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애사(有愛寺)는 원래 상업을 주로 하는 종교집단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세력이 미치는 곳은 상업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골라골라'라는 그들의 붉은색 현판은 몇 몇 곳을 제외하고는 세계 어디에나 걸려 있었고
이러한 현판들은 곧 그들의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척도가 되었다.

유애사는 모든 품목을 취급하는 상인들로 알려져 있으나, 그 내막을 들여다 보면 무기판매가 그들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장 대표적인 무기가 과거 무림대전 때 등장했던 맥아도(麥芽刀)였다.

당시 원자단과 함께 그들의 최고 병기로 여겨지던 맥아도는 이승마니의 요청에 의해 파견된 미국군에 의해 그 위력을 떨쳤다. 미국군이 이것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특히 허리 베기에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했다고 한다,
맥아도를 한 번 쓰면 왠만한 무사 1000명은 죽어난다 하여 맥아도의 사용을 인천살육(人千殺肉)이라 묘사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 모습을 본 하누 아버지 이승마니는 미국군의 무공과 맥아도에 매료당해 무림보물 중 하나인 군사주권(軍司主拳)을 아예 미국군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전장 뒤로 도망쳤었다.
이 일로 인해 수십년간 무림맹이 유애사의 하부기관이란 소리를 듣게 될 줄 이승마니는 몰랐던 것이다.


유애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 외딴 섬에 창건된 조그마한 문파에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무림들이 수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에 비하면 유애사의 전통은 정말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유애사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던 것인가.
유애사의 창건 당시 세계 강호를 주름잡던 문파는 양국왕(揚國王)이 이끌던 양연방(揚鳶方)이었다.

그러나 양연방은 잇달은 싸움으로 인해 그 소모가 극심했고, 특히나 일갑자 전 히두라가 이끄는 도길군단과의 싸움으로 인해 거의 파탄의 지경에 이르러 이름만 남았던 것이다.

이 때 유애사 또한 싸움에 참가했으나, 근거지가 전장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망하기는커녕 엄청난 실전 경험을 쌓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섬에서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 막강한 힘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후 유애사는 솔연군이 이끄는 솔연방(率然方)과 양대 문파로 세계 강호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실상, 솔연군의 공력은 유애사에 의해 과대포장된 것이었고, 유애사가 강호의 실질적인 최강 문파 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것을 평가하는 이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이후 솔연군이 주화입마하고, 솔연방이 붕괴된 뒤부터는 유애사가 내놓고 강호를 지배하게 되었다.

유애사는 수 십년간 강호의 패자로 군림하며, 자신들의 본업인 무기제작과 판매에 열을 올렸다. 무림대전 이후 그들의 최고 병기중 하나인 맥아도는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이들의 끊임없는 연구 개발로 인해, 맥아도보다 훨씬 강력한 병기가 탄생한다.













허리우도.....




허리우도는 이전의 맥아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시무시한 병기였다. 맥아도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던 미국군이 여러 전투에서 내상을 입자 자신들이 직접 나서 싸우지 않고 무기만 팔아도 되는 허리우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허리우도에는 그것을 한번이라도 사용하면,
그 사용자가 무의식 중에 유애사의 뜻에 따르게 되는 특이한 힘이 있어 유애사는 이것으로 자신들에게 반발하는 세력들을 없에나갔다.

이러한 목적으로 허리우도가 강호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침해하는 일이 생기자 각 문파에서는 허리우도를 사용하는 일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을 눈치 챈 유애사는 하부기관인 시장개방(市場開方)을 움직여 각 문파가 허리우도를 억지로 쓰도록 강요하기 시작했다.
시장개방은 허리우도를 판매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상술을 썼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끼워팔기 였다.
'허리우도를 익히면 자신네 내공인 나이기(羅異氣)를 전수해 준다.'
'맥도날도(脈道捺刀)를 하나씩 공짜로 준다' 를 내세워 판매하는 방법이었다.

여기에 영업상인들을 파견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가장 우수한 영업상인이 비구니인 대주니(岱主尼)였다.
대주니는 허리우도를 써서 고수가 되었다는 사람들을 대동하고 다니면서 허리우도를 광고했는데, 그 때 거느리고 다닌 이들이 람보(覽甫)와 검한도(劍恨盜) 였다.
이들은 몸에 허리우도 뿐 아니라 그 자매품 맥도날도(脈道捺刀)를 차고 다니며 위세를 과시하고 다녔다.

그들의 말인 즉, 맥도날도가 비록 끼워파는 일회용 병기이긴 하지만 맥아도의 맥을 이은 막강한 병기이고
자신들은 그러한 칼을 씀에 있어서 언제나 정의의 편을 드는 도날도덕(道捺刀德)을 지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말처럼 이들이 스스로 도덕을 지켜준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람보, 검한도는 술만 먹으면 횡포를 부리는 못된 습성이 있었다. 특히나 그들은 허리에 차고 다니는 수타어주(樹打御酒)를 먹으면
눈에 뵈는 것이 없어져 내공을 자기 멋대로
포수(砲手)라 칭하며, 악행을 여기저기서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강호에서는 람보와 검한도만 보면
'재 온다이'를 외치며 사람들이 도망다녔고, 이러한 그들의 외침이 조금씩 변해 나중엔 그들의 출현을 알리는 외침이 '재다이'로 변형되어 불렸다고 전해진다.

허리우도의 보급에 재미를 붙인 유애사는 모든 무림인들이 허리우도를 쓰도록 대련의 규칙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우선 무기를 쓰지 않는 싸움은 엄금했다. 그러나 레슬링과 같은 대련에서는 무기는 정말 불필요한 것이었고, 여기에 허리우도의 판매 저하를 우려한 유애사는 레슬링을 불허하는
'不許 레슬링'이란 규정을 만들었다.

이렇게 허리우도를 통해 무림을 재패하려는 유애사의 야심은 끝이 없었고, 거기에 선정보도를 들고 가장 열심히 쫓아다닌 무리가 역시 좃선당이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별로 사랑스런 일을 하고다니지 않는 유애사가
왜 유애사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단 말인가?
그들에게 愛란 개념은 육체적인 면에 상당히 치중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애사의 풍속은 상당히 성(性)적인 면을 강조했고, 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포주를 제자로 거두고 있었다.
대표적인 포주들의 회의가 앤배회의였는데
여기의 수뇌역할을 하던 인물들이 '앤아파할', '애무앨배,' '앤에취할'과 같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만큼 선정적인 이름의 승려들이었다.

주지의 이름이 꼴린돈임을 보면 더 이상 말하여 무엇하랴...........

꼴린돈은 여자 좋아하기로는 어떤 위인이 열녀 좋아하는 것에 비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만큼 여자를 밝혔다.
얼마전에는 자신의 친척 누이인 숙희와 부적절에서 정을 통한 사실이 강호에 알려져 망신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당시 꼴린돈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자신의 소문에 진노한 꼴린돈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외부에 이러한 일을 퍼뜨렸다고 결론짓고, 주변 인물들을 조사했다.

결국 소문의 근원지가 자신의 경호대에 있던 특별검사(特別劍士) 수다(授多)의 수다 였다는 것을 알아내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홧병으로 주화입마해 사경을 해맸으나,
유혹상원의원(誘惑上院醫員) 희라리(喜羅利)의 진료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꼴린돈은 비록 여색을 밝히기는 하나 허리우도와 같은 무기수출에 있어서는 온건한 축에 속하는 인물이었고,
그의 정적이던 '징그럽지' 보다는 일성교와 무림맹의 화합에 긍정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꼴린돈에게 타격을 입는 것은 유애사의 극우파(極右派)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고 여기에 좃선당과 중앙당이 선정보도를 꺼내들고 한 몫 거든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이러는 중에도 유애사가 판매하는 허리우도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는 노력들이 있었으니...
허리우도가 가지는 약점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허리우도는 그 이름과 같이 허리 위에서 쓸 때 위력을 발하는 무기였다. 허리를 구부리고 그것을 사용하면 효과는 커녕 되려 피해를 보기 쉬웠다.
그래서 허리우도를 쓰지 않으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서 허리를 수그리는 시전하는 무공이 개발되어 조금씩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유애사가 가만히 있을리 없었고,
강호의 규정을 이용해 이것을 막으려 했다.
이렇게하여 강호에 또 하나의 웃지못할 규정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니.....

