근이라고 판단합니다만, 논리가 현실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반대 논리(?) 개발은 얼마든지 가능함을 이 신문은 몸으로 거의 매일 같이 보여주지요.

이것이 먹혀들게 하는 요인이 지역 차별 정서입니다. 지역 감정 또는 지역 차별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요. 근데 그리 말하며 차별을 조장하는 논법이 먹혀드는 오묘한 동네가 한국 사회입니다.
그 뿌리는 1970년대 초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 진영이 개발한 ‘빨간 딱지 붙이기’ 무공이라고 합니다.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 김대중은 그 딱지를 붙이고 죽을 고비 몇 번 넘겼다지요.

정치인 김대중을 대립점(희생양)으로 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 온 세력인 박정희와 공화당, 그 계보를 잇는 민정당, 민자당, 한나라당이
지속적으로 집권하는 동안, 조서닐보는 그 세력에 적극적으로 영합합니다. ‘전두환장군’을 ‘구국의 영웅’으로 찬양하고 1980년 광주 시민군을 ‘난동자’로 묘사하지요. (keyword : 5.18, 김대중 사회부장)

다른 신문이라고 달랐느냐? 그거이 조서닐보의 내공 수준은 감히 범접하지 못할 경지입니다. 그 하일라이트인 김영삼정권,
이른 바 문민정부 때 조서닐보는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능력까지 보여주지요. 조서닐보 출신 장관이 서너 명 생깁니다. (keyword : 김윤환, 최병렬,밤의 대통령)
그리고 노골적으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후보 대통령 만들기를 주도합니다. 신문들이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급이 다르다고 저는 씁니다.

경로야 어떻든 그 선거에서 김대중후보가 승리합니다. 이것은 조서닐보로서는 재앙이었을 터입니다. 그래서 일 년 정도 그 정권이 어떻게 나올까 탐색하다가,
정권의 핵심브레인으로 자리잡아가는 고려대 정치학 교수 최장집 당시 국가정책 자문위원장을 상대로 1998년 10월 ‘논문 사건’을 터뜨려 사상 검증을 시도합니다.
이 사건이 이 사이트 ‘우리모두’가 생기게 된 단초가 되지요.

그 이후는 반 김대중 정서에 기반한 한나라당과 조서닐보가 하염 없이 현 정권을 흔드는 기간을 거쳐 오늘에 이릅니다. 현 정권의 취약한 지지 기반, 위기 관리 능력 부재, 무능력이 때 맞춰 호응을 해 온 것으로 저는 봅니다.
문제는 그 세력의 왜곡에 기반한 부풀리기가 먹혀들었다는 데 있지요. 그 토대는 물론 이 땅의 ‘다수’입니다.

‘열린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그나마 이론적 이상향에 근접하게 하는 필수 하부구조는 ‘토론 시스템’이며 그 주요한 구성 요소는 ‘합리적 사고’입니다.
그런데 20세기 이 땅을 지배해 온 ‘닫힌 사회’는 주입식 교육(이거 조서닐보가 지지합니다.
열린 교육이 애들을 깡통으로 만든다고 하지요)을 통치 수단으로 삼아 왔습니다. 기본 토대가 부실한 게지요.

집단주의, 획일적 사고가 일상 구석구석에 배어 있습니다. 대학 서클 모임에서 사발주를 돌리고(직장에서는 폭탄주), 튀는 개체는 환영받지 못하고
아직 고등학생의 머리는 관리 대상이지요. 외양, 학벌, 출신 지역, 직장이 개체를 판단하는 우선적 기준이 됩니다. (keyword : 임지현, 일상적 파시즘)

그래서 저는 오늘 날 한국 사회 만큼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는 명제가 설명해주는 곳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주류(主流 ; main stream?)의 허위 의식이 되는 것이지요.

2-3 주류, 기득권, 가진 자
조서닐보는 이른 바 주류를 표방하는 신문입니다. 주류의 개념에 대해 설이 분분합니다만, 저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논의의 큰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부류로 둡니다.
때로는 양적인 우세 때로는 질적인 우세를 나타내는 그룹이지요. 정치권으로는 한나라당, 지역으로는 영남, 서울에서는 강남, 경제권에서는 재벌그룹 또는 대기업 또는 경영층입니다.

위에 열거한 ‘주류’의 본질은 소수 집단이고 다수는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조서닐보는 주류를 표방 또는 지지 또는 영합함으로써, 그 신문을 구독하는 이로 하여금 주류에 편입되었다는 만족감 또는 환상을 충족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그 소수에 들어갔느냐 아니냐는 그 신문을 보는 것과는 무관한 현실이지요.

일례로, 이 사회의 ‘다수’는 노동자입니다만, 조서닐보가 노동자 또는 노조 및 노동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오만 논리(?)가 동원되어 거의 능멸하는 수준의 기사가 양산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노동자 ‘다수’가 조서닐보를 보는 모양이예요. 늦게나마 최근 민주노총이 안티조선을 표방했는데, ‘다수’가 호응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습니다.