싸울 때 수그리는 것도 불허한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힘없는 이가 당하는 곳이 강호인 것을........이렇게 강호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유애사가
스스로 군사주권을 가져다 바치고 자신들의 부하 노릇을 하다시피 하던 무림맹이 일성교와 통합해 독자적인 세력을 만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여기에 유애사 외에도 족발이가 이끄는 '신사(神寺)'와 장골아(掌骨兒)가 이끄는 차인회(差人會)와 같은 주변 문파들도 무림맹의 통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외부의 문제와 무림맹 내부의 문제들........과연 무림맹과 일성교의 통일은 올 것인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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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강호에서는 좃선모에 대해 말이 많았다.

좃선모...

그가 좃선당의 광고모달(廣告謀達)이 된 뒤로 그를 비난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좃선모를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광고모달이란 직책은
실상은 골이하나 객잔의 삐끼이고,
좃선당은 좃선모의 백치같은 순진한 이미지를 이용해 많은 젊은이들을 자신의 객잔에서 투숙시키며 풍기를 문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좃선모가 매수검(買受劍)을 차고 다니면서 말하기를 자기는 매일 아침 골이하나 객잔에서 아침을 맞는데 무공을 익히기에는 골이하나 객잔이 최고라고, 길가는 이들을 붙잡고 호객행위를 하였다고 한다.

무림의 규칙상 객잔에서 무공을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공정 거래행위로 간주되었고,

이로 인해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좃선당과 좃선모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좃선당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좃선모에 대해서는 그의 과거를 추측하는 여러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의 근거는 그가 호객행위를 하면서 메들리로 부르는 노래였다.

첫 번째 노래가 골이하나 객잔에 두 해 투숙한 기념으로 부른 노래 '두 해 본' 이었다.


'걘 차는 거니
어떻게 쥐내는 거야
나 없다고,
안 불고 그러지 않니

매일 끈 속에 잡혀와
죄 잘 대던 너
요즘은 왜
보이지 않는 거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네게
잡을 수 없을 만큼 더 멀리 갔니

니가 없어도 나 잡을 수 없어
괜히 너 심술나서 반항한거지

삐라가 내리면 그늘 뒤에 숨어서
니가 읽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만 하는 내게

이러지마 불 수 없다고
쉽게 날 잊을 수 없는 니가 아닌걸 잘 알잖아.....


얼핏 들으면 남녀상열지사를 다룬 노래같이 들리나
과거 선정보도를 들고 설치던 이들이 서퇴지(暑退之)를 공략할 때 들였던 청력의 십 분의 일만 쓴다면 이러한 가사가 들린다는 것이다.

이 가사의 출처는 과거 고문기술자(古文技術者) 이그난이 기술한
고문서(苦文書)에서 나왔다는 설이 유력했고, 항간에는 좃선모가 이그난의 제자가 아니냐는 설이 나돌았다.


그러나 얼마 뒤 두번째 노래를 부르며 나타난 좃선모를 보고는 그가 이그난이 아니라
이무녈의 제자라는 설이 나돌았다.

이것의 근거가 되는 것 또한 노래였으니.......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시나 무 세'

네 속엔 뇌가 너무도 많아
당최 내 쉴 곳 없네

네 속의 헛된 바램들로
당최 내 편할곳 없네

네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최 내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네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심한 가시나, 무 속 깠나?

바람만 피면 그 매 마른 것이
홀로 처가 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른 쇠들도
바가지 씌워 긁어대고

바람만 피면
긁고 또 긁으며
바가질 긁던 날이
많았는데....

네속엔 뇌가 너무도 많아
당최 내 쉴 곳 없네


제목부터 느껴지는 가부장(家父掌)의 느낌.....
좃선모가 이무녈의 '공자강시환생술(孔子糠 還生術)'을 따라해 과거 어느 시인이 쓴 시의 초장을 마음대로 바꿔
이러한 '리마이구(裏魔異句)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이그난의 제자이든, 이무녈의 제자이든
좃선모가 극우파의 제자임은 이렇듯 확실한 것으로 보였고,
이러한 점을 들어 좃선모를 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좃선당과 같은 극우파들이 과거 서퇴지(暑退之)의
노래를 거꾸로 들어가며 그를 악마의 자식이라고 선정보도(煽情寶刀)를 들고 설치던 것을 생각하면 좃선모는 몇 배로 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들어 좃선모를 공격하는 것은
좃선당의 수법과 똑 같은 것이라는 주장이 그 내부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좃선모는 단순히 돈을 받고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일 뿐....그간 좃선당이 행해온 악행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순진해 보이는 청년의 이미지를 이용해
낡아빠진 골이하나 객잔의 호객행위에 나서는 것까지 막아선다면 좃선당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그가 툭하면 '내가 안한다 그랬잖아' 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인 점이 동정심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그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트렸던 것이다.

소수 의견으로는
강호에 좃선모를 흠모하는 여인네가 많기 때문에 그를 공격했다가는 그들을 모두 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십대판굴업(十大販屈業)
이라는 무공을 익힌 그들은 좃선모를 위해서는 누구와도 싸울 수 있는
강력한 그의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좃선모는 그들을 바탕으로 인기가수(人氣歌手)란 장법을 터득했다 전해진다.
게다가 그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그가 나오기 전 까지 잘 나가던 투로투쌍절((鬪老鬪雙絶).....
내박자(內拍子)와 태준아(太俊兒)가 합동으로 펼친 투로투(鬪老鬪)를 발라도(鉢羅刀)로 물리치고 임비씨(林妃氏), 애수비(哀愁妃), 계백숙(桂魄淑)같은 미녀들과 같이 살게 되어
'미녀랑살어(美女郞殺御)'라는 별호까지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좃선모의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좃선당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 일들이 두 정상의 만남에 의해 벌어지고 있었다.
비록 자세한 상황은 알려진 바 없지만 둘이 만나 손을 잡았다는 것 만으로 강호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소식이 무림맹주가 돌아온 뒤
모든 곳에 알려지자

그간 강호의 분열을 획책하던 좃선당 뿐 아니라

강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주변 열개 강호에서도 경계의 눈초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강호의 통일은 주변 강호와의 세력 판도의 변화를 예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서역 강호 최강문파 유애사(有愛寺)와
유애사의 직속 양기부대(陽氣部隊)의 수장 미국군(米麴君)은 이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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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대립된 두 집단의 화해가 추진된 계기는 역시 무공에 있었다.

막수의 무공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를 막기 위해 만들어 졌으나
그 자체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신공 실현의 욕구와 대립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무공연마에는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막씨수도만을 편향되게 익히면 그것을 익히는 자의 몸과 정신의 부조화가 기혈을 흐트려, 무공을 익히던 이들이 점점 말라가는 야기시켰다.

과거 강호를 호령하던 솔연군이 이로 인해 죽음을 맞고,
그의 큰아들 로서아(老西兒)조차도 공력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솔연군의 의형제였던 중공군(衆功君)까지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막씨수도만을 익히던 과거의 수련방법에서 벗어나
점진개방(漸進開方)을 중심으로 다른 무공들을 받아들이는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일성교가 예외일 수가 없었다. 다른 막씨수도와 달리 일성교 신도는 그간 모두가
귀순대사가 기른 주체사삼(柱體沙蔘)을 복용했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컸다.
여기에 몇 년 간 기근이 겹치면서 한 해 수십만 씩 죽어간다는 소문이 횡행했다.

이 소식이 강호에 전해지면서 같은 무림동도였던 무림맹이 나서 일성교 신도들에 내공을 전해
그들의 기혈을 안정시켜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필요할 때 그들을 도와 주어 화해의 길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막씨수도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양의 기운을 가진 내공이 필요한데
그래서 나온 무공이 강한 양(陽)의 내공인 태양신공(太陽神功)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좃선당과 이해창이 이끄는 딴나라단 이 반대하며 나섰다.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의 최고 경지인
흡성대법(吸城大法)으로 일성교와 맞붙어 싸워 그들을 힘으로 누르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흡성대법은 일성교의 공삼단을 흡수할 수 있는 무공이라고 하나
이것으로 다른 성질의 내공을 흡수하면 체내에서 내공들이 각각 부조화를 일으켜 결국 흡수한 쪽에서도 주화입마에 이르는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러한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흡성대법과 같은 류의 무공인 수구기득권(守舊旣得拳)을 익혀놓은
좃선당, 딴나라단과 같은 무리들뿐이었다.

그러나 이해창을 물리치고 무림맹주가 된 김데중이 좃선당과 딴나라단의 일관된 방해에도 불구하고 태양신공을 연마하고 일성교쪽에 내공을 전한결과 양쪽의 일인자가 만나는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한항공(大韓航功)을 시전하며 일성교가 있는 북녘 땅으로 날아간
김데중의 눈에 수많은 인파들과 그 앞에 선 한 인물이 보였다. 언뜻 보기에 낮익은 얼굴......일성교 이대 교주 김증일 이었다.
경공을 마치고 내려서는 김데중을 몸소 맞이하러 나온 것이다.

좃선당이 그간 이들의 만남을 막기 위해 퍼뜨린 소문은 태양신공의 내공만 받아 먹고 김증일이 김데중을 철저히 외면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예상을 깨고 2대 교주 자신이 직접 나온 것이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그가 시전하는 진정한 무공을 아무도 본적이 없다는 일성교주.....

일각에서는 그의 무공이 형편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김데중을 맞이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만만치 않은 공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수하들과 함께 상대방을 친히 맞이하는 모습은 과연 일파의 수장다운 모습이었다.

몇 마디 인사말이 오가고..
무림맹주와 일성교주는 나란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경공을 시전하던 중에 일성교주는 연장자인 김데중에게 먼저 두어 걸음 양보했다. 의아해 하는 얼굴들에게 일성교주가 입을 열었다.
'허허... 공삼단에도 예절은 있소이다.'


일찍이 좃선당이 말해오던 일성교주는 밤에만 수련을 하는 성미가 괴팍한 인물로 예절이고 뭐고 없는 사람이었다.
그 아버지와 달리 무공실력도 형편없기 때문에, 2 인자인 군부(軍夫)의 끊임없는 도전에 시달린다고 좃선당은 주장해 왔다.
도참사상으로 이름을 날리던 인천(人天)사의 전직 주지 김학중은 그가 교주가 되면
3년 내에 일성교는 패망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2대 교주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별로 없지만,
그는 소시적부터 지법과 칼을 쓰는데 능하다고 해
일찍이 교내에서 지도자(指刀者)라 알려져 있었다.
그간 좃선당은 이점을 이용해 그의 무공을 단지 지법과 도법에 한정시키면서 그를 하수라고 폄하해 왔었다.

거기에 오늘 그가 신고 온 신발은 경공을 단련시키는데 쓰이는 높은 굽의 신발이었다.
이 신발을 신으면 보행이 더뎌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도 그는 여유롭게 자신의 경공을 과시했다.

그간 좃선당은 일성교와 무림맹의 전쟁을 유도하기 위해 그 교주의 무공을 깎아 내렸다.
일성교주의 무공이 강하다는 말을 하는 것 만 으로도 좃선당에 의해
일성교 신도로 의심받기 일쑤였다.

일성교주가 검술, 지법 뿐 아니라 식권(植拳)까지도 연마했다는 말을 하고 무림맹주가 좃선당과 딴나라단에게 공격당한 것이 바로 엊그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자리를 통해
그가 경공까지 뛰어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그간 강호의 물을 흐리며 승승장구 하던 좃선당의 앞날에도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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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한 노인이 무거운 얼굴로 걷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그의 몸에서는 무림인의 채취가 흠뻑 느껴지고 잇었다.
작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마다 수십년 무공을 갈고 닦은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현행 무림맹주 김데중이었다.

'노부가 강호에 나온지 어인 수십년...
이번에 가는 곳에서는 감히 목숨을 장담 못하겠구나.'

그의 머릿속에는
거의 일갑자 이전의 일이 된 무림대전이 떠올랐다.



무림대전.......
같은 무림 동도로서 왜 그토록 미워하고
싸워야만 했던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김데중은
비행 경공 대한항공(大韓航功)을 시전하며
일성 교주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성교,,,

일찍이 이 갑자 이전 서역에 한 고수가 나타났었다.
그의 이름은 막수(幕手)....
그리 어렵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가정을 버리고 무공 연구에만 정진한 이였다.

그는 무학의 본질을
'부를좋아' 하는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보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공의 평등이 이루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가 개발한 무공이
이런 저런 초식을 다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손을 휘두르는
막수(手)였던 것이다.

이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생겨나면서
강호에서는 그들이 막씨의 도를 따른다 하여
그들을 일러 막씨수도(幕氏修道)라 불렀다.

막수는 자신의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
그 내공의 경지를 삼단계로 나누어 지도했다.
공삼단(功三段)이 그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강호에 알려지면서
막수와 그 제자들은 공삼단(功三單)이라 불리게된다.

막수가 생전에 거둔 성과는 미미했으나
그의 사후 그에게 영향을 받은 이들이 속속 늘어나기 시작하며
공삼단의 세력이 점차 성장하였다.

급기야 공삼단에 솔연군(率燕君)이란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 강호의 판도에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나 당시 강호세계는
파시수투공(波施樹鬪功)을 익힌 희두라(姬頭羅)가 이끌던
도길군단(道吉軍團)이 휩쓸고 있었다.
족발이(足發夷), 무솔리니(武率離尼)등과 손잡은 도길군단은
파죽지세로 무림계를 짓밟기 시작했다.


피에 주린 이들을 막는데 있어서는
고수건 막수건 편을 가를 것 없이 하나가 되어 참여했다.

솔연군은 도길군단을 자신의 장원에서
한빙신장으로 격퇴해 그들의 예봉을 꺽었고,

자본주인(資本主仁)의 도를 따르는
미국군(尾菊君)은 도길군단을 상대하는 한편
과학자(科學子)가 만든 원자단을 복용하고
단 두 번의 출수로 족발이를 제압했다.

이렇든 커다란 강호의 공적을 제압하기 위해 두 세력이 손을 잡았으나
승리의 성과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들은
마찰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 때
본 소설의 무대가 되는
동북아(東北亞)강호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놓고 솔연군과 미국군의 마찰이 빚어졌다.

그간 족발이의 식민지(植民指)에 시달리던 강호에
족발이의 몰락은 꿈에 그리던 것이었다.
그러나 감격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군과 솔연군이 들어와 자기네 끼리
강호를 나누어 갖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한시적으로 일어난 것이었지만 곧이어
막수의 도를 따른다는 일성교(日星敎)가 솔연군의 비호아래 등장해
북쪽 무림을 장악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맞서 남쪽 지역에서도 미국군의 비호를 받는
이승마니의 자유단(自由單)이 들어서고
삼팔성(三八省)을 경계로
강호는 졸지에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이러한 일들은 무림인들의 희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힘센 외부의 고수들에 의해 나뉜 것이었기 때문에
이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그러나 강호인들의 소망과는 상관없이
외부고수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분열된 상태로 강호는 한 차례 대전을 치루었고
두 무림은 서로 증오하며 반 백년을 지내던 터였다.


여기에 이러한 분열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좃선당과 같은 무리들은 강호의 영구적인 분열을 획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터전을 앗아간 일성교에 원한을 가진
이들은 군발이(軍發理)의 도를 따르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무나 공삼단이라고 뒤집어 씌웠다.

무림대전을 통해 공삼단에 대한 증오를 배운
무림인 들은 좃선당의 계략에 휘말려 이성을 잃고
죄없는 이들까지 희생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했고,
이러한 상황속에서 좃선당은 자신들의 세력을 점차 불려나갔다.