저는 조서닐보가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김대중’, ‘노조’, ‘북한정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단어들은 있는 그대로 가치중립이지요.
그 주체들의 행위에 따라 잘 하는 측면과 못 하는 측면을 때로 비판, 때로 지지할 일입니다. 경로와 논리에 따라 시각이 정해지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인데,
조서닐보는 시각이 선행되어 논리가 정해지는 매우 특이한 신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할 말은 하는 신문’이 아니라 ‘하고픈 말을 하는 신문’이라 표현합니다. 현 정권이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했지요. 저는 매우 바람직했다고 평가합니다.
적어도 정권과 언론이 사이 좋게 밀월관계가 되는 방향은 아니거든요. 이것은 조중동이 주장하는 ‘언론 탄압’ 또는 ‘길들이기’라는 논리가 자가당착임을 보여줍니다만, 여지껏 썼듯이 논리가 현실 세계를 온전히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닌 모양입니다. 그 우기기가 상당히 먹혀들거든요.

이제까지 되든 안되든 밑반찬을 마련해 보았습니다. 이 글 역시 비판적 인식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여기서 확장하여 위에 링크된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대하여’를 참조하십사 하고, 이 게시판(묻고답하기)의 글을 처음부터 개괄하시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그럼, 하실 토론 잘 하시고 다양한 인식으로 확장하시기 바랍니다. 내내 유쾌하시길~


Posted by taichiren
,
< 20031104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


아마도 조서일보 판매부수가 그닥 줄지는 않았을 겁니다.
말이나 글로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는 쉽지 않지요.
그런 측면에서 님의 지적이 옳다고 봅니다. 특히 온라인 중심 운동은 한계가 있을 겁니다.

이 게시판의 조회수가 얼마 되지 않아진 것은 까닭이 몇 있습니다.
안티조선이 여러 갈래로 분화한 것이지요.
조아세, 국민의 힘, 노사모, 깨손, 진보누리, 서프라이즈, 동프라이즈, 남프라이즈, 시대소리,...

분화한 동인은 여럿이 있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적는 것은 무망할 노릇이구요.
다만 님께서 의지를 갖는다면 찾아보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조선일보의 논조 변화는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을 듯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향력이 줄고 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이른바 의제선점능력 면에서, 조선일보와는 대치되는 논리를 공급하는 주체들이 많아졌거든요.
그 결과가 지난 대선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 때는 결집이 있었다는 소리이지요.

대선이 지나고 결집된 세력이 또 현실공간에서 분화를 합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리멸렬이랄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고민을 거치는 시기라고 볼 수도 있고...
저는 아주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낙관 쪽입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힘 일부를 이런 운동이 공급했다고 보고 있구요.

제가 보는 안티조선 운동의 목표는 개인의 변화입니다.
각성한 개인들의 연대가 사회를 덩달아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 이들을 결집시킨 효과는 있었다고 봅니다.
다만 조선일보를 보고 있던 이들을 변화시키는 데는 효용이 덜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요즘 노동계가 들끓고 있지요. 조선일보가 노동운동을 보는 시각은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민주노총이 안티조선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노동자들이 조선일보를 봅니다.
개인이 깨닫지 못하는 한 판매부수의 변화는 요원하지요.
다만 꾸준히 조선일보의 부당함을 전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는 한,
그런 이들이 그 목소리를 접할 환경이 된다는 데 이런 운동의 의의는 있을 겁니다.




정말 궁금님이 쓰신 글입니다<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안티조선운동으로 조선일보 판매부수가 줄었나요?>
>안티조선 게시판이 시들시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재작년인가? 한번 여기 들렀던 적이 있는데 지금처럼 끼리끼리 모여서 서로 다 아는 얘기 하는 동아리 분위기는 아니었던 듯도 한데..
>
>조회수도 운영진 이라고 올라있는 분들 계산하면 정말 몇이 안되네요.
>
>그렇다 치고..조선일보의 논조의 변화를 개인적으로 전혀 찾아보지 못하고 있는데요.
>
>그리고 잘 기억은 안나지만 김대중시절 보다 요즘 조선일보의 부수가 증가한 듯한 통계를 본적도 있고..
>
>아시는 분의 분석글을 읽고 싶네요.통계치 그대로 말이지요.
>
>이런 운동이 정말 현실적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지도 궁금하구요.
>
>유행가처럼 인기 좀 끌다가 때가 되면 사라지는 식이라면 너무 무의미한 시간소비라는 생각이 들어서요.여기서 지금 이 글을 올리는 것도..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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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0827 우리모두 사이트에 올리신 글 >

엊그제 전철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FOCUS라는 신문을 읽었는데,
신은경씨가 촬영 도중 눈을 다쳐 마이너스까정 갔다가 거진 회복되었다는 기사에 눈이 갔다.
시력이 마이너스래. 야, 마이너스? 와, 참 나쁘구나, 흔히들 그리 이야기한다.

근데 거기다 대고
그거이 말이지, 수정체 뒤 각막 사이에 이미지가 형성되는 X축 좌표가 있다고 하고,
정상촛점 보다 왼쪽이면 그 X축 좌표의 비율(디옵터랜다)이 마이너스인 것이며
따라서 근시라면 몽창 마이너스인 거야. 시력측정표의 맨 꼭대기, 0 이하라는 뜻은 아닌 것이지...
라고 설명하면 대개 뜨악해한다. 그래 너 참 잘났구나.