좃선당은 공삼단에 대한 증오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여러 수단을 부렸다.
특히 잘 써먹은 방법이 막수를 익히면 괴물이 된다는 소문이었는데
그들이 소개한 공삼단(功三段)이란 이렇다.
막수를 익히면

제1단계: 얼굴이 빨개진다.
제2단계: 뿔이 돋아난다.
제3단계: 늑대인간

강호가 분열된지 어인 50여 년
공삼단이 어떤 것인지 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렇게
좃선당이 유포하는 공삼단의 공포는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여기에 그들이 심심하면 조사해 발표하는
일성교의 과장된 군세와
공삼단(功三段)과 이름이 비슷하다 하여 콩사탕 먹기를 거부하다 죽은
콩사탕 소년 이순복 설화는

박통과 그의 제자들인 본인운(本人雲), 수태우(水苔雨)
같은 악인들이 무림맹주 노릇을 하며
강호를 말아먹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이제 이러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서로에 대한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무림맹주 김데중이 직접 나서 일성교 2대 교주를
만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반국가단체(反國家團體)로 만들어진 몸을 갖고 있다고 전해지며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만이 그를 상대할수 있다고
좃선당이 주장하던 베일에 싸인 2대교주....
그동안 베일에 쌓여 있던 신비의 인물

그를 만나러 떠난 무림맹주의 운명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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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국해우원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원래 국해우원이 하는 일은 강호 사람들이 익혀야 할 무공을 만드는 것이다. 즉 국해우원을 뽑을 때는 각자 자기가 익히고 싶은 무공을 잘 쓰는 이를 뽑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것이다.

권법(拳法)을 익히고 싶은 이는 권경에 능한 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고, 어려운 무공을 익히고 싶은 사람은 그런 이에게 쉬운 무공을 여러 사람이 같이 익히고 싶은 경우엔
거녕기리 같은 이에게 표를 던지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낙선자명단이 우원들의 선악의 구분을 해 줌으로써 더욱 나은 국해우원의 선발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소수만이 익힐수 있는 수구기득권(守舊旣得拳)을 익힌 이들은 이러한 형태를 왜곡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하려 했고,

거기다 여기저기서 반칙들이 성행하고 있었으니...
한사람이 무공을 보이면 다른 지원자가 기다리지도 않고 단위에 올라가 시전을 방해하고 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초식을 중시하는 규정상 비무대회에서 보일수 있는 내공은 단지 악수하기(幄手下氣), 연설하기(筵說下氣), 인사하기(人事下氣)정도,,,

그러나 수많은 이들이

불호가(不豪家)가 개발했다고 하는 향응제공(饗應祭功)과 돈주기(暾酒氣), 비방하기(誹謗下氣), 같은 위험한 내공을 사용하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고발장(告發掌)까지 사용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는 피를 흘리는 이들도 많아 보는 이들을 애처롭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피들은 낙선자명단을 복용한 이들이 그 피를 통해 피 흘린 사람의 무공 내력을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장점도 있었다.

여기저기에 널린 피와 후보 무사들의 옷에 묻은 피들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병역기피'
'세금회피'
'철면피'
'소환회피'
'국회로대피'


같은 더러운 피들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눈에는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낙선자명단으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본 것은 역시 강종필의 문파였다. 그의 제자들의 옷에는 가장 끔찍한 피인 '제이피' 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이피란 무당들이 '굿했다'고 하면서 남의 집에서 고기를 5일 이나 얻어먹는 오일육(五日肉) 이란 행위를 하면 생겨나는 가장 더러운 피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강호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좃선당에서
'지역감정(地域感精)'이란 약을 만들어 유포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감정(地域感精)'
낙선자명단과 상극이 되는 약으로 먹으면 눈이 나빠져
이무공, 저무공 구분을 못하게 만드는 전설속의 약...

이를 만들기 위한 실험으로 죽은 인간이 많이 있어 좃선당원들이 머무는 객잔엔
'사람의 골(骨)이 하나 가득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던 터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전용 객잔을 '골(骨)이하나'라 부른다고 전해지던 터였다.

좃선당이 이 약을 퍼뜨리는 방법은 매우 특이한데
남쪽이나 북쪽에서 부는 바람은 몸에 나쁘다고 사람들을 우리가남이가(牛李家南異家)로 피신시키고 거기서 집단으로 중독시키는 방법을 썼다.
이러한 방법이 잘 먹힌 곳은 바닷바람이 심한 지역들이었는데, 각지에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인해 지역감정에 중독된 환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었다.

지역감정 뿐만 아니라
좃선당은 여기저기서 자기들에게 부담스러운
이들을 직접 제거하고 있었으니,

남에게 선을 베풀기를 좋아한다하여 '남줘선(善) 이라 불리던 이석헌 도장이 좃선당에게 '니발갱이지(尼發更異指)'를 지원 받은 상대 후보의암습으로 국회우원에서 밀려나야 했다.


이렇듯 지역감정과 낙선자명단이란
두 약이 강호를 뒤흔들어 놓는 가운데

지역감정이 일으키는 전염병을 고치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노준(盧俊)' 이었다.

노준(盧俊)......

당대 최고의 의원 라의태(羅義太)의 문하에 들어가 의술을 익히고.. 인술로 수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의원..... 무공에도 정통하기로 이름이 나있는 인물이었다.
더 많은 이들을 고쳐보겠다는 이상으로 나선 노준........



그에게는 같이 동문 수학한 스승의 아들이 있었으니... 그가 라도지(羅道地)였다.
어려서 여기저기서 많이 맞고 다닌 라도지(羅道地)는 특히 좃선당의 미움을 받아 좃선당의 수작으로 강호엔 이유도 없이 괜히 라도지를 미워 하는 사람이 많던 터였다.


노준이 지역감정을 다스리러 간 곳은 이미
'와에수(臥喪水)영감(令監)' 이라 불리는 기명사미가 지역감정을 무지막지 하게 퍼뜨린 곳이었다.

주변에선 가봐야 소용없다며 노준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준은

'지역감정 또한 사람이 만든 약이요.
약이 있으면 그 해약도 분명히 있을 터.
내가 그것을 찾고 말 것이오.'

라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났다.


애초 그가 준비한 약은.
'정당명부식(政黨名簿食)' 이란 식단과 '비례대표제(比例代表制)' 와 '일인이표제(一人二票劑)' 였다.

비례대표제(比例代表制)를 복용함에 있어서 정당명부식(政黨名簿食)은 항상 같이 사용하여야 하는 것이었고,
이가 여의치 않을 경우엔 일인이표제(一人二票劑)가 최상의 처방이었다.


그러나 지역감정이 없어지는 것을 싫어하던 강종필은 길을 가던 노준을 습격했고,
강종필과 격전을 치루면서 모든 약재를 다 빼앗겨 버리고,
가장 약발이 떨어지는 '일인일표제(一人一票劑)' 만이 노준의 수중에 남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포기했을 터...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환자의 진료에 매달린다.

하지만 아무리 신의 노준 이라 해도 약재의 부족엔 어쩔 수 없는 법....

갑자기 환자들의 환후가 악화되어 열이 나기 시작했다.
'허~ 태열 이 있구료..'


태열(胎熱).......
결핵주사란 무사에게 내상을 입고, 주화입마 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군대안가(軍隊安家)에서 수년간 정양하지 않으면 손가락이 마비된다고 하는 열!

태열이 발생하면서 환자들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역감정으로 인해 눈이 나빠진 무림인들 에게서 노준은 가는 곳마다 라도지로 오인을 받았다.
'너 라도지?'
어디 쓸데없이 라도지 미워하는 이들이 한두명 이던가?

이미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겐 어떤 해명도 소용없었고 보답은커녕 쫓겨나는 신세에 놓이게 된다.


이 소식을 듣자 자신의 애제자 번지점부(番指店夫) 영도다리(靈都茶異)의 비무대회 탈락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던 와에수 영감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실의에 빠진 노준....그의 주변에 그를 위로하는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특희 노준을 돕던 의녀는 이번 병의 치료의 실패로 '병에진아씨' 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지만
노준을 위로하기에 바빴다.

그 자리에 모인 몇몇 사람은 좃선당의 거짓 소문에 속아 지역감정을 먹은 환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노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해서 어찌 환자의 몸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미 비통하게 젖어 있었고 얼굴은 굳어가고 있었다.
솩~ 하는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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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자명단(落選者名丹)의 보급은 강종필이 몰래 유통시킨
모택동미(毛宅童未)로 인해 난관에 봉착한다.
사람이 밥을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그러나 뜻있는 이들이 모택동미를 먹느니 밥을 꿔서 먹겠다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밥꿔' 운동

이들은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으니
일부만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밥꿔! 밥꿔!
모든걸로 다 밥꿔!
사람들 다 밥꿔!