그래서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걸 모른다고 그 이가 무식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위의 기사에서 기자가 잘 모르고 쓴 것인지 신은경씨가 실제 그리 말한 건지도 모른다. 중요하지도 않다.

***

어느 자리에서 바둑이 취미라고 하면 급수를 묻게끔 되어 있다.
2급이라고 하면 아마2급이냐, 프로2급이냐 되묻는 사람이 꼭 있다.

근데 거기다 대고
프로2급이라는 건 세상에 없다, 아마 단증은 한국기원만 인허하는 것이고
기원에서 아마추어 2급이면 대개 한국기원 2~3단에 해당한다.
프로는 입단대회를 통과한 전문기사를 통칭하며 초단부터 시작한다...
라고 설명하면 알아들은 시늉을 한다. 근데 그가 알아들은 걸까?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이다. 그 체계를 그가 몰랐다고 해서 그 이가 무식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식이나 정보의 쪼가리 한 점을 내가 먼저 알았다는 정도이며
다른 면에서 그 이가 나보다 현재 해박할 가능성,
설령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리 될 가능성은 언제든 있는 거다.
내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이건 영원히 유효한 판단일 게다.

***

최근 들은 이야기.
사람을 처음 만나면 15초 이내에 좋든 나쁘든 그 이의 이미지가 형성되며
한번 창고에 저장된 그 호불호 인식은 그 이후 웬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긴 세월 지나며 형성했을 그 이의 가치관을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어찌 감지하여 판단에 이르고 고정상을 만든단 말인가.
근데 밥 먹듯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다.
일상은 내게 바삐 판단할 것을 채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이 되지 않으니까.

나는 인식의 나약함을 말하고 있다. 논리는 그 다음 문제이다.
시방 형성되어 있는 내 인식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
위에 읊은 마이너스, 프로2급 따위...따지고 들어가면 잘 모르면서 아는 체 하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걸 인정하면 그 뒤 부터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서로 새로운 인식을 주고받으며 '모름'의 품질이 계속 달라지게 되는 거다.

그 문턱이 어렵다. 그래서 게시판에서 소통은 대개 일어나지 않는다.
대립되는 관점의 게시물은 상대를 향한 것이 아니다. 대개는 자기 확신이며 보는 제3자를 위한 글이 되는 거다.

***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조서닐보,
대구에서 북한 기자들과 '인권단체'의 충돌이 있었댄다.
북한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전두환을 죽여야 광주시민이 산다" 시위가 있고
조중동 기자들이 각목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해보라...는 흥미로운 비유도 나왔다.

그걸 보며 나는 소통의 메카니즘을 생각한다.
대화는 의지를 갖고 있는 쌍방이 있어야 가능한 물건이다.
상대가 대화할 진정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 들지 않는 한, 대개는 소통 초입에서 갈라진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지 않는 것이다. 왜? 이 바쁜 세상에 왜 확실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쓰나?

문턱을 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나오는 결론인데
대개는 윽박지르기로 시작한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는데 문턱을 넘는 경우란 드물다.

그 시위의 효용이 있었을까? 나는 의문이다.
소통의 대상이 기자단일 수 없다. 이건 자명하다.
김정일정권이 일인일당 독재체제라는 건 모두 안다.
근데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이들은 나름의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는 거다.

1980년 나는 실상을 몰랐다, 소수 깨어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아마 다들 그랬을 거다.
북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하여 그 인식이 깨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었을까?
이건 의문인 거다. 그 대다수는 북한에서 나오는 말을 믿지 않는 상태였을 거다.
나의 가치체계에서 내편(전두환)이 상대(북한 시위대) 보다는 믿음이 더 가기 때문이다.

문턱을 넘지 않고, 상대의 가치체계를 능멸해가며 무슨 소통을 한다는 건가?

그럼 해외의 시각을 염두에 둔 시위여야 말이 되는데,
김정일 체제의 실상을 모르는 동네가 어디 있겠냐. 그래서 뻘짓이라는 거다.

비록 뻘짓에 닭짓으로 판단하지만, 그 이들이 열정을 갖고 있다는 감은 온다.
사랑하기에 증오와 미움을 표출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그 사랑을 몸 담은 땅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 보다 더 쏟는다면 좋으련만. 가슴 아프다.

***

물 건너 "The Serenity Prayer (평온을 위한 기도?)"란 게 있다고 한다.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게 하는 용기를 주시고
그 두 가지 일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를 주소서...정도로 해석 되는갑다.

북한에 대해 끊임없는 대화의지를 발하고 진정을 전하여 소통 초입 문턱을 낮추는 일,
꼴통에게도 보석이 묻혀있으며 그가 언제든 '다메섹 가던 사울'이 되리라 여기며 손까락 운동을 하는 일
따위가 내게는 용기 되겠다. 당장 할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거다.

그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지혜는? 모르겠다.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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