이로 인해 힘을 잃어가던 초선연대는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비무 대회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한편 신무기'음모(陰矛)'를 완성한 이무녈은
중앙당주와 함께 초선연대를 찾아가 도전장을 내민다.
초선연대를 만난 이무녈이 말했다.
"죽을래? 음모에 찔릴래?"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해봐"

"우리는 죽을지언정 음모에 맞을 수는 없소"
"그래? 죽는게 음모에 찔리는거야"

이런 식으로 초선연대를 공격하던 이무녈에게 멀리서 다가오는
붉은 옷의 인영이 보였다.
투기로 가득찬 모습으로 볼 때
이무녈은 자신에게 적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본 이무녈은 아연실색 하고 만다.
그는 최근 강호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쥔중권!

몽골무사 조깟재와 침뱉기 대결을 펼쳐 무림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
40대가 되지 않으면 무술을 배울 자격이 없다고 강종필이 그랬던가?
그러나 다가오는 그는 나이 40도 채 되지 않은 젊은 미남자? 였던 것이다.

자신보다 어린 상대와 싸우는 것이 체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무녈은 싸움을 하지 않으려 하나,
옆에 있던 중앙당주는 싸움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무녈을 종용하고 마침내 이무녈은 그와 싸우기로 마음을 굳힌다.

음모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이무녈에게 쥔중권은 맨몸으로 대응한다.

이무녈과 같은 고수와의 싸움에서 무기를 들지 않는다는 것은
자살을 의미하는 것.........
그러나 무기를 잡지 않은 쥔중권에게서 이상한 검기가 느껴졌다.

"무슨 무기를 쓰는 거요?"
"본좌는 내공을 이용해 무형의 검기를 만들어 사용할 뿐
달리 사용하는 무기는 없소"
"그렇다면 그 무공의 이름이 뭐요?"
"우리모두점검 이라 하오"

우리모두점검(羽理矛竇點劍)!
인물과사삼(人物果思蔘)을 달이고 달인 물
얼오부어수(孼吾部於水)를 마신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무형검!

애초에 좃선점검(朝鮮點劍) 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
지금 쥔중권은 이무녈에게 우리모두점검을 사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음모와 맡붙은 우리모두점검

삼국지(三國指),가부장(家父掌),침뱉기로 대표되는
둘의 무공이 화려하게 시전되며 한 시진쯤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디선가에서 어린아이를 업은 여인이 나타나 그 싸움을 보기 시작했다.

그 여인을 본 중앙당주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여협의 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제 성은 진이옵고, 강호에서는 저를 젖소부인이라고 한답니다"

젖소부인! 강호에서 가장 뜨겁다는 여인?
젖소부인이 여기엔 왜 왔단 말인가?
의아하게 생각한 중앙당주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 아이는 누구요?"
"이무녈님의 아이 바람 입니다.
그런데 저 양반이 한사코 아니라고 우기는 바람에......
이렇게 쫓아왔습니다"

영웅본색(英雄本色)... 이무녈이 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강호가 다 아는 일이었고
그가 열녀(熱女)를 좋아한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더구나 상대가 강호 제일 열녀 진두희라면....
그의 아내 현모양처(賢母陽妻)보다
더 뜨거운 여인..........

뚜렷한 증거가 없다고 해서
둘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군중들의 동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항상 무림동도들 앞에서 체면 차리는 것을 즐겨하던 이무녈
그가 싸우면서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있을리는 없었다.
속에서는 불이났지만 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쥔중권의 무공은 생각보다 훨씬 고강했고,
쥔중권의 우리모두점검으로 음모는 부서지고 있었다.

이윽고 쥔중권이 시전하기 시작한
파로두이신공(波盧斗異神功)은 이무녈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파로두이신공은 상대의 무공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되돌리는 무공!
이무녈은 자신이 시전하던 모든 무공까지 방어해야 하는 수세에 몰렸다.

이무녈의 생명이 경각에 달하려는 순간

갑자기 산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뛰어내려 쥔중권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

"저 호랑이가 엊그저께 순이네 박 깬범이라면서?"
"맞어". "맞어"

쥔중권같은 고수에 그러한 호랑이 따위가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귀찮다는 듯이 쥔중권이 휘두르는 진벙장(眞兵掌)
"소옥~"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호랑이는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틈을 놓칠 이무녈이 아니었다.
음모를 크게 휘둘러 거리를 만들고
어딘가를 향해 절을 하며 빌기 시작한 것이었다.

진정한 검객은 상대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을 때는 공격하지 않는 법
쥔중권은 그냥 이무녈이 하는 일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저자가 무슨 사술을 쓰는 것일까?"
"저자가 역경에 정통하다고 하던데, 혹시......."


이윽고 이무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그의 옆에는 한 괴인이 서 있었다.
얼핏보기에도 그의 얼굴은 이 세상 사람의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죽은지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얼굴.....

쥔중권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헉! 그렇다면 저자가 부린 사술은 다름아닌 공자강시환생술!"

공자강시환생술(孔子糠 還生術)!
수 천 년 전 죽은 고수를의 이름을 빌어 왠갖 잡신들을 모아 강시를 만들고
그것을 만든 이의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술법이었다.

강시와의 싸움에서는 인간의 내공이 먹힐리 만무했고
우리모두점검도 소용이 없었다.
전세는 역전되어 쥔중권은 수세에 몰린다.
이윽고 강시가 쥔중권의 목을 조여오는 순간.......

쥔중권은 몸 속에서 작은 단도를 하나 꺼내 강시에게 찌른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강시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무기가 귀신에 먹힌단 말인가?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유를 몰라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수인 중앙당주와 이무녈의 눈에는 그 단도에 쓰인 작은 글자가 보였다.
공자가살아나도(孔子可殺亞羅刀)............
귀신을 쫓을 수 있다고 하는 강호에 몇 안되는 무기중 하나인
공자가살아나도 였던 것이다.

평생 사람들에게 '그 영웅 시대' 란 소리만 듣던 이무녈에게 있어
패배란 수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무녈은 가전의 경공 이씨족보(李氏足步)를 전개해 줄행랑을 놓는다.


강시와의 싸움으로 지친 쥔중권은 차마 그를 쫓지 못하고
초선연대의 감사인사도 받지않고 어디론가 떠났다.


이무녈이 패퇴되고 모택동미도 보급에 실패하자 낙선자명단은
점점 빠른 속도로 강호에 전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에 좃선당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으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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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에 봄은 돌아오고 시간은 흘러
강호를 대표하는 200여 인의 고수를 뽑는 비무대회가 다가왔다.
그 고수단의 이름은 국해우원단(國害遇員)....


천하에서 가장
멱살잡기(覓殺雜氣)를 잘하고
단상점거(單相店車)를 잘 몬다는 200여인의 고수들....


비록 자기들끼리의 수련으로 강호에 도움 되는 일 하는 건
별로 없지만 나름대로 굉장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다.


이들이 선출되는 방식은 내공의 높낮음을 가리지 않고
순전히 초식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선출하는 것이었으니
가히 쇼우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을
제대로 된 주먹을 가졌다 하여 유권자(有拳者) 라 칭했다.

선정 방식은
선거(船車) 위에 올라가 자신의 무공을 시전하면 그것을 본 유권자 들이
그 무공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때
표를 던져주어 많은 표를 얻은 이가 선출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을 투표(投票)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게 당선된 이들이 강호를 돌볼 의무를 저버리고
매일 동내에서 힘없는 사람들 돈이나 뜯고
지들끼리 싸움이나 하는 추태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로 할 비무대회를 기다리며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 유권자들을 매수할 준비에
여념이 없던 국해우원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그동안 자신들의 말에 순종만 하고 고분고분하게 따라만 오던
유권자들이 스스로 일어서 국해우원들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한 삼국지의 '초선'의 뚯을 기려
'초선(初選)연대(連帶)'라 자신들을 칭하고는

그동안 선善을 땅에 떨어뜨린 국해우원들을 심판할
투표에 임하는 유권자들의 눈을 밝게 해주는 신약
'낙선자명단(落善者名丹)'을 조제해 무상으로 나누어 주기로 했다.


이제 악행을 일삼아 왔던 국해우원들의 미래가 암담해 지려는 순간

이번 비무대회를 위해
김데중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나온 강종필이
지난날 악행을 해온 자신의 부하들이
많이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음모(陰謀)논에서 재배한 홍위벼의
모택동미(毛宅童未)를 무림에 퍼뜨리기 시작했다.

모택동미.......

이것을 복용한 자가 '우리가남이가(牛李家南夷家) 로 들어가지 않으면
중독되어 목숨이 위태롭다는 극약


강종필은 이것을 치료해 준다는 명목하에
우리가남이가(牛李家南夷家)를 세우고 그 안에서 무림인들을 세뇌시키는
'하파지(夏波指)'를 쓴다고 한다.
자고로 하파지를 맞으면 모택동미의 중독에서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뇌에 충격이 가해져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만 하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강종필은 이들을 세뇌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충청도(衝淸刀)를 지닌데다,
내공이 9성 이나 된다는 고수 강종필의 이러한 작업으로
초선연대의 힘은 초반과 달리 약해져만 갔다.





그러던 중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무공 삼국지(三國指)의 이무녈이 나타났다.


이무녈.......


당금 천하에서 무공서 만들기에는 당할 자가 없다는 이가 아니던가.
그의 특기는 괜히 무공을 복잡하게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공부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있다고 하나
바로 이점이 무서운 것이었다.


또한 스스로가 상당한 고수로 알려진 이무녈.....
그가 연성한 무공 삼국지(三國指)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제자가
영웅문(英雄門) 의 창시자 김용의 제자를 능가하는 사상 최다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공부건 무공이건 어려운 책 붙잡고 앉아 있는 것이
뭐 하는 기분내기엔 좋은 것 아니던가.


암튼 여기서 이무녈에 대해 집고 넘어가자.


원래 이무녈은 무사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서생들의 모임인 사대(士帶)출신으로
무공과는 거리가 멀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속해있었던 사대가 보통 사대였던가.
이름도 찬란한 '공자가라사대(孔子價羅士帶)'
그곳에서는 '온고지신(溫故知神)이
장유유서(長幼遺書)를 가지고 무공 또한 가르쳤으니
그 또한 무공을 익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무녈은 무림의 대의는 도외시한채
스스로의 권익만을 위한 길을 그동안 걸어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나 부자유친(富者有親)을 내세워
부자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다고 전해진다.
이 와중에서 그는 선물도 받았다고 전해지니 어떠한 무리고도 뚫기
어려운 군신유의(軍神流依) 란 갑옷이었다.
이 군신유의는 부부유별이란 별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이렇든 가진자로부터 온갖 환대를 받아가며 그들의 구미에 맞는 일만 해오던
이무녈이 이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자신이 초선연대와 한 번 싸워 피해를 입은게 하나이면
그것으로 인해 다른 곳에서 자신이 얻는 '이문이 열'이었기 때문이다.



이무녈은 초선연대를 공격하기 위해 신무기를 개발했으니
이것이 그 악명높은 창 음모(陰矛) 였던 것이다.


전설속에서 내려오던 음모는
여인네들의 음기를 받아들여야 된다고 전해진다.
이 음기를 받아 들인다는 것은

(어허 이상한 상상을~)


음기가 많은 여자들을 잡아 패는 것이었는데



이무녈은 여기서 문제에 봉착한다.
별호인 일구라주인영웅(日龜羅廚人英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도 영웅임을 내세우던 그..


영웅본색(英雄本色)이란 말이 있듯이 이무녈도 여자를 좋아해 왔으나
이무녈은 양기가 많은 가진 열녀(熱女) 들 만을 좋아해 왔고
그의 아내역시 현모양처(賢母陽妻) 아니던가?


그러나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제자 가사노동(家事勞童)과 함께 여자를 패러 나갔다.


그러나 신나게 여인들을 쥐어패며 음기를 모으는 자신과
달리 제자 가사노동은 차마 여인들을 패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화가난 이무녈이 제자에게 말했다.


"옛날에 간큰넘이란 분이 계셨다"

"간 큰넘..........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자를 패신 분이지......

그분 스타일이 이래

너.......여자?? 나 간 큰넘이야 그러고 머리끄뎅이를 딱 잡어
딱 잡고 XX리 치는거야~


그분이 어느날 무소랑 마주친 적이 있었지..


막 가 ..... 그냥 가는거야
그러면 무소가 막 이래

어 뭐 이런 XX가 다 있어? 이거

이러면서 뒤로 움찔, 피하게 돼 있어
그때 뿔을 딱 잡고........XX리 치는거야~

그럼 걘 혼자서 골로가게 돼있어!"


이러한 스승의 설교를 들은 가사노동은 크게 깨우침을 얻어


그동안 갈고 닦은
여자만하기(女子灣河氣)의 무공을 이용해
여인들을 패기 시작한다.



이무녈의 가부장(家父掌)과
무기까지 동원하기 시작한 제자의 광기.
특히 가만있던 제자는 스승의 사주에 더욱더 날뛰다가
무기까지 동원하기에 이른다.
여인들이 가장 무서워 한다는 '명절날도(名節捺刀)'...


이들에 의해 피해본 것은 비단 여인네들 뿐만 아니라
길가던 동물들까지도 수없이 목숨을 잃었으니
'달마(達馬)' 와 '누이소' 등이 거의 씨가 말랐다고 전해진다.


이리하여 목표한 음기를 다 채운 이무녈


당장 짐싸들고 외딴 섬으로 가 자신의 내공을 담은 무기를 제작한다.




'구리할만도해(究理割灣刀海)'의 '증거업서도(證據業書島)'
에서 이무녈은 음모의 제작에 성공하고 다시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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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산을 오르는 한 인영이 있었다.
망태를 지고 산을 오르는 그의 모습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약초꾼의 그것이었다.


그는
위수곤신(衛戍昆神)의 제자로
신방고수(神房高手)라 불리우던
청년 무림인 '심마니'였다.
대관절 그가 이런 차림으로 두메산골엔 왜 나타났단 말인가?



산을 오르던 그의 눈에
그가 찾아 해메던 약초가 들어왔다.

보기엔 그냥 평범해 보이는 약초였지만
그것은 강호에 일대 파란을 가져 오게 될 영약이었던 것이다.


그약은 인삼보다도 홍삼보다도 산삼보다도..... 영삼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전설속의 약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인물과사삼(人物過私蔘)"


이를 복용하면
내공이 증진될 뿐 아니라
강호와 무림에 대한 안목을 높여준다고 한다.
상대의 무공을 보기만 해도 그가 어느 문파에 속하는지
간파해낼수 있어

실명비(實名碑) 아래에 뭍혀 있다는 무공비급과
같이 연마한다면
엄청난 위력이 나온다고 전해진다.

이 것의 더욱 무서운 점은 복용한 이의
의협심을 길러주어 악을 죽도록
미워하게 한다는데 있었으니

일찍이 해놓은 짓이 많은
좃선당과 같은 무리들은 이 약초가 강호에 나도는 것을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노력하고 있었다.

심지어 인물과사삼을 복용하는 자는
'선대이서(先代以西)우리'. 에 가두어 진다는 유언비어까지
유포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심봤다"를 우렁차게 외친
그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인물과사삼을 캐냈다.

인물과사삼을 집어든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순간부터 나의 삶이 어떤 고난의 길을 갈지라도
후세의 누군가는 내가 하고자 했던 작업을 알아줄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이 가지고 온 망태에서 붓을 한 자루 꺼내
그 붓에 인물과사삼의 씨를 집어 넣었다.


강호에서는 좃선당의 수작으로 인해
인물과사삼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무림공적으로 매도되기
일수였기 때문에 붓뚜껑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붓뚜껑에 종자를 담아 돌아온 심마니는
그 날로부터 인물과사삼의 재배에 열중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한 좃선당이 이미 모든 논을
인물과사삼이 자랄 수 없는 양비논(攘臂)으로 만들어 놓아
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만다.

그러던 중
심마니는 좃선당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한 군데 땅을 찾아낸다.


개마고원!
고위평탄면 지대인 개마고원은 밭농사 지대로써

양비논이 생성되기엔 기후가 맞지 않았고
인적도 드물어
좃선당원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었다.


이곳에 그는 인물과사삼을 재배하기 위해
조그마한 절을 하나 세운다.
인물과사삼사(人物過私蔘寺)!


시간이 흐른뒤

마침내 그의 작업은 결실을 맺고
수많은 인물과사삼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수확을 앞두고 자라난 인물과사삼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지난 날들이 스쳐지나갔다.

'강호를 떠나 인물과사삼 재배에만 매달려 온지 어인 수년......
강호는 어떻게 변했는지..........'
왠지 모를 위기의식이 그에게 느껴졌다.


가을이 되고
그는 자신이 길러온 인물과사삼을 캐내어 하산한다.


새로이 강호 무림에 돌아온 그는
재배한 인물과사삼을 강호에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 시큰둥하던 사람들은 차차 그의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사람들은 그를 가르켜 처음엔 그저 심마니라 부르다가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자며 고군분투하는
그의 활약에 감복하여 그를
"악과 맞서 싸우는 깡을 주는 심마니" 라고 칭송했다.

이 '깡을 주는 심마니'가 강호인들에 의해 더욱 간단하게 불려져
그는 '강준마니'라 불리게 되었다.
(무협 언어화 현상)



초기엔 여기저기의 비난과 공격에 힘들어했지만
차차 여기저기에서 인물과사삼을 복용한 후
그의 뜻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생겨나 인물과사삼을 보급하는
그의 일에 같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거나
알아도 그들의 세력을 두려워해 묵과하고 있던
좃선당의 악행을 세상에 알린
일세 고수 "강준마니"와 인물과사삼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投 乾太尼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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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매부의 등장이래
무림계의 혈전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여기저기엔 그간 싸움으로 죽은 시체들이 널려있고,
지나가던 몇 몇 승려들이 하류무사들의 주검들을 수습하고 제사지내며
부디 반처창업(班處創業)을 쌓아 죽은 이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빌었다.


염불 소리와 죽은 이들의 영혼을 빌어주는 반처지원금(班處至 琴)이
서쪽 하늘에 울려퍼졌다.

계속............

승려들의 기원때문이었을까?
강호에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전문적으로 반처창업(班處創業)을 쌓는 반처기업가(班處氣業家)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나 반처기업가(班處氣業家) 들이 주식투자(株式鬪子)를 만나 수련할 경우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최근 반처기업가(班處氣業家)중에서 세놈기술(氣術)이라 불리는 3인의 내공이
수십만 제자를 거느린 정주옹의 무공중 하나인
헌대중공업(現代重工業)의 내공을 능가했다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는 점점 미궁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김데중의 수하 중에는
공자식의 치정주의를 아주 싫어하는 이가 있었으니

도올 도사가 스스로
자신과 함께 고려쌍절(高麗雙絶)이라 주장하는 채장집이 그다.

채장집은 손은 안으로 굽는다는 유교식 논리를 배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채장집은 김데중의 불애인(不愛仁) 이라는 소리를 듣는이였다.

김데중이 무림맹주에 오른 뒤에
좃선당은 무림계의 장래는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무림맹주를 공격하기에바빴다.
니발갱이지(尼發更異指)와 태양막기(太陽幕氣),
발목잡기(撥木雜氣) 등 각종 무공이 난무하는 가운데
김데중은 좃선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기만 한다.


그러던 중..
좃선이괴중 아우되는 조깟재가 일을 내기에 이른다.

과거 한고조가 항우와 싸울 때 범증, 영포, 팽월을 떼어냈던 것을
초한지에서 발견하고

김데중 주변의 고수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김데중의 주변 고수들을 하나둘씩 제거할것을 계획하고
김데중 수하의 채장집에게 도전장을 낸 것이다.

좃선당이 채장집과 싸우기 위해서는 구실이 필요했고
채장집이 과거 써논 무공분류표에서
과거 마교교주 기밀성의 무공은
머리가 없고 힘만 쓰는
역사적(力士的) 무공이었다. 라고 쓴 것을 찾아냈다.


그러자 좃선당은 그것을 가지고
역사적이란 뜻은 변강쇠와 같은 위대한 사람들에게나 쓰는
호칭인데 그런 호칭을 마교 교주에 붙인 것은 채장집이
마교인물이라는 증거라며 공격해 대기 시작했다.


조깟재가 너발갱이지로 선공을 하자
채장집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니가문대사(尼加紋玳沙)와 사상검증해(思賞檢症海)에서 연마한
채장집의 무공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좃선은 자기 편들을 때로몰고와 갑자기
채장집을 공격했고 채장집은 수 많은 고수사이에서곤경에 처한다.


공인은 검증되어야 한다며
공인중계사(公人中棨寺)의 송뽁과 정진숙이
좃선의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해외에서 달려온 독일공무원(獨逸公務員) 박상조까지....


지하철광고판(地下鐵廣告板)에서는 월간좃선의 공세를 받고
신문지상(新聞地上)에서는 좃선당주의 명을 받고 달려온
용병고수들과의 혈전에 벌여졌다.
송뽁, 정진숙 모두 난다 긴다하는 강호 일류 고수 아니던가


지상과 지하에서 그들과 한꺼번에 맞서 싸우던 채장집은
고발장으로 간신히 그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전심전력으로 수비를 하던 채장집에게 멀리서 다가오는
8척 거구의 제자가 보였다.

해석박사(海石薄紗) 마도사(魔道士) 이하누
고려 무도관에서 채장집에게 무공을 배운 그의 제자였다
항상 채장집만 보면
강호 무림의 거목이시라고 쫓아다니며 찬사를 늘어놓던
아부가 심한 제자였다.

그러나 그게 문제던가.
채장집은 개의치 않고 이하누에 도움을 구한다.


싸움에 뛰어든 이하누의 지원으로
3대 2의 싸움에서 이제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제자 이하누가 방심한 채장집의 등 뒤에 칼을 꽃는다.
이어 하누가 시전하는 정신분열장.......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겨를도 없이 이하누의 공격이
채장집의 몸에 격중된다.

피를 토하고 쓰러지며 등 뒤에 붙었던 비수를 뽑는 채장집
그러나 그 비수를 보고는 스스로 저항할 의지를 잃고 만다.

'왜곡보도(歪曲寶刀)'
좃선당의 병기 였던 것이다....

하누..............너마저..........크윽.......


'당신은 나를 너무 모르고 있었소.
무도관을 졸업하고
내가 좃선에서 기를 수련한 좃선기자(朝鮮氣子)란 것도...
우리 아부지가 이승마니란 것도........

이승마니......
흐릿해져 가는 채장집의 머릿속에 이승마니에 대한
기억이 스쳐갔다.

전임 무림맹주로
친일파(親日派)를 자신의 친위부대로 삼은 인물
막판에는 독재정권까지 연성했던 이승마니

이승마니의 친위부대였던 친일파들이
수십년간 연성한 무공이 바로 작금의
수구기득권(守舊氣得拳)이었다.

더구나 좃선기자라니........


싸움은 끝났다.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강호에 채장집의 패배가 알려졌다.


이 싸움으로 인해 채장집은 목숨은 잃지 않았지만
수십년 만에 겨우 익힌 정책기획위원장(定策企劃委員掌)을 잃게된다.


그러나..........
채장집이 잃은 것은 그것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수구기득권이 강호를 종횡하는데 대한 무력감과
자신의 영달을 위해 타인을 짓밟는 비겁한 무림인들의 모습은
그에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석양을 바라보고 서있는 채장집

강호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상처입은 고수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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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매부에게 경제주권(經濟鑄拳)을 빼앗기고 무림계는 최악의 위기에 봉착한다.
경제주권(經濟鑄拳)을 빼앗아 간 아매부는
경제주권을 이용 무림계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아매부가 무림계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떠오른 것이다.

아매부는 자신에게 대적할만한 문파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려 간다.
그때 아매부가 타고다닌 배이름을 구조조정(鉤糟棗艇)이라 한다.
아매부가 구조조정(鉤糟棗艇)을 타고 나타나면 산천초목이 다 떨었다 전해진다.

아매부의 무공으로는 경제주권(經濟鑄拳), 저성장(低聲掌), 등이
있을뿐만 아니라
물어뜯는 무공까지 겸비하고 있었는데
그의 이빨이 '고급니(高金利)'였기에 가능하였다고 한다.

이때 강호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갔고
무림맹주 김데중은 비대해진 체중으로 무공이 쇠퇴한 죄벌(罪閥)들에게
다이어투공(茶異御鬪功) 연마를 지시한다.
체내 지방 비율을 200% 이내로 낮추라는 무림맹주의 명이었다.
그러나 죄벌(罪閥)이 괜히 죄벌이던가

이들은 그동안 모아둔 살들을 고스란해 접어 숨기고
하류무사들에게 일방적 다이어투공(茶異御鬪功) 연마를 지시한다.
그리고는 각 죄벌(罪閥) 문파의 수장들은 서로 도망갈 구석만 찾고 있었으니

아매부가 대결을 신청하면 부하들만 남겨놓고 도망갔던 것이다.
모든 문파가 달려 들어도 모자랐던 판에 수장들은 다 도망가고.
아매부의 무공에 수많은 하위무사들의 목이 잘려나갔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무사들은
자결용으로 준비해 놓았던 약을 먹고 세상을 뜬다.
수백년전 노숙자(老熟子)가 만들었다는 가정파단(家庭波短)이 그 약이었다.

이때 살아남은 하류무사들은 나름대로 살기 위한 호신무공을 개발했으니
공공근로(公空勤老)가 연성한 일용지기(日傭地氣).....
이 무공을 이용해 일부 하류무사들이 목숨을 이어갔다 전해진다..

이 틈에 죄벌들과 협잡한 좃선당과 중앙당은 시장(市場)에서는 강자(强者)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무림 여론을 죄벌로부터 돌리기에 바빴다.
더군다나 이 와중에서 좃선당은 모종의 음모마저 꾸미고 있었으니.........



그러나 강호무림은 그리 쉽게 아매부(亞賣鳧)에게 무릎꿇지 않았다.
기명사미를 단숨에 패배시킨 아매부의
돈업지(敦 指)와 외환위기(外換渭氣)에 맞서기 위한 무공이
한쪽에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때 개발된 무공을 외환모우기(外換謀遇氣)라 한다.

외환모우기(外換謀遇氣)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장

검모우기(劍募優氣) - 하류무사에게는 무기의 유무가 무공에 큰 차이를
나타내는 법, 무림인 모두가 무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영하온도(零下溫度) 자갈치(炙渴嗤)가
수 십년간 모은 사시미를 내놓았고
금은방주(金銀房主) 박사장(薄謝長)은 검의 원료인
열(가지)쇠를 내놓았다.
비녀(婢女)로 유명한 애국사태(愛國沙汰)는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던 비녀를 주물에 넣어달라며
자신의 제자 검비녀(劍鼻女)와 함께 망설임 없이 비녀를 풀었다.

그러나
검개구리(劍開龜狸) 돈만군(豚萬君)과
강남졸장부(江南卒丈夫) 검괴덩이(劍傀 異)
검송아지(劍松亞指) 장롱속(欌籠屬)은 도망갔다 전해진다,




제 2장

노사화합(老師和合) - 일부 양식있는 문파에서 드물게 행해진 방식으로
늙은 스승과 제자들이 화합하여 개발한 무공이다.
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해고최소화(解 最小花)와 투명경영화(透明經營花)
를 고통분담(苦痛紛擔)아래에서 키워 그 꽃을
스승과 제자가 나눠 복용해야 한다고 한다.


제 3장

물배채우기(物背蔡郵氣) - 운동장수도가(運動場水道家)에서
흥구리정신(興龜利井神)의 제자
걸식아동(乞食兒童)이 개발한 무공,
장기간 연마할 경우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체구가 작아지는 수가 있다고 하는데

매우드문 경우로.......
심각한 경우 심성이 포악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전해진다.
일갑자 이전 박통(博通)이란 소년이 이 무공을 익히다
사마외도(邪麻外道)로 빠져
독재정권(獨裁正拳)을 연성했다하니
그 부작용이 어마어마 하다 할 수 있겠다..

일부지역에서는 이 무공의 무분별한 연마를 막기 위해
철가방(鐵枷房)의 중식당주(中食當主) 왕사장(王社長)이
급히 대체무공 간자장(諫子掌)을 전수시켜
더 이상의 물배채우기(物背蔡郵氣)가 유행하는 것을 막았다고한다


제 4장

복대조이기(腹帶調而氣) - 이 기간동안 거의 모든 무림인이 익힌 무공이다.
그러나 다이어투공(茶異御鬪功) 연마를 명 받은 죄벌들은
스스로의 뱃살을 가리고 이 시기를 넘기기만을 바라고 있어
무림동도들의 지탄을 받았다.

사재출연공(私財出燕功)을 연마하는 척하던
삼승자동자(三乘自動者) 이건니(移建尼)는 남몰래 자신의
사조(四祖)삼승반도자(三乘半島者)이병쇠에게 배운
내부거래후상장(內部去來厚傷掌), 물려주기(物麗主氣)를
이용해 뱃살을 숨기려하다 폐부가 세금이십어기(稅金二十於氣)의
주화입마(主和入麻)에 빠져 생사를 넘나들었다 전해진다.

또한 대우사(大優寺) 주지 기무중역시
사재출연공(私財出燕功)을 연마하는 척하며 뒤에서
왕복대차용하기(王腹帶借用荷氣)를 연성하다가
아매부가 채권단으로 매수한 자신의 수하 대우사태(大優沙汰)에게
배신을 당하여
대우사태(大優沙汰)의 부도(副刀)에 무공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불도자(不道者) 정주(頂珠)옹은 신약 금강산(金剛酸)을 복용하고
소몰기(召沒氣)를 연마하여 몸의 부피를 줄였지만
그가 아끼던 제자 자동자(自動者) 현다이(現多吏)를 파문시켜야 했다.


그 뿐 아니라 아매부가 기승을 부릴 무렵
또 하나의 제자를 잃어야 했으니

그 제자가 바로
덩치큰 몸을 자랑하며 농업에 정진해
헌두(憲豆)의 대량재배에 성굥하여
군량난을 해결하는데 탁월한 기량을 보인
거인제자 이익지(利益脂)였다.

저가에 헌두를 나누어 줄 때 사람들은 그가 헌두를 대량공급한다 하여
'그 사람은 헌두마니줘' 라며 칭송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익지가
헌두를 정주옹의 문파에만 대량공급하는 일이 터졌다.

정주옹의 부하들은 남는 콩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고
그들이 만든 술이 무림에 유통 되면서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가격 문제였는데
수도 없이 만들어지는 헌두 때문에
다른 주류업자가 연달아 파산하는 것이었다.

소주(蘇州)의 유명 주류판매 업자
진로(眞老)는 이로인해 스스로 부도(副刀)를 몸에 찔러 자결하고 만다.
진로의 죽음을 접한 무림동도들은 상거래의 질서를 파괴한 이익지를
주가조작(酒價造作)이라 부르며 매도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소리를 들은 김데중은 자신의 부하 이헌자(李憲者)를 보내어
이익지를 제거하게 한다.

커다란 덩치와 저돌적인 힘, 단단한 피부를 가져
'바위 골리앗' 이라고 불리던 이익지와
자그마한 체격의 이헌자

내가 너 '다위(茶慰)' 한테 당할 듯 싶으냐?

엄청난 힘과 덩치 그리고 검과 도를 잘써 검도자(劍刀者)란 별호를 가진
이익지는 일갈을 하며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돌맹이는커녕 아무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던 이헌자가 자신의 무공
금감위원장(金監委員掌)을 시전하자
이익지는 눈물을 쏟으며 쓰러지고 무림옥에 갇힌다.


제 5장

거대거래(巨大去來) - 포철사 주지로 유명하고 공동정권의 3인자
박태주니가 개발한 무공으로 아매부와의 대결시 고수들이
다양한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적을 혼란케 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시다시피 죄벌총수 들이 저모양 이고
서로가 지 몸 보신에만 좋은 무기를 갖고 싸우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무산되고 만다.




어쨓든........
불완전한 무공 외환모우기 였으나
수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달려 드는데는
'그놈 참 깡도시다' 소리를 듣던 아매부도 지쳐가기 시작한다.

싸움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외환모우기의 위력은 날로 강력해져 가고
싸움은 진정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최근들어 김데중은 아매부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선포했다.
그러나 아직도 아매부의 무공 외환위기(外換渭氣)는 강호의 방심한 틈을
노리고 있다 전해진다.




아매부의 등장이래
무림계의 혈전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여기저기엔 그간 싸움으로 죽은 시체들이 널려있고,
지나가던 몇 몇 승려들이 하류무사들의 주검들을 수습하고 제사지내며
부디 반처창업(班處創業)을 쌓아 죽은 이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빌었다.


염불 소리와 죽은 이들의 영혼을 빌어주는 반처지원금(班處至 琴)이
서쪽 하늘에 울려퍼졌다.

계속............

Posted by taichi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